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8
‘나도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 꽤 있네.’
나는 포효하는 슬로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물부터 챙기자.’
잊혀진 티르의 세계로
구스파는 크림트베인에 있던 하이오크 모두에게 최면을 걸었다.
구스파가 죽자 오크들은 정신을 차렸다.
슬로그와 구스파의 정당한 싸움.
그 결과가 알려지며 오크들은 슬로그를 대족장으로 추대했다.
슬로그가 대족장이 되자마자 한 일은 붙잡혀 있던 오크 노예를 해방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도 얼마든지 위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노예 오크들이 밖으로 나가길 거부한 것이다.
평생을 노예로 살던 오크들은 황야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노예로라도 남아 목숨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
슬로그는 그런 그들을 거두어 부족의 일원이라 선포했다.
‘하루아침에 섞이긴 어렵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융화될 것이다.
‘기록의 서에 적혀있던 대로 되었다.’
아직도 헷갈린다.
슬로그가 대족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이곳으로 이끈 건지.
기록의 서를 보지 않았어도 슬로그는 나와 합류했고, 대족장이 되었을 것인지.
‘일단 나는 쿠 훌린의 파편에게 죽는다고 봐야겠네.’
알면서도 가야 하는 건가.
분명 이어지는 기록에는 게 볼그를 얻는다고 되어 있었다.
‘부활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죽는다는 것에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명예를 아는 인간이여. 고맙다. 하이오크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검은 오크, 슬로그가 내게 인사했다.
“너희 부족에게 성물이 있다는데. 그걸 내게 내줄 수 있어?”
“성물? 기다려라.”
슬로그가 내성으로 들어가고 한참 시간이 지나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물어보니 이걸 성물이라 부르더군.”
“이게? 그냥 깨진 돌 같은데.”
돌로 만든 작은 피규어다.
인간을 본따만든 것 같은 조각품의 얼굴 부위가 완전히 깨져있었다.
“많은 오크에게 물어보느라 늦었다. 이게 성물이 맞다. 오래전부터 크림트베인에 내려오는 신의 선물이라는군.”
“흐음··· 이게 신의 선물이라···.”
“가져라. 나를 도와준 대가다.”
“사양하지 않지.”
“그리고, 우리 하이오크를 도와준 대가는 반드시 갚겠다.”
‘어? 그러면···?’
“검은 마법사들 기억나나?”
“그렇다.”
“구스파에게 지팡이를 준 자들이야. 나는 그들과 싸우고 있지. 로드도 그들에게 속았고.”
슬로그가 눈을 빛냈다.
“전투가 벌어지면 우리를 불러라. 반드시 도와주겠다.”
“그럼··· 동맹 맺을까?”
“동맹?”
나는 동맹에 관해 설명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내가 소환하리라는 것도.
그러면 전장 한복판으로 몸이 이동하리라는 것까지.
“마음에 든다. 하늘을 나는 배를 가진 자의 말이니 믿을 수 있겠지.”
슬로그는 동맹을 맺겠냐고 묻는 상태창이 떠도 덤덤했다.
“신기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군.”
그렇게 하이오크와 동맹을 맺었다.
* * *
“이제 우린 간다.”
기록의 서도 구경했고, 성물도 얻었다.
이제 노토스에게 돌아가 에린으로 가서 쿠 훌린의 창을 얻을 차례다.
“네 이름은 뭐지?”
“서진우. 나는 서진우다. 동맹을 맺는데 이름도 말 안 해줬군.”
무뚝뚝한 표정.
‘오크는 원래 웃을 수가 없나?’
배로 돌아와 투명화를 풀고 영지 위를 날았다.
그때, 슬로그가 내성 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하이오크의 성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질렀다.
“형제들이여! 보아라! 저 하늘을 나는 배 위에 있는 인간 서진우가 크림트베인에 사는 하이오크를 해방 시켰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자유를 찾았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악!”
