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5
“잘 있네. 큰일을 여러 번 겪고 나서인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다른 사람 맞는데.’
정확하게는 신이지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겔가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앞에 누가 온다.”
“저건··· 상단이네. 켈가스를 탈출하는 것 같은데?”
“그래?”
가까이 다가가자 일렬로 늘어선 수많은 마차와 가득 쌓인 물건들이 보였다.
“누구냐!”
챙.
마차를 호위하던 용병들이 무기를 꺼내며 긴장한 채 우리를 경계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당신들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조용히 지나가라!”
콧수염이 난 장년의 용병이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턱짓으로 지나가라는 신호를 했다.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거절한다.”
‘저건···?’
마부석에 달린 마력 스톤이 눈에 들어왔다.
“저희는 리드리그 상단 소속의 조사원입니다. 납품이 지연되어 원인을 알아보러 가는 중입니다.”
“리드리그···? 그럼 용병이시오?”
용병이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업계끼리는 어느 정도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법이다.
“리드리그 상단? 대체 그놈은 어디서 뭘 하길래 용병을 보내는 거지?”
마차 문이 열리고 깐깐해 보이는 남성이 내렸다.
“켈가스에서 교역품이 오지 않아 리드리그님이 큰 손해를 보게 생겼습니다.”
“크하하하! 그놈 꼴 좋군. 속이 다 시원하네! 자네들 목숨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굳이 갈 필요 없네.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고 보고하게.”
“예? 그게 무슨···?”
용병이 다가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켈가스에서 탈출한 마지막 인간이오. 이제 남은 건 오크밖에 없어. 그곳은··· 지옥입니다.”
켈가스는 하이오크의 침공으로 무너졌다.
돈으로 만들어낸 강력한 군대와 마법사가 버텼지만, 하이오크를 막아낼 수 없었다.
“아무리 죽여도 줄어들지 않았네. 그리고··· 밤이 되자 기괴한 몬스터가 함께 쳐들어왔지.”
용병이 밤에 찾아온 몬스터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타나토스 가문의 마족이군.’
사신의 낫을 든 검은 유령.
하이오크와 함께 켈가스를 공격한 몬스터다.
‘역시, 그냥 갑자기 미쳐버렸을 리가 없지.’
타나토스가 굳이 하이오크까지 꼬셔 켈가스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그곳에 뭔가 있다는 소린데.’
“죽여도 줄지 않는 오크는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네. 끔찍하게 많았어.”
켈가스가 무너진 결정적인 이유다.
‘좋은 정보를 얻었군.’
하이오크와 타나토스 가문의 마족.
“정보 감사합니다.”
“그래도 가려는가? 의뢰를 포기하게. 내가 함께 가서 증언해줄 테니···.”
용병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리를 말렸다.
“호의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의뢰는 중간에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상단을 뒤로하고 켈가스로 향했다.
크아아아아악!
쾅! 쾅! 쾅!
켈가스에 가까이 다가가자 하이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건물을 부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어디에 기록의 서로 통하는 장소가 있다는 말인데···.’
몬스터를 쓸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광역기술로 오크를 다 죽여버리면 켈가스 전체가 폭삭 무너질 수도 있다.
‘기록의 서로 통하는 장소는 서버실 같은 분위기였지.’
혹시나 같이 무너져 내리면 찾기가 불가능해진다.
“저기 인간이 있는 거 같은데?”
나는 무너져내린 켈가스 성벽 옆을 가리켰다.
“이럴 수가··· 저건 신관이 아닌가?”
아서스가 가리킨 곳.
신관 하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켈가스 내부로 사라졌다.
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종교
“신관? 아··· 말보런스에도 신전이 있다고 했지? 대체 무슨 신이야? 설마 아스가르드나 올림푸스의 신인가?”
격에 합당한 이야기의 힘을 얻기 위한 기초.
신자를 만드는 것이다.
아서스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함께 전장에 있었지 않나? 그런 신은 들어본 적도 없군.”
‘하긴, 내가 갔던 신전들은 유적이라는 이름이 붙고 하나같이 파괴되어 있었지.’
경계에 있는 신전도 있었다.
‘그럼 확실히 말보런스는 피난을 위한 세계라는 말인데···.’
이곳에 사는 인간과 드워프, 엘프는 모두 미드가르드에서 왔다.
인간이야 워낙 수명도 짧고 전쟁도 잦다.
숭배하던 신과 경전의 해석에 따라 조금씩 대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
“그럼 신관들이 믿는 신의 이름이 뭔데?”
“이름이 없네.”
“응?”
“이름이 없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름이 없는 신.
그들의 교리는 단순했다.
