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1
포인트가 넉넉하게 쌓였다.
다시 신전으로 나가자 전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깔려있었는데··· 그새 다 흡수했네?”
“오, 주인! 크크크. 아주 좋아! 만족스럽다.”
데스나이트는 조금 더 커지고 색도 더욱 진해졌다.
“데스나이트도 강해진 거야?”
“망할 것들··· 정말 샅샅이 핥아먹었어. 에잉··· 이제 데스나이트 수준은 뛰어넘었지.”
“말은 그렇게 해도 좋은가 보네.”
“내 부하들이 강해지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어?”
굴락이 데스나이트의 장비를 점검해줬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저런 아이템들을 구해오는 거야?’
데스나이트는 각자 꽤 쓸 만해 보이는 검과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검은빛으로 코팅된 것은 같았지만 종류나 생김새가 아주 약간씩 달랐다.
데스나이트의 장비를 보고 있던 내게 모림이 다가왔다.
“크흠··· 저 리치가 가끔 니다벨리르에 와서 아이템들을 가져간다네.”
“가져간다고요? 돈도 안 내고?”
“상관없네.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해주고 가거든.”
“예?”
굴락은 니다벨리르에 아이템을 구하러 가서 드워프들에게 각종 암흑 버프를 나눠주고 마법을 이용해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특히, 용광로를 다시 가동하는데 큰 도움을 줬어. 저기 저 인간들에게도 아이템을 꽤 구해다 줬을 거네.”
파티원들 아이템도 구해다 주었다고 한다.
상태창이 없기에 세부적인 건 볼 수 없었지만 대마법사의 안목은 어디 가지 않았다.
고르는 족족
쓸 만한 옵션과 성능을 자랑했다.
‘굴락이 참모 역할을 잘해주네.’
“그나저나, 아까 죽은 그놈이 한 말··· 진짜인가? 여기 말보런스가 소멸한다던···.”
모림의 말에 아이말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믿을 수가 없군요. 멀쩡한 말보런스가 소멸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만약 진짜라 하더라도 평화롭게 협상하며 이주해야지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크흠. 맞네. 젊은 엘프 가치관이 아주 좋군.”
‘평화롭게 이주라···.’
이세계 종족의 이주.
과연 가능했을까···.
온갖 마법과 기술을 빼앗기고 팽 당하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정치싸움으로 하루아침에 침략자가 되어 평화를 바라던 이들을 학살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말보런스 멸망은··· 알 수 없는 일이죠. 세상에 영원한 게 있겠습니까? 신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우리와는 다른 의미의 소멸이 아닐까 싶네요.”
그레모리만 해도 수천 년을 살았다.
인간들이야 보통 백 년 남짓 사는 게 전부.
수천 년 후 세계가 멸망한다 해도 인간에게는 아득한 일이다.
“음. 자네 말이 맞는군. 괜히 걱정할 필요 없겠어.”
모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들어온 신전 입구에는 다시 포탈이 생겨났다.
* * *
“아서스. 가자.”
“자네는 다시 걸어서 돌아가나?”
“뭘 만날지 모르니까. 일단 변경백에게는 함께 가야지.”
“아, 고맙네. 여기 제이나는···.”
안젤라를 바라보던 제이나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멍하니 풀린 눈.
“영주님. 나중에 저랑 이야기 좀 하실 수 있을까요?”
“어···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제이나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큰일을 겪어서 그런지, 예전에 그 쾌활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네. 구출에 대한 답례 인사가 없더라도 자네가 이해해주게.”
아서스가 제이나를 두둔했다.
‘그보다는··· 뭔가 분위기가 좀···.’
우아하고, 성스럽다.
‘강림이 완료된 건가?’
그러나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아서스에게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신, 특히 그리스 계열 신들의 성향과 목적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아서스 말대로 그저 단순히 큰일을 겪어서 그런가···.’
“아서스, 이거 선물이야.”
“음? 이게 무슨··· 헉!”
리스페 소환 고삐를 받아 든 아서스가 눈을 부릅떴다.
“내, 내게 주는 건가?”
“응. 이제 네가 발포그의 왕이니까. 환궁할 때는 멋있게 보여야지.”
“하, 한번 소환해 봐도 되나?”
“물론이지.”
상태창을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반 각성자.
아이템 설명을 통해 무슨 능력이 있는지 알아본 아서스가 리스페를 소환했다.
흰색에 가까운 부드러운 은빛 갈기.
다른 말보다 두 배는 커다랗고, 윤기 또한 넘쳐흘렀다.
강인한 근육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을 떨어트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 오오··· 이럴 수가!”
아서스가 리스페에게 다가가 감탄했다.
“저, 정말 고맙네. 서진우. 자네는 정말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그동안 고생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말게!”
“모두 돌아간다!”
동맹과 파티원을 돌려보냈다.
소환수를 해제하고 굴락은 다시 하이드를 사용해 공기 중으로 녹아들었다.
아서스가 제이나와 함께 말에 올랐다.
‘제이나··· 괜찮은 걸까.’
