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1
한참을 이동하다 빛이 모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박살이 나 있네.’
벽이 깨져있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법한 커다란 구멍.
안쪽을 들여다보니 똑같은 벽이 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빛을 따라 깨진 틈으로 들어갔다.
웅웅웅웅.
벽을 지나자마자 주변 모든 것들이 빛났다.
“크윽.”
귀를 찢는듯한 울림.
나는 귀를 막고 눈을 찡그렸다.
번쩍!
벽에서 모인 기운이 내게 쏘아졌다.
“크아아아아아!”
머릿속에 글자가 쑤셔박히는 느낌과 함께 고통이 전해졌다.
머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부유감이 느껴졌다.
* * *
`이제 사라진 건가?`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눈을 뜨자 왕좌에 앉아 안대를 차고 있는 다부진 노인이 보였다.
‘오딘? 또 시네마틱 트레일러인가?’
오딘의 앞에는 어린 소년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말하라.”
쿵.
소년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크윽··· 저도 모릅니다. 제가 어찌···.”
“말하라.”
쿵.
“크아아악!”
소년이 바닥에서 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했다.
‘얼굴이 흐릿해.’
누구인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린 소년이라는 것 정도만 느껴질 뿐이었다.
오딘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다시 묻지. 화신이여. 티르가 숨긴 그것은 어디 있나.”
“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여기는 어딥니까? 쿨럭. 당신은 누구길래··· 저를···.”
“주신의 권한을 너무도 쉽게 넘겼을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교활하게도 그걸 숨겨? 나는 미미르의 샘에 눈을 뽑아 바치고, 스스로 죽어 세상 모든 지혜를 얻었다.”
소년은 쿨럭거리며 피를 토했다.
오딘이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끝내 티르가 숨긴 것은 찾지 못했지. 말하라.”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우웩.”
“기록의 서(書),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 뭐라 부르던 상관 않는다. 어디 있는지 말해!”
쿠르르르릉.
오딘이 목소리를 높이자 홀 전체가 떨렸다.
“크으윽··· 그게 대체 뭐냐고요! 쿨럭. 쿨럭.”
까악! 까악!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오딘의 어깨에 앉았다.
까마귀가 오딘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오딘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렇군. 그를 데려오라.”
오딘이 손짓하자 소년이 사라졌다.
* * *
장면이 바뀌며 성 밖으로 이동했다.
무지갯빛 다리를 건너오는 노년의 마법사.
‘멀린?’
멀린이 오딘에게 가까이 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신, 오딘을 뵙습니다.”
“멀린, 자네의 계획이 마음에 드는군. 자세히 말해보게.”
“오딘께서는 티르를 몰아내고 주신의 자격을 얻으셨음에도 저를 지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모두 죽어야 이 모든 우주가 유지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신이라 할지언정 에너지를 생성할 수는 없는 법. 신 하나가 수억의 생명체가 수 년 천을 사용해도 남을 정도의 에너지를 매일 소모합니다. 이대로 가면 모든 세상은 무(無)로 돌아갑니다.”
“신을 줄이는 게 아니라··· 모두 없애자고?”
“예. 오딘께서는 이미 결과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티르의 유산, 우주의 탄생과 끝. 기록의 서를 얻으셨으니···!”
오딘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그렇기에 자네를 부른 것이지.”
‘조금 전까지 그거 어디 있느냐고 찾던 양반 아닌가?’
멀린이 정중한 자세로 말을 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신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들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게 내버려 두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공감하네. 하지만 올림푸스는 동의하지 않을 텐데?”
“모두 죽이고, 우리도 스스로 소멸하면 될 것입니다.”
멀린이 아무렇지 않게 동귀어진을 제안했다.
오딘이 어깨를 들썩이며 숨죽여 웃었다.
“크흐흐흐흐. 재미있군. 모두를 죽이고 우리도 죽는다. 좋네. 이것은 이미 예정된 과거이자 미래. 전쟁을 준비하겠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보조 계획이 필요합니다.”
“보조?”
“신은 필요 없어도 세계를 관리할 누군가는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영생을 제거한 관리자를 하나 둘 것을 제안합니다.”
“흠··· 그만한 힘을 얻으려면 격에 합당한 이야기(SAGA)가 필요할 텐데?”
“그래서 티르의 힘이 필요합니다. 마침 저와 파장이 맞는 인간이 우리의 고향에 있습니다. 어린 소년이죠.”
멀린의 말이 이어졌다.
창조의 힘을 지닌 티르의 힘.
그걸 이용해 사람들에게 영웅, 신의 능력을 부여한다.
몬스터를 쏟아내 최후의 일인에게 집중되는 전승을 만들어준다.
‘이야기(SAGA), 상태창. 시스템.’
멀린은 각성자를 말하고 있었다.
