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79
78회
“해인아, 그럼…. 난 이만 옷을 갈아입어야 할 듯하구나.”
“오케이. 있잖아. 히잇. 네 폰 한 번 켜 봐도 돼?”
해인이 겸연쩍은 미소로 응시하자 윤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벗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자세히 알 순 없었다.
어차피 사용법도 모르는 처지에 해인에게 배울 수밖에 없던 터라 윤설은 기꺼이 허락한 것이었다.
해인이 신난 얼굴로 배시시 웃는 사이, 윤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의 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선물을 먼저 보았기에 한복을 입은 채였다.
몇 걸음을 걸어가 뒤돌아선 그녀가 저고리의 고름을 푸는 찰나, 난데없이 풍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흠칫 놀란 이가 뒤돌아 벗을 응시했다.
“윤설아, 놀라지 마. 처음 켜면 원래 나는 소리거든. 오, 이거 완전 짱이다. 화질이 끝내주네. 기능도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준이 씨 완전 센스 만점이시다. 히잇.”
마음을 놓은 윤설이 제 저고리를 벗어 가지런히 놓아둔 찰나였다.
이번엔 또 다른 풍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별다른 것은 없을 거라 여겼던 이에게 벗의 상기된 음성이 홀연히 날아들었다.
“꺄악! 준이 씨 전화야! 영상통화네?”
윤설이 흠칫 놀라 제 몸을 가리더니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모습에 해인이 싱긋 웃더니 저고리를 가리켰다.
“아, 있잖아. 영상통화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전화하는 거야. 음… 그러니까 옷을 입어야겠지?”
“어멋, 세…세상에나…”
윤설은 서둘러 저고리를 다시 입었지만 방금 벗이 말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후대의 놀라운 일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해인은 친구가 단장할 동안 준과 대화를 나누다가 윤설이 다가오자 곧 스마트폰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 윤설 씨, 쉬시는데 방해를 한 모양이군요. 미안합니다. ]윤설이 동그래진 눈으로 준을 응시하더니 제 눈을 비볐다.
얇디얇은 판 속에 그가 들어있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제 눈을 의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윤설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준이 귀여움을 주체하지 못해 호탕하게 웃었다.
[ 하하… 저 맞아요. 지금 우리 집에서 전화하는 거예요. ]“어, 어찌… 이런 일이……”
곁에 있던 해인 역시 미소 짓더니 그녀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이 화면을 보면서 편안하게 얘기하면 돼. 서로 만난 것처럼 말이야.”
“아……”
방법을 일러준 친구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윤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준을 바라보다가 곧 수줍게 웃었다.
[ 윤설 씨 웃는 얼굴을 보니 이제 마음이 놓이는군요. ]“소, 송구…합니다. 이런 것은 처음이라…. 아, 어찌 매번…. 이토록 값비싼 선물들을 주시는지요? 전…. 마땅히 드릴 것이 없는 처지입니다만…..”
[ 그런 말씀은 마세요. 사실 윤설 씨에게 먼저 사귀자고 한 건 저인데, 제약을 많이 받다보니 잘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윤설 씨의 핸드폰을 낮춰보는 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자주 못 만나니까 얼굴 보며 통화하고 싶어서요. 이해해주실 수 있죠? ]윤설이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님을 마주한 건 직접 본 것처럼 떨렸지만 신기한 문물은 조선 규수의 호기심을 가만히 흔들고 있었다.
[ 참, 정성스런 선물, 고맙습니다. 그런데….음…. 해석을 하려면 사전을 옆에 두고 공부해야할 듯한데요? 하하…. ]“예에?”
[ 괜찮습니다. 뭐, 오늘부터 시작하죠. 윤설 씨가 준 거라면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토록 멋진 선물을 처음입니다. 윤설 씨의 특별함을 조금은 눈치 채고 있었지만 마치 가보같이 물려줄 만한 것을 받고 보니 더욱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한문은 언제 섭렵하신 거죠? 우린 한문 세대가 아닌데 말입니다. ]윤설의 얼굴 위로 당황의 빛이 스쳐갔다.
그녀는 입을 반쯤 버린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그의 물음에 답했다.
“한문을….이….익히던 가풍이라….. 어려서부터…..배우게 되었습니다.”
“아, 역시… 그러셨군요! 언제쯤 한 번 묻고 싶었거든요. 촬영장에서의 서예 솜씨며…. 윤설 씨에겐 특별한 매력이 많은 듯합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규수가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짓기 시작했다.
은애하는 낭군은 그녀의 특별함을 매력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남다른 호기심이 유별나다는 얘긴 종종 듣곤 했지만 자칫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점을 매력이라고 칭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아비가 유일했지만 그를 제외한 이는 민준 뿐이었다.
그에게서 아비의 성품을 느낀 일은 언제부터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을 향해서 만큼은 한없이 다정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랑의 질감이 다르긴 했지만 준 역시 윤설에게 그런 면모를 아낌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살아온 시공간이 완전히 달라 자신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윤설은 준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어쩌면 님께선….. 조선에서 온 나를 이해해주실 것만 같구나.’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윤설의 얼굴이 준에게 닿았다.
[ 윤설 씨,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아,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그 한시의 뜻을 알려드릴까 합니다만….”
[ 오, 좋죠. 잠시만요…. 펼쳐놓고 감상할게요. ]곧 준이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펼치고 그것을 보이자 윤설이 미소 지었다.
