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3
‘다람쥐?’
나무를 갉아 먹고 있던 거대한 다람쥐가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저거 몬스터야?”
클라우디아가 검에서 오러를 뿜어냈다.
“잠깐. 기다려봐.”
‘공격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이는데···.’
다람쥐가 나와 클라우디아를 번갈아 가며 빤히 쳐다보았다.
“바나헤임의 존재들인가?”
“마, 말을··· 하네?”
클라우디아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바나헤임?’
알프헤임이나 니다벨리르 같은 또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바나헤임에서 온 게 아니라, 인간이야.”
“인간? 인간이 여길 왔다고? 거짓말!”
“믿든 말든 그건 네 자유지. 네 이름은 뭐지?”
“나? 나는 라타토스크. 너는?”
“나는 서진우. 여기 옆은 클라우디아.”
“서진우··· 그렇군. 여긴 왜 왔지? 설마 니드호그한테 먹을 걸 주려고 온 건 아니겠지?”
“니드호그가 뭐지?”
“이그드라실 아래 사는 멍청한 녀석이지. 캬륵.”
웃는 건지, 포효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소리를 내는 라타토스크.
“우리는 미미르의 샘을 찾아왔어.”
“미미르? 그는 너무 시끄러워. 가면 고막이 터져나갈걸.”
“샘물만 뜨면 돼.”
“과연 그가 허락해 줄까?”
라타토스크가 나무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허락을 받을 방법이 있나?”
“오딘은 눈을 뽑아 바쳤지.”
“눈···?”
“근데, 멍청했어. 캬륵. 미미르가 원한 건 눈이 아니었는데.”
콰르르르르르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타토스크가 고개를 들었다.
“캬륵. 시작한다. 캬륵.”
“뭘 시작하는 거지?”
“멍청한 놈들 둘이 싸우는 거.”
라타토스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천둥소리를 뚫고 거대한 새가 나타났다.
“라타토스크! 이번엔 거짓이 없겠지!”
“물론이야. 니드호그가 그랬어. 네가 이 세계에서 가장 못생기고, 털에 윤기도 없다 했지.”
“니드호그! 감히 나를!”
‘쟤는 새야? 부엉이야?’
아무리 봐도 부엉이다.
“근데, 니드호그가 너 만나면 오지 말라고 전해 달라던데.”
“이유는?”
“냄새난대.”
푸드덕!
부엉이가 포효하더니 날갯짓을 하며 어둠 속 아래로 빠르게 사라졌다.
콰르르르르릉!
꽈아아앙!
쾅! 쾅!
멀리 어둠 속 공간이 밝아지며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메테오와 썬더스톰, 헬파이어 같은 최고위급 마법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게 뭐야··· 꿈인가? 저런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쏘아댄다고?’
콰르르르르르.
폭발의 충격으로 주위에 있던 나무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밝은 빛 사이로 등장한 거대한 몸체.
‘저, 저건··· 드래곤? 니드호그는 드래곤이구나.’
엄청나게 퍼부어댔던 마법들이 한방에 이해되었다.
하지만 부엉이도 만만치 않았다.
니드호그의 엄청난 마법에도 개의치 않고 이곳저곳을 쏜살같이 날아다니며 공격했다.
‘정말 이상한 세상이군.’
* * *
클라우디아는 눈앞에서 벌어진 싸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봐 서진우··· 지금 이게 다 현실인가?”
“그런 거 같아.”
“왜 그렇게 무덤덤한거야···?”
“조금 놀랍긴 해. 근데 워낙 특이한 걸 자주 봐서 큰 감흥은 없군.”
라타토스크가 싸움을 바라보며 방정맞게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캬륵. 저 멍청한 것들은 놀리는 재미가 있어.”
“놀린 거라고···?”
“니드호그는 먹보야. 먹는 것만 좋아해. 나무 딱딱하지. 그래서 독으로 녹여 먹는다. 다 먹으면 나무 쓰러져. 이렇게 힘을 쓰면 당분간 잔다. 캬륵.”
‘흠··· 뭔지 모르겠어.’
“미미르의 샘은 어디 있지?”
“니드호그가 있는 곳 아래.”
아무리 씨앗을 발아시켜야 한다 해도 드래곤 레이드는 사양이다.
“저렇게 힘을 다 쓰고 나면 얼마나 잠들지?”
“내가 심심해질 때까지.”
‘깨운다는 말인가?’
그러면 여기서 잠들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 같다.
“나 심심하다. 싸움이 끝나면 이번엔 니드호그를 못 자게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걸 부엉이 탓으로 돌리는 거야. 캬륵.”
라타토스크가 홀로 중얼거리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차라리 몬스터가 낫겠어.’
어떻게든 라타토스크를 설득해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니드호그가 얌전히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라타토스크를 심심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이런 역할은 굴락이 최고인데, 안타깝게도 소환할 수 없다.