자신과 파장이 맞는 자에게 티르의 힘을 조금만 나눠주면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말.
오딘은 그저 신들의 전쟁에만 신경 쓰면 충분하며 모든 것은 멀린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설득이 이어졌다.
오딘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럼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처리하지.”
“주신의 결정에 모든 생명체를 대표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은 기록의 서에 적힌 대로 될 것입니다.”
멀린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오딘이 손을 흔들자 피투성이가 된 소년이 나타났다.
“네놈. 다시 돌려보내 주지.”
“크윽··· 무슨?”
“멀린과 파장이 일치하는 게 하필이면 티르의 화신 네놈이라니. 훗날 너는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때까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오딘이 소년을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스팟.
“크아아악!”
소년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상처를 보며 나를 기억하라.”
소년이 사라지고, 오딘은 홀로 남았다.
“크흐흐흐. 영원한 지혜를 가진 나는 완벽하다. 나 홀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오딘이 낮게 웃었다.
‘티르가 원래 주신이었나? 티르 나 노그의 멸망?’
노토스에게 들러야 할 것 같다.
‘일단 상태창이 어떤식으로 생겨났는지는 알겠어.’
저들의 말마따나 모든 이야기를 집중시켜 영웅을 뛰어넘는 존재를 만들려던 것.
즉, 시스템과 상태창을 통해 신에 가까운 그런 존재를 만들려는 것이다.
영생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신의 힘을 가져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
그렇게 선택된 게 바로 나였다.
‘그 와중에 멀린이 좌표를 숨긴 지구를 로키와 올림푸스가 알아냈고.’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
지구에 침공하려 한 것이다.
이제 멀린이 왜 두 명으로 나뉘어 양쪽에 있는지 조금 이해되었다.
‘하나는 상태창을 만들고.’
가장 지혜로운 자, 멀린이다.
‘하나는 몬스터를 꼬셔 임무에 집어넣고, 신들의 충돌을 유도한다.’
가장 지혜로운 자, 라무르다.
‘하지만 멀린이 상태창을 기획하고 유지한다기에는···.’
현세대의 여러 메타와 기믹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런 역할을 아까 그 꼬맹이가 했다고 치면···.’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FCCB.
판타지 문명 IV를 플레이하던 초보유저.
‘그럼··· 네가 멀린과 파장이 맞는 인간이었던 거냐?’
퉁.
화면이 일렁거리며 구겨졌다.
부유감이 느껴지는 게 곧 돌아갈 모양이다.
“누구냐!”
오딘이 몸을 흠칫하며 뒤를 돌아 내게 창을 찔렀다.
푸학!
‘컥.’
창에 스친 팔이 화끈거렸다.
“궁니르를 피했다고···?”
점점 몸이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오딘의 중얼거림이 멀어졌다.
* * *
털썩.
“이보게. 서진우! 괜찮아? 이, 이런 팔이···!”
귓가에 아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풀 힐!”
리드리그의 손에서 튀어나온 황금빛이 내 팔을 감쌌다.
‘돌아온 건가.’
따뜻한 느낌과 함께 팔이 치유되었다.
“으음? 내 풀 힐은 모든 상처를 다 치유하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팔에 흉터가 남았다.
‘그게 시네마틱 트레일러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멀쩡한 발할라의 모습.
분명 그곳은 과거였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오딘에게 공격당해 상처를 입었다.
‘후우. 그래도 많은 걸 얻었다.’
“자네 진짜 괜찮나?”
정신이 돌아오자 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물체 다 어디 갔어?”
“모르겠네. 자네와 함께 갑자기 사라졌어. 어딜 다녀온 건가?”
“으음··· 일종의 유적이랄지··· 그런 곳이었어.”
대충 얼버무렸지만, 유적에 대한 경험이 있던 아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그렇군. 그래도 다행일세.”
“그 이상한 게 사라져서 나도 속이 시원하군.”
리드리그도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해했다.
‘기록의 서, 파편을 입수하였습니다.’
‘응?’
머릿속에서 글자가 떠올랐다.
재빨리 상태창을 켜 보았지만 내가 사라지기 전화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상태창이 아니라 이거지···?’
초보유저가 보낸 의문의 메시지를 따라오자 상태창과 전혀 무관한 무언가를 경험하고, 얻었다.
나는 키비시스를 뒤졌다.
‘역시··· 없어.’
안전모가 없다.
‘그 공간에 떨어졌나 본데.’
확실하게 현실이었다.
나는 불안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서스와 나른한 표정의 리드리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 * *
“거긴 이제 폐쇄해도 될 거야.”
“혹시 또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음··· 아냐 내 생각엔 안 나올 것 같아.”
분명 머릿속에 박힌 메시지는 기록의 서 파편이라 했다.
‘이런 게 다른 곳에도 더 있다는 말이겠지.’