감히 불경하게도 인간이 잊어버린 그 이름 없는 신을 찾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믿음을 보낼 대상을 특정하는 것.
“그러다 보니 교세가 약할 수밖에 없지. 자네 리요네스나 발포그에서 신관을 본 적 있나?”
“없지.”
“그게 바로 이유일세. 사람들이 늘 비웃지.”
신을 잊어버린 종교.
비웃음 속에서도 신관은 그 종교는 한곳에 모여 살았다.
잊어버린 신을 다시 찾기를 바라며.
사람들은 비웃음을 담아 그들이 사는 곳을 신성 제국 코렌틴이라 불렀다.
“뭐 아무튼 그렇다네. 제국 자체는 꽤 크고.”
“특이한 사람들이네 잊었다는 건 뭔가 신을 믿고 있기는 했다는 거 아닌가?”
어쩌면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일 수도 있다.
아스가르드나 올림푸스의 신을 모시던 자들이 이주 과정에서 기억을 삭제당했다거나···.
‘오딘보다 훨씬 이전에 있던 신을 모시고 있었다거나.’
“그러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저들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듣고 보니 그렇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구먼.”
켈가스 내부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서 수색부터 할까.’
지하 저장소에 방문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열렸다는 퀘스트 내용.
‘그때처럼 서버실이 지하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겠지.’
“아서스 지하실이 있을 만한 건물이 뭐가 있지?”
“지하실? 뭐하러 땅을 파나? 널린 게 땅인데.”
말보런스는 지하실을 지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넓다.
잘해야 던전, 감옥 정도나 지하에 지을 뿐이다.
“저장소 역할을 할만한 거 말이야.”
“흠··· 그럼 상단이겠지. 아무래도 지하로 파야 범죄예방이 쉬울 테니.”
‘상단이라···.’
조금 아까 도망치던 상단이 생각났다.
디스켓을 찾으라는 단순한 임무에서 시작된 여정이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뭐라도 뒤져보자.”
우리는 켈가스로 진입했다.
* * *
푹.
털썩.
‘벌써 100마리도 넘었네.’
오딘의 창을 던지면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창을 던져 하이오크를 잡은 것도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여태껏 수색한 집은 30채도 넘었다.
규모가 크고, 지하실이 있을법한 곳 위주로 돌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켈가스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뒤져도 끝이 없는 기분.
‘뭔가 좀 이상해.’
하이오크는 켈가스를 점령했다.
목적이 있다면 다음 단계로 진행해야 함이 당연한 법.
그런데 오크는 켈가스를 점령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저 시끄럽게 돌아다니며 파괴하기만 할 뿐.
‘타나토스의 마족들도 없어.’
조금 아까 보았던 신관마저 행적이 묘연했다.
계속 수색하던 도중 이상한 하이오크를 발견했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칠한 오크 하나가 무너진 담 밑에서 몸을 웅크리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도끼까지 검은색이네. 암살자 오크인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호전적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오크가 암살이라니.
크와아아아악!
다른 하이오크 한 마리가 멀리서 뛰어왔다.
쿵. 쿵. 쿵.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건물 문짝에 도끼를 찍어 내렸다.
검은 오크가 그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오크가 오크를 노려?’
자세를 낮추고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가던 검은 오크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도끼를 휘둘렀다.
스팟.
퍽.
급소를 가격당해 몸을 부들거리던 오크가 그대로 쓰러졌다.
동족을 죽인 검은 오크가 쓰러진 오크의 허리춤을 들춰 무언가를 찾았다.
퍽.
원하던 걸 찾지 못했는지 쓰러진 오크를 발로 차는 검은 놈.
“크르르르. 어디에 숨겼나.”
검은 오크의 입에서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을 하네···? 로드 이후로 말하는 오크는 두 번째인데.’
툭툭.
나는 아서스에게 검은 오크를 사로잡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끄덕.
검은 오크의 위치는 너무 노출된 곳에 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서스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멀리 던졌다.
툭.
오크가 날쌘 몸놀림으로 어두운 담장 아래 몸을 숨겼다.
‘퓨리.’
스팟.
나는 오크 뒤로 텔레포트 한 뒤 목 뒤로 창끝을 가져다 댔다.
움찔.
“움직이지 마. 그대로 찌른다.”
나지막이 내뱉는 내 말에 오크가 천천히 도끼를 내려놓았다.
‘되게 사람 같네.’
“무엇을 원하나.”
오크가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렸다.
“정보.”
“내게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죽여라.”
“뭘 찾고 있었지?”
“죽여라.”
“너는 하이오크인가? 어떻게 말을 할 줄 알지? 아툼 산 밑에서 만난 로드 말고는 말하는 오크 만난 게 처음인데.”
