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35
34회
운전대를 잡은 윤 매니저로부터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다음 일정이 조금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마음이 편안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민준이 모르는 비밀이기도 했다.
윤 매니저는 준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아챈 후, 대표와 직접 머리를 맞대었다.
민준은 소속사의 주가를 높인 장본인이었기에 별도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관리자 대표인 두 남자가 이끌어낸 것은 바로 드라마의 특별한 계약 조건이었다.
윤 매니저는 계약 전에 김 감독을 따로 만나 그들의 조건을 제시했었다.
그것은 바로 심이지와는 절대로 투톱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냉정하다고 해도 하는 수 없었다.
그만큼 그녀와의 스캔들은 민준에게 치명타가 분명했고 더 이상 얽히는 것만은 철저히 막아야 했다.
난색을 표하던 김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온 건 3일 후였다.
그의 음성은 어쩐 일인지 한껏 들떠 있었다.
심이지를 탈락시켰다고 했다.
뜻밖의 결과를 듣는 순간, 윤 매니저는 민준을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김 감독의 의지를 느꼈지만 한편으론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묻지도 않은 것에 그가 서둘러 대꾸했다.
[ 실은 이지 양을 먼저 불러 대본 연습을 했었어요. 이미지가 어울린다 싶어서 추진을 한건데…..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지 뭡니까? 사극이 처음이라선지 영……. 톤이 불안정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연기력도 자꾸만 어색해지고…하아…어느 정도 커버가 될 줄 알았는데 무리라고 판단했어요. 이지 양은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갈 길이 급한데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김 감독은 심이지가 주막 아낙 배역이라도 달라고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윤 매니저는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어쨌거나 심이지까지 엮이는 최악의 경우는 피했으니 차기작으로 또 사극을 택하는 필모그래피는 안고 갈 수 있었다.
‘심이지가 이번에 무지하게 출연하고 싶었던 모양이네? 주막 아줌니가 웬말이냐?’
“풉…”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윤 매니저의 웃음을 뿜고 말았다.
뜻밖의 소리에 밖으로 두었던 준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뭐에요? 형?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어? 아…… 아니…뭐…. 오늘 김 감독 얼굴을 보니 아주 그냥 신수가 훤해서 말이다. 널 캐스팅해서 소원 성취한 얼굴이야.”
준이 싱긋 웃었다.
“제가 열심히 해야죠. 아까 칭찬을 받으니까 기분은 좋았는데 자꾸만 교만해질까 봐 좀 두렵더라고요.”
“아이고….선비 또 납셨구먼. 됐어. 그런 정신 상태면 오케이다. 자아, 이제 시작이니까 체력 관리도 신경 써라.”
“넵.”
동상이몽에 빠진 두 남자가 다시금 웃기 시작했다.
드라마 촬영은 초반부터 강행군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래도 고단한 건 사실이었다.
사극 드라마의 특성상, 분장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했고 그것과 합쳐진 본 촬영 시간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정승 댁 도령으로 분한 준이 커다란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전작의 배역과 차이점이 있다면 조금 더 풋풋함이 강조된 것이었다.
“민준 씨, 마음에 들어요?”
분장 담당의 한 마디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네, 실제보다 훨씬 젊게 해주셨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우리 준이 씨 역시 젠틀하시다니깐? 꼭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했네요. 하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분장사의 말에 준이 겸연쩍은 얼굴로 목례했다.
대본을 들고 밖으로 나온 그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았다.
칭찬을 들은 건 좋았지만 기분이 들뜬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올….. 완전 회춘했는데? 아니, 네 나이에 이런 말이 안 어울리긴 한다만….”
준을 기다리던 윤 매니저가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준아, 이번 분장 쌤, 꽤 마음에 든다? 안 그래?”
“명천 때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 선생님도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것 같아요.”
“말 안 해도 딱 보인다. 크큭….. 대본은? 다 외웠냐?”
“네.”
준은 제 손에 있던 대본을 윤 매니저에게 넘겨주었다.
곧 앞둔 촬영 신의 페이지엔 유난히 음식이란 단어에 동그라미가 진했다.
