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99)
#99
변화의 시작 (3)
하인리히 세인트 랜드가드.
성검의 주인이 되고 팔라딘으로 서임 받은 하인리히는 ‘세인트’라는 미들네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교단의 성자와 성녀 등, 주신에게 직접 간택 받은 이들만이 가지게 되는 이름이었으니까.
‘이게 다 서임식 때 받은 「대축복 : 빛의 기사」 덕분이란 말이지···.’
축복에는 그가 가진 강체, 도약, 증량 등부터 시작해서 그가 가지지 못한 것까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지금까지 하인리히는 주신의 관심을 직접 느끼고 있었던지라 확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건 일정한 조건을 달성하게 되면 얻는 어떤 보상과도 같았다.
극한의 단련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강체’의 축복을.
끊임없는 궁구를 통해 신성력의 한계 이상 받아들이면 ‘증량’의 축복을.
그 외에도 신성력을 이용한 기술을 수련하거나 성법을 연구하다 어떠한 기준을 넘어서면, 그것은 축복이 되어 수행자에게 돌아온다.
‘나는 지금껏 그다지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축복 : 도약」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그 상황에 최선을 다했을 때 얻은 축복들이었다.
기준이 좀 후했을지는 몰라도 아예 경우 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소리.
하지만 ‘대축복’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축복’과는 그 결이 달랐다.
‘오로지, 주신의 선택만으로 내려지는 축복.’
그것은 수많은 주신교단의 신도 중에서도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일이었다.
단적인 예로 현시대에 대축복을 받은 이들 중 살아있는 이는 성녀 리에스타밖에 없을 정도.
과거에는 아예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다고 하니, 그것을 받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성검의 인정을 받는다고 무조건 대축복을 받는 것도 아니지.’
지금까지 전해지는 성검의 주인들은 약 십여 명인데, 그중 성자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아예 처음부터 성자인 몸으로 성검을 쥐고 일어나 불사왕을 물리친 천 년 전의 용사와.
하인리히처럼 성검을 쥔 후에 성자가 된 바로 전대의 용사.
즉, 이전 세대에 불사왕을 쓰러뜨린 성검의 용사들 또한 주신의 선택을 받은 성자였다는 뜻이다.
‘그만큼 주신님이 심연에 관한 일에 신경 쓰고 있다는 거겠지. 그런데 성자라니, 뭔가 좀 간질간질한데.’
주신이 자신의 쓸모를 느꼈는지 팍팍 밀어주려는 것 같긴 한데, 조금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 저기 성자님이시군!”
“과연, 처음 대신전에 왔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주신께 선택받으실 줄이야.”
“확실히 그 성장 속도는 정상이 아니었죠. 이제야 납득이 가네요.”
이전까지 편하게 지내던 이들이 전부 그를 경외하듯 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팔라딘이나 대주교는 물론, 몇 번 만나 본 적도 없던 추기경들조차.
‘거기다 새로 지급된 장비들의 상태도 장난 아니지.’
그가 입고 있는 순백의 갑옷, ‘영광의 수호’는 과거 주신교단 최고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을 비롯한 희귀 금속들이 사용된 것은 기본.
그 안쪽 면에는 기도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어 온갖 고위 성법에다 아예 신성 결계까지 둘러진, 그야말로 ‘움직이는 성채’나 다름없었다.
‘가격도 딱 그만큼이고.’
그것도 변방의 작은 성이 아니라, 온갖 마법적 처치가 이뤄진 전략 요새의 가격이었다.
그 가격이 워낙 살인적이다 보니 부유한 주신교단에서도 단 하나밖에 만들지 않아, 팔라딘들도 이것보다 낮은 단계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성물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이었다.
‘결국 이게 최종 장비라는 소리지. 최고의 무기인 성검과 최고의 방어구인 영광의 수호. 더는 장비 맞출 고민할 필요도 없군.’
그렇게 성자가 된 하인리히는 지금, 안정을 취하며 요양 중이던 교황을 성녀와 함께 알현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부드러운 인상에 와병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광이 흐르는 눈빛, 그 몸에 가득 들어찬 강대한 신성력까지.
지금까지 주신교단을 이끌어 온 하티아누스 2세는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정정해 보였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지.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간도 하루에 한 시간 남짓이라고 했던가.’
막대한 신성력으로 아직 버티고는 있지만, 그의 생명의 촛불은 꺼지기 직전이었다.
성녀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시종일관 밝은 모습만을 보이며 교황에게 하인리히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그가 다시 잠들 때까지 신나게 떠들던 그녀는 거처를 완전히 나오고서야 침울한 표정이 되었으나, 금세 표정을 고치고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아직 어리지만 그녀는 성녀였으니까.
그런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내색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이곳은 세계 최대 종교의 중심지가 아니던가?
그들에게는 죽음 또한 주신의 곁으로 향하는 또 다른 여정일 뿐,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완전히 수습한 듯한 성녀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던 도중, 그녀가 문득 떠오른 듯이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하인리히 님도 성자가 되셨으니, 좀 더 본격적으로 이쪽 일을 함께할 수 있겠네요! 아아, 짐을 나눠서 질 동지가 생겨서 너무 기뻐요!”
···아무래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정말 중요하거나 골치 아픈 문제들은 추기경의 주도하에 실무자들이 처리한다고는 하지만, 교황이 업무를 볼 수 없는 지금은 그녀가 가장 지위가 높다고 할 수 있었으니 은연중에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모양.
‘교황과 성녀는 비슷한 위치니까···.’
상징적인 면에서는 그녀가 더 우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무수한 증명을 거쳐 성직자의 정점인 교황까지 오른 이의 지위는 절대 만만치 않았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성녀는 교단의 상징일 뿐, 그들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이들은 교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 교황의 자리가 부재중이라는 게 문제지.’
