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90)
#90
성검의 시련 (3)
콰아앙—!
“큭.”
하인리히는 자신을 노리고 쏘아져 오는 검은 광선을 「축복 : 광검」으로 쳐내며 신음을 흘렸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늘에서 쏘아지는 마법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키에엑!]스각—!
그 와중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광검으로 베어 넘기며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우선 시련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저 아크리치에게 뭔가 뒷 설정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놈들 틈에 데스나이트 같은 최상위 언데드가 없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거기까지 가면 진짜 양심 터진 거지.’
또 같은 아크리치라고 해도 눈앞의 상대와 예전의 한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었다.
‘불사왕의 파편’으로부터 공급되는 무한에 가까운 흑마력부터, 「사악한 지혜」와 「금단의 지식」을 비롯한 다양한 능력들까지.
물론 꾸준히 단계를 밟아가며 진화한 저 아크리치가 한스보다 더 노련하긴 하겠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주어진 시작점이 달랐다.
‘그렇다고 상대가 만만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 무지막지한 흑마력과 오랜 세월 갈고닦아 경지에 오른 마법 실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혼자서 무작정 부딪친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다른 아바타들을 소환할 수도 없으니···!’
시련의 가상공간 속에 아바타를 추가로 소환할 수 있을지 여부는 둘째 치고, 아직 이계전송진의 쿨타임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의 배율이 다른 탓에 하인리히가 시련에 들어선 지 한 달이 훨씬 넘었지만, 바깥은 이제 막 5일 차에 접어드는 시점인 것이다.
어떻게든 그 혼자만의 힘으로 시련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인리히 혼자만의 힘으로 싸우는 중인 건 또 아니지.’
그가 유려한 검술로 달려드는 해골들의 골통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려던 순간.
상공의 아크리치에게서 다시 한번 격렬한 흑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달려드는 언데드들 때문에 하인리히의 손발이 어지러워진 틈에,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복잡한 체계를 이루며 순식간에 파괴적인 신비를 엮어냈으나···.
‘다수의 그림자 칼날. 눈속임용인가? 이건 지금까지처럼 쳐내면 되겠고.’
마법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한스에게 낱낱이 분석되었다.
‘어둠 속성 좌표 발동형, 지정 대상을 속박 후 파괴···. 지옥 사슬이군. 이건 위험해, 피해야겠는데. 시작 좌표는 스물하나. 9시 상단, 12시 하단, 4시 중하단···.’
그리고 구조가 까발려진 신비는, 더 이상 신비가 아니었다.
그는 무기를 맞대던 듀라한을 걷어차며 순식간에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워어···!]달그락 달그락—!
그렇게 자신을 붙잡으려 드는 언데드들을 헤치며 이동한 하인리히는, 허공의 몇 지점을 향해 연신 「축복 : 광검」을 휘둘러댔다.
파직—!
파지직!
그의 검이 지나칠 때마다 미완성된 마법 좌표들이 검에 담긴 상극의 기운에 그대로 파괴되었다.
쉬아악—!
그 와중에 바닥에서 치솟는 그림자 칼날들이 그의 앞길을 방해했지만.
쳐낼 수 있는 것만 쳐 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몸으로 때우면서 철저히 목표만을 노렸다.
마법이 발동되기 직전까지 파괴할 수 있었던 좌표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미 구멍 난 그물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뒤늦게 완성된 좌표에서 사출된 검은 쇠사슬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파훼 되었다.
그런 식으로 하인리히는 다소 피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위험한 공격만은 어떻게든 회피하고 있었다.
[···쫄래쫄래 잘도 피하는군.]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다 보니 당연히 아크리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상대가 발버둥 치는 것을 구경하며 여흥을 즐길 셈이었지만, 이렇게 틈틈이 진심이 담긴 공격을 섞어도 쉽게 빠져나가니 슬슬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제법 한 수가 있는 놈이었구나. 저 빛의 검도 그렇고. 하긴 그러니 혼자 여기까지 왔겠지.]아크리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상대의 역량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놈을 짓밟아 놓기로.
그가 그리 마음먹음과 동시에··· 주변의 흑마력이 요동치며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지금!’
그리고 그것은.
기회를 노리며 능력을 감춘 하인리히가 바라던 순간이었다.
「축복 : 증량」으로 급격하게 치솟은 신성력이 검으로 밀려들었다.
그것을 연료로 광검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부풀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한껏 집중 중인 아크리치를 노려본 그는···.
곧바로 놈의 머리 위로, 「축복 : 도약」을 사용했다.
파앗—
[음?!]아크리치가 높은 수준의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 정신이 팔린 순간을 이용한 찰나의 빈틈.