[ 자, 준비됐습니다. 선생님, 한 수 알려주시죠. 열심히 듣겠습니다. ]“부끄럽지만….그것은 자작시입니다.”
[ 자작시라고 하셨나요? 와….. 더욱 놀랍습니다. ]흠칫 놀란 준의 표정에 윤설이 다시금 미소를 내보였다.
“……고요한 달밤에 홀로 간직했던 마음 하나를 꺼내어보네.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건 내 님의 얼굴…. 휘영청 밝은 저 달이 마치 내 님인 것만 같아 얼굴이 노을처럼 붉어지네. 어둠 속에 숨죽인 꽃들이 수줍은 이 마음을 알고 소곤거리듯 바람결에 휘날리네. 내 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 하늘의 별들아, 너는 알겠지. 그분의 꿈결로 이 내 마음을 전해주렴.”
잠시의 침묵 끝에 준이 탄성을 내뱉자 윤설이 곧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말하자면 제 속내를 다 내보인 것이었다.
윤설에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대한 에둘러 표현하려고 애썼지만 진심은 감추기 힘든 법이었다.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도 없었다.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이에게 준의 차분한 음성이 흘러들었다.
[ 윤설 씨…. 이런 감동은 처음입니다. 하아…. 지금 당장 당신을 보러 달려가고 싶을 정도군요. 언제나 저 혼자 앞서간다고 여겼습니다. 윤설 씨가 조금 더 표현해주면 좋을 것 같아 아쉬운 적도 있었는데…. 당신의 시로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군요. 사랑스런 고백은 바로 저의 것이기도 해요. 저 역시 윤설 씨 생각에 가슴이 뛰고 잠 못 드는 날들이 많았었죠. 아무도 모르는 이 마음이 당신과 동일하다는 것에 위안을 받습니다. 윤설 씨의 꿈결에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요? ]윤설이 비로소 웃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을 그가 느끼며 알고 있다는 건 큰 힘이자 위로였고 은애함 그 자체였다.
부끄럽지만 마음이 합한 님이라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 윤설 씨, 이렇게 얼굴 보며 통화하니 더욱 좋은 것 같아요. 직접 만나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마치 실제로 마주한 것도 같아 내내 놀라는 중이었습니다. 어찌 이토록 신통방통한 것이 있는지요?”
화면 속 준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 말씀이 딱이군요. 신통방통이요.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을 위한 대단한 발명인지도 모르죠. 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첫 영상통화를 개시한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또다시 깨닫는 순간, 더없이 행복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지 너, 이 대리한테 심부름 시켰어? 지금 주차장에서 기다린다는데?”
장 실장이 들어서자 얼굴에 팩을 붙인 채 소파에 기대어 있던 이지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덜 마른 팩을 집어던지더니 곧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기하던 이 대리는 이지를 보자마자 90도로 인사했다.
소속사 말단인 그가 주가를 높이고 있는 그녀를 직접 만날 일은 흔치 않았다.
그 때문에 이 대리는 이지의 연락을 받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고 말았다.
주변을 의식한 그녀가 밴을 향해 눈짓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넵, 여기 있습니다.”
누런 봉투를 받아든 이지의 손이 살며시 떨렸다.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지만 이 대리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고 별다른 반박이 없는 걸 보면 사실일 확률이 컸다.
그리고 마침내 봉투 안에서 몇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이지의 가슴에 천둥이 치고 말았다.
“꽤 선명하죠? 휴우… 숨어서 찍긴 했지만 열심히 당겨 찍었습니다. 그 카메라 꽤 고가인가 봐요? 제법 잘 찍히던데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이지는 오로지 이번 일을 위해 비싼 카메라를 결제했지만 막상 외면하고 싶은 사진 앞에서 당황하고 말았다.
차량 밖에 선 여자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기나긴 머리를 땋아 내린 그녀의 모습은 이제 질려버릴 것만 같았다.
흔치 않은 비주얼은 준의 촬영장에서 직접 본 그 여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짙은 색의 차창 너머…. 손을 흔드는 그는 분명 민준이었다.
“분위기는 어땠어?”
“네?”
“그러니까, 달달했냔 말이야. 연인같이 보였어?”
이 대리가 이지의 의도를 이해했다.
“아, 네. 서로 손 흔드는 모습이 그냥 친구는 아닌 것 같았는데…… 그, 그런데 이 두 분 진짜로 사귀는 건가요?”
이지가 미간을 찡그리자 이 대리가 고개를 꾸벅했다.
“내가 말했지?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말라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넵, 그럼요. 잘 알겠습니다.”
“이 사진들은 우선 보관하고 계속 현장 지켜. 더욱 큰 증거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자꾸 자리를 비우니 과장님이 이상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서요….”
이 대리가 머리를 긁적이자 이지가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흘겼다.
“걱정 마. 내가 조치해놓을게. 약속은 기억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밴에서 먼저 내리자 이지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제 집으로 올라갔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 실장이 벌떡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야?”
“개인적인 심부름 좀 시켰어. 오늘 소식은 뭔데?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 아니야?”
그제야 제가 온 이유를 떠올린 그가 화색을 띄기 시작했다.
“야, 완전 대박 났어.”
“뭐가?”
“뭐긴…. 지…”
이지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에겐 별로 시답지 않은 소식이었다.
대단한 작가의 작품에 캐스팅되는 거라면 또 몰랐다.
는 이제 지긋지긋했고 강태주를 마주하는 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뭐야?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야, 너랑 강태주가 시청자 투표 1위를 차지했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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