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8
7회
“뭐라고?”
덩달아 놀란 해인이 거울 속, 윤설이 가리킨 것을 발견하자마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기다란 꼬리를 늘어뜨린 채 벽에 걸려있던 것은 바로 하얀 머리의 샤워기였다.
“휴우…. 완전 식겁했네. 저건, 뱀이 아니라. 샤워기라는 거야.”
“샤……워….기?”
“응. 조선 시대엔 당연히 없던 거라 많이 놀랐지? 자, 봐봐. 이렇게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와. 여기에서 이 꼭지를 위로 올리면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거야. 그럼 이걸로 몸의 구석구석을 닦고 머리도 쉽게 감을 수 있어. 옛날엔 목욕을 어떻게 했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 온도를 맞춘 후에 나무통에 부어서 사용했단다. 하지만 자주는 못 하고 특별한 날에만……”
고개를 끄덕인 해인이 이번엔 낮고 하얀 의자를 가리켰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듣는 윤설의 얼굴 위로 당황과 호기심이 일렁였다.
차마 시범을 보일 수 없던 해인은 천천히 반복해서 일러주었고 윤설은 제법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인이 윤설을 남겨둔 채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 사용법과 세수, 양치 그리고 샤워와 머리감는 것까지 모조리 알려준 후였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 해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미소 짓기 시작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긴 했지만 학교를 다닐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바로 역사였다.
흘러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신기함이 일곤 했었다.
한가하게 드라마 볼 시간이 없는 빡빡한 일상이었지만 어쩌다 재미를 붙이는 건 어김없이 사극이었다.
특히나 드라마 속, 왕실 여인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일종의 로망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불현듯 다가온 여자는 조선에서 왔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옷걸이에 걸린 잠옷을 꺼내 갈아입은 해인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윤설이 걱정되었다.
가만히 욕실의 문 앞으로 다가선 그녀가 윤설을 불렀다.
“저기…… 괜찮니?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 거지?”
-딸칵-
잠겼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뽀얀 수증기 속에서 드디어 윤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인이 건네준 옷을 입은 그녀는 제 한복을 품에 안고는 겸연쩍은 얼굴로 웃었다.
“와, 대박!”
“으,응?”
“진짜로 잘 어울린다고….. 히잇…. 정말 재밌다. 많이 불편하지?”
“이렇게 몸에 붙는 걸 입으니 너무도 낯설고 어색하구나. 이 바지란 것도 독특하지만…… 움직임이 편한 듯도 하다. 그리고….. 민망하지만….. 속곳은 아직 좀 불편하구나.”
해인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까르륵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하겠어. 처음이라 그럴 거야. 차차 익숙해질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 참, 한복은 드라이클리닝 맡겨줄게. 이리 줘.”
“그, 그게 무엇이니?”
“응, 세탁소라고 집에서 하기 힘든 빨래를 맡기는 곳이야. 네 한복처럼 물빨래가 힘든 걸 제법 깨끗하게 만들어주거든.”
“아…… 그런 곳이 있다니….. 정말 놀랍구나.”
윤설에게서 건네받은 한복을 차곡차곡 개어 쇼핑백에 넣은 해인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머리는 왜 안 감았어?”
“원래 머리는 말리기가 힘들어 초저녁에 감아서 완전히 말린 후에 잠들곤 했단다.”
“아, 정말? 여기선 머리 말리는 기계가 있는데…… 내가 얘길 못 해줬구나. 히잇. 그래, 어차피 밤도 늦었고 피곤할 테니 내일 감아. 내가 드라이기 사용법 알려줄게.”
고개를 끄덕인 윤설이 처소를 둘러보았다.
은은한 촛불에 드러난 모습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신발을 안에서 벗는 것도 그러했고 툭 터진 공간에 부엌과 침방 그리고 욕실까지 품은 것은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할 뿐이었다.
“살림살이가 아직 변변치 못해. 부끄럽다.”
“아, 아니야. 그저 신기해서 말이구나. 내 처소는 방 하나가 전부였는데 이곳에선 모든 것이 해결되는구나.”
“그래, 조선 시대엔 부엌이며 화장실이며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지? 옛날에 우리 할머니 댁이 생각나. 완전 옛날 집이었거든. 밤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서 참고 그랬어.”