터져 나오는 빛과 함께 하인리히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하인리히가 놈의 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성공이다!’
무작정 도약을 사용했으면 이동이 끝나는 즉시 놈에게 요격당했을 터.
발동 시간이 극히 짧은 「축복 : 도약」이었지만, 아무런 대비 없이 아크리치의 지척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마법사란 족속은 항상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들이고, 위기 상황에 대비한 수단을 몇 개씩 준비해두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놈은 그걸 이용해 찰나 만에 다수의 마법을 그에게 때려 박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림없다!]지금 당장만 해도, 시전 중이던 것을 빠르게 취소한 놈의 주변에 여러 마법이 동시에 완성되고 있지 않은가.
‘상시 발동 방어 결계, 역장 분출, 방사형 저주, 자동 반격 체계까지···.’
하지만, 놈은 하인리히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었다.
그는 공중에서 등과 다리로 신성력을 분출하며 아크리치에게 몸을 던졌다.
온몸에 두른 신성력으로 사방으로 방사된 저주를 버티고, 한층 길어진 광검으로 검은 불꽃을 베어 갈랐다.
이어서 자신을 밀어내는 기묘한 힘까지 절단한 그의 검은, 마침내 놈의 방어 결계를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뭣?!]물 흐르듯 이어진 이 연계는 단순히 흑마력에 극상성인 「축복 : 광검」의 힘만으로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놈이 장난치듯 몇 개의 마법을 툭툭 던지며 간을 보는 동안, 한스는 그 마법 체계를 분해해 역산하는 데 성공했다.
하인리히는 그런 한스의 지식에 따라, 광검으로 마법 구조의 빈틈과 마력의 결을 따라 술법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해체했을 뿐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강인한 그의 육체와 숙련된 무기술로 한순간에 행해졌다.
그렇게 섬광처럼 휘둘러진 빛의 검에 놈의 모든 방어 수단이 무력화된 후···.
콰직—!
아크리치의 어깨에 광검이 파고들었다.
[크헉!]한쪽 어깨를 지나 가슴부위까지 갈라진 놈은, 가슴에 검을 박아 넣은 하인리히와 함께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앙—!
충격에 터져 나온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크윽···!”
그 먼지 속에서 하인리히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훔치면서.
‘몸속에 신성력을 그렇게 퍼부었는데, 그 상황에서 반격을···.’
너무 근거리에서 발동되었던지라 속절없이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아크리치에게서 튕겨져 나온 그는, 주변에서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차분히 베어 넘기며 다시 기세를 끌어 올렸다.
‘···역시 빗나간 게 문제겠지.’
머리를 두 쪽으로 만들 셈이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반응한 놈에게 공격 경로가 비틀려 버렸다.
[크으으···! 일개 성기사 따위가 감히···!]물론 그렇다고 아크리치가 입은 피해가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니었다.
풍족한 신성력을 가득 담은 광검은 놈에게도 치명적이었으니.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신성한 백색 불길이 이글거리며 놈의 흑마력 운용을 방해하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속전속결로 끝낸다.’
놈과 함께 하늘에서 추락하며 방사한 신성력으로 최대한 기존 전장과 멀어지기는 했으나, 지금도 주변에 언데드들이 제법 포진한 상황.
여기다 기존 전장에 남아있던 놈들까지 합류하게 되면 전황은 더 어려워질 터.
“후우···.”
하인리히의 몸에서 저주를 불사르고 육체를 회복시키는 신성한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의 초인적인 육체는 잠깐 숨 고르는 동안에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간다!’
그렇게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며, 치솟는 흑마력과 쏟아지는 흑마법 사이로 몸을 던졌다.
이 바닥 최고의 일타 강사를 등에 업은 채로.
***
어떤 흑마법이 사용되든 그것이 완성되기도 전에 먼저 간파하고.
파악한 마법의 취약점을 극상성의 광검으로 베어 무력화할 수 있었다.
그의 강건한 육체는 몇 번의 공격을 허락하더라도 쉽게 쇠하지 않으며.
설령 상처를 입더라도 자체 회복력과 성법의 조화로 순식간에 치유된다.
그의 방대한 신성력은 끊임없이 샘솟는 듯했고.
수련을 통해 정립된 효율적인 움직임과 유려한 검로는 그를 막아서는 적들을 베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촤아악!
해골의 정수리에 내리꽂힌 빛의 검이 강렬하게 발광하며, 놈의 허리 어름까지 두 갈래로 양단했다.
화르륵—!
절단면에서 피어오른 신성한 불길에 전신이 타들어 가며 아크리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법이구나, 교단의 성기사···.]재생 불가 수준으로 파괴된 그의 몸은, 서서히 재가 되어 부스러지는 중이었다.
