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25
24회
윤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인을 응시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잘 생각해보자. 너는 조선의 평범한 소녀였어. 그리고 금혼령의 소식에 절망하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넌 국혼을 피해갔어. 그로 인해 나와 이 세상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야. 그렇지?”
“그래, 맞단다.”
“만약에 네가 이곳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말이야. 뭐, 그것이 나라를 구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던가….하는…. 그냥 소소한 일이라도 말이야. 그렇게 한다면 아마 돌아갈 길이 열리지 않을까? 착한 일을 하는데 하늘에서 그냥 보고만 계시겠어? 더군다나 네 마음도 이미 그렇게 하길 바라고 있잖아.”
해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던 윤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은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마당에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해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간절함은 결국 윤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니? 게다가 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건 참으로 아니 될 일이 아닐까?”
친구의 질문에 해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건 염려하지 마. 네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윤설아, 우선 이 식당의 사장님을 도와드리면 어떨까?”
“으,응?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니? 난…. 음식을 할 줄 모르는데….”
“에잉, 아니지. 아저씨가 음식을 만들면 넌 그저 주방에서 맛이나 보고 모양만 봐주면 돼. 조선에서 맛보고 보았던 것을 모두 기억하지?”
“그거야 당연하지만…….”
윤설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끝을 얼버무리자 해인이 손뼉을 쳤다.
“콜! 그거면 완벽해. 너도 알다시피 후손들이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서 말이야. 여긴 엄연히 한정식을 파는 식당인데 당연히 옛 맛을 선사하는 것이 옳잖아. 이 일은 그저 개인을 돕는 차원을 떠나 한식의 재조명을 위해서도 딱이라니깐. 넌 한류의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거야. 게다가 직접 나설 일은 없을 테니 어때? 정말 근사하지 않니?”
윤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한식이니 한류니 하는 말들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게다가 두려움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너무나 절박할 뿐이었다.
“해인아…. 정말…. 괜찮을까?”
“그렇다니까. 내가 다 도와줄게. 밑져야 본전이니 우리 한번 해보자.”
잠시의 망설임 끝에 의기투합하게 된 두 사람이 주인장을 불렀다.
남자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듯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맛있게들 들었어요?”
그의 물음에 해인이 싱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덕분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 그런데요…. 아저씨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뭘……말입니까?”
난데없는 말에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제대로 된 조선의 맛을 보여주고 싶으세요?”
짧은 질문에 남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조금 전만 해도 제대로 생기를 잃어 살아도 죽은 사람처럼 보였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가 감동에 겨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내, 이집을 인수할 때부터 꾸던 꿈이었지….. 현실이 막막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건 왜…..?”
“실은…. 여기에 있는 제 친구가요…. 조선 음식에 굉장히 해박하거든요. 맛이랑 그릇에 담는 모양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다고요. 지금 우리끼리 먹으면서도 얘기했어요. 그렇지? 윤설아? 이 숙주 무침은 너무 짜대요. 훨씬 싱겁게 해야 하고…. 불고기도 이것보단 조금 더 두툼하게 썰어서 너비아니로 만드는 게 오리지널이래요.”
남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곧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방금 들은 말을 적는 손길이 분주했다.
남자는 사실 긴가민가했었다.
젊은 아가씨들이 옛 맛에 관해 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조신하게 생긴 아가씨가 조곤조곤 하는 말들을 듣자 없던 신뢰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꿈같은 일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남자는 다시금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그동안 그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책을 사서 해봤지만 맛을 제대로 봐 줄 사람도 없었고….. 맛집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는 기본이었죠. 맛의 비법을 알아내는 것도 어려웠고….. 휴우…. 이제 더 이상 해볼 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아가씨들이 제안을 해주다니…. 제발 좀 도와주세요.”
남자의 절박함을 느낀 해인과 윤설이 서로를 응시하며 싱긋 웃었다.
왠지 말을 꺼낸 것이 잘한 일인 것만 같았다.
해인은 밥값을 꺼냈지만 주인장은 한사코 거절했다.
둘을 은인으로 여긴 탓이었다.
화보 촬영장에 민준이 등장하자 여자 스태프들은 물론 남자들까지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최근 의 판관으로 열연하며 한복 입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가 오랜만에 슈트를 입은 것도 한몫했다.
