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75
74회
“자아, 이제 도착입니다.”
한참을 달려온 승용차가 고층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와우, 여기에요? 여기 되게 좋은 아파트인데…. 역시 대세는 대세이신가 봐요.”
“캬캬, 그런가? 실은 일부러 여길 택한 거야. 준이는 별로 내켜하질 않았지만 사생활 보호가 굉장히 중요하거든. 여긴 지하 주차장이랑 바로 연결되니까 밖에 노출될 위험도 적고 말이야. 어휴, 지난번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니깐?”
“아….그런 깊은 뜻이….”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윤설이 곧 어두운 땅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움찔했다.
해인이 친구의 손을 꼬옥 잡더니 또다시 귓가에 속삭였다.
“윤설아, 무서워하지 마. 여긴 차를 세워두는 곳인데 이곳에서 준이 씨 집까지 바로 갈 수 있대. 콜?”
“으,응.”
움찔했던 이가 곧 제 두 눈을 비볐다.
어두컴컴할 줄 알았던 땅속은 대낮처럼 밝았다.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탈 것들을 한데 모아놓은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간 후대의 것들을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지만 새 발의 피가 아닐 수 없었다.
윤설에게 후세들의 삶과 풍경들은 여전히 당황의 늪일 뿐이었다.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황스런 상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걸음을 옮긴 그녀의 앞에서 투명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윤설의 두 눈이 문을 열어준 이들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이쯤 되면 두려웠다.
윤 매니저는 너스레를 떨며 앞장섰고 해인은 윤설의 손을 잡아주었지만 그녀의 두려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못했다.
곧바로 이어진 당황은 또다시 스르륵 열린 문이었다.
문쯤은 방금 겪었으니 그냥 넘길 만했다.
하지만 이번엔 자그마한 방이 나타나고 말았다.
해인은 세상에서 자신의 옥탑 방이 가장 작을 거라고 얘기했었지만 윤설의 눈엔 그보다 훨씬 더 작은 방이었다.
‘이곳이 준이 씨의 집은 아니겠지? 사람 하나 누울 공간이 아니질 않은가…….’
“꺄악!”
고개를 갸우뚱하던 윤설이 곧 비명을 내질렀다.
문이 스르륵 닫히자마자 세 사람을 담은 자그마한 방이 그만 움직이고 만 것이었다.
위로 솟구치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윤 매니저가 흠칫 놀란 얼굴로 윤설을 응시했다.
“괜찮아요?”
해인 역시 놀란 얼굴이었지만 윤설의 팔을 꼬옥 잡은 채 서둘러 입을 열었다.
“윤설아, 괜찮아? 오빠, 우리 윤설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지러워하거든요.”
“정말? 혹시 폐쇄 공포증? 그런 거 있으신가?”
“아, 아니요. 그런 것까진 아니지만요.”
재빠른 상황 수습이 빛을 발했다.
윤 매니저는 안타까운 눈으로 윤설을 살피더니 곧 열린 문을 잘 잡아주었다.
“윤설 씨, 조심해서 내리세요.”
“고…고맙습니다.”
윤설이 벗의 팔을 의지해 드디어 땅에 발을 내디뎠다.
은애하는 낭군을 만나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하지만 곧 당도할 거라는 윤 매니저의 말에 윤설은 있는 힘을 짜냈다.
머리는 어질어질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윤 매니저가 벨을 누르자 곧 육중한 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서들 오세요. 환영합니다.”
준이 더없이 밝은 얼굴로 세 사람을 반겼다.
윤 매니저와 해인이 먼저 안으로 들어서자 그가 윤설의 손을 꼬옥 잡았다.
“윤설 씨, 어서 와요.”
얼떨떨한 얼굴로 서있던 윤설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미소는 햇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해인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윤 매니저는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냥, 이곳저곳 구경을 시켜주기에 바빴고 그러는 사이, 거실에 남았던 준이 윤설을 살며시 안았다.
“오는 길, 힘들진 않았어요? 제 선물을 좋아해주셔서 정말 기뻐요. 한복 입은 윤설 씨 모습, 계속 보고 싶었거든요.”
겨우 정신을 차렸던 윤설이 다시금 아련함 속으로 빠져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낭군의 포근함은 그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해인과 윤 매니저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두 사람이 흠칫 놀라 몸을 뗐다.
“준아, 요리는 다 했냐? 배고프다.”
“아,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거실과 멀지 않은 곳에 4인용 식탁이 있었다.
윤설은 그제야 부엌에서 풍겨나는 음식냄새를 느꼈고 해인과 윤 매니저는 나올 음식을 기대했다.
세 사람이 자리하자 곧 준이 무언가를 내왔다.
커다란 접시가 한 사람에 하나씩 놓이더니 찬으로 보이는 것들이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나란히 앉은 해인과 윤 매니저로부터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우와, 준이 씨, 정말로 직접 만드셨어요? 와, 진짜 대박이에요. 넘넘 멋지시다는…..”
“허헛, 민쭌, 너 제법이다? 나도 처음일세. 오…. 냄새랑 비주얼 지대로인데?”
연이은 칭찬에 준이 겸연쩍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아, 별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세요? 하하… 식기 전에 어서들 드세요. 윤설 씨도요.”
준이 윤설의 곁에 앉으며 식사를 권하자 그녀가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의로 가득한 인사일 뿐이었다.