동맹이나 영지민도 소환이 안 되니 방법이 없다.
대신, 데스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저드를 소환했다.
쿵. 쿵.
“꺄악! 언데드다! 죽어라!”
클라우디아가 오러를 뿜어내며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쾅!
퍽!
데스나이트가 여유 있게 방어하며 클라우디아를 발로 차버렸다.
“커흑. 서진우! 뭐 하는 거야! 빨리 공격해!”
“그만해. 내 소환수야.”
“뭐···?”
선두에 있던 선임 데스나이트와 스켈레톤 위저드가 나를 바라보았다.
“누가 적인가? 굴락님은 어디 가셨지?”
“굴락은 여기 못 와. 너희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다.”
“뭐든지.”
“저 다람쥐랑 좀 놀아줘.”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잘못들은 건가?”
“제대로 들었어. 저 다람쥐랑 좀 놀아줘. 원하는 것도 들어주고, 비위도 좀 맞춰줘.”
“그, 그러지···.”
나는 라타토스크에게 다가갔다.
“라타토스크! 저기 있는 해골들이 너랑 놀고 싶다는데? 우리가 다녀올 때까지 니드호그 괴롭히지 말고 해골이랑 놀아 봐. 재미있을 거야.”
“해골? 아, 저것들을 말하는 건가? 캬륵. 조그맣고 귀여운 것들이 많다! 좋아! 하지만 흥미가 떨어지면 다시 니드호그를 괴롭히며 놀 거야.”
라타토스크가 데스나이트에게 다가갔다.
콰직.
라타토스크가 근처에 있던 데스나이트를 덥석 물자 그대로 몸이 부셔졌다.
‘···?’
“도망쳐봐! 내가 잡을게!”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치던 데스나이트가 이내 개미 떼처럼 흩어져 달렸다.
스켈레톤 위저드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32마리! 다 잡아줄게! 캬륵.”
라타토스크가 언데드를 쫓아 사라졌다.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이런 걸 봐도 아무렇지 않나 봐?”
“아무렇지 않다기보다··· 그냥 적응하는 거지.”
“알 수 없는 남자군.”
“드래곤쪽 전투도 슬슬 끝나가는 것 같아··· 끝나기 전에 어서 가자. 거리를 보니 꽤 걸리겠어.”
우리는 다시 나무뿌리 틈으로 내려갔다.
* * *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어. 너무 피곤해.”
클라우디아가 툴툴거렸다.
“흠··· 그래. 생각보다 훨씬 멀긴 하네.”
느낌상 네다섯 시간 이상 걸은 것 같다.
금세 끝날 것 같던 전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널 만나서 이곳으로 왔다고! 한숨도 못 자고··· 며칠째 이게 뭐야.”
전장에서 푹 자기는 어렵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는데 곧바로 이런 곳에 던져졌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어차피 전투가 끝나고 니드호그가 잠들어야 지나갈 수 있다.
나는 나무뿌리 틈에 적당한 곳을 찾아 이동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쉬자.”
“노숙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는데···.”
“잠깐 기다려 봐. 우선 식사부터 하자.”
“식사? 여기에 먹을 게 어디 있다고!”
“있어.”
이곳에 각성자나 영지민은 소환할 수 없다.
하지만 상태창이 스킬로 제공하는 해골이나 건물은 소환할 수 있다.
오랜만에 휴식을 위한 시설을 소환하기로 했다.
‘영지화.’
쿵.
‘식료품 창고 소환.’
번쩍!
조립식 창고가 소환되었다.
털썩.
클라우디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게 뭐야?”
“음식 창고지 뭐야.”
문을 열자 평소와는 조금 다른 창고의 모습이 나타났다.
‘초기형 버전인데?’
업그레이드되기 전 규모의 작은 창고였다.
지금 수서의 식료품 창고는 거대한 음식 박람회장 수준이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전 뷔페 규모의 식료품 창고가 소환되었다.
‘뭐라도 먹기만 그만이지.’
애초에 제약이 있는 장소에서 이 정도라도 감사하다.
한쪽에는 영지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말보런스식 음식들도 있었다.
창고에서 먹을 만한 음식을 이것저것 챙겨 클라우디아에게 내밀었다.
“먹어.”
“이, 이게 뭐야? 크레야 스튜? 심지어 따뜻하잖아? 이걸 어디서···?”
“놀랄 시간에 일단 먹어.”
클라우디아의 식성은 어마어마했다.
네 번을 더 음식을 가져다주고서야 겨우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격하게 몸을 쓰는 마스터급 검사는 영양 보충이 필수라고!”
자신의 앞에 쌓인 접시와 그릇을 보고 민망했는지 애써 변명을 늘어놓았다.
“잘 먹었으면 됐어. 안 먹는 거보다 낫지.”
“그렇지? 너 뭘 좀 아는구나!”
‘누가 데려갈지 몰라도 식비가 만만치 않겠어.’
