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19
18회
“짜잔, 죽 집에서 가장 고급인 전복죽으로 사왔어. 윤설아, 이건 미안한 내 마음이니까 용서한다면 많이 먹어야 해. 알았징?”
“저, 전복….. 이라고?”
“응.”
윤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자 해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히잇…. 너무 생색냈나? 미안. 자, 식기 전에 어서 먹어봐.”
해인이 포장 용기를 그대로 내밀자 윤설이 빈 그릇에 죽을 덜어내며 벗을 바라보았다.
“해인아, 우리 같이 먹자꾸나. 네 마음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르니 이것은 다 먹지 못할 것 같다.”
“응?”
“자, 어서. 너도 먹어야 힘을 내지 않겠니.”
윤설은 해인이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고서야 제 입으로 조심스레 죽을 떠 넣었다.
구수한 냄새와 맛이 입안 가득히 퍼져가자 놀란 표정이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던 해인은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윤설이 놀란 것은 비단 맛뿐이 아니었다.
전복은 귀한 것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살던 곳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한성부(한양)였다.
임금님 수랏상이라면 또 모를 일이었지만 지체 높은 양반이라고 해도 자주 먹을 수 없는 재료가 분명했다.
이 세계에서 귀하디귀한 것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윤설은 꿈결 같은 황홀함을 느꼈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오후의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 해인이 집을 나서기 전, 윤설에게 무언가를 하나 건넸다.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하얗고 단단한 무언가가 담겼다.
그것은 손바닥 안으로 쏘옥 들어올 만큼 자그마했다.
윤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해인이 입을 열었다.
“윤설아, 이건 핸드폰이라고 하는 거야. 비록 2G이긴 하지만…. 혹시 몰라서 보관해둔 것이 이렇게 쓸모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히잇. 이건 너랑 나랑 전화를 할 수 있는 거야. 아, 맞다. 전화…. 잘 모르지? 음….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곳에 있어도 서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거지.”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던 윤설이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 다른 곳에 있어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그럼…… 이 속으로 네가 들어가는 것이니?”
“뭐? 푸하하하….. 앗, 미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윤설아, 나도 그렇게 가녀리고 싶다. 헤헷. 과정은 좀 복잡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서로 안부가 궁금할 때 이걸로 목소리를 듣고 얘기할 수 있는 거야. 여기에 숫자들이 복잡하지? 다른 건 필요 없고 이거 하나만 꾸욱 눌러. 그럼 내가 나올 거야. 한 번 해볼래?”
윤설은 해인이 건넨 것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잠시 네모난 판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즐비한 가운데에서 해인이 말한 가장 앞의 것을 꾸욱 눌렀다.
그와 동시에 바로 옆에 놓인 판에서 음악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윤설이 흠칫 놀란 얼굴로 해인을 바라보자 해인이 박수를 쳤다.
“그래, 잘했어. 윤설아.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받는 거지. 그럼, 반대로 해볼까? 자, 이제 끄고 내가 전화를 걸게.”
해인은 윤설이 조금 전에 했던 방법을 사용했고 곧이어 윤설의 손에 있던 네모난 판이 불빛과 소리를 토해냈다.
“어멋……..”
“소리가 나면 이렇게 뚜껑을 열고 받으면 되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윤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로 온 이후, 여러 신문물에 관해 놀라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호기심 많은 소녀를 두근거리게 만들고 말았다.
오후의 일터로 향하는 길, 해인의 얼굴이 한결 밝았다.
한 차례 뒤돌아보긴 했지만 이제 윤설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사그라지고 있었다.
얼마 전,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구형 2G폰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거기에 담긴 의미가 컸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막막함을 이겨내고 애쓴 자신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딱히 사용할 일도 많지 않았지만 해인은 자그마한 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가던 해인이 피식 웃고 말았다.
구석기 시대 유물과 같던 핸드폰이 이토록 쓸모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윤설이랑 나랑 서로 얽힌 무엇이라도 있는 걸까?’
신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 갑자기 멈칫했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인은 혹시 윤설일지 몰라 스마트폰을 서둘러 꺼냈지만 그녀를 부른 건 친구가 아닌 문자였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휴우…… 윤설이 한복, 퇴근길에 꼭 찾아가야겠다.’
정성껏 먹을 갈아 붓글씨를 써내려가던 윤설이 제 옆에 놓아둔 것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해인이 주고 간 것의 이름을 가만히 되뇌던 윤설은 기어이 붓을 놓고는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곧이어 조심스레 집어든 얼굴 속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자그마한 크기는 마치 조선에서 사용했던 분첩과 비슷했다.
차마 뚜껑을 열지 못한 채 그것을 검지로 살살 문질러 보던 윤설에게 느닷없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치 음악에 맞추어 춤이라도 추는 듯 핸드폰 뚜껑위로 불빛이 반짝였다.
“꺄악!”
깜짝 놀란 손이 그만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고 그 모습에 더욱 놀란 윤설은 서둘러 그것을 주웠다.
깨어졌을 것을 염려했으나 불빛과 소리는 여전했다.
안도한 윤설이 사용법을 떠올리며 그것의 뚜껑을 열었다.
[ 여보세요? 윤설아, 나야. ]돌같이 단단한 것을 제 귀에 대는 것이 어색해 떼었다 붙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던 윤설은 핸드폰 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반색하기 시작했다.
“…..해, 해인이니?”
[ 그래. 푸하하…. 너, 성공했구나? 내가 알려준 걸 모두 기억하다니… 역시 너야. ]자그맣고 단단한 것에서 벗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자 귀에서 그것을 뗀 윤설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웃었다.
[ 윤설아? 윤설아? 내 말 들려? ]윤설이 서둘러 제 귀에 핸드폰을 가져갔다.
“으,응. 잘 들린단다.”
[ 히잇, 그래. 지금 집으로 가고 있어. 참, 네 한복을 이제야 찾은 거 있지? 에효, 내 정신….. 크큭. 금방 갈게. ]윤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핸드폰 뚜껑을 닫았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신통방통한 물건에 싱긋 웃음 짓던 윤설의 얼굴이 곧 시루묵해지고 말았다.
‘이것으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춰둔 그리움이 금세 고개를 들어 여린 규수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돌아가리란 결심은 확고했지만 도무지 방법을 찾을 길이 없어 당황스런 최근이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해인을 따라 밖으로 나서보았지만 더욱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극도의 불안함과 허탈함을 이기지 못해 몸이 아팠지만 그런 상태로 눈을 뜬 곳이 조선이길 바란 윤설이었다.
그렇게 돌아간다면 이제껏 겪은 것을 다 덮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저 한낮의 꿈이라 여길 수도 있었고 하늘의 실수이니 평생을 함구해야 한다고 해도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말짱해진 몸으로 눈을 뜬 곳은 여전히 후손들이 산다는 대한민국이었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어.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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