처음으로 조선의 음식을 마주하게 되는 오늘은 준이 그토록 고대했던 날이었다.
촬영 준비로 분주한 스태프들 사이로 인사 소리가 맑게 퍼져갔다.
고단함으로 찌든 얼굴들이 준의 미소와 인사에 녹아지기 시작했다.
스태프가 부르기도 전에 배우가 현장에 먼저 나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특히 주연급의 경우엔 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촬영 개시까지 시간이 넉넉한 상황이기에 어리둥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시선들에 개의치 않은 준이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눈이 마주치는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서도 분주히 시선을 움직였다.
애써 누군가를 찾는 이에게로 고소한 것이 스르륵 와 닿았다.
현장에서 가장 먼 곳이자 구석진 곳에서 음식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준의 직감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그의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고 말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길수록 준의 가슴이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 곳에서 그의 시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를 찾아냈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정갈한 자태의 윤설을 발견한 순간, 준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컷!”
감독의 한 마디가 가상과 현실을 갈랐다.
첫 신이 NG 없이 마무리되었다.
물이 오른 연기력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칭찬이 흘러나오자 준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모니터를 하는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준의 몰입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윤설이 참여한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과감히 차기작을 결심했던 그였다.
그 어떤 마법이 작용했는지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초반 몇 회 동안은 그녀를 볼 수 없어 애타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음식이 등장하는 오늘, 그는 드디어 마음에 그리던 이를 발견해냈다.
그녀와 함께 참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 준에게 몰입은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그를 향해 스태프들이 칭찬을 한 마디씩 건넸다.
쑥스러운 얼굴로 고마움을 표한 그가 마치 무엇에 이끌리듯 낮에 보았던 부엌으로 향했다.
열린 문틈을 조심스레 응시하던 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져갔다.
그 자리에 있으리라 굳게 믿었던 이가 없었다.
당황과 실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찰나, 곧 요란스런 수다가 흘러들었다.
“어멋, 준이 씨,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안쪽에서 준을 발견한 몇몇이 밖으로 나와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계라도 탄 듯한 얼굴로 몹시 기뻐했다.
톱 배우와 마주친다는 건 일반인들에게는 평생에 한 번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드라마 현장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유일한 비타민이라면 배우들을 눈앞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준은 최근 대세로 일컬어지며 남녀노소 전 연령층에서 호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당황으로 물든 얼굴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수고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오늘 음식 정말 근사했습니다.”
“어멋…..”
그의 앞에 선 여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준이 씨 인성 갑이라는 소문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직접 겪어보니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데요? 저희들의 수고까지 알아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맞아요. 여기까지 와주실 줄은 몰랐는데. 완전 감동이에요. 저기, 오신 김에 사인이랑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소원을 성취한 여자들의 옅은 웃음이 허공으로 번져갔다.
준은 익숙한 손길로 사인을 해주었고 그들의 가운데에서 사진까지 찍었다.
사진을 확인하며 기뻐하는 여자들을 향해 준이 용기를 냈다.
“저…. 음식 팀은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이신가요? 오전에 보기엔 더 많으셨던 것 같아서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경청하던 이들 중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 자문을 맡으신 분이 계신데 끝나자마자 매니저랑 같이 가셨어요. 그분이 좀 바쁘신 모양이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장에서 그렇게 칼같이 퇴근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니까요? 아무리 감독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다고 하지만….”
“어머, 영선 씨. 무슨 말을…. 준이 씨,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의 감동, 간직할게요.”
준이 옅은 미소로 발길을 돌이켰다.
도령의 복식을 제하지 못한 이가 분주한 무리의 사이로 지나갔다.
활기차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혼자만이 동떨어진 것을 느꼈다.
왁자지껄한 소리들은 마치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고 그는 담담한 얼굴로 계속 걸었지만 가슴에 이는 아쉬움을 어쩌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그분을 만난다면…. 무얼 어떻게 하려고….. 휴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왜 자꾸만 그녀를 떠올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준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손꼽았던 날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것에 대해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윤설 양…… 어디에 있나요?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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