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76
75회
남자들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후식이라고 했다.
탁자 위로 알록달록한 것들이 자리하자 윤설의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후대에선 색감이 유달리 도드라지고 있었다.
어딜 가나 강렬한 것들은 앞 다투어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윤설은 유난히 밝고 강렬함으로 가득 찬 후대에서 눈의 피로를 느끼는 한편, 색다른 묘미도 덩달아 깨닫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벗의 곁에서 해인이 손뼉을 쳤다.
“세상에…. 과일을 이렇게나 다양하게 준비하셨어요? 이건 백화점 과일 바구니 수준인데요? 어머, 이건 뭐예요? 아이스크림인가요?”
준이 겸연쩍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해인 씨에게 딱 들켰네요. 하하… 저희 집에 손님은 두 분이 처음입니다. 첫 손님을 맞이하는데 신경이 좀 쓰이더라고요. 이건 젤라또라고 해요. 음….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우와….. 파스타에 이어 디저트까지! 완전 초대박이에요.”
해인이 까르륵 웃자 윤 매니저가 준을 흘겨보았다.
“흠흠, 말은 바로 하자. 수 년 만에 백화점에서 장본 게 뭐… 우리 때문이라기 보단, 네가 좋아하는 윤설 씨 때문 아니냐?”
“형도 참……”
준의 밝은 웃음이 쏟아지자 어리둥절하던 윤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모두가 즐거운 얼굴들로 후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윤 매니저는 배가 부르다고 하면서도 쩝쩝 소리를 내며 과일을 집어 먹었고 해인은 젤라또를 한 입 먹어보더니 흠칫 놀랐다.
“와, 진짜 맛있어요. 저, 이런 거 처음 먹어보는데….크크… 윤설아, 어서 먹어봐. 살살 녹는다.”
준이 자그마한 유리그릇과 스푼을 윤설에게 내밀었다.
“고, 고맙습니다.”
싱긋 미소를 내보인 그는 연인이 불편해 할 것을 배려해 자신도 작은 그릇과 스푼을 들었다.
윤설이 얼떨떨한 얼굴로 벗을 응시했다.
해인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천천히 먹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난생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에 도전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사실 해인은 톱스타의 집에 와 있다는 것에 굉장히 신이 난 상태였고 처음 맛보는 것들에 감동한 얼굴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체험인 셈이었다.
조선에서 온 친구도 후대의 다채로운 것들을 경험할 기회라고 생각하니 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다.
벗에게 용기를 얻은 윤설이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었다.
처음 보는 제형은 맛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넣는 순간, 윤설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제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준이 기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어찌 이런 맛이…. 참으로 천상의 맛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눈처럼 사르륵 녹는 것이…. 참으로 달콤하고 특별합니다.”
범상치 않은 말투에 윤 매니저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해인은 까르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말 그러네. 히잇. 준이 씨, 오늘 최고로 즐거워요.”
“그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며칠 신경 쓴 보람이 있는데요?”
훈훈한 말들이 오가자 윤 매니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흠흠, 어째 오늘의 초대로 민쭈니 인기가 더욱 상승한 것 같다?”
“에잉, 오빠도 참…. 덕분에 잘 먹었잖아요.”
해인의 애교에 그가 실실 웃었다.
“뭐, 그렇긴 하네…. 야, 준아 그나저나 이제 뭐해? 재밌는 거 없냐?”
준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해둔 게 있죠. 잠시만요….”
준이 한껏 신난 얼굴로 방에 들어가자 윤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어째 좀 쎄한데? 설마, 윷놀이 뭐 그런 거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화투?”
“어멋, 오빠도 참…….준이 씨 이미지에 윷놀이라면 몰라도 화투는 영 아닌데요?”
해인이 윤 매니저를 응시하며 까르륵 웃자 그 역시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무언가를 들고 나타난 준을 보자마자 급격히 식기 시작했다.
“자, 바로 이거예요.”
탁자 위로 펼쳐진 것에 윤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헐, 이게 뭐야? 얌마, 우리가 무슨 애들이냐?”
윤 매니저의 투정에 해인이 재빨리 나섰다.
“어멋, 이거 보드게임이네요? 그렇죠? 와, 나 이런 거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엇, 우리 해인이가 그랬단 말이야? 아이고, 오빠한테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급격히 달라진 반응에 준은 물론 윤설이 싱긋 웃고 말았다.
“역시, 해인 씨가 잘 아시는군요. 형, 이거 은근히 재미있다니까요? 윤설 씨, 한 번 해볼래요? 몇 달 전에 사다놓았는데 할 시간은 물론, 같이 게임할 사람도 없었거든요.”
“푸핫, 혼자서 보드 게임? 넘 처량한 거 아니냐? 그건 아니지. 그래, 인심 썼다. 자아, 다들 모인 김에 한 판 해보자고.”
윤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해인이 박수를 치며 까르륵 웃었다.