둥둥둥둥둥둥.
배가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함성과 북소리.
크림트베인 전체가 울렸다.
“그가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 그가 우리에게 복수를 위한 전장을 약속했다! 우리는 긍지 높은 하이오크의 전사들이다! 은혜를 갚고 적들을 부수자!”
“크와아아아아악!”
둥둥둥둥둥둥.
다시 크림트베인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화끈하구먼.’
천천히 멀어지는 내성.
슬로그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멀어지는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 * *
“몬스터와 동맹이라니. 자네 괜찮은 건가?”
크림트베인을 벗어나자마자 아서스가 다가왔다.
“뭐 어때? 사실 지구 인간 입장에서는 드워프나 엘프랑 오크가 크게 다르지 않아. 워낙 게임 같은데 자주 나오기도 하고.”
“흐음··· 편견이 없다 이건가. 좋은 일이군. 아직 나는 적응이 잘 안 되네만.”
“하이오크는 의사소통도 되잖아. 동맹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그렇긴 하네만···.”
“발포그와도 동맹을 맺어줄 걸 그랬나?”
“큰일 날 소리를. 대신들이 거품을 물고 반대할걸세.”
북부의 몬스터와 동맹을 맺은 남동부의 왕.
생각만 해도 한기가 느껴지는지 몸을 떨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서 이래저래 쓸모가 많을 거 같은데. 전투력도 좋고. 용병 같은 거 하면 딱 맞겠어.”
“용병이라··· 거 어느 상단이 저들을 용병으로 쓰겠나?”
“흠··· 리드리그?”
움찔.
아서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드리그님이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
“저비용 고효율. 리드리그면 얼씨구나 할걸?”
“크크크. 그거야 그렇네.”
킬킬거리며 하늘을 날기도 잠시.
호커스가 멀어지는 크림트베인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호커스. 뭐 하는 거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크와 동맹이라니···.”
“왜?”
“코렌틴의 교리에서··· 아니, 아닙니다.”
호커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좀 부탁할 게 있는데.”
어제오늘 겪은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 것.
특히 가장 지혜로운 자와 소통하는 코렌틴 제국의 사람은 반드시 조심할 것.
새로운 고대의 기계를 찾으면 내게 바로 연락할 것.
“물론입니다. 그리고 영광입니다. 제게 사명을 주셔서.”
“사명까지는 아니고··· 아무튼 부탁해도 되나?”
“물론입니다. 제가 비록 이렇게 비루해 보여도 제국 내에서는 꽤 세력이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찾아 당신께 연락드리겠습니다.”
“호오. 그래? 나중에 코렌틴도 한번 가봐야겠군.”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연락드리면 되는지?”
“아, 야킨둔 지역의 영지나 발포그 왕궁. 아니면 리드리그 상단에 말해줘. 드워프나 엘프에게 말해도 되고.”
“예? 영지, 왕궁, 상단, 드워프, 엘프요?”
호커스가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말하니 이상하긴 하네.”
연락 가능한 곳의 연관성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음. 그리고 혹시 입구에서 내 이름을 대면 모를 수도 있는데··· 영주, 왕, 상단주, 대장로를 직접 만나야 할 거야.”
“예? 수장을요?”
“그렇게 말하니 더 이상하네.”
나는 왕궁 정문조차 혼자 통과하지 못했다.
초상화로 교육을 했다지만 또 다른 경비는 어떨지 알 수가 없는 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새로 온 영지민, 상단 입구에 있는 경비, 나를 모르는 엘프나 드워프··· 모두 서진우라고 이야기해 봐야 코웃음만 칠 일이다.
“아무튼 연락해. 올림푸스에 관한 정보를 가져왔다고 하면 곧장 나랑 만나게 될 거야.”
“···올림푸스. 알겠습니다.”
어느새 켈가스 상공을 날고 있었다.
도시에 있던 타나토스의 마족들은 정신을 차린 하이오크를 참혹하게 죽였다.
