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9
“그럼 이제 어쩌나?”
“뭐 어쩌겠어. 뒤져봐야지.”
“하늘이 불길하군.”
우리가 넘어온 곳에는 포탈이 없었다.
이젠 앞으로 갈 수밖에.
“가보자. 어디라도.”
우리는 불타는 에린을 정처 없이 헤맸다.
* * *
키에에에에엑!
콰직.
펑!
‘다행이야.’
궁니르, 오딘의 창이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은 작동했다.
무조건 명중하는 능력과 모든 공격 크리티컬.
불타는 에린에는 몬스터가 즐비했다.
“대체 이걸 뭐라 불러야 하는 건가?”
“마물.”
달리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습도 제각각인 마물들은 악취가 나는 진액이 흘러내리며 꾸물거리는 모습이었다.
‘디아블로가 폭주해서 변한 모습과 비슷해.’
힘을 흡수하다 이상하게 변해버렸던 디아블로.
그 모습의 열화판인 몬스터들이었다.
‘궁니르에 있던 마물 공격 피해증가 옵션이 이런 놈들에게 쓰이는 거구나.’
신부터 거인까지.
궁니르에는 모든 형태의 존재에게 주는 피해를 증가시키는 옵션이 있었다.
그중 생소한 마물 공격 피해증가.
지구와 말보런스에서는 이렇게 본격적인 마물을 본 적이 없다.
“이곳에는 생존자가 없는 게 아닌가?”
아서스가 갑옷에 흐르는 진액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는 없을 거야.”
‘내가 쿠 훌린의 파편을 만나는 건 확정된 미래니까.’
비록 죽음도 예정되어 있지만, 마음은 편해졌다.
최소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이야기니까.
마물이라 명칭한 몬스터는 지성이 없는 듯했다.
아무 의미 없이 서로를 잡아먹는 모습도 보았고, 집단을 이루고 있지도 않다.
그저 본능에 따라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공격하는 것뿐.
‘마족처럼 서로를 잡아먹고 힘을 키우나 본데.’
잡아먹은 놈은 몸집이 커졌다.
‘그래봐야 한 방이지만.’
한방에 한 마리씩.
창을 던지면 몬스터가 터졌다.
자동으로 되돌아오기에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가끔 두 마리가 달려들어도 아서스의 능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저기 마을이 있다.”
멀리 파괴된 마을이 보였다.
* * *
‘···테오도르 경계?’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말보런스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군.”
아서스가 중얼거렸다.
지금 이곳의 건축양식이나 집기류가 테오도르의 경계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한창 마을을 뒤지는 중이었다.
덜그럭.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집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서스와 나는 눈빛을 교환하고 무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에 눈빛만 봐도 서로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문 앞에 서자 아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젖혔다.
벌컥.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며 창을 들었다.
“꺄아아아아악!”
‘비명?’
집 안에는 여성 한 명이 품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 당신들은 누구죠?”
여성이 두려운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위화감이 가득한 인물.
‘마물이 돌아다니는 멸망한 세상··· 박살 난 마을에 있는 여성 하나? 게다가 옷차림이···.’
조금 전까지 음식을 하다 온 듯한 모습.
떨어트린 물건은 그릇 같은 식기류였다.
나는 창을 겨눈 채 입을 열었다.
“내가 물어볼 말이군. 당신은 누구지?”
“저, 저는 리나라고 해요.”
“당신은 어떻게 여기 왔지? 밖에는 마물들이 많던데. 무기도 없이.”
“마물···? 아, 블로크를 말하는 거군요.”
“블로크? 그게 뭐지?”
“당신들 정체가 뭐죠?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고.”
기묘한 대화가 이어졌다.
‘지하 세계 같은 데서 사는 건가?’
멸망한 세상.
지구에도 쉘터가 있다.
이곳도 그런 식으로 대피했다면 어딘가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고, 물건을 구하러 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왔다. 혹시 쿠 훌린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나?”
“쿠 훌린님이요? 물론이죠. 그런데 다른 세상이라는 건 뭐에요?”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군. 혹시 우리를 쿠 훌린에게 데려다줄 수 있나? 지하 대피소 같은 데서 사는 건가?”
