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Younger Sister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23)
EP31 – 과거, 현재, 혹은 미래에서 (5) 完
누구를 더 좋아하냐고?
둘의 질문에 윤하준은 입을 다물었다.
만약에 대답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진지하게 쳐다보는 한고요와 진소향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거기다 지금까지 자신은 늘 피하기만 했으니까.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진지하게 저 둘의 감정에 대답을 해 줘야 할 때가 되기는 했다.
입을 다문 채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하준의 모습에 진소향과 한고요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시간이란 것이 이렇게까지 길었던 건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진소향과 한고요가 긴장감으로 슬슬 힘이 빠지려고 할 때쯤에, 윤하준이 입을 열었다.
“졸업식 날.”
윤하준의 목소리에 진소향과 한고요는 그를 쳐다보았다.
윤하준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졸업식 날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
“그때까지 대답을 미루겠다는 건가요?”
실망한 목소리로 진소향이 묻는다.
한고요의 말을 듣고 오늘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또 미루려고 할 줄이야.
‘아니, 오히려 다행인가?’
생각해 보면 한고요는 아직 윤하준이 자신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걸 어떻게 이용한다면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
지금 결과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는 확실하게 대답을 해 줄게.”
“약속할 수 있어?”
“응.”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윤하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한고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그러면 그때까지 기다릴게.”
사실은 지금 당장 대답을 듣고 싶다.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한고요는 애써 그런 식으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전에 한 가지만 말할게.”
“뭔데?”
“난 널 좋아해.”
훅 들어온 한고요의 말에 윤하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좋아할 거야.”
“어째서?”
이해가 되지 않아 윤하준은 되물었다.
지금 자신의 질문이 최악이라는 사실은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어째서 자신인가.
자신은 이렇게 과한 사랑을 받을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
너무나도 과분한 기대를 받고, 이런 사랑까지 받다니.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계속 윤하준을 괴롭혔다. 그렇기에 윤하준은 물은 것이다.
어째서 자신을 좋아하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한고요는 단 한 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날 받아들여 준 것은 오직 너뿐이니까.”
그 대답에 윤하준은 눈을 감았다.
예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한고요와 자신은 정말 많이 닮았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고, 지독하게 스스로를 싫어하는 점도.
그렇기에 윤하준은 한고요에게 많은 신경을 써 주었던 것인데, 한고요는 그런 모습에 반한 것이다.
“그러면 졸업식 날, 대답 기대할게.”
거기까지 말한 한고요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단둘이 남게 되자 진소향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윤하준을 향해 말했다.
“이거 저도 이유를 말해야 하나요?”
“그래 주면 고맙겠네.”
“아으, 이거 좀 부끄러운데.”
정말로 부끄러운지 진소향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진소향은 그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답하였다.
“하준 씨가 절 보고 있다고 했으니까요.”
“응?”
“그때, 기억나세요? 고요 씨랑 같이 무대에 서야 했던 그 날요.”
“응.”
진소향과 윤하준이 처음으로 같이했던 작업.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한 진소향의 부탁을 윤수연에게 인맥을 만들어 주겠단 이유로 받아들였었다.
“그때, 패닉에 빠졌던 저를 잡아 주면서 하준 씨가 말했어요. ‘내가 봤다.’고. 제가 노력했던 모든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모습을 하준 씨는 봤다고, 알고 있다고요.”
“아.”
대충 기억이 나는 거 같다. 패닉에 빠진 진소향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그녀의 손을 잡고 했던 말.
그렇다고 단순히 안심을 시키기 위해서 거짓으로 한 말은 아니다.
정말로 윤하준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진소향의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안타깝다 생각하며 도와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 응원은 처음이었어요. 회사에선 칭찬을 받기보단 좀 더 잘하라는 소리만 들었거든요. 처음으로 들어 본 잘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제게 처음으로 자신감을 줬어요. 혹시, 나라도, 어쩌면 하고.”
거기까지 말한 진소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뒷짐을 지고, 발로 바닥에 원을 그리다가 윤하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하준 씨 덕분에 섰던 무대 때문에 알게 됐거든요. 아, 무대라는 게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 동시에 궁금해지더라고요. ‘나한테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그러다 보니 언제나 하준 씨의 생각을 하게 됐고, 뭐 그러네요.”
아하하 하고 진소향이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부끄러운지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쨌든, 좋아하고 있어요. 진심으로요. 그러면 저도 졸업식 날, 기다릴게요.”
말을 끝낸 진소향도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고, 어느새 혼자가 된 윤하준은 생각을 정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태영과 함께 자야 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윤하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자신을 반겨 주는 김태영을 보며 말하였다.
“일부러 그랬지?”