윤설은 지금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보며 난감함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통통한 면발로 보아 국수 같긴 했다.
그러나 국물이 없고 붉은 색감으로 버무려진 것은 예측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것은….무슨 음식일까? 조선의 골동면과 비슷한 것인가? 해인이와 먹었던 붉은 국수는 매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도 그리 매울까? 허나, 님께서 이토록 애쓰셨는데 아무리 맵다고 하여도 먹는 것이 도리일 터…..’
윤설은 우선 물을 마시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지난번처럼 해인을 보며 먹는 방법을 알아낸 그녀가 마음을 다잡았다.
오른손에 포크를 쥐고 왼손엔 숟가락을 든 윤설이 벗의 동작을 천천히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익숙하진 않았지만 국수 조금을 덜어 숟가락 위에 안착시킨 그녀가 그것을 돌돌 말았다.
그 사이, 윤 매니저의 너스레가 툭 튀어나왔다.
웃음을 참지 못한 준이 곁에 앉은 연인을 사랑스레 바라보았다.
그녀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요리를 하는 내내 윤설을 생각했던 그로선 그녀의 반응이 몹시 궁금한 순간이었다.
붉은 국수를 입에 넣은 윤설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매울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자리엔 오묘한 맛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은 그 정체를 알 수 없었고 맛 또한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참으로 묘하다는 느낌뿐이었다.
간은 적당했고 새콤한 이면엔 구수한 맛까지 느껴졌다.
처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녀를 남몰래 지켜보던 준이 싱긋 웃었다.
“윤설 씨, 입맛에 맞으세요? 메뉴를 뭐로 할까 고민했거든요. 윤설 씨를 생각하면 한식이 어울리는데…. 또 늘 드시는 게 한식일 것 같아서요.”
윤설이 수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처음 먹는 것인데…. 참으로 맛있습니다.”
“아, 처음 드셔보시는군요? 역시 조선 음식의 전문가다우십니다.”
맞은편에 앉은 윤 매니저가 흠칫 놀란 얼굴로 윤설을 바라보자 해인이 까르륵 웃었다.
“윤설아, 맛있지? 준이 씨, 대박 맛있어요. 제가 먹어본 파스타 중에서 최고에요!”
제 연인을 바라보던 윤 매니저가 뿌루퉁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사실 저는 면만 삶았는걸요? 소스는 마트에서 파는 제품에 재료 몇 가지를 첨부한 게 다예요. 하핫, 부끄럽군요. 숙녀 분들은 까르보나라를 더 좋아하신다던데….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건강을 생각해 기본으로 준비했습니다.”
“어머머, 역시 생각도 남다르시다니깐요? 파스타는 면 삶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히잇…. 그럼 다음번엔 준이 씨 버전의 까르보나라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윤 매니저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흠흠…. 그게 뭐 어렵냐? 다음엔 이 오빠가 해줄게. 뭐, 그거 재료 사다가 하면 되지 뭘…. 모르면 준이한테 도움 받고…..”
허풍과 질투가 묘하게 섞인 한 마디는 곧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로부터 웃음을 유발해냈다.
준이 엄지손을 치켜들자 해인이 까르륵 웃으며 윤 매니저의 어깨를 토닥였다.
“오빤 정말 재밌다니까요? 히잇.”
“뭐? 이긍, 이 녀석이 오빠를 막 놀리네. 그런데 왜 이리 좋지?”
그는 연인의 애교가 귀엽게 느껴진 듯 해인의 볼을 살며시 꼬집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웃던 윤설과 준의 시선이 서로에게 맞닿았다.
모두가 달콤한 연애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해인과 윤 매니저로부터 느껴지는 설렘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부럽기도 했다.
남자들이 설거지를 자청했다.
해인과 윤설에게 거실의 쇼파를 권한 준이 곧 식탁을 치우기 시작하자 윤 매니저가 싱크대의 물을 틀었다.
“헤헷, 잘 먹었습니다. 오빠들, 파이팅!”
해인이 생글거리며 친구의 손을 이끌었다.
하지만 윤설은 쇼파에 앉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접시를 옮기고 식탁을 닦던 준이 그런 윤설을 응시했다.
“저…. 도와드릴 것이라도…..”
“괜찮아요. 윤설 씨. 손님으로 오셨으니까 편히 앉아계세요. 곧 디저트가 나갑니다.”
윤설에게 이 시간 그리고 이 공간은 당황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늘 궁금히 여겼던 정인의 집은 자신이 머무는 옥탑방과 사뭇 달랐고 음식은 물론 그의 행동 역시 범상치 않았다.
낭군이 요리를 해서 내온 것도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였다.
그런데 치우는 것조차 모두 한다고 했다.
윤설에게 문화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준의 새로운 모습은 그녀의 가슴을 또 다른 설렘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여전히 머뭇거리는 윤설을 향해 준이 싱긋 웃더니 윙크했다.
“흠흠…. 윤설 씨, 계속 그렇게 서 계시면 저희 집을 불편하게 여기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윤설이 서둘러 해인의 곁에 앉았다.
가슴은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중이었다.
은밀한 준의 눈짓은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를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 안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이 순식간에 스쳐가기 바빴다.
어지럽고 낯선 기분이 들었지만 분명한 건 윤설이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은애하는 낭군이 기거하는 곳……
그 자체만으로도 여린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 찰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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