도시에 가득 찬 하이오크의 시체.
‘슬로그가 분노하겠어’
배는 켈가스 텔레포트 패드 위에 도착했다.
“마법사가 없으니 이걸 작동시킬 수가 없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호커스가 앞으로 나섰다.
“신관이 마법진을 작동할 줄 안다고?”
“마법사에게는 마나가 있듯이 신관에게는 신력이 있습니다. 둘의 운용법은 아주 비슷하지요. 그래서 코렌틴이 마탑에 갔던 건데···.”
쓸만한 공격 마법을 얻으러 일종의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방문하고 나서 일이 터진 것이었다.
호커스가 익숙한 몸짓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초장거리 텔레포트 가능한가?”
“예. 어디든 가능합니다.”
“의외로 쓸만한데?”
“코렌틴의 신관은 뭐든지 홀로 해내야 합니다.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하기에···.”
호커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아닙니다. 앞으로는 괜찮겠지요.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야킨둔으로.”
“야킨둔··· 됐습니다. 올라서십시오.”
텔레포트 패드 위에 오르자 호커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뵙겠습니다.”
“찾으면 연락해 줘!”
“온 힘을 다해 찾겠습니다.”
번쩍.
빛이 터져 나오며 부유감이 느껴졌다.
* * *
야킨둔에서 멀리 떨어진 마탑의 텔레포트 패드 위.
“생각보다 잘하는데?”
“마법진은 1써클 초급 마법사도 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해도. 신관이잖아.”
“흐음··· 호커스 그 사람. 꽤 지위가 있는 것 같네.”
“응? 그걸 어떻게 알아?”
“언뜻 보이는 행동들. 귀족의 그것과 흡사해. 그리고 장신구도 값나가는 것들이고.”
“신관이라 그런 거 아닐까?”
“아니야. 내 눈을 믿게. 그는 발포그로 치면 최소 자작 급 이상의 귀족이야.”
아서스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힘주어 말했다.
‘믿음직한 네 눈이 바라보는 제이나는 사실 헤라님인데···.’
왕궁에서 자란 아서스가 그렇다니 믿어야지.
우리는 굴팍시와 리스페를 타고 들판을 달렸다.
“영주님이다!”
영지 경계에 있던 남성 한 명이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털며 블레이크가 나타났다.
“아니··· 아서··· 웁!”
아서스가 번개같이 다가가 블레이크의 입을 막았다.
“안녕하시오! 나는 방랑하는 트레져헌터요!”
황당하다는 듯 아서스를 바라보는 블레이크.
나는 피식 웃었다.
“블레이크. 혹시 코렌틴에서 사람이 찾아오면 제게 바로 좀 알려줘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생겨난 저 지하철 때문에 난리입니다.”
“예? 왜요?”
영지 한가운데 지하철이 생겨났다.
그런데, 오직 클라이나스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골드가 없다고 자꾸 튕겨내더라고요. 물어보니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고···.”
“아, 클라이나스에 갈 수가 없으니 계좌를 만들지 못하는구나! 이런···.”
나는 재빨리 영지에 은행을 하나 개설했다.
“이거 사용법은···.”
“계좌 트는 방법은 질리도록 들었습니다. 클라이나스 사람들이 와서 하도 떠들고 자랑해서.”
“그럼 부탁할게요. 가자.”
나는 아서스와 함께 티르 나 노그로 향했다.
* * *
“크하하하하! 투아하 데 다난··· 음.”
“등장하실 때 그 말 좀 안 하시면 안 되나요?”
“내 작은 재미라네. 저번에 본 인간도 왔군.”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노토스.”
아서스도 티르의 축복을 받았다.
나는 품에서 얼굴 부분이 박살 난 조각상을 떠내 노토스에게 건넸다.
“크림트베인에 있는 하이오크에게 구해온 성물입니다.”
“호오··· 이럴 수가···! 에린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군!”
