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8
“형···! 형!”
“도현이? 김도현? 이, 이게 무슨···? 나는 분명 죽었는데?”
“형! 형···! 흑흑흑.”
몰려든 가족과 친지들로 전사자의 샘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장 멀리 있던 샘.
왜소한 남자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안젤라가 떨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오···빠.”
남자가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떴다.
“앤지? 앤? 너 맞아? 어떻게···. 너, 너 죽은 거야?”
“오빠··· 제임스! 으헝···!”
안젤라가 제임스를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당황한 눈빛으로 안젤라를 끌어안은 제임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진우? 내가 살아났다고?”
“반갑군. 제임스 우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제임스 우드.
그가 안젤라를 떼어내고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제임스가 속삭였다.
“헤, 헬헤임을 도와야 해. 이대로 두면 니플헤임과 헬헤임이 분리된다.”
리요네스에 가야겠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죽고 나서 기억이 있어?”
“자, 자세한 건 조금 있다 이야기해. 상황이 어렵게 됐어.”
제임스가 뜻 모를 소리를 했다.
다른 각성자는 죽고 나서 지금까지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런데, 제임스는 니플헤임과 헬헤임을 알고 있다.
그가 죽었을 당시의 임무 진척도를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따로 상담을 좀 해 봐야겠군.’
아무리 일이 바빠도 가족과 재회할 시간은 줘야지.
다른 각성자들도 재회의 기쁨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휴식 마을? 그게 뭐야?”
“···40레벨이 됐다고? 세상에··· 나 이제 15레벨인데···.”
“집이 있어? 월세? 그럼 몬스터 공격이 끝난 거야?”
전사자의 샘은 시장통처럼 북적거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크게 소리쳤다.
“자! 여러분! 재회의 기쁨은 모두 나가서 나누시고 가족이나 친지가 없으신 각성자는 적응을 위해 썬더워커 길드를 따라가세요!”
사람들을 내보내고 우리 파티원만 남았다.
“와··· 저기 벽 좀 봐봐.”
전사자의 이름이 잔뜩 적혀있던 벽.
황금색으로 빛나던 이름이 스르르 사라져 빈 곳이 되었다.
‘전사자의 이름과 죽은 날짜가 모두 기록된다니···.’
각성자는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붙어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만약 지구에서 죽은 일반인들마저 이런 식이라면.
‘수십억 명을 전부 기록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면 시스템의 능력은 신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셈이다.
이미 여러 신의 권능을 상태창으로 구현하기도 했고, 임무에도 집어넣었다.
‘아이템이나 스킬명을 보면 꽤 센스도 있는 거 같은데···.’
온갖 컨텐츠를 섭렵하지 않고서는 구현하기 힘든 수준의 정교함.
농담처럼 말했던 박성남 2기 오버니삭스도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대체 정체가 뭐지?’
“나가자. 제임스에게 식사라도 대접해야지.”
박성남이 아직도 끌어안고 있는 우드 남매를 가리켰다.
“그래. 우선 뭐라도 먹자.”
고민한다고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계속 쫓다 보면 진실이 밝혀지겠지.
* * *
“어, 엄청난데. 그 와중에 이, 이런 도시를 만들다니.”
제임스가 영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영지.
제임스의 눈에 감동이 차올랐다.
“네 덕분에 이렇게 된 거다.”
언데드는 아직도 내 주력이다.
제임스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 될 일이었으니까. 내, 내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이렇게 될 일이라···.’
“제임스, 존 도는 어떤 사람이었지? 너는 만난 적이 없다고 하던데 알고 있어?”
“아, 아직 만나지 못했어?”
“실종되었다는군.”
“존 도는··· 사실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모습이었지. 마치··· 영화에나 나오는 오래된 마법사 같은 느낌.”
“수염이라···.”
지금은 실종되었다니 어떻게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니플헤임과 헬헤임. 대체 무슨 말이야?”
“자, 자리를 옮길까?”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이었다.
“잠깐, 기다려 봐.”
나는 제임스를 영지민으로 등록하고 컨테이너로 향했다.
“하하, 믿을 수가 없군. 이, 이 성이 네 집인가?”
컨테이너 내부.
홀을 보며 제임스가 감탄했다.
회의실에 앉자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나, 나는 죽고 나서 차갑고 푸른 땅 위를 날았지.”
니플헤임.
죽은자가 그저 본능만 남아 살아가는 세계.
제임스는 그곳에 떨어져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좀비와 비슷하게 행동했어.”
말을 걸어봤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반투명한 영혼의 모습을 하고 홀로 니플헤임을 날아다녔다.
“미, 미치는 줄 알았어. 아니 어쩌면 이미 미쳐있었으니 괘, 괜찮았나.”
배도 고프지 않고, 잠을 잘 필요도 없었다.
그는 아무런 목적 없이 니플헤임을 돌아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임스는 드디어 포기를 하고 어느 바위에 내려앉았다.