[그 빛의 검도 그렇고, 내 마법을 전부 간파하는 안목도 그렇고··· 교단에서 단단히 작정하고 사냥개를 키워냈구나.]아무리 자신이 방심하다가 불시에 허를 찔렸다고 해도, 하인리히의 수준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담담히 인정하며 오히려 상대를 비웃었다.
[크큭큭··· 하지만 너에겐 애석하게도, 나는 죽지 않는다. 그저 잠시 자유를 잃을 뿐이지.]따로 추출한 근원이 파괴되지 않는 한, 아크리치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였으니까.
[이거 어쩌나? 숨겨뒀던 비장의 수단까지 전부 사용한 것 같다만.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이번과 같은 요행은 없을 것이다. 크흐흣.]그 조롱에도 전투로 만신창이가 된 하인리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언데드의 잔해 사이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재가 되어가는 아크리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괜찮은 여흥이었다. 신체가 회복되는 동안 네게 어떤 절망을 줄지 생각하는 것도 좋은 시간 때우기가 될 것 같구나. 벌써부터 다시 만날 때가 기다려지는···.]그리고 마침내 놈이 완전히 먼지가 되어 흩날렸을 때···.
놈이 있던 자리엔 어느새 갈색 문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온전히 처리하지 못했는데도, 이대로 끝인가?”
애초에 자격을 심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으니, 그런 건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건지도 모르겠다.
뭔가 있는 것처럼 떠들던 놈도 그저 게임 속의 캐릭터처럼 시련이 구현해낸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문을 통해 이동하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흐음··· 상당히 아슬아슬하지만, 가능할 것 같은데.’
그리고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이왕 할 거, 확실하게 하는 쪽이 좋겠다고.
‘아무리 가상공간이라지만, 이대로 그냥 가면 찝찝하니까.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그는 일단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관문을 슬쩍 건드렸다.
그러자 첫 번째 시련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기운이 빨려 들어오며, 너덜너덜해졌던 그의 육체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파손된 갑옷이 깨끗하게 원상복구 된 것은 덤이었다.
‘음, 좋아. 효과 확실하군.’
시련을 거치고 한층 강건해진 육체에 내심 만족하며, 그는 그대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이어서 한 좌표를 떠올리고···.
그 장소를 향해 곧장 「축복 : 도약」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그 장소에 둘러쳐진 결계가 반발을 일으켰지만, 하인리히는 「축복 : 증량」을 통한 압도적인 신성력을 쏟아 부어 기어코 내부로 진입했다.
“후우— 아슬아슬했군.”
음산한 분위기의 어두컴컴한 지하 석실.
아까의 전장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이곳은, 그간 성장한 「축복 : 도약」의 거리 제한에 살짝 걸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산소가 희박해. 오래 있진 못하겠는걸.’
딱히 오래 있을 필요도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하인리히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원하던 것을 발견하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그것에게 다가갔다.
제단 위에 모셔진 채, 이런저런 결계들로 소중히 보관된 그것에게.
“안녕? 금방 또 만났네?”
우우웅—
당황한 듯 희미하게 진동하는, ‘아크리치의 근원’.
아마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놈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라지기 전에 그렇게 입을 털어댔겠지.
하지만 그는 아크리치가 재가 되어 사라질 때,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인리히의 감각을 통해 열심히 노력한 한스의 공로가 있었다.
놈이 사라지며 느껴지는 흑마력의 유동을 분석하고, 그 흐름을 역추적해 근원의 좌표를 산출했다.
불사왕인 한스에게는 상당히 간단한 일이었다.
우웅— 웅! 우우웅—!
연신 흑마력을 뿜으며 진동하는 아크리치의 근원.
목소리가 들리지 않음에도 그 뜻이 느껴지는 듯했다.
콰직!
물론, 애초에 대화할 생각도 없었던 하인리히는 거침없이 광검을 휘둘러 그것을 두 동강 낼 뿐이었다.
“후우— 이제 좀 속이 시원하네.”
그는 신성력에 휩싸여 소멸되는 근원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재차 시련의 의지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전과 달랐다.
‘오? 가산점이 붙은 건가?’
그것도 상당히 후하게 판정한 듯했다.
시련 하나를 통째로 건너뛸 만큼.
‘뭔가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잘 끝났으니 좋은 일 아니겠는가.
피식 웃은 그는 눈앞에 나타난 관문으로 당당하게 이동해 문을 활짝 열었다.
동시에 전신을 감싸오는 환한 빛을 느끼며···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하인리히는 성검을 얻기 위한 시련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불사왕’의 전폭적인 도움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