“···로드?”
오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에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를 만난 적 있나?”
‘역시 말하는 오크는 로드랑 관련이 있는 건가?’
떡밥을 제대로 물었다.
“서로 하나씩 이야기할까? 넌 여기서 왜 같은 오크를 죽이고 있는 거지?”
“···그들은 정신조종을 당하고 있다.”
“정신조종? 누가···.”
“내 차례다. 로드를 어디서 뵈었는가.”
“아툼산 밑에 있던 성이었어. 절벽에 있고···.”
경쟁 임무에서 봤던 성 모습을 설명하자 오크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네놈이 거길 알다니. 로드께서는 실종되신 지 오래다. 어떤 모습이셨지?”
“이번에 내 차례지? 피차 정보 얻으려는 건데 탁 터놓고 다 이야기해 봐. 나도 로드와 나눈 대화를 다 말해주지.”
오크가 갈등하는 표정으로 주저했다.
“···좋다. 인간.”
* * *
하이오크의 부족장 슬로그.
검은 오크의 정체였다.
슬로그는 아툼산이 있던 하이오크의 섬에서 부족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족의 모든 오크를 이끌고 로드를 접견하러 성으로 떠났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 로드께 드릴 선물을 챙기려고 했지.”
성 밖으로 나가 선물을 챙기는 순간.
성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에 모든 부족민과 로드를 잃었다. 동족들은 나를 의심했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슬로그고, 하필 그 혼자 자리를 비웠을 때 로드가 실종되었다.
그는 모든 하이오크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척살 대상 1호로 지정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로드를 찾는 것뿐이었다.”
홀로 섬을 여행하며 단서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슬로그는 생존법을 터득해갔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검은색으로 옷을 바꾸고, 발소리를 줄였다.
‘그래서 이렇게 암살자 모습을 하고 있었군.’
섬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슬로그는 섬을 떠나 말보런스 대륙으로 왔다.
“북부 해안가에는 동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교류는 별로 없지만.”
섬과 말보런스는 단절되어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슬로그는 이곳에서 단서를 찾으며 이상한 걸 자주 목격했다.
“인간이 하이오크와 함께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든 자들.
“그러나 검은 옷을 입은 인간들은 우리 동족을 배신했다.”
하이오크는 점점 지성을 잃고 일반 오크처럼 변해갔다.
나름대로 진보한 문명을 가졌던 그들은 가축처럼 끌려다니며 전투에 동원되었다.
“일부 동족에게는 허리춤에 특수한 향을 내는 이상한 돌이 있는 때도 있다. 그걸 부수면 가끔 주변 동족이 정신을 차리지.”
‘그래서 허리춤을 뒤졌군.’
“이제 네놈 차례다.”
그대로 다 말할 수는 없다.
슬로그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이야기.
“라무르라는 이름을 아나?”
“모른다.”
“가장 지혜로운 자. 로드는 그에게 속았다.”
신들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달콤한 말로 속여 시스템 속에 가뒀다.
“나도 속았지. 우리는 싸웠다.”
격렬한 전투 끝에 로드는 패배했다.
“그럼··· 인간. 네가 로드를 죽였다는 말인가?”
“그래.”
슬로그가 숨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명예롭게 싸웠나?”
“흠? 물론이지, 성이 다 날아갈 정도로 싸웠는걸.”
척.
슬로그가 도끼를 들어 가슴 앞으로 올렸다.
“명예롭게 싸우다 패배했다면 그것으로 됐다. 로드도 만족했을 거다.”
슬로그가 자리에 드러누웠다.
“이제 죽여라. 목표를 잃었다.”
“잠깐, 다른 인간을 본 적 있나?”
“그렇다.”
“어디 있는지 알려줘. 그럼 널 놓아주지.”
“···놓아준다고? 왜지?”
“뭐 딱히 죽일 필요는 없잖아?”
너무나 약해서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런 말을 직설적으로 할 수는 없지.
슬로그가 깊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따라와라.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 * *
“저기라고?”
“그렇다.”
슬로그가 작고 허름한 집을 가리켰다.
“지하실이 있을 거 같지 않은데. 아서스. 저런데는 지하실 없다며?”
아서스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었네. 어차피 수색 범위를 좁혀야 하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
‘하이드를 걸고 들어갈까.’
굴락을 불러 몸을 숨긴 채 들어갈 수도 있다.
‘의미가 없겠군.’
집은 작고 문도 닫혀있다.
세 명이 함께 들어가면 소리가 날 가능성이 컸다.
소리까지 없애고 들어가기는 불가능한 일.
‘뭐가 나오던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