전대 교황이 주신의 품으로 떠난 후에야 새로운 교황의 선출이 가능한 만큼, 당장은 남은 이들이 더 힘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현 교황은 노년의 나이임에도 그녀를 입양해 거둔 호적상의 양부이지 않은가.
부친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메우려는 마음 또한, 성녀가 잠조차 줄여가며 업무에 힘을 보태는 이유 중 하나이리라.
“그러고 보니 상의드릴 일이 있었네요. 이번에 불사왕의 움직임에 대해 전해 들으셨죠?”
성자가 되며 업무의 인계가 이루어지고, 그에게도 외부 소식을 전해주고 업무를 보조하는 이들이 붙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최근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완 다르게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해요. 심연을 열고 대륙에 언데드들을 불러낸 데다 이번엔 대놓고 도발이라니···.”
바로 불사왕 한스의 최근 행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거기다 유능한 교단의 정보팀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상세하게 분석해 하인리히에게 전달해 주었다.
언데드들에게 신호를 보내 집결시키고, 그들을 수습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물론 언제까지 숨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교단이나 마탑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영지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광고를 때려 댔으니,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지금쯤 다른 세력들도 더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느라, 한창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한스에게는 그리 좋지 못한 소식이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는데···. 불사왕이 그렇게까지 해서 다시 병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니, 그걸 쉽게 내버려 둘 순 없죠. 그가 병력을 더 모으기 전에 먼저 처리할 기회에요!”
성녀가 의욕에 찬 얼굴로 금빛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열변을 토했다.
그것은 이미 한스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한스가 보낸 신호에 대한 회신이라는 것은 결국, 작정하고 탐지하려 드는 다른 이들에게도 들킬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일부러 지역을 나눠가며 일을 벌이는 중이긴 한데···. 어떻게 뭉치고 회수하기도 전에 언데드들이 토벌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지금도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언데드들이 등장한 위치가 워낙 제각각이고 그 수도 많아서, 인적이 없는 곳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교단의 신전이나 마탑 근처, 강자들이 있는 도시나 군사력이 강한 영지 근방이라면 위치가 발각된 순간 그걸로 끝.
불사의 군대 간부급이 있지 않은 이상 각개격파 당하는 꼴은 피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조만간 다시 대륙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에요.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이상 그들도 더는 손 놓고 있지 못할 테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방안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성녀가 눈을 빛내며 굳은 의지로 결의를 다졌다.
그러다 하인리히를 향해 휙 돌아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함께요!”
···아무래도 정말 그동안 업무에 관한 부담이 컸었나 보다.
***
사실 그간 교단이 불사왕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했다고는 하지만, 이온 대륙의 다른 나라들이 보일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전에 발생했던 사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으니.
전대 불사왕들과의 싸움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형태를 띤 전면전으로 이루어졌다.
그 심장이 지닌 심연의 기운이 너무 강한 탓에, 교단에서 그들의 위치를 어떻게든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물론 역대 불사왕들은 흑마법의 극의에 이른 만큼 잠깐 교단의 시선을 피하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무슨 수를 써서 잠시 이목을 흐리더라도, 그것에는 한계가 있어 결국에는 그 위치가 발각되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거대한 불사의 군세를 일으켜 자신을 보호하는 한편, 대륙과의 전면전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부활한 불사왕은 그 행보가 판이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철저하게 자신의 위치를 숨기며, 암중에서 수작을 부려 대륙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으니.
거기다 그 종잡을 수 없는 기동력 때문에 정보를 수집해서 소재를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것이 당장 다른 세력들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던 이유였다.
싸워야 할 적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뭘 어쩐단 말인가?
그저 요인들과 요충지를 보호하는 한편, 후일의 환란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하며 군세를 정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당장 적은 보이지 않고, 그저 기약 없는 대비만 이어지길 몇 달.
상황이 그리되자, 미래에 대한 대비보다 혼란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하이에나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밑으로는 군대의 군수물자 횡령이나 군납 비리부터, 위로는 정치권의 은밀한 야합까지.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작은 불협화음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만드는 데에 한 손 보탠 것이다.
일이 커진 지금에 와서야 다시 급하게 수습하고는 있었지만.
미처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더 큰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몬스터가 출몰하는 숲길을 지나는 한 무리의 상단.
위험 지역인 만큼 그들을 감싸고 주변을 경계하는 용병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상단을 호위하는 한 용병이 옆의 사내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이봐, 마이크. 정말 괜찮을까? 요즘 곳곳에 언데드들이 돌아다닌다던데.”
“그럼 어쩌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일을 쉴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어지간히 재수 없지 않은 이상 놈들이랑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이 정도 숫자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고.”
상인들도 현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는 만큼,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여러 상단이 힘을 합쳐 평소보다 많은 수의 용병들을 고용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위험한 숲길을 가로질렀고, 결국 단 한 마리의 언데드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만···.
“으억! 이놈들은 뭐야!”
“조심해! 절대 평범한 놈들이··· 커헉!”
몬스터들, 그것도 무수히 많은 몬스터의 떼가 상단 무리를 덮쳤다.
“크륵—!”
“키에에엑!”
고블린, 오크, 그렘린 등 습격한 몬스터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그들이 하나같이 공유하는 특징이 있었다.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도는 눈동자.
입가에 질질 흘러내리는 침.
흉악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
사지가 절단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무모함과···.
목이 베이거나 심장이 꿰뚫리더라도, 숨이 완전히 멎는 그 순간까지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그 살의가.
“어째서 종족이 다른 놈들이 힘을 합친··· 크억!”
“이놈들, 끝이 없···!”
인간들을 가차 없이 유린하고 있었다.
이 또한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었으니—.
‘광기’의 영향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