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30
29회
“음…… 그, 그러니까….. 월경포 말이다.”
“월경포? 월경이라면…… 혹시, 생리대?”
“생…..리…..대?”
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응,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하는 거 있잖아. 월경이랑 생리가 같은 말이야.”
“아…… 그, 그래. 그렇다면…. 맞단다.”
“어머, 그렇구나. 진작 말을 하지. 히잇. 생리대를 사용하면 되지. 뭘 힘들게 만들어서 쓰니? 그리고 윤설아, 그 말을 하는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너 귀까지 빨개진 거 알아?”
윤설은 벗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했고 해인은 영문을 알지 못해 웃기만 했다.
“그게 말이다. 조선에서는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란다. 더군다나 모녀 사이에서도 개짐을 주는 것을 은밀히 할 정도지.”
“헐, 대박. 진짜? 불편한 점이 있으리라 여겼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 윤설아, 내가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는 걸 줄게. 한 번 써볼래? 훨씬 편할 거야.”
곧 서랍으로 달려가려던 해인을 윤설이 만류했다.
이해하지 못한 눈길이 의아함을 품고 다시금 친구를 향했다.
“해인아……. 실은…..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들어주겠니?”
“응?”
“이 세상의 문물들은 낯설긴 하다만….. 조선에서 사용하던 것보다는 편리한 점이 많은 걸 인정한단다. 게다가 네가 날 배려해준 모든 것에 관해선 늘 고마운 마음뿐이란다. 허나, 한편으론 점점 이곳의 문물에 익숙해지려는 내가 낯설구나. 이것은 내가 아닌 것만 같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해진다면…. 난….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하단다. 물론 호기심이 많은 나로선 너무 즐거운 일이기도 하나, 이젠 내 선에서 내가 해오던 것을 유지하고 싶구나. 그것이 내가 돌아갈 길인 것만 같다. 아, 물론 밖에 나갈 때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렴. 그쯤은 잘 알고 있단다.”
윤설의 말을 경청하던 해인이 멈칫하고 말았다.
현대의 문물들을 소개하고 사용하게 한 것은 벗에 대한 배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우월함을 뽐내는 일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알려주는 세심함은 한편으론 과거에서 온 친구를 조금 낮춰보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현대의 것이 무조선 옳은 것만도 편리한 것만도 아니었다.
조선의 시대를 산 이들에겐 조선의 것이 훨씬 편한 것은 당연했다.
“윤설아, 생각해보니 네 입장을 더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아. 혹시 나 때문에 마음 상한 건 아니니?”
해인의 진심어린 물음에 윤설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네게 마음 상하는 일이라니… 당치도 않다. 난 그저…. 내 소속감을 공고히 한 것뿐이란다. 이곳에서 발을 붙이며 살고는 있지만 난 이곳의 사람이 아니니까…… 돌아갈 곳이 있는 한, 노력해야 하니까 말이다.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은 것뿐이니 그리 여기지 말렴. 네가 그리 여긴다면 나 역시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야.”
윤설의 눈빛이 진심을 담아 벗에게 전달되었다.
해인은 자신의 실수가 없음에 안도했고 곧 미소를 회복했다.
“그럼 바느질하는 거, 나도 도와줄게.”
“으, 응?”
“아까 뭐라고 했지? 개짐? 그거 만드는 거 말이야. 나도 돕겠다고…. 물론 바느질 솜씨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히잇.”
사방이 어둠으로 물든 밤, 향초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바느질을 하는 두 여자로부터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해인은 일부러 고생을 자처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두 팔을 걷어붙였지만 어느덧 바느질의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별로 해보지 않은 일은 서툴기 마련이었다.
선은 삐뚤빼뚤했지만 어쩐 일인지 하면 할수록 무언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런 벗의 모습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 윤설은 고마움을 느꼈고 바늘에 찔린 해인을 몇 차례 만류하기도 했다.
바느질을 하는 시간 사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해인은 가늘게 뜬 눈으로 바늘에 새 실을 꿰며 입을 열었다.
“참, 윤설아, 너 그거 생각해봤어? 드라마 말이야.”
“아, 그, 그거……?”
“어때? 완전 대박일 것 같은데? 만약에 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두 번째로 선한 일이 되는 거잖아.”
“하지만…….”
내내 미소를 머금던 윤설의 입가가 조금 경직되고 말았다.
뜻밖의 제안을 받아 어리둥절했고 여전히 그런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최근이었다.
김 감독은 해인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와 간청에 가까운 말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고 있었다.
“해인아, 난 사실 두렵단다. 락안당을 도왔던 것은 그저 작은 식당인데다가 아저씨가 안타까워서 그랬던 것인데……. 어쩐지 일이 더욱 커진 느낌이 드는구나. 드…라…마라는 것이 도대체 무얼 어찌 하는 것인지 너무 낯설고….. 게다가 내가 드러나면 어찌 하니?”
