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17
16회
생기를 잃은 두 눈이 제 벗을 확인하는 순간, 순식간에 눈물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서러운 마음은 제법 굵은 눈물을 쉼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당황한 해인이 벗의 어깨를 두드렸다.
“유, 윤설아……”
“해인아….. 아무 것도 없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여겨 기쁘게 찾아 나섰지만…… 우리 집도 없고…… 사람들의 흔적조차 없구나. 분명 이곳은 조선이 아니더냐? 이것이 어찌 된 일이니? 흑흑….. 우리 부모님은….. 우리 식솔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니……”
윤설은 서러움에 북받쳐 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안타까움을 어쩌지 못한 해인이 서둘러 벗의 등을 토닥였다.
“윤설아…. 정말 미안해. 이곳은 조선의 마을을 꾸며놓은 곳이야. 그 얘길 하려고 했는데…….. 널 이렇게 슬프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어. 그저….. 이곳에 오면 네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조금이나마 조선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을까 싶어서….. 잉…… 나 몰라.”
해인이 덩달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곧 길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엉엉 울어댔다.
계속된 재촬영에 점심이 늦어지고 말았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 민준이 식사를 위해 포도청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숨죽여 기다리던 팬들이 와락 소리를 질러댔다.
“꺅! 준이 오빠! 사랑해요!”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꺅! 사인 좀 해주세요. 여기요!”
당이 떨어질 만도 한 시각, 제 스타를 생각한 매니저가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길을 텄지만 준은 특유의 웃음으로 팬들을 맞이했다.
그는 제 걸음을 붙잡는 이들에게 사인을 해주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도 취해주었다.
못 말린 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매니저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신 건 잘 알겠지만…. 우리 민준 씨가 아직 점심을 못 드셨답니다. 많이 배고프겠죠? 곧 다음 신 촬영이 있어서 빠듯하니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꺅! 오빠, 아직 식사도 못 하셨어요?”
“어머, 어쩜 좋아. 어서 식사하세요. 어서요!”
팬심을 이용한 작전이 성공하자 민준이 겸연쩍은 얼굴로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들 가세요. 식사는 꼭 챙기시고요.”
예의바른 모습과 다정한 한 마디에 또다시 환호성이 쏟아졌고 준은 미안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발걸음을 옮겼다.
팬들이 멀어지자 매니저가 그를 흘겨보았다.
“진짜 못 말린다. 이미지 관리야? 아니면 진짜야?”
“하하….. 형도 참….. 몇 시간 동안 기다려준 팬들이잖아요. 얼굴도 안 보이고 간다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에효, 그래. 누가 말리겠냐. 애초부터 그런 이미지 때문에 널 픽업한 내 탓이려니……. 해야지.”
매니저의 너스레에 싱긋 웃던 준이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에 두 여자가 담기는 찰나였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이 흔치 않아 눈길을 끈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준은 그 중 하나가 바로 그 댕기머리 소녀임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스무 살의 김윤설 양?’
엄밀히 말하자면 두 여자는 그의 일을 방해한 훼방꾼이었다.
이 자리에 감독이나 조연출이 있었다면 무슨 악감정이 있어 방해를 했느냐고 따져 물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준은 두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았고 특별히 독특한 패션으로 눈길을 끈 아가씨에게는 궁금함이 일었다.
“응? 저 사람들 뭐야?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건가? 어? 혹시….. 아까 그 안내 방송에서 애타게 찾던 사람 아니야? 드디어 만났나보네. 헐, 잠깐. 저, 저거 댕기머리야? 아니, 무슨 아가씨 머리가 저렇게나 길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준의 시선을 따라간 매니저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자 그가 또다시 싱긋 웃었다.
“형, 저 배고파요.”
윤설을 위한 첫 여행이자 해인이 열심히 준비했던 일정이 조금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민속촌을 돌아본 이후엔 고궁을 둘러볼 예정이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해인은 반쯤 넋이 나간 윤설을 설득해 뒤늦은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밤새 끙끙 앓던 윤설은 기어이 병이 나고 말았다.
해인은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전기장판을 꺼내 깔았고 물수건을 만들어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윤설아, 괜찮니? 아직도 춥니?”
몸을 움츠린 채 떨고 있던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해인은 괜찮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휴우…. 어쩌면 좋아.”
발을 동동 구르던 해인이 두꺼운 이불을 꺼내 윤설에게 덮어주고는 찬장과 서랍을 뒤졌다.