“뭘?”
“카드 게임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의 결과가 이상했다.
열 판을 했는데 한 번도 승리를 못 한 것이 말이 될까?
거기다가 진소향이나 한고요는 번갈아 가면서 승자가 됐는데, 그게 마치 경쟁을 시키는 것만 같았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될 리는 없으니, 김태영이 조작을 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윤하준의 말에 김태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눈치채고 있었냐?”
“진소향이랑 한고요 순서가 너무 정직했다.”
“쩝, 나도 너무 노골적이란 생각은 했는데, 역시 그게 문제였네. 근데 그렇게 안 하면 걔들이 그런 말을 안 했을 수도 있어서 말이야.”
“왜 그랬냐?”
“그냥, 답답해서.”
김태영은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영하권이 된 날씨는 창문을 열자마자 손발을 차갑게 만들었다.
“서로의 감정을 다 알고 있는 주제에 미적거리는 너희 세 명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고, 또 뭔가 부러워서 말이야.”
“부럽다고?”
“누군 몇 년 동안 꾸준하게 고백했는데 알아주지도 않다가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알게 됐는데, 너희는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러는 게 좀 치사하단 생각이 들더라.”
“질투였냐?”
“그래, 인마. 여자한테 차인 놈이 인기 많은 놈한테 질투 좀 했다.”
김태영의 말에 윤하준은 피식하고 웃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김태영이 정말로 저런 감정으로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
아마도 한고요와 진소향을 위해서 그런 것이겠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래서 대답은 했냐?”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김태영의 모습에 윤하준은 웃으며 답했다.
“안 알려 줄 거야.”
그건 그거고 자신을 고민하게 만든 것에 대한 복수는 해야 하는 법이기에, 윤하준은 그렇게 말하였다. 애초에 윤하준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쫌생이 같은 놈.”
* * *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윤하준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첫 번째 앨범 작업을 시작하였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꾸준하게 작업을 하고 있기도 했고, 이미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을 전부 정해 놨기에 작업 자체는 굉장히 순조로웠다.
그렇게 곡을 만들고, 이제 곡을 부를 가수들을 정하기로 했다.
한고요와 했던 내기가 있었기에, 타이틀곡은 한고요로 확정이 된 상태다.
하지만 다른 곡들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윤하준은 곡에 맞춰서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를 주었다.
가장 많은 노래를 받은 건 역시나 윤수연이다. 그리고 한고요와 김태영, 또한 진소향에게도 곡이 돌아갔으며 그 외에도 지금까지 작업했던 다른 가수들이나 인연이 있는 가수들-예를 들면 오수정 같은-에게도 곡이 돌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오빠가 부르려고?”
“응, 이것만은 내가 불러야 할 것 같아서.”
그중에는 자신을 위한 노래도 있었다.
그렇게 곡의 주인들을 정해 준 뒤에, 곧바로 녹음에 들어갔다. 다들 연습을 할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어느새 12월이 지나, 겨울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윤하준의 계획은 졸업식 날, 이 앨범을 발매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작업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던 중에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이거 선물이에요.”
“올 한 해, 고마웠어.”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윤하준은 진소향과 한고요에게 선물을 받았다.
엄마와 윤수연에게도 선물을 받긴 했지만 가족이 아닌데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이런 선물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윤하준은 한참을 고민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선물들로 답례를 해 주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해피 뉴 이어!”
“다들 축하해요!”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윤하준은 약속한 대로, ‘음악의 선택 시즌 2’를 촬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촬영은 1월 1일이 되는 날, 진소향과 갔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쓰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굉장히 썼다. 이런 것을 왜 그렇게 좋다고 먹었는지, 전생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니, 뭐 사실 전생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에 이제 윤하준은 그러려니 하며 촬영에 임했다.
윤하준은 살아 있는 한, 전생을 절대로 잊을 생각이 없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질질 끌려다닐 생각도 없었다.
이미 자신의 인생은 바뀌었으니까.
전생과 같은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윤하준은 ‘음악의 선택’ 촬영도 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술도 한잔 하는 틈틈이 앨범 작업을 하였고, 덕분에 1월 중순에 모든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이거 좀 너무 빠듯한데.”
“부탁 좀 할게요.”
문제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거다. 이미 윤수연 때 한번 겪었지만, 앨범이란 게 곡만 만든다고 발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윤하준이 원하는 발매 날은 2월 9일. 시간은 정오다.
회사에선 시간을 좀 넉넉하게 늦춰 달라고 하였지만, 윤하준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앨범만은 그날 발매를 해야만 했다.
그 부탁에 가장 많은 고생을 한 건 바로 윤하준의 매니저인 정재호와 윤수연의 매니저인 서채림이었다.