그의 이미지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순수함과 젠틀함이 첫 느낌이라면 귀여움과 포근함은 저절로 뒤따라왔다.
여전히 드라마 촬영이 진행 중이고 잠시 짬을 냈을 뿐, 화보 촬영 이후엔 또다시 민속촌을 향해 달려야만 했다.
시간이 빠듯하기도 했고 보통은 드라마에만 집중하기 위해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는 편이었지만 신인인 그로선 불쑥 찾아오는 제안들을 거절하기가 애매한 입장이었다.
소속사에서도 준의 인지도를 위해 애쓰고 있었고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싶은 건 당연했다.
“민준 씨, 이번 콘셉트는 연하남입니다. 첫 컷은 귀여운 느낌으로 가죠.”
감독의 한 마디에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세 포즈를 취했다.
대낮같은 조명 아래에서 꽃다발을 내민 그가 밝은 미소로 웃었다.
그런 다음엔 꽃을 제 코로 가져가 가만히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포즈를 취한 그의 모습에 카메라의 셔터가 바쁘게 움직였고 스태프들의 환호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하남의 콘셉트 다음으로 댄디한 남자의 모습이 이어졌다.
무심한 듯 시크한 눈빛이 등장하자 몇 몇이 제 가슴을 움켜쥐었고 감독 역시 탄성을 내질렀다.
“와, 역시…. 대단하군요. 민준 씨, 이런 시크한 느낌도 참 좋은데요? 다음 배역으로 이런 느낌, 한번 생각해봐요.”
뒤에 있던 여성 스태프들이 격하게 공감의 뜻을 내보이자 그가 꾸벅 인사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언, 기억하겠습니다.”
짧은 시간 집중해서 찍은 화보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민준은 감독과 함께 모니터를 한 후, 만족한 표정을 내보였고 촬영장을 나서기 전, 몰려드는 이들의 사인과 사진 요청에 모두 응해주었다.
언제나처럼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자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짜 이 세상에서 다시없을 캐릭터라니깐…. 안 그래요?”
“맞아요. 완전 멋져요!”
촬영장을 벗어난 민준은 고단함을 느꼈지만 밴에 오르기 전 밖에서 기다리던 팬들을 향해서도 친절한 응대를 잊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한 곳까지 자신을 보러 와준 것은 그에게 감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준은 사인과 사진은 물론 그들을 향해 다정한 인사를 남기고 나서야 차에 올랐다.
“아이고, 우리 판관 나리, 수고 많았다. 생수? 커피?”
매니저가 아이스박스를 열며 물었다.
“커피 주세요. 잠을 좀 깨야 할 것 같아서요.”
“자아, 드십시오. 미안하다. 오늘 스케줄이 너무 빡세지?”
“아니에요. 너무 칭찬을 들었더니 힘이 충전되는 기분이 들어요.”
준의 대답에 매니저가 화통하게 웃었다.
“올….. 천하의 민준이 이런 농담을 다 하고? 하긴 아까 여자 스태프들 아주 그냥 난리 났더라. 매달 화보 촬영 하자고 할 판이야. 크큭. 회사에 스케줄 조정 좀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오늘 같은 날은 심하잖아.”
“알아서 하셨겠죠. 신인인데 아직 그럴 입장도 아니잖아요.”
준이 커피를 한 모금 삼키자 매니저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나저나 김 PD 말이야. 자꾸만 들이대는데 어쩌지? 아, 내가 좋게 얘기했구먼 사람이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지…..”
“또 전화 왔었어요?”
“그렇다니깐. 아, 진짜 징글징글해. 꿈에 김PD 나올까봐 무섭다.”
또다시 커피를 삼킨 준이 생각에 잠겼다.
김PD는 두 번째 드라마에서 조연출로 만난 사람이었다.
준이 완전 초짜였을 때, 지나가던 행인 2에서 대사가 딱 한 마디 있는 조연급으로 올려준 이가 바로 그였다.
그 덕분에 바로 이어진 드라마에선 조금 더 비중이 있는 역을 맡게 되었고 어쩌면 그런 인연으로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니 준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만들려는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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