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42
41회
매끈한 밴이 낯선 동네의 초입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새벽녘, 골목 가로 따닥따닥 주차해놓은 차량들은 덩치가 큰 차량의 이동을 가까스로 허락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윤 매니저가 구시렁댔다.
“아놔, 베스트 드라이버 실력 테스트 지대로 하네.”
투덜대는 소리에 윤설이 흠칫 놀라자 준이 그를 향해 한 마디를 던졌다.
“형, 제대로 보여줘요. 그 실력이 어디 가겠어요?”
“짜식, 그냥 욕을 해라. 칭찬인지 뭔지 당최 알 수가 없네. 휴우….잠이 확 깬다.”
두 남자의 대화에 윤설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준이 그녀를 응시하며 싱긋 웃었다.
곧이어 괜찮다는 제스처가 이어졌지만 그녀로선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어서 마무리하고 싶은 순간이….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겐 못내 아쉬운 순간이 금세 눈앞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진땀을 뺀 윤 매니저가 반가운 내색을 했다.
“어? 저기 맞지? 해인 씨라고 했던가?”
몇 시간 만에 낯익은 동네는 물론, 더없이 반가운 이름이 들려오자 윤설이 화색을 띠기 시작했다.
준의 아쉬운 눈길이 그녀에게로 닿았다.
편안히 녹아진 미소는 흐뭇함을 자아냈지만 이별이 다가오는 순간, 준은 그녀의 목에 걸린 핸드폰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번호를….물어볼까? 너무 들이대는 거라 느끼실까? 그래도….. 하아…. 어쩌지?’
밴이 편의점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 준의 망설임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뚝 끊기고 말았다.
윤 매니저가 차창을 내리자 윤설을 기다리던 해인이 꾸벅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죠? 제가 괜한 부탁을 드려서…..에고… 정말 죄송합니다. 저, 이거 별건 아니지만 쭉 드시고 안전운전하세요.”
떨떠름한 표정의 윤 매니저가 해인이 내민 것을 받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네, 뭐…. 주시니까 고맙게는 받을게요. 흠흠……”
준의 아쉬운 손길이 밴의 문을 열었다.
그가 먼저 내려 윤설을 도와주려고 하자 어느새 해인이 쪼르륵 달려와 준에게 꾸벅 인사했다.
“민준 씨, 정말 죄송해요. 곧장 가서 쉬셔야 하는데 저 때문에 무리하셨죠?”
“아닙니다.”
“어? 윤설아!”
밴의 높은 계단을 겁내던 윤설에게 두 손이 도움을 주기 위해 펼쳐졌다.
하나는 준 그리고 또 하나는 해인의 손이었다.
당황한 윤설의 손이 곧 제 벗의 손을 잡더니 땅으로 발을 내디뎠다.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었던 준이 겸연쩍게 미소 지었다.
“준이 씨,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말 감사합니다. 톱스타가 저 같은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시다니….흐규흐규 안 그래도 팬이었지만 조만간 준이 씨 팬클럽에 가입해야 할까 봐요. 헤헷.”
해인의 너스레에 준이 손사래를 쳤다.
“톱스타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윤설 씨를 모셔다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럼, 이만…… 두 분 조심해서 들어가시고 촬영장에서 뵙겠습니다.”
준의 인사에 윤설이 목례로 화답했다.
밴이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여자가 그 자리에 선 채로 지켜보았다.
해인은 배시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윤설은 조심스런 눈길로 멀어지는 탈 것을 응시했다.
“윤설아, 가자. 많이 피곤하지? 톱스타의 밴을 타보다니……어땠어? 좋았어? 어우 야, 너 완전 출세했다. 히히… 내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런 날이 올까 몰라.”
해인이 윤설의 팔짱을 끼더니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따라 걷던 윤설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응?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그게…..”
겨우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자 윤 매니저가 또다시 구시렁거렸다.
“아놔, 진짜 이눔의 동네. 임팩트가 확실하구먼. 운전의 초심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올 만한 곳이다.”
준으로부터 시원한 웃음이 쏟아지자 그가 곁에 앉은 이를 흘겨보았다.