식료품 창고를 돌려보내고 위생시설을 소환했다.
이 역시 업그레이드 전 버전이었다.
“이건 무슨 건물이야?”
“씻어야지.”
“씻는다고···?”
위생시설을 열고 들어가 여성 칸에 있는 비품과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마, 맙소사··· 온수가 나오는 관이라니! 이 물이 나오는 거 이름이 뭐라고?”
“샤워기?”
“샤워기··· 저건 화장실이고?”
“그래. 그럼 씻어. 나는 남성용으로 가서 씻을 테니.”
잽싸게 씻고 나와 밖에서 기다리자 클라우디아가 상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대충 씻고 나왔는데?”
“두 시간은 씻은 거 같은데?”
두꺼운 갑옷을 벗어낸 클라우디아가 한결 가벼운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장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너 마음에 든다!”
부르르.
썬더워커의 줄리아도···.
클라우디아도···.
너무 무서운 여자들이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몸을 부르르 떨며 위생시설을 돌려보내고 주거 시설을 소환했다.
쿵.
익숙한 내 낡은 컨테이너.
문을 열자 방 3개짜리 내부가 보였다.
“꺄아! 침대? 이럴 수가···!”
뒤 따라 들어 온 클라우디아가 침대를 보고 그대로 달려가 털썩 누웠다.
“아아아아아··· 말도 안 돼! 대체 네 아공간에는 뭐가 또 있어? 이렇게 집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정신 나간 마법사가 있다니!”
더 이야기할 기운도 없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보니··· 샘물을 떠 가려면 양동이가 있어야겠네? 물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안 나와 있는데···.’
싱크대에 있는 그릇이라도 챙겨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과 함께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아,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최고야! 우리 집보다 더 좋아!”
클라우디아가 개운한 표정으로 컨테이너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사이.
니드호그와 부엉이의 전투는 끝이 났고, 미미르의 샘물로 가는 길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간혹 우리가 내려온 방향에서 폭음과 함께 ‘캬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데스나이트가 개고생하고 있는 듯했다.
“잘 쉬었다니 다행이야. 어서 다시 내려가자.”
“좋아. 이런 식이면 얼마든지 함께 다녀주지.”
“얼마든지는··· 됐고. 얼른 일 해결하고 돌아가자.”
“아서스가 어릴 때부터 모험, 모험 노래를 부르더니. 괜히 너랑 붙어 다니는 게 아니었어! 그 치사한 놈! 이렇게 좋은 게 있으면 나도 알려줬어야지!”
“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데···.”
“이제 전쟁은 지겨워. 이런 편리한 환경에서 모험을 할 수 있다면··· 나도 너와 함께하겠어!”
“거절합니다.”
“왜!”
나는 발끈하는 클라우디아를 무시하고 컨테이너를 소환 해제했다.
“가자.”
“왜냐고! 대체 왜!”
‘딱히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무섭다고 말하기는 더 그렇다.
투덜거리는 클라우디아와 함께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쿠르르르르.
부엉이가 떠나고, 니드호그는 잠이 들었는지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니드호그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꼬리 쪽에 있는 틈으로 들어갔다.
여기부터는 나무 벽 표면이 매우 거칠었다.
‘이제 보니··· 이런 동굴 같은 구조는 라타토스크가 다 갉아 만든 거였구나.’
다람쥐의 몸 크기와 딱 맞는 나무 통로.
뿌리에 내려온 라타토스크가 이곳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더 내려가자 드디어 뿌리가 끝나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안전모에 달린 라이트로 넓은 공간 이곳저곳을 비췄다.
물웅덩이와 커다란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딛자, 어디선가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혜를 얻으려는 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자격이 없는 자는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
“그대의 정당한 자격을 증명하라!”
서라운드가 울리듯 동시에 목소리가 흘러나와 고막을 두들겼다.
콰르르르르.
바닥이 흔들리며 의자에서 황금색 빛줄기가 흘러나왔다.
샘물에서 오색찬란한 구체 여러 개가 떠오르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사람?’
황금빛이 사라진 의자에는 다부진 체격의 노인 하나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앉아있었다.
‘안대를 했던 노인인데···?’
내게 샘물을 구해 씨앗을 싹 틔우라고 알려준 노인.
눈앞의 노인은 안대가 없었다.
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것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다.
노인이 나를 응시했다.
“미드가르드의 인간인가?”
“아뇨. 지구인인데요. 여기 옆에는 말보런스 사람이구요.”
“지구? 말보런스?”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풍채와 위엄있는 자세.
노인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황금색 빛이 눈부시게 빛나며 창이 생겨났다.
“미미르의 샘에 지혜를 구하러 온 자여! 그대가 끝없는 지혜를 탐할 만큼 강력한지, 나 오딘이 직접 시험하고자 하니···.”
쾅.
‘오딘···?’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오딘의 파편과 기만의 신 로키
“클라우디아, 물러나 있어.”
오딘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