노토스가 코를 킁킁거리며 조각상의 냄새를 맡았다.
“그런데··· 여쭤볼 게 있어요.”
“뭐든지 물어보게.”
“쿠 훌린의 파편은··· 포악한가요? 싸워야 할까요?”
“포악···? 쿠 훌린님은 누구보다 현명하고 누구보다 강력하며 누구보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시네.”
‘그럼 대체 왜 나를 죽인다는 거지?’
“그런데··· 파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흐음···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어요. 미미르가 태초의 거인을 해방할 수 있나요?”
“미미르···? 거인?”
쿵.
노토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미르가 태초의 거인을 해방 시켰나!”
“아, 아뇨 아직은 아니고요.”
“…아직은?”
“혹시 그렇게 될 수도 있나 궁금해서요.”
“태초의 거인 이미르. 그는 오딘에게 죽었다.”
미미르와 비슷한 이름인 이미르.
그는 아우둠라와 함께 태어난 태초의 존재였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불꽃이 튀어 수르트도 태어났다.
이미르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거인을 만들어낸 존재다.
“오딘은 거인의 세력이 커지자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들어 이미르를 죽였지.”
‘죽었는데 해방이라니···?’
“하지만 죽였다는 말은 오딘에게서 전해진 이야기일세. 진짜 죽었는지는 미미르만 알고 있지. 설마 오딘은 거짓된 사가를 만들었나!”
“격에 맞는 이야기도 거짓으로 만들어 낼 수 있나요?”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승되며 퍼져나간다. 거짓이라도 모두가 사실이라 믿으면 진실이지.”
어차피 필요한 건 사실 그 자체가 아닌 이야기를 통한 신력의 강화라면.
‘그럼 오딘이 이미르를 죽이지 않고 어딘가에 가뒀는데 그걸 미미르가 살려준다는 이야기인가.’
“그저 궁금했어요. 태초의 거인이라 해서··· 그냥 잘못된 정보였나 봅니다.”
“그렇겠지. 이제 시간이 되었네. 준비하게.”
노토스가 성물을 잡고 힘을 주자 대지 조각이 격렬하게 떨렸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노토스가 성물을 던졌다.
꽈아아아앙!
성물이 폭발하며 나타난 하얀 포탈.
“말했듯, 저곳은 자네의 능력이 닿지 않을 수 있네. 그리고, 들어가면 저 포탈은 사라진다네. 돌아오는 건 스스로 힘으로 해결해야 해.”
심지어 다시 가려면 또 다른 성물을 찾아야 한다.
노토스가 던진 성물이 폭발했기 때문.
“그래도 가겠는가?”
“아서스. 너는 여기 있는 게···.”
“그럴 수는 없지. 또 다른 세계인데. 어서 가세!”
아서스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나는 키비시스에서 오딘의 창을 꺼내 쥐었다.
‘혹시 모르니까.’
“그럼 가자.”
나는 심호흡을 하고 포탈로 향했다.
부유감과 함께 두통이 엄습했다.
땅에 내려서는 느낌과 함께 사라진 두통.
눈앞에는 불타오르는 하늘이 있었다.
쿠 훌린
‘여기도 망했나?’
하기야 티르 나 노그가 그 모양으로 박살 났는데 여기라고 멀쩡할 리는 없겠지.
나는 제일 먼저 상태창을 띄워보았다.
‘···안된다!’
노토스가 경고했던 대로 상태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창을 빼놓아서 다행이군.’
키비시스도 작동하지 않았다.
상태창이 생기기 전 평범한 상태로 돌아갔다.
아서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리스페 소환이 안 되네! 이게 무슨···!”
“여긴 말보런스도, 지구도 아니야. 그쪽에서 얻은 힘은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할 거야.”
아서스가 검을 꺼내 오러를 뿜어냈다.
“다행히 오러는 나오는군.”
“그건 네 몸에 축적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