둘은 윤하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 정말 다행스럽게도 윤하준의 첫 번째 앨범은 그가 원하는 날 발매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월 9일.
윤하준의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자 졸업식이 열리는 날.
윤하준은 굉장히 오랜만에 학교로 향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입는 교복을 입은 채로.
‘벌써, 3년이라.’
생각해 보면 시간이 참으로 빨랐다. 처음 회귀를 했을 때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나 졸업이라니.
그래도 그 시간을 아무런 의미 없이 버리지는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윤하준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다.
“오랜만이다, 야.”
“그러게.”
학교에 도착한 윤하준을 가장 먼저 반겨 준 건 바로 김태영이었다.
성인이 된 기념으로 뚫은 귀에 귀걸이를 착용한 김태영의 모습을 보며 윤하준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김태영은 참으로 고마운 녀석이다. 친구가 없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 줬으며, 자신을 위해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맙다.”
“뭐?”
다소 뜬금없는 윤하준의 말에 김태영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을 무시하며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은 윤하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와 있었는지 한고요와 진소향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윤하준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아니, 결정을 내린 것만이 아니라 그 대답을 앨범에 넣었다.
저 둘이 앨범을 들으면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해서 윤하준은 어떻게든 졸업식 날에 앨범을 발매하려고 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사실, 졸업식이라곤 해도 별로 대단한 건 없다. 입학식 때처럼 졸업식 대표가 대표로 이야기를 하고, 후배들의 노래를 듣고, 마지막으로 뻔한 교장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그 별거 아닌, 대단치 않은 졸업식이 사람의 마음을 말랑거리게 하는지, 졸업식을 하는 내내 윤하준은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며 전 여러 가지로 변했습니다.”
입학식 때처럼 대표로 말을 하는 한고요. 하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입학식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을 담아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말하였다.
“입학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절 도와주고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는 최고의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한고요의 문제는 일단 해결되긴 하였다. 왜 일단이냐면, 아직 완벽하게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고요의 엄마가 더 이상 한고요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니 해결이 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그녀가 또다시 나타나 한고요를 멋대로 다루려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그때도 한고요는 혼자가 아닐 테니 괜찮을 거다.
“이곳에서 저는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대들을 만나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말을 하는 한고요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끝내 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 보는 한고요의 눈물에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축사가 끝나고 이제 후배들의 차례다.
재학생들을 대표해 졸업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바로 윤수연이었다.
졸업생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인 윤하준의 동생이자 본인도 굉장히 유명한 가수이기에, 학교 측에서 특별하게 선정한 대표였다.
그나마 침착했던 한고요와 달리 윤수연의 답사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시작부터 눈물을 흘린 윤수연은 끝날 때쯤에는 제대로 말도 못 할 정도로 흐끅거렸다.
그 모습에 윤하준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었고, 진소향과 한고요는 윤수연과 마찬가지로 거의 오열을 했으며, 김태영은 눈시울을 붉힌 채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교장 선생님의 인사를 끝으로 졸업식이 끝났다.
졸업식이 끝나자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강당에서 벗어난 윤하준은 연습실로 향했다.
예전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주 사용했던 연습실. 오늘은 졸업식이니까,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는다.
텅 비어 있는 연습실,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곳에 홀로 앉은 윤하준은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들은 자신의 문자를 보고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라면 분명히 이 연습실로 올 것이다.
핸드폰을 한번 확인한 윤하준은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저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오겠지. 그래, 그때처럼.’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윤하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그녀라면 이곳을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들어와.”
윤하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천히 문이 열렸고, 한 여학생이 그 문 안으로 들어왔다.
설원예고 특유의 회색빛의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
“역시, 여기 있었구나.”
한고요가 그곳에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고요의 모습에 윤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하준이 둘에게 들어 보라고 한 마지막 트랙. 그곳에는 셋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의 가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사는 한고요와 진소향 각자 다르게 해석이 되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장소를 말이다.
“……이곳에 네가 없었으면 했어.”
“미안해.”
슬픈 표정을 짓는 한고요의 말에 윤하준은 입술을 깨물며 말하였다.
그 모습에 한고요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연습실이 있는 건물로 향하는 윤하준의 모습을 보았기에 진즉에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했었다.
기적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것보다 얼른 가 봐야 하지 않아?”
“……사실은, 널 보고 이런저런 말을 해 주려고 했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보니까 뭐라고 말이 안 나오네.”
“괜찮아. 네 표정을 보면 네 생각이 보이니까.”
지금은 그게 너무나 힘이 든다. 차라리 몰랐으면,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자신을 선택해 주기 위해서라는 헛된 희망이라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본 순간, 한고요는 그의 선택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보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얼마나 자주 그의 얼굴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얼른 가 봐. 기다리겠다.”