윤설은 제 앞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것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도저히 알아맞힐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낯선 것은 귀여웠고 준이 권한 것이라면 한 번 해보고도 싶었다.
그런 친구를 향해 해인이 나직이 속삭였다.
“윤설아, 이건 이곳 사람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거야. 여럿이 놀면 꽤 재밌다?”
세팅을 마친 준이 즐거운 얼굴로 가위 바위 보를 제안했다.
순서가 정해지자 윤 매니저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게임이란 게 말이지, 벌칙이 있어야 재밌는 거 아니겠어?”
“벌칙이요? 음… 뭐가 좋을까요?”
준이 싱긋 웃자 그가 대꾸했다.
“왕 게임으로 가자. 제일 처음으로 통과한 사람이 왕이 되어 마음대로 벌칙주기. 어때? 콜?”
“좋아요. 콜!”
준의 대답에 이어 해인도 힘차게 외쳤다.
“저도 콜이에요. 친구야, 너도 좋지?”
윤설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세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윤설은 자신이 신뢰하는 이들이 한껏 기뻐하는 모습으로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평평한 얼음 블록 위엔 앙증맞은 펭귄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준이 먼저 자그마한 망치를 잡았다.
“자, 갑니다.”
-톡-
준의 망치 끝에 여린 힘이 실리자 작은 얼음 알맹이가 톡하고 빠져나왔다.
“와….”
아슬아슬함을 느낀 듯 해인으로부터 탄성이 흘러나왔다.
윤설 역시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터라 하마터면 벗과 함께 소리를 낼 뻔했다.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그녀의 귓가로 준이 살며시 다가왔다.
“윤설 씨, 펭귄이 떨어지면 지는 거니까 조심해서 살살 쳐야 해요. 가능하면 멀리 있는 얼음부터 공략하세요.”
그가 다정한 속삭임을 남긴 후, 그녀에게 망치를 건네자 윤설의 가슴이 또다시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윤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뭣이여? 지금 비법 전수하는 거냐? 흠흠, 이럴 줄 알았으면 팀플로 할 걸 그랬네? 크큭.”
“형, 눈감아주세요.”
옅은 미소들이 번져가는 가운데 호흡을 가다듬은 윤설이 망치로 얼음을 두드렸다.
준의 비법은 적중했다.
비교적 인형과 멀리 떨어진 곳을 두드려 겨우 얼음 한 조각만이 떨어져나간 것이었다.
준이 밝은 웃음으로 그녀에게 오른손을 들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낸 윤설이 수줍은 얼굴로 그에게 손을 맞대었다.
두 사람의 하이파이브에 이어 다음 차례인 해인이 망치를 들었다.
-톡-
“아싸, 무사통과!”
안도한 그녀가 윤 매니저에게 망치를 건넸다.
“오빠, 파이팅!”
“오케, 이 오빠만 믿으라규. 케케…”
연인의 격려에 힘입어 그가 망치를 내리쳤다.
-와르륵-
“헐!”
힘 조절에 실패해 얼음조각이 무너져 내리더니 위태롭게 서있던 펭귄이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 준이 나섰다.
“흠흠, 제가 가장 먼저 통과했으니까 이제 벌칙을 주면 되는 거죠?”
윤 매니저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놔, 대체 무슨 벌칙인데? 이게 뭐라고 떨리냐? 참내…”
“흐음, 해인 씨! 혹시 립스틱 있습니까?”
즐겁게 웃던 해인이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윤 매니저가 손사래를 쳤다.
“얌마, 뭐, 뭔데?”
“해인 씨가 형의 입술에 예쁘게 립스틱을 발라주시죠.”
윤 매니저의 항의가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인은 더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핸드백을 열었고 곁에 있던 윤설은 즐거움과 당황이 교차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빠, 예쁘게 발라드릴게요.”
해인이 립스틱 뚜껑을 열어 다가서자 윤 매니저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듯 곧 입술을 쭈욱 내밀자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내의 입술이 분홍빛을 입자 윤설 역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숨죽여 웃다가 벗의 화통한 웃음에 동참하고 말았다.
즐겁게 웃던 준의 시선이 제 연인을 향했다.
윤설의 미소는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분홍빛 입술을 가진 윤 매니저는 설욕을 다짐했고 별 것 아닌 단순한 놀이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요령을 익힌 손짓들이 조심히 얼음을 깨뜨려갔다.
윤 매니저부터 시작한 게임이 한 바퀴를 무사히 돌아오더니 다시 준의 손에 망치가 주어졌다.
위태로운 얼음판을 유심히 살피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설과 해인은 아슬아슬함을 어쩌지 못한 표정이었고 윤 매니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톡-
와르르륵….
“아….”
아쉬움의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새어나오는 찰나, 윤 매니저가 일격을 날렸다.
“흠흠….. 민준, 벌칙을 하달하겠다. 윤설 씨랑 입을 맞추어라! 단, 뺨은 금지다. 온리 입술 뽀뽀로!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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