우리는 처음 변경백을 만났던 곳을 향해 달렸다.
* * *
“아서스 왕자님이 돌아오셨다!”
“길을 비켜라!”
로안 해로드의 병사들이 길을 열었다.
중앙 막사에서 로안이 나오며 눈을 크게 떴다.
“왕자님. 이 말은 대체 뭡니까?”
“선물 받은 말이네. 정말 엄청난 명마지.”
“척 봐도 명마인 걸 알겠습니다. 테오도르에서 받은 선물입니까?”
“아닐세. 여기 이 친구에게 받았지.”
아서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쓰다듬었다.
“함께 계신 레이디는···?”
“메르키오르에게 납치되었던 여성이네. 나와 야킨둔 영지를 함께 꾸렸었지.”
“그럼···?”
“그래. 메르키오르는 죽었네.”
로안의 입을 쩍 벌렸다.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메르키오르를 죽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어쩐지 갑자기 거인들이 사라졌다 했는데···.”
“안으로 들어가지.”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들어오시죠.”
막사 내부에는 부관과 단발머리를 한 차가운 인상의 여성이 망가진 갑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와··· 엄청 강해 보이는 여자네.’
“아서스 왕자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여기는 제 딸입니다. 오랜만에 보시죠?”
로안이 단발머리 여성을 소개했다.
“클라우디아라고? 이게 몇 년 만이야?”
“아서스. 오랜만이네. 그 우물쭈물하는 성격은 좀 고쳤냐?”
“아니, 내, 내가 언제 우물쭈물했다고···.”
“너 툭하면 나한테 두들겨 맞고 울면서 도서관으로 도망갔잖아. 그런데도 이유를 물어보는 쿨렌에게 한 마디도 못 했지.”
“예, 옛날이야기는 그만하지. 레이디도 계시는데···.”
아서스가 제이나의 눈치를 보며 땀을 뻘뻘 흘렸다.
“레이디라··· 팔자 좋네.”
“나도 바빴다. 네가 상상도 못 할 엄청난 모험을 했지.”
“어디로? 도서관?”
“클라우디아, 그만하거라!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지난 전투에서 잃은 병력 때문에 조금 날카로워진 모양입니다.”
“아버지. 대체 아서스는 뭐 하러 부른 거예요? 옆에 저 남자는 또 뭐고!”
클라우디아가 나를 가리켰다.
‘무서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두들겨 맞을 것 같다.
“우리 전투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서진우입니다.”
“서진우? 유랑민 출신인가? 이름이 그게 다예요?”
유랑민은 아서스 발포그 같은 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하래도. 메르키오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게 말일세···.”
아서스가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 * *
“믿을 수가 없군요. 에드먼드 발포그 제1 왕자가 그렇게 죽다니···.”
“어쩔 수 없었네. 정신이 완전히 잠식당했어.”
“그럼··· 아이작··· 국왕께서도.”
“그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 가능성이 크지.”
“메르키오르가 흑마법사였나 보군요.”
‘엄밀히 말하면 흑마법사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 사람들에게는 더 편할 수도 있다.
아서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잘못 시작한 전쟁을 끝낼 때가 되었네. 앵거스에게 연락해 휴전을 타진하고 전장에 나와 있는 발포그 군대를 해산시켜야 해.”
“옳은 말씀입니다. 소식이 퍼지기 전에 귀족과 원로회를 먼저 장악하셔야 합니다. 에드먼드를 지지하던 귀족의 재산을 몰수하시고, 작위를 박탈···.”
로안의 입에서 왕권을 잡기 위한 일련의 절차가 나열되었다.
‘와, 장난 아니네.’
왕권이 바뀌면 숙청은 필수다.
실제로 그 모습을 지켜보니 생각보다 더 무자비하다.
‘그냥 싹 다 갈아엎는구나.’
“···그리고 골드 기사단은 상징적인 의미로 해체하시고 이름을 바꾸셔야 합니다. 실버 이하는 자진 사임을 요구하시되 충성 서약을 받으시고···.’
해야 할 일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서스는 신중하게 로안의 말을 경청했다.
“로안 해로드 변경백. 나와 함께 가세.”
“저··· 말씀이십니까?”
“아버님을 도와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도와주게. 왕권을 세우면 자네의 도움을 잊지 않겠네.”
아서스에게 충성 서약을 했던 로안.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왕자님을 도와 다시 한번 발포그가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로안은 중앙권력의 핵심이 되겠군.’
인생은 한 방.
역시 줄을 잘 서야 한다.
“로안, 자네에게 첫 명령을 내리겠네. 모든 전투를 중지하고 군대를 해산시키게. 테오도르에 휴전을 제의하도록!”
척.
로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서스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로안 해로드. 명을 받듭니다.”
로안이 일어서며 부관을 향해 명령했다.
“부관. 이야기는 들었겠지. 앵거스 패닝턴과 각 지역에 있는 발포그 군대를 해산하는 명령을 담은 전령을 보내게. 이는 아서스 발포그 국왕 전하의 첫 번째 명령일세.”