바늘에 실을 꿰어 몇 땀을 뜨던 해인이 동작을 멈추고 윤설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나 역시 일이 조금 커진 기분이 들거든. 하지만 윤설아, 네가 몰라서 그렇지, 드라마에 참여한다는 건 얼마나 신나고 신기한 일인지 몰라. 우리 집엔 없지만 텔레비전이라는 게 있거든? 음…. 그건 작은 상자 속에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는 그런 거야. 한마디로 그들이 노는 모습을 우리가 집에 앉아서 볼 수 있는 도구지. 이 세계의 사람들은 꽤 열광하는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긴단다. 특히 드라마는 꽤나 인기가 높은 편이야. 물론 그걸 만드는 일에 아무나 참여할 순 없단다. 그만큼 조금은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는 거야.”
벗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던 윤설이 고개를 들었다.
“자….작은…상자에서…. 사람들이….어찌….. 너무도 혼란스럽구나. 해인아,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나라면? 무조건 콜이지. 아, 그러니까 무조건 한다고. 히잇. 나 같은 사람한테는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인 걸?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잖아. 게다가 멋진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고 말이야. 윤설아, 네가 받은 제안은 그저 조선 음식에 대한 감독 정도니까 크게 드러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돼. 아저씨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뒤에서 코치만 해주면 된다니깐.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일까?”
“그럼, 사람들이 TV로 보고 배우는 것들이 꽤 많거든. 제대로 된 조선의 음식들을 보여준다면 낙안당까지 오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니? 그 시대를 산 네가 지금의 어떤 선생들보다도 훨씬 정확하잖아. 안 그래? 하지만 윤설아 강요는 하지 않을게. 모든 선택은 네 몫이니까 말이야. 난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좋아. 네가 내 친구인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오케이?”
윤설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벗의 따뜻한 한 마디가 마음에 와 닿은 까닭이었다.
이 세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윤설은 자신을 원하는 곳이 또 나타나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이 세계의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조선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 수 있을까? 아니,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을까?’
종방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이를 향해 플래시와 함성이 대단한 기세로 쏟아졌다.
이러한 소란은 최근의 대세, 준을 향한 것이었다.
흔치 않은 풍경은 그가 가는 곳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고 멀쩡히 길 가던 이들까지 합세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럴 때마다 주변에 민폐를 끼칠까 염려하는 준은 팬들과 기자들을 향해 최선으로 보답했지만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그는 정해진 행사가 아닌 이상, 민첩하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민준이 밝은 미소와 예의바른 행동으로 화답한 후, 밴에 오르자마자 윤 매니저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아, 이놈의 인기……”
그의 너스레에 차에 있던 모든 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왜? 없는 얘기냐? 난 사실을 말하는 거라고. 두유 노우?”
어깨를 들썩이던 그가 온몸으로 진동을 표현하며 바르르 떨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특유의 재밌는 행동에 준이 또다시 웃고 말았다.
윤 매니저는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짜증스런 음성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놔, 끝나고 전화에 불이 난다고 했더니….. 반갑지 않은 사람이구만?”
“형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준이 한 마디 거들자 그가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얌마, 난 뭐 사람 아니냐? 이렇게 거머리 같은 부류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규. 사람이 말이야, 그렇게 말을 했으면 팍팍 알아들어야지. 내가 뭐 영어로 말했냐? 중국어로 말했냐? 참내, 싫다면 싫은 거지. 아놔, 이 양반 번호 스팸으로 걸어둘까 봐.”
매니저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준이 입을 열었다.
“혹시, 김 감독님이세요?”
“당근이지.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연락하더니만 종방연 소식 듣고는 득달같이 달려드네. 야, 혹시나 너한테 전화갈 수도 있다. 절대로 받지 마! 네버! 알겠지? 차기작은 아마 현대물 로맨스로 갈 것 같다. 어떠냐? 명판관의 현대판 실사….캬….. 아, 물론 법정 물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크큭….. 암튼 회사에선 그렇게 정했으니까 다른 생각 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봐. 사실은 예민정 작가님 드라마에 캐스팅 될 수도 있다.”
잔잔히 웃던 준이 동그래진 눈으로 매니저를 응시했다.
“아놔, 이놈의 입방정….. 그냥 알고만 있어. 아직은 비밀이다.”
예민정은 최근 로맨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진부하지 않은 새로운 시선은 스마트폰에 빼앗긴 젊은 층을 TV 앞으로 이끌어냈고 그의 작품을 거쳐 간 이들은 하루아침에 스타로 뛰어올랐다.
그런 작가의 드라마에 참여하게 된다면 신인급인 그에겐 크나큰 영광이 분명했다.
준은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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