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67
66회
“죄송해요. 형이 말씀해주신 것들 잘 새겼는데……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그게 다야? 넌 사과가 너무 빨라.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니까? 얌마, 내가 뭐 너한테 사과 받으려고 기를 쓰는 거냐? 그거 받아서 뭐하게? 그런 사과는 먹지도 못해. 난 그저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거라고. 그동안 한 번도 안 하던 소릴 하니까 속이 타겠냐? 안타겠냐?”
갑작스런 아재 개그 멘트에 준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쭈, 웃어? 이 녀석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형님 말을 우습게 아네? 이거 이거 군기가 빠져서는….”
윤 매니저가 준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간지럽히자 그가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다.
두 남자의 웃음소리에 운전을 맡은 로드 매니저 역시 덩달아 웃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스르륵 풀리며 편안해지자 윤 매니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진짜 뭔데? 많이 피곤했냐?”
“연달아 두 작품을 했더니 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긴, 이래저래 무리수긴 했지. 그럼 몇 주만 더 쉬던가.”
“일정…… 봐서 하죠.”
“짜식….싱겁긴. 아깐 쌍지팡이를 든 것처럼 굴더니.”
-드르르륵 드르르륵-
윤 매니저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상대를 확인한 그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성 PD 아니십니까? 우하하. 오랜만입니다. 아, 그럼요. 잘 받았습니다. 네네. 아, 그게…. 우리 준이가 요즘 차기작을 신중히 검토하느라 좀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아이고, 그럴 리가요…..에이, 우리 사이에 그럼 섭하죠. 우하하….”
준이 싱긋 웃더니 곧 비타민 워터를 한 모금 삼켰다.
매니저의 너스레를 배경 삼아 창밖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에서 곧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윤설 씨….. 무엇을 하고 있나요?’
준이 휴식기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윤설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난 이후, 메말라 있던 삶에 생기란 걸 되찾게 된 그로선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윤설을 생각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고 매일 매 순간, 보고 싶은 마음은 불처럼 일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빠듯한 일정들은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드러내고 연애할 수 없는 압박감은 준을 꽁꽁 묶어놓았다.
지금 준에겐 윤설과 함께 할 시간이 절실했다.
특별한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얼굴을 마주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함께 푸르른 숲길을 걷고도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싶기도 했다.
어여쁜 꽃을 안겨주고도 싶었다.
영화도 보고 놀이동산에도 가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가다가 싱긋 웃는 준의 얼굴이 차창 위로 새겨졌다.
연인을 생각하는 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이제 윤설은 준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녀는 어느덧 그에게 숨이 되었고 그리움이었으며 행복이 되어 있었다.
‘윤설 씨…. 너무나…. 보고 싶군요.’
“어? 오빠의 귀염둥이 해인이니? 헤헷. 잘 지냈어?”
그 사이 해인에게 전화를 건 윤 매니저는 목소리부터 달라져 있었다.
준이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윤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눈치 빠른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말을 이었다.
“참, 해인아, 윤설 씨는 뭐해? 아, 그래? 별일은 없으시고?”
잠시 귀에서 핸드폰을 뗀 그가 준에게 대꾸했다.
“윤설 씨는 집에 있단다. 잘 지내고 있대.”
“아, 네.”
준이 싱긋 웃자 윤 매니저가 통화를 마저 이어갔다.
그는 수화기 너머의 연인과 웃고 이야기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주제였지만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한 반응은 불같이 활활 타올랐다.
두 사람을 내심 부러워하던 준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제 윤설 씨의 번호를 물어봐도 되겠지? 그래,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준은 그제야 윤설의 목에 걸려있던 핸드폰을 떠올렸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컸던 그는 혹시라도 실례될까 봐 그녀에게 섣불리 묻지 못했었다.
요즘 세상에 누군가의 번호를 따내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왠지 윤설에겐 그래선 안 될 것 같았었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서로 사귀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전화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통화를 마친 윤 매니저가 준의 팔을 툭 치며 나직이 속삭였다.
“넷이서 식사 한 번 하기로 했다. 해인이가 윤설 씨랑 시간 맞춰서 말해준대.”
준의 입가에 금세 환한 미소가 드리워지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도 좋냐? 하긴, 못 본지 며칠 되긴 했네. 얌마, 이 형이 널 얼마나 생각해주는지 알지? 넷이서 만나면 여러모로 안전하잖냐. 콜?”