“명령서는··· 없어도 될까요? 국왕의 인장이···.”
부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전쟁 중이니 이해할 걸세. 정식 명령서는 나중에 보내준다고 하고. 머리가 있는 지휘관이라면 아서스 발포그 국왕 전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해야 할 일을 알겠지.”
정치.
발포그는 이제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당분간 아서스는 소환하면 안 되겠다.’
야킨둔 영지 관리인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아서스도 같은 걸 생각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당분간 야킨둔 영지 관리가 어렵겠네.”
“어, 그렇··· 습니다? 국왕? 전하?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서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는 그냥 그대로 아서스라고 불러주게. 부탁이야.”
“그, 그래. 고맙다.”
“영주 대리를 추천하고 싶네만.”
“대리? 누구?”
나는 제이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당장 영지를 관리하기는 제이나가 제격이긴 한데···.’
다만, 간혹 보이는 그 멍한 표정이 걸린다.
“블레이크 윈드. 그를 추천하네.”
“아··· 블레이크!”
사막 영주 블레이크 윈드.
척박한 땅에서 영지민 500명을 관리하던 수완가다.
“그래. 괜찮겠군. 나중에 만날 수 있게 해줘.”
“그리하겠네.”
“그럼 난 간다. 당분간은 부르지 않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쪽지 보내고.”
“걱정하지 말게. 전보다 더 귀찮게 해주지.”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막사를 나섰다.
* * *
‘흠··· 포인트가 모였으니 영지랑 네크로맨시도 업그레이드하고···.’
상태창 덕에 지구 소식도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다.
각성자 커뮤니티도 훑어보았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미미르의 샘 이동 스크롤]– 사용 시 이그드라실의 뿌리 부근으로 이동합니다.
– 타인과 함께 이동할 수 없습니다.
‘그냥 종이가 아닌 거 같은데?’
일반적인 스크롤은 종이로 이루어져 있어 그냥 찢어진다.
그러나 이 스크롤은 가죽과 같은 두꺼운 재질로 되어 있었다.
‘사용 방법이 따로 있나?’
“여기서 뭐 해?”
클라우디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 별거 아냐. 스크롤인데 어떻게 찢나 해서.”
“그냥 찢으면 되는 거 아닌가?”
“종이가 아닌 것 같아.”
“한번 봐도 될까?”
“그래.”
나는 스크롤을 클라우디아에게 넘겼다.
“가죽 같은 느낌이네? 부들부들하고···.”
클라우디아가 스크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찌익···!
“어? 조금 찢어진다.”
화라락!
순식간에 클라우디아의 몸이 빛무리에 휩싸였다.
“안 돼!”
나는 스크롤을 잡은 클라우디아의 손을 잡았다.
클라우디아를 감싸던 빛이 내게도 몰려들었다.
번쩍!
눈앞이 암전되었다.
미스틸레인 속 오딘의 검술
“아으··· 이게 뭐야!”
어둠 속.
클라우디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디야? 나를 어디로 데려온 거지?”
“그건 나도 모르지! 그러니까 왜 찢은 거야!”
“찢어질 줄 내가 알았겠어?”
눈앞은 여전히 어두웠다.
‘굴락. 잠깐 나와 봐.’
굴락을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뭐지? 설마··· 상태창도?’
다행히도 상태창은 작동했다.
‘이 공간은 타인과 함께 입장할 수 없습니다···?’
상태창 로그가 올라와 있었다.
메시지 기능도, 경매장도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동맹, 영지민 소환.’
[이 공간에는···.]계속해서 같은 메시지가 등장했다.
‘그럼 대체 이 여자는 어떻게 같이 온 거야?’
타인과 함께 올 수 없는 곳에 이 여자와 함께 들어왔다.
‘시스템 버그인가?’
나갈 수 있는 포탈조차 없다.
영지 귀환을 사용하면 나갈 수는 있겠지만 아마 다시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뭐 하는 거야? 너무 어두워. 너 마법사라며? 마법 좀 써봐.”
클라우디아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난 마법사가 아냐. 대체 누가 마법사라고 한 거야?”
“병사들이 네가 리요네스의 마법 타워를 소환한 걸 봤다는데? 언데드를 소환하는 걸 봤다고도 하고···.”
“내가 한 거는 맞는데, 마법사는 아냐. 넌 마스터급 기사라며? 오러라도 좀 주입해봐.”
“하. 정말 엉망인 남자군.”
번쩍.
새하얀 오러가 검신을 타고 주변을 밝혔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클라우디아의 검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계속 유지할 수는 없어. 어서 뭐라도 좀 해봐.”
“기다려 봐.”
나는 상태창을 통해 경매장을 접속했다.
– 적립금 : 473,235,318골드
– 가용금액 : 1,552,843,753골드
‘컥···!’
그새 돈이 무시무시하게 불어났다.
의미는 없지만, 현금으로 환산하면 재벌급 부자가 된 셈이다.
‘스킬 포인트를 47개나 살 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