“그런 형태의 지옥인가 싶었지. 내게 내리는 지옥의 형벌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니플헤임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
“세상이 떨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내가 있던 곳에 성벽이 솟아올랐어. 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성벽.”
‘그곳이군.’
얼마 전 디아블로가 공격했던 성벽이다.
성벽이 솟아오르고 얼마 뒤.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성이 나타났다.
‘내가 갔을 때는 성이 없었는데?’
제임스는 성으로 들어갔다.
반투명한 몸이었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신의 성인가 싶었지. 차, 차라리 완벽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 달라고 빌기 위해 성을 헤맸어.”
중앙 홀에 있는 왕좌에는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있었다.
제임스는 여성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말을 걸어보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 나는 지옥에서도 무시당하는 건가 싶었어.”
다시 모든 걸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을 때, 오우거보다 큰 거인이 홀에 들어왔다.
* * *
“내 딸아. 잘 지냈느냐?”
“로키.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이제 시간이 되었다. 내게 오거라.”
“이곳. 니플헤임의 권한은 유효하다. 모든 신과 신계가 함께 약속한 일이지. 잊었나?”
“그러면, 소멸을 택하겠다는 말이더냐?”
“우습군. 이곳은 죽은 자들의 땅. 소멸이 두렵더냐?”
“하데스가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
“염라는 동의하지 않던데.”
“그는 소멸을 택했지. 멍청하게도.”
거인, 로키가 웃었다.
“염라는 그의 소임을 다 했을 뿐이다. 니플헤임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 빛나는 오딘의 힘조차 내게는 닿지 않는다. 당신의 제안은 거절하지.”
“후회할 것이다.”
“아무것도.”
“헬. 이제 죽은자의 땅은 하데스의 세계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우스운 협박이군. 로키. 간악한 혀를 가진 자여. 아무리 내게 매달려도 올림푸스의 잔당은 풀어주지 않는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조차 갇혀있거늘.”
“타나토스가 이곳에 올 것이다.”
“그의 권능은 쓸만하지. 그러나 그뿐. 명계는 이제 세계의 모든 힘을 다 소모하지 않았나? 죽은자의 땅이 율법을 어기면 그렇게 되는 법이지.”
왕좌에 있던 여인, 헬이 비웃었다.
로키가 잠시 고민하다 씩 웃었다.
“다시 찾아오지.”
“내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거인이 홀을 떠났다.
* * *
‘로키.’
상태창이 적대하는 최종 보스의 느낌이 났다.
신들을 규합해 지구를 침공하는 자.
소멸을 반대하고 신으로써 남고 싶은 자들의 우두머리.
‘헬헤임은 지옥 교도소 같은 느낌인가.’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갇혀있다니 대단한 능력을 지닌 신 같다.
“그,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가 날 똑바로 바라보았어.”
누구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해 그냥 널브러져 있던 제임스.
헬이 그런 제임스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너는 돌아가거라. 성벽 밖으로. 타나토스가 오면 헬헤임은 니플헤임과 분리되어 사라진다.”
“···저요? 제가 보이세요?”
“아버지의 말이 틀리지는 않구나. 이런 세상에서 완벽한 중립은 없겠지. 나는 내 식으로 일을 처리해야겠다.”
파앙!
제임스는 무언가에 떠밀리듯 뒤로 날아갔다.
성을 통과하고 계속 날아 성벽을 지나갔다.
그의 눈에 헬헤임이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깔리듯 사라진 자리에는 성벽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군대가 떨어져 성벽 안쪽에 자리 잡았다.
‘발키리와 에인헤랴르.’
제임스의 말을 듣고 나니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졌다.
‘디아블로가 먼저 공격하며 헬헤임의 힘을 뺀다.’
그리고 타나토스가 방문하여 헬헤임을 분리한다.
‘올림푸스의 신을 빼내는 건 연막이었어.’
대화로 유추하자면 헬의 권한은 막강하다.
오딘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녀의 권능.
따라서 디아블로는 그저 깽판을 위해 니플헤임에 갔다는 이야기.
진짜 목적은 죽어가는 명계를 버리고 하데스가 니플헤임을 차지하기 위해 헬헤임을 분리하는 것.
‘아직 수르트의 목적은 모르지만···.’
상태창이 두 곳을 선택하게 한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신들의 전쟁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시스템의 최종 목표는 명확해 보인다.
‘로키와 올림푸스를 비롯한 소멸을 반대하는 신들의 말살.’
상태창은 그걸 위해 이런 엄청난 힘을 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도, 도움이 좀 됐어?”
제임스가 생각에 빠진 내 눈치를 보았다.
“제임스 우드. 네 덕분에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고마워.”
“헬헤임은 돕지 않을 거야? 아무리 봐도 로키가 나쁜 놈 같은데···.”
“당장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일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만 해도 큰 수학이야. 고마워. 근데, 아직 상태창 능력이 남아있어?”
“그, 그렇더군. 14레벨 그대로 남아있어.”
‘14레벨이라···.’
턱도 없이 낮은 레벨이다.
덜컥.
문이 열리고 박성남 4인방이 들어왔다.