“고맙습니다.”
어깨를 으쓱거리던 윤 매니저가 앞좌석을 향해 외쳤다.
“아이고, 김 군아, 다 와 가냐? 3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
“넵, 곧 도착입니다.”
“오케이.”
창밖을 향한 준의 얼굴이 또다시 미소를 품기 시작했다.
조금 전, 윤설과의 통화를 상상하며 설렜던 그는 이젠 그녀를 만날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윤설 씨…. 우리 빨리 만나요. 많이 보고 싶군요.’
신혼집에 들어서는 이지와 태주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온통 화이트로 꾸며진 곳엔 몇 가지 가구들이 자리를 잡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설렘이 묻어났다.
진짜 신혼 같은 느낌이 물씬 드러나자 카메라 밖에 선 스태프들이 어느새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거실의 쇼파에 앉아보던 두 사람이 곧 일어서더니 닫힌 방문을 열어보았다.
침실이었다.
퀸 사이즈의 침대를 발견하자마자 이지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렸고 태주는 겸연쩍은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두 사람 사이에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눈빛이 오고갔다.
태주가 이지를 설득했다.
그저 침대가 얼마나 편안한지 알아보자고 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이지가 그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지가 침대 위로 앉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하며 푹신함에 관해 말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못 이긴 이지가 일어서려는 순간……
태주가 그녀의 팔을 붙잡더니 잡아당겼다.
두 사람은 곧 침대 위로 나란히 누운 자세가 되고 말았다.
카메라 밖에 서 있던 여자 스태프들이 제 입을 막기 시작했다.
동시 녹음이라 차마 소리를 낼 순 없었지만 그 정도로 달달하다는 증거였다.
남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들처럼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충분히 신혼의 느낌이 와 닿고 있었다.
벌써 몇 커플을 촬영해본 경험으로 미루어 이 정도의 느낌이라면 시청률에도 제법 영향을 끼칠 만했다.
두 사람이 수줍은 얼굴로 서로를 응시했다.
1초, 2초, 3초, 4초, 5초……..15초…..
두 사람이 클로즈업되며 1차 촬영분이 마무리되었다.
“컷! 아주 좋습니다.”
감독의 외침에 달콤했던 가상의 현장이 현실로 돌아왔다.
태주가 누운 채 입을 열었다.
“아, 아쉬운데요? 더욱 달달하게 이어갈 수 있었는데…. 하하…. 그나저나 이 침대 정말 좋네요. 감독님이 컷 안 하셨으면 곧 잠들 뻔했습니다.”
그의 넉살에 곧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사이 일어나 앉은 이지가 헝클어진 제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일어서려고 했다.
태주가 재빨리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심한 눈빛이 그에게 닿았다.
“뭐야?”
“일으켜주려고. 수고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피식 웃던 이지가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음 촬영을 위해 현장이 소란스러웠다.
대기실로 걸어가는 그녀의 곁으로 태주가 따라 걸었다.
“커피 마실래?”
“사적인 감정 없다면 좋아.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사양할게.”
이지의 대꾸에 태주가 호탕하게 웃었다.
“캬, 심이지. 정말 냉정하다. 호의를 꼭 그런 식으로 분류해야 하는 거니? 인간미가 너무 없잖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관계라는 걸 부각시키려는 것뿐이니까.”
“철벽녀 인증이라도 하는 건가? 이런 때마다 얼마나 서운한지 모르지? 동기로서 쌓은 정도 정인데 말이지. 이분법적인 사고, 세상 참 피곤하게 사는 일이야.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렇게 따져?”
이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태주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그 눈빛, 뭐야? 사심은 아니길 바라지만 이미 태주 씨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서 나는 내 방식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어.”
“하하하하….”
난데없이 호탕한 웃음이 쏟아지자 이지가 곧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올 연말에 상 하나 노려봐도 되겠군. 어때? 남우주연상 감은 될까? 아무튼 이지 넌 참 특별한 여자야.”
“뭐?”
“고마워. 잊지 않을게. 이따 촬영장에서 봐.”
태주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더니 곧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지의 얼굴 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쩐지 놀림을 당한 것 같아 괘씸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태주는 뒤돌아보지 않았고 그렇게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연기라는 거지? 그래. 강태주…. 계속 그렇게 해봐. 나라고 질 줄 알아? 놀리는 거라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