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44
43회
“윤설아, 있잖아….. 우리 촬영하는 거, 구경 가면 안 될까?”
정성껏 차려진 상이 촬영장을 향해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해인이 윤설을 꾀고 있었다.
그녀의 말투와 눈빛에선 간절함이 빼곡했지만 윤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상을 차려 내보낸 후엔 음식 팀들이 모두 현장으로 나가곤 했다.
흔치 않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는 마음도 있었지만 감독의 지시를 바로 수용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음식이 주된 매개체인 만큼 김 감독은 상이 등장할 때마다 매의 눈으로 관찰하곤 했다.
물론 조선 시대를 산 윤설의 손길이 틀릴 리는 없었고 지적당하는 일은 희박했다.
해인은 윤설이 타인들과의 접촉에 민감한 것을 알았지만 흔치 않은 구경을 눈앞에서 놓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해인아, 너 혼자 다녀오렴. 난 예서 있을 터이니 염려하지 말고…..”
“어우 야, 어떻게 너 혼자 두고 가냐? 박해인, 의리 빼면 시체라규…..히잉…..”
입을 삐죽 내미는 모습에 윤설이 싱긋 웃고 말았다.
“어? 웃었다. 히잇. 윤설아, 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닌데…. 이런 구경 정말 돈 주고도 못 하는 거다? 기왕 이 세계로 왔으니 못한 구경이라도 실컷 하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준이 씨 연기하는 것도 완전 보고 싶단 말이야. 대세를 눈앞에 두고도 못 보는 심정…. 이보다 더 갑갑한 게 있을까? 흐규흐규…. 우리가 응원해준다면 준이 씨도 더 힘을 낼 텐데…….”
말없이 웃던 윤설의 머릿속으로 준이 스르륵 피어났다.
얼핏 보았던 얼굴은 그다지 또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분했던 음성과 그 음성에 담긴 상대를 향한 배려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전날을 떠올린 기억이 생수병을 대신 열어주던 장면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건네던 그의 손….. 그 손에 닿을까 봐 마음 졸이며 떨었던 제 손…..
기억을 떠올리던 윤설이 내심 놀라고 말았다.
‘어제는 정말 고마웠는데…. 그분께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였구나.’
윤설이 해인을 응시했다.
“….구경하는 것이…. 방해가 되진 않겠니?”
해인의 눈이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근이지. 결심한 거야?”
“허, 허면…. 정말…. 우리가 응원해주면….그분이 힘을 내실까?”
“어우 야, 그걸 말이라고? 히잇. 곁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힘 안 난다면 사람도 아니다. 윤설아, 그럼 우리도 슬쩍 구경해보는 거다? 콜?”
“코…오올…..”
“아싸!”
해인이 윤설의 팔짱을 끼더니 밖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늘 외톨이 같이 부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윤설이 현장으로 들어가는 찰나, 따사로운 한낮의 햇살이 머리위로 쏟아졌다.
‘그분께 힘을 주는 것으로 나의 고마움을 표하고 싶구나……’
촬영 현장은 부엌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실제 조리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세트장이 구별된 탓이었다.
벗의 손에 이끌려 쑥스러운 얼굴로 걸음을 내딛던 윤설이 곧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곳은….. 조선이 아닌가…..허면, 조선과 후대가 공존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하지만…. 너무나 생생하구나.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도 저 속으로 들어가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럴 지도 몰라.’
사대부가의 기와집, 너른 마당, 감나무….잘 차려입은 마님과 도령 그리고 몸종들까지….
민속촌 때와 달리 그곳엔 조선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없이 완벽했다.
윤설은 그리움에 사무쳤던 풍경이 미칠 듯이 반가웠고 드디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겼다.
‘후세들을 위해 선한 일을 행한 결과일까? 너무 행복하구나.’
“어…..어어?”
해인의 팔에서 윤설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동시에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타인의 이목을 극도로 꺼려했던 것과는 완전 반대의 모습이었다.
해인이 재빨리 윤설을 잡으려 했지만 템포를 놓친 손은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크게 부르려 했지만 촬영 중임을 감안해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윤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렇게 소리 없이 나아갔다.
“응? 뭐야? 컷!”
김 감독은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느닷없이 등장한 이를 발견하자마자 컷을 외쳤다.
옆모습만 보고는 어리숙한 스태프인줄 알았던 그가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야! 누구야? 아….. 지금 좋았는데!”
난데없는 소리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고 상대가 윤설임을 확인한 감독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선생님이 웬일로? 아이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실만한 분이 이러시면 곤란하죠.”
해인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다급히 달려왔다.
그녀 역시 몹시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넉살 좋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드라마 촬영 구경이 처음이라….헤헷,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배우님들, 스태프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한 해인이 재빨리 윤설의 손을 붙잡고는 현장을 떠났다.
무리들이 또다시 웅성거리자 김 감독이 큰소리로 외쳤다.
“휴우…. 자자, 집중들 하자고! 신 넘버 45, 다시 갑시다!”
당황한 얼굴들 사이에 민준이 있었다.
그는 김 감독의 한 마디에 다시금 감정을 가다듬었지만 방금 제 눈에 담긴 윤설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몹시 당황한 얼굴의 그녀가 발길을 되돌리던 찰나, 뺨을 타고 흘러내린 것은 분명 눈물이었다.
잠시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긴장이 풀린 현장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넘쳐났다.
윤 매니저가 준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놔, 아까는 뭔 일이래? 그 아가씨 정말 웃기지 않았냐? 크큭…..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그렇게 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뭐?”
“형, 죄송해요. 잠시만 다녀올게요.”
자리에서 일어선 준이 황급히 사라지자 윤 매니저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얌마 어디가? 저 녀석, 갑자기 왜 저러냐?”
분주한 발걸음이 대기실을 벗어나 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마주친 스태프 몇몇이 인사를 겸한 한 마디를 건넸고 그것에 반응하면서도 준의 시선은 한 사람을 찾기에 바빴다.
상기된 얼굴로 정신없이 헤매던 준이 드디어 걸음을 멈추었다.
부엌에서 조금 벗어나 인적이 드문 벤치에서 나란히 앉은 두 여자의 뒷모습이 그의 시선을 채우고 있었다.
‘윤설 씨………’
해인이 윤설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조금 전의 상황으로 미루어 친구를 달래주는 모습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윤설의 모습이 이 순간, 준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고개 숙인 그녀는 어깨를 들썩인 채 숨죽여 울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어떤 슬픔이 윤설 씨의 마음을 힘들게 만든 걸까? 현장으로 들어오던 그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어. 무언가 진지하고 간절했는데…..’
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이 아니라 아픔이었다.
이 통증은 아마도 윤설이 눈물을 다 흘릴 때까지 지속될 것만 같았다.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묻고 싶었지만 준은 나서지 못했다.
그가 머뭇거린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윤설이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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