해인의 너스레에 윤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단다.”
“정말? 그래도 넌 오강이 있지 않았니?”
반가운 질문에 윤설이 화색을 띠었다.
“어찌 오강을 아는 것이니?”
“크큭….. 할머니가 주셨는데 너무 불편하더라고. 넌 어때? 사용해봤지?”
“어릴 적에 써보긴 했지만 나이가 드니 싫더구나. 하인들에게 그런 걸 내보이는 게 수치스럽기도 하고 말이야.”
윤설이 얼굴을 붉히자 해인이 감탄을 내뱉었다.
“올….. 역시 명문가의 딸다운데? 그런데 여기에선 스무 살이면 나이든 거 아니야.”
“그것이 참이니?”
“그럼. 아, 맞다. 조선시대엔 일찍들 결혼했지? 여기선 서른 중반에서 마흔 초반쯤? 그때 결혼들 한다니깐. 그러니 우리 나이면 애기지. 크큭……”
해인을 바라보던 윤설이 금세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조선에서 그 나이면 장성한 자녀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손주까지도 볼 나이였다.
후손들이 혼인을 그토록 늦게 하는 연유가 저절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유는 참 다양한데…… 흐음…. 어디에서부터 말해줘야 하나? 우선, 취직해서 돈을 벌기가 힘들어. 돈이 있어야 독립도 하고 가정도 꿈꿀 수 있잖아. 그래서 열심히 일하다보니 시기가 늦어진 거지. 게다가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도 있어.”
“그, 그렇다면….. 일부러 혼인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니?”
“빙고! 그렇지.”
윤설이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자 해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 시절엔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이 시대엔 혼자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는 확답할 수 없어. 참, 그리고 결혼과 출산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수명이 길어졌다는 거야. 조선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의학이 발전했거든.”
“의술….. 말이니?”
“응, 믿기지 않겠지만 이제 백세 시대라고 말해.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건강을 잘 관리하면 가능한 일이 되었어.”
“세, 세상에….. 배, 백세…..라고?”
해인이 알려주는 것들은 모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백 살까지의 삶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유난히 큰 충격이었다.
윤설은 두려움도 느꼈다.
별을 관찰할 때마다 장래에 관한 호기심을 멈출 수 없던 그녀였다.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풀지 못했지만 뜻밖의 방문에서 이제 겨우 조금 알게 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더한 무언가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자 윤설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들은 것으로도 충분히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 놀랄 것은 없어. 임금님이 영조시라고 했지? 그분이야말로 조선시대에 가장 장수하신 분으로 유명한 걸?”
뜻밖의 한 마디에 윤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불현듯 생각나는 찰나였다.
살며시 두려움에 떨린 입술이 간신히 용기를 냈다.
“….. 임금께서…. 몇 세까지 사신 것이니?”
“아마 80세가 넘으셨을 걸?”
“…세, 세상에……..”
향초를 사이에 두고 호기심으로 발랄했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해인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윤설이 해인의 시선을 한 번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실은…..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가 임금님과 연관이 있단다.”
이번엔 해인의 얼굴에서 금세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정말 궁금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윤설이 조선의 규수라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이유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를 해인은 정말로 알고 싶었다.
그녀의 진심어린 눈빛에 용기를 낸 윤설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직전에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문후를 들러 갔다가 우연히 새어나오는 대화를 듣게 되었단다.”
“그런데?”
“두 분이 꽤 심각하셨지. 내용인 즉, 조만간 금혼령이 내릴 것인데…… 우리도 처녀단자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어.”
윤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해인이 느닷없이 손뼉을 쳤다.
“어멋, 그건 바로 왕비를 뽑는 거잖아? 맞지? 그, 그럼….. 너…. 중전마마가 후보가 되는 거였어? 헐, 대박.”
“허나,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임금께서는 예순 여섯이시고 정비가 아닌 계비를 간택하시는 것이지.”
“자, 잠깐…. 계비라면, 정비가 돌아가신 후에 다시 뽑는 중전 말이야? 그런데…. 임금께서 연세가 예순 여섯이라고? 뜨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