눈치를 보니 오딘은 가지지 못한 티르의 유산.
‘과거와 미래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건가.’
암호처럼 힘들게 내게 전해진 파편.
‘아무도 알면 안 돼.’
아서스의 얼굴을 바라보니 쿨렌이 떠올랐다.
“아서스. 사실은··· 리요네스에 쿨렌이···.”
“아, 여기 리드리그님께 이야기 들었네. 신에게 빙의 당해 죽었다지.”
“어, 벌써 들었어?”
아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쩌겠나. 그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닌 것을.”
‘아···.’
쿨렌이 진짜 아서스를 배신한 게 아니라, 신에게 이용당한 것이다.
아서스는 그렇게 이해했다.
‘빙의가 되면 사실상 한 몸인데.’
제이나와 헤라가 그렇다.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게 아닌 융화되는 방식.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안 그래도 나중에 마탑의 주인과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네. 이 일에 대한 사과와 보상도 진행하고.”
“잘 생각했네.”
“아무튼 일이 별일이 없었다니 다행이군. 이제 일이 다 처리되었으니 환영파티와 함께 작위를···.”
“난 가볼 곳이 좀 있어. 미안하다.”
“아니? 자네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박성남이 많이 기대하고 있으니 잘 해줘. 뭐 좀 알아보러 간다고 이야기해 주고.”
“제이나는 안 만나나?”
“나중에.”
‘어느 정도 퍼즐은 맞춰졌다.’
멀린의 의도까지는 몰라도 행위 자체는 그가 말한 것과 거의 일치했다.
내가 가진 압도적인 능력.
여태까지 다른 각성자들이 투덜거렸던 밀어주기식 보상.
‘결론을 보면 나는 선택당했고, 능력은 더 커질 거라는 말이지.’
그러나 뭔가 찜찜했다.
멀린도 오딘도 서로 생각하는 바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조심해야겠어. 아차 하면 훅 가겠는데.’
최소한 지구인을 살려낼 때까지는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며 이들에게 협조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올림푸스도 상대해야 하고.’
“리드리그. 텔레포트 되나?”
“마법사들이 가봤던 곳만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걸 알고 있나?”
“응.”
“이 몸께서는 말보런스에 안 가본 곳이 없으시다! 크크크!”
“잘됐네. 야킨둔으로 부탁해. 앞으로도 자주 이용할게.”
“알겠다! 바로 가겠나?”
‘얘는 장사에는 귀신인데 이런 면에서는 등신이네.’
말보런스 특급 택시를 손에 넣었다.
“아쉽군.”
아서스가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일 빨리 마무리해. 더 크고 화려한 싸움이 많이 벌어질 거다.”
“정말인가? 알겠네. 내 빨리 국정을 정상화해서 언제든지 튈 수 있게, 아니 외출할 수 있게 준비하겠네!”
아서스가 의욕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 앞으로 종종 보겠네.”
“드래곤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서스가 리드리그에게 꾸벅 인사하고 떠났다.
“야킨둔으로 가면 되나?”
“우린 야킨둔을 거쳐 알프하임으로 간다.”
“알프하임? 그게 어디야? 처음 듣는데?”
“엘프들의 옛 고향.”
“그런 곳이 있나? 흠···.”
“알프하임을 거쳐 티르 나 노그로 갈 거야.”
“그건 또 어디야?”
“가보면 알아.”
‘노토스.’
티르의 은혜로 요툰헤임을 탈출할 수 있었던 거인.
그에게 티르와 오딘의 관계를 물어봐야겠다.
주신 티르, 주신 오딘
“아니? 영주님 벌써 오셨습니까? 마침 잘 됐습니다. 납품 계약 조건에 대해서···.”
“나중에요. 지금은 좀 바쁩니다.”
가자마자 돌아온 나를 보며 의문 섞인 표정을 짓는 블레이크를 뒤로하고 포탈을 이용해 알프하임으로 향했다.
‘허··· 엄청나게 변했네.’
조각나 있던 푸른 초원.
허공을 떠다니던 대지 조각이 거의 다 사라졌다.
땅은 끝도 없이 넓어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곳이 내가 알던 알프헤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도 만들어졌고 그곳을 이용한 여러 건물이 들어섰다.
현 드워프 국왕 마그니는 석공 가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알프하임의 모든 건축물과 장식들은 돌로 만들어진 극상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었다.
“여긴··· 말보런스가 아니군.”
리드리그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금방 아네?”
“익숙한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엘프의 고향이라 했나? 좋은 곳이군. 선대께서 이런 문명이 멸망하지 않길 바랐기에 이주를 허락하셨겠지.”
드래곤이 묵인한 여러 종족의 말보런스 이주.
리드리그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푸른 자연을 감상했다.
“서진우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나를 알아본 엘프가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말이나 디르네스, 아무나 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기다리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말과 디르네스가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