다급한 손길은 비상약을 찾고 있었지만 한 달 전, 딱 하나 남았던 쌍화탕을 마셨던 일이 떠오르자 해인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으휴, 못 살아. 약국 앞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어째 상비약 하나 안 사뒀는지…. 병원에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앗, 맞다. 병원에 가면 주민번호 알려달라고 할 텐데…… 그러면 윤설이의 존재가 드러날지도 몰라. 제발…. 약으로 나아야 할 텐데…..’
이런 저런 궁리를 하던 해인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윤설에게 다가갔다.
“윤설아, 약 좀 사올게. 멀지 않으니까 금방 올 거야. 잠깐만 혼자 있을 수 있지?”
“…….으……응……”
해인은 대문을 나서자마자 골목길을 내달려 약국 앞에 도착했지만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문을 열기엔 좀 이른 듯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해인이 다시금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전 일을 가기 위해 지금쯤 아침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야 지각을 면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제 일보다도 윤설을 먼저 걱정했다.
잘 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민속촌 여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초래한 것만 같아 너무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해인이 향한 곳은 바로 그녀가 늦은 오후부터 일하는 편의점이었다.
유리문이 방울소리를 내며 활짝 열리자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던 주인 여자가 반색했다.
“어? 해인아,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급하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요.”
물건의 위치를 잘 아는 해인이 몇 가지를 골라들고 카운터 앞에 서자 주인 여자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누가 아프니? 이게 다 뭐야?”
“아, 네. 친구가 놀러왔는데 밤새 앓았어요. 약국 문이 닫혀서……”
“친구? 어머, 너 친구도 있었니? 어머머, 미안. 호호… 놀 시간도 없이 매일 바쁘게 일만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나저나 이거 가지고 될까? 요즘 감기 몸살이 워낙 독하던데…. 참, 요 앞에 새로 생긴 내과 잘 보더라. 우리 애 아빠 거기 단골이잖아.”
바코드 찍히는 소리가 반복되더니 곧 계산기에 총액이 표시되었다.
하지만 가격을 확인한 해인이 지갑을 여는 동안에도 주인 여자의 폭풍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참, 해인아, 너 혹시 야간 타임 할 생각 있니? 왜 지난번에 네가 그랬잖아. 자리 나면 알려달라고. 시간당 두둑이 쳐주는 건 알지? 새벽까지 정 부담되면 지금 타임에서 두 시간 정도만 더 해주면 안 될까?”
해인이 당황스런 얼굴로 주인 여자를 바라보았다.
“네? 강 군은요?”
“아…. 강 군? 어째 건성 건성인 것 같아서 말이야. 선반 진열에도 신경 안 쓰는 것 같고. 며칠 전에 홍 경사님이 직원들 준다고 비타 칠백 큰 박스를 사러 오셨는데 글쎄, 선반에 없으면 없는 거라고 했단다. 장사를 하는 건지 원….. 창고에 버젓이 있었구먼. 물건이 떨어지면 바로바로 꺼내놔야지. 단골 관리가 이렇게 안 되면 어쩐다니? 내가 뭐, 이거 하나로 치사하게 그러는 거 아니다? CCTV 확인해보면 손님 없을 땐 이어폰으로 노래 듣느라 아주 바빠요. 바빠. 에효, 해인이 너 만한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니깐. 어때? 네가 맡아주면 정말 마음이 놓일 것 같은데……”
수다가 늘어지는 동안 시간도 지체되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달려가 윤설에게 약을 먹이고 바로 나온다고 해도 지각을 면하기 위해선 빠듯할지 몰랐다.
해인은 여자에게 제 입으로 부탁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혈안이 됐었던 그녀였다.
물론 지금도 제 처지에선 솔깃한 제안이 분명했지만 해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들이 들으면 단단히 미쳤다고 할지 몰랐다.
하지만 해인은 불과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난 윤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상한 친구를 그저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사장님,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정말 눈물 날 듯이 감사해요. 그런데, 어쩌죠?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야간 타임은 좀 힘들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맡은 타임은 열심히 할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 그럼….. 출근 시간이 좀 늦어서 먼저 가볼게요. 사장님, 또 봬요.”
계산을 마친 해인이 부리나케 봉지를 들고 나가자 주인 여자가 멍한 얼굴로 문 너머를 응시했다.
“어머머? 쟤 좀 봐? 언제는 그렇게 사정하더니만….. 에휴, 요즘 사람 쓰기가 이렇게 힘들다니깐. 뭐, 자기 시간에 열심히 한다니 어쩔 도리가 없네. 새 알바를 구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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