“얘기 끝났어? 이제 우리 파티라 이거지? 밥 먹으러 가자! 그리고 렙업부터 해야지! 초고속 버스가 뭔지 알려주지! 크하하하!”
“빡. 제임스를 도와주려고?”
“경쟁 임무가 막 끝났으니 당분간은 별일 없지 않겠어? 제임스 렙업도 시켜주고 우리도 포인트로 올린 스킬도 좀 테스트하려고.”
고마운 일이다.
‘제임스 레벨이 높아지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다양한 스킬과 좋은 아이템이 없더라도 언데드 소환은 그 자체로 큰 무기다.
네크 두 명이 뿌리는 저주는 전장에서 훌륭한 보조 스킬이다.
‘아···!’
“제임스 잘 들어. 렙업하고 포인트가 생기면···!”
네크로맨서 능력은 그가 플레이하던 게임과는 조금 다르다.
해골에 투자할수록 미친 듯이 강해진다.
나는 데스나이트를 소환해 해골 연구 7레벨의 위용을 알려주었다.
“그, 그냥 해골이 강해지는 거 아니었나?”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전혀 달라. 그리고 저주는···.”
내가 네크로맨시를 올리며 느꼈던 모든 팁을 제임스에게 전수했다.
게임을 오래 플레이했던지 제임스는 내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
“그, 그렇군. 게임과는 조금 다르네···.”
“그러니까 열심히 포인트 모아.”
박성남이 제임스의 어깨를 툭 쳤다.
“안젤라도 기다리고 있어. 한 상 거하게 차렸으니 우선 먹자.”
박성남 4인방이 제임스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 5인방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홀로 나갔다.
* * *
“아서스! 어쩐 일이야?”
아서스가 홀에서 서성거리다 나와 마주쳤다.
“마침 자네를 찾으러 나가려 했는데. 다행이군!”
“무슨 일 생겼어?”
“그게··· 문제가 좀 생겼네.”
아서스는 성공적으로 대관식을 마쳤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왕자.
가족을 위해 복수를 해낸 남자.
발포그의 수도 클라이나스는 아서스에게 열광했다.
변경백 로안 해로드의 발 빠른 대처로 수많은 귀족이 물갈이 되었다.
신흥 귀족이 득세하고 변경백과 친하던 과거 원로들이 힘을 얻었다.
테오도르 왕국과도 종전 협상이 잘 마무리되었다.
아서스가 즉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에 소란이 일지 않는 선에서 테오도르는 실리를 챙겼다.
“이제 와서 고백해 미안하군. 사전에 말을 해야 했는데···.”
“왜?”
“드워프들의 힘을 조금 빌렸네.”
테오도르는 니다벨리르의 희귀 광석을 대량으로 납품받으며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드워프 국왕 마그니가 3년간 독점 납품을 약속하며 국경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단하군. 잘했어.”
대관식이 끝나고 각국에서 사절단이 도착했다.
그런데, 리요네스의 사절단은 알현 자리에서 항의했다.
“우리 발포그의 첩자가 리요네스에 숨어들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하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첩자라니?”
“그걸 모르니 문제네! 리요네스는 한시바삐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있어. 어떻게 하면 좋겠나?”
“로안은 뭐라고 하는데?”
왕권이 바뀌면 통상 계약을 새로 맺는 게 관례다.
로안은 리요네스가 계약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협상 진행 중에 리요네스의 수도 일부가 폭발로 날아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네.”
리요네스는 당장 이 일을 꾸민 자를 잡아 소환을 요구했다.
“누군지 알 길이 있나.”
“근데 왜 발포그야? 거의 끝에서 끝 아닌가? 증거 있대?”
“폭발 현장에서 발포그 귀족의 문장이 몇 개 발견되었네.”
“그런 거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고작 문장 몇 개로···.”
그때였다.
상태창이 자동으로 떠오르며 임무가 표시되었다.
[면담]– 목표 : 리요네스에서 현자를 찾아라.
– 추천 레벨 : 60+
– 임무 진행 포탈 수 : 없음
[추적]– 목표 : 리요네스에 숨어든 쿨렌 도킨을 처치하라.
– 추천 레벨 : 60+
– 임무 진행 포탈 수 : 없음
황금색으로 빛나는 임무였다.
‘쿨렌···.’
아서스와 눈이 마주쳤다.
“리요네스의 주장이 맞았군. 아무래도 가봐야겠다.”
리드리그
‘자동으로 임무가 떠오르는 건 처음인데.’
골드 미션은 언제나 임무 목록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게 전부였다.
‘이건 아마 말보런스 상황에 맞춰서 나타나는 거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퀘스트가 배달되듯 시스템이 임무를 제안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현자라고 쓰여있는 임무 목표.
가장 지혜로운 자.
멀린을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쿨렌은 파장이 맞아 누군가 빙의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고.’
마법도시 리요네스.
다들 내 타워만 보면 리요네스의 마법 타워라 불렀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생겼다.
아서스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이제 왕이 되었는데, 가길 어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