“어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데 웃고만 있냐? 거기 검은 비닐에 든 거나 좀 꺼내봐. 그 아가씬 뭘 사온거야?”
“어? 피로 회복제인데요?”
준이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주자 신호대기로 멈춰선 매니저가 입속에 반쯤을 털어 넣었다.
“캬, 안 그래도 졸음이 몰려왔는데 저눔의 골목에서 잠이 한번 깨고 요놈 때문에 또 한 번 깨네? 해인이라고 했지? 그 아가씨 센스 있구먼. 졸지 말고 준이 오빠 잘 데려다주라는 뜻인가? 푸힛. 얌마, 너 그나저나 아까는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랬냐?”
“네? 뭐, 뭘요?”
“요것 봐라? 말까지 더듬는 걸 보니 수상한데? 뭐야? 혹시 그 댕기머리한테 관심이라도 있냐? 그게 아니라면 굳이 네 간식까지 다 내줄 까닭이 없잖아. 안 그래?”
당황한 준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과, 관심이라뇨…. 형도 참… 그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니까 서로 잘해주면 좋잖아요. 팀워크도 그렇고요.”
“흐음…. 단지 그뿐이냐? 그래도 의문이 해소가 안 되는구먼. 아까 네 목소리 들어보니 제법 들떠있던데? 귀신을 속여라.”
“아….하하…. 형도 참…. 고단하니까 예민해지신 것 같아요. 저, 팬들께도 늘 그래왔는데….”
“으잉? 하긴, 민준이 친절 빼면 남는 게 없지. 어휴, 졸음 탓인가?”
구시렁대던 윤 매니저가 남은 드링크를 입속에 털어 넣자 준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만이 지친 발걸음을 보듬는 시간……..
그의 입가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윤설아, 뭔데? 이제 편하게 얘기해봐.”
잠옷으로 갈아입은 두 여자가 초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해인은 집으로 오는 내내 친구의 표정이 편치 않은 걸 발견했고 꽤나 궁금해 하던 중이었다.
머뭇거리던 윤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해인아, 나….. 어쩌면 좋으니……”
“왜? 무슨 일인데?”
“있잖아…. 나…..그분이랑….. 휴우…..”
해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분? 민준 씨 말이야?”
“으,응. 그러니까…. 그분이랑 닿았어.”
답을 들은 얼굴이 어쩐 일인지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닿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단다. 절대로 의도한 일이 아니란다. 그저….탈 것이 처음 보는 것이라 낯설었고 너무 높았어. 내 스스로 오르려고 하다가 그만…. 그, 그분이 내 어깨를 잡아주셨단다.”
아까의 일이 생각난 듯 윤설이 고개를 떨구며 대꾸하자 해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꺄악! 자, 잠깐만. 그러니까 네가 밴에 타려고 하다가 넘어질 뻔해서 준이 씨가 잡아줬다는 거야? 어머머….”
윤설이 제 눈을 꼬옥 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암담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대박 사건인데? 윤설아, 너 여기에 와서 너무 잘나가는 거 아니야? 톱스타가 친히 에스코트까지 해주다니…. 정말 계 탔다. 완전 부럽 부럽….헤헷.”
“그, 그게 무슨 말이니? 톱….스…타? 그건 무엇이고…..또……”
“헐, 몰랐어? 앗, 몰랐겠구나. 민준 씨 말이야. 지금 여기에서 완전 대세거든. 음… 그러니까 잘 나가는 배우라고. 우리가 참여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잖아. 너, 설마 그것도 몰랐던 거야?”
촬영 현장에서 많은 이들과 부대끼는 것이 두려워 부엌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던 윤설로서는 준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드라마가 무엇인지 톱스타가 무엇인지는 그녀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저 날마다 먹던 상을 차려주는 일이나 거들 뿐, 하루빨리 조선으로 돌아갈 궁리만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좋은 일만 있었네. 에이, 난 또 괜히 걱정했잖아.”
“그게…말이다. 해인아…. 그렇지만은 않단다.”
“응? 또 무슨 일인데?”
해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설이 안절부절못했다.
“난….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분과 혼인을 하게 된다면…..어떡하니….”
“뭐?!!! 푸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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