한고요의 말에 윤하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고요를 지나쳐 문을 나가기 직전, 윤하준은 한고요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하였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 같은 놈을 사랑해 주어서.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이 생략됐는지 한고요는 알 수 있었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때, 한고요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실은 가지 않았으면 했다.
마음 같아선 그의 손목을 붙잡고 보내지 않고 싶었다. 아니면 어째서 자신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더 먼저 좋아했고, 내가 더 먼저 작업했고,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데.
하지만 한고요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으니까.
“……흐, 흐윽.”
아까 강당에서 모든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눈물이 나온다.
눈이 쓰라리다. 코가 아프다. 무언가 가슴을 꽉 하고 막은 것 같아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심장이 아파서,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그가 없어서 다행이다. 너무나도 착한 그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그녀에게 가지 못했을 테니까.
그것을 알기에 한고요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아 낸 것이다.
‘그는 괜찮다는 내 거짓말을 눈치챘을까? 아마, 눈치를 챘겠지.’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서 좋아했던 거니까.
처음으로 느낀 사랑, 그리고 처음으로 겪는 실연에 한고요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 * *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설마 그에게 이런 감정을 가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절친한 친구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마지막으로 이런 결과마저도.
전부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거대한 공원에 있는 공연장.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진소향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자신을 이곳에 오게 만든 노래를 재생했다.
윤하준의 첫 번째 앨범, 스크래치.
그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
‘그때, 그곳에서’.
그 노래를 들은 순간, 진소향인 어째서 윤하준이 이 노래를 들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변한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기다려 달라는 노래의 가사.
실음과 콘서트가 펼쳐진 공연장. 윤하준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말한 것이다.
“후우.”
진소향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기 위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그가 늦는 이유, 그의 선택이 무엇인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거다.
저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그녀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어째서 그녀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했는지, 진소향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그때,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는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발소리.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그 발소리를 들으며 진소향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말이지.”
처음 만나면 어째서 자신이냐고, 왜 자신을 선택했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고 있던 생각마저 머리에서 지워졌다.
대신, 진소향은 그 사람을 향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윤하준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속도가 빨라지더니 이윽고 엄청난 속도로 진소향은 윤하준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그에게 안겼다.
처음으로 안겨 보는 그의 품, 생각보다 남자다운 그의 손, 섬유 유연제인지 아니면 그의 냄새인지 알 수 없는 부드러운 향기.
그것들을 전부 느끼며 진소향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안고 있는 윤하준을 바라보았다.
다소 당황스러운지, 아니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진소향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야, 윤하준!”
처음으로 그에게 하는 반말.
그 반말에 윤하준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바보 같은 모습마저 사랑스러워서, 진소향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에게 줄곧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마침내 그에게 하였다.
“나랑 사귀자!”
동생이 천재였다 마칩니다
후기.
후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동생 천재의 작가 이시하입니다.
동생이 천재였다가 21년 2월 5일에 시작을 했고, 오늘이 11월 11일(업로드는 12일이지만)이니, 동생 천재를 연재한지 어느새 9개월이나 지났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글을 쓰고 있으면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리고 늘 후회가 됩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왜 저런 이야기는 안 했을까.
지금까지 5질을 완결 냈지만 그 후회가 없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 이야기를 끝냈다니 뿌듯하긴 합니다.
이 이야기의 끝이 만족스러운 분도 있으실 거고, 만족스럽지 않은 분도 있으실 겁니다. 그 뒤의 이야기나 다른 캐릭터들.
특히, 윤수연이나 아니면 전생에서 윤수연이 떠난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도 계시겠죠. 사실은 그 부분을 본편에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러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본편을 먼저 완결내기로 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본편은 25화 전에는 완결이 나야 했거든요.
그런데 제 욕심 때문에 좀 길어지고 말았고 그 탓에 이야기가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부분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뭐, 어쨌든 여러분들이 궁금하신 이야기는 언젠가 외전으로 한 편씩 찾아뵐 예정입니다. 그 외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천재는 지금까지 제가 연재한 글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글들입니다. 그래서 애착도 깊고요. 그러니까 외전은 꼭 한편씩 써서 올리겠습니다.
이제 동생 천재도 완결이 났으니 무엇을 할까, 고민이 됩니다. 사실은 슬슬 집합금지도 풀리니 국내여행이라도 갈까 생각했었는데.
뭔가 좋은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그걸 써보고 싶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아, 작가들이라면 다들 겪는다던 신작병이 이렇게 타이밍 좋게 떨어질 줄이야.
그러면 저는 최대한 빠르게 신작을 들고 찾아오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