“흐음··· 일단 인간은 맞는 거 같은데··· 티르 나 노그에 들어오지 못한 에린 사람들인가?”
리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티르 나 노그? 그곳은 파괴되었다.”
“예? 호호호.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조금 전까지 거기있다 왔는데. 당신들··· 진짜 괜찮은 거에요? 마법에 걸렸었나?”
‘대체 뭐야.’
“우리는 티르 나 노그에서 노토스님께 투아하 데 다난이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하고 티르님의 축복을 받았다.”
“와··· 정말요? 그럼 에린의 전사였어요? 근데 노토스님은 누구죠?”
크에에에엑.
쾅. 쾅.
무너져내린 마을 밖에서 마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함께 가요. 이동의 축복을 위한 물건이 없으신가 보군요.”
리나가 손을 내밀었다.
“잡으세요. 뒤에 계신 분도요.”
‘이거 꼭···.’
각성자가 일반인을 내 영지로 데려갈 때 하는 방법하고 비슷한데.
리나가 목걸이를 쥐고 눈을 감았다.
잠시 부유감이 느껴지며 빛이 찾아왔다.
* * *
“도착했어요. 마을 밖에 강에서 몸을 좀 씻으셔야 할 것 같아요.”
‘응?’
조금 전 그 집이다.
완벽하게 똑같은 구조.
“리나! 클라무 허브로 만든 빵 좀 먹어봐.”
집 밖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갈게요!”
리나가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벌컥.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망한 마을이었는데.’
조금 전 불타는 하늘과 파괴된 마을은 온데간데없었다.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볕,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땅.
무너졌던 집과 마을의 담은 완벽하게 복구되어 있었고, 길가를 오가는 많은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어이쿠. 거기 젊은 청년 둘. 블로크랑 싸우다 온 거야? 냄새나니 가서 좀 씻어!”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코를 쥐며 마을 밖을 가리켰다.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자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이 흐르는 강을 발견했다.
“아니··· 이보게. 자네가 워낙 신비한 인간인 줄은 알고 있었네만. 지금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나도 마찬가지야. 여긴 처음 와본다고. 일단 몸이나 씻자 거기서는 몰랐는데 여기 와 보니 우리 냄새가 심하긴 하다.”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는 강에 몸을 담그고 갑옷과 무기를 씻었다.
몸을 씻고 나오자 리나가 빵이 담긴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고맙군.”
우리는 땅바닥에 대충 주저앉아 햇빛에 몸을 말리며 빵을 뜯어 먹었다.
말보런스 빵과 비슷한 식감.
‘꽤 맛있군.’
“당신은 거기서 뭘 하고 있었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요? 제 취미가 옛 물건을 수집하는 거예요. 오래된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오래되었다기에는··· 마을 구조가 똑같은 것 같은데.”
“당연하죠. 다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르면 안 된다고···?”
리나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대화가 미궁으로 빠진다.
순식간에 빵을 먹어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고맙군. 먹을 것까지 내주고. 혹시 쿠 훌린님은 어디 계시는지 알고 있나?”
“네. 던 카레그 성에 계세요.”
“던 카레그··· 거긴 어떻게 가지?”
“텔레포트 하시면 되는데··· 마침 제가 그곳에 갈 일이 있으니 함께 가요. 따라오세요.”
우리는 다시 리나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이것 좀 들어줄래요? 던 카레그에 가서 팔 것들이에요.”
리나가 옷 꾸러미를 내밀었다.
“옷?”
“저는 재단사예요. 집 뒤에 못 보셨어요?”
“못 봤지.”
거대한 보따리 두 개.
아서스와 하나씩 나누어 짊어지자 영락없는 행상이었다.
“푸훗. 정말 엄청난 모험이군.”
아서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되게 좋아하네. 넌 그냥 집무실만 아니면 어디든 좋은 거냐?”
“바로 그거일세! 크크크. 빨리 결혼해서 아들 낳고 물려준 다음 자네와 모험만 하고 싶군.”
“아니야. 난 모든 게 끝나면 절대 방 밖으로 안 나갈 거다.”
“그건 안되네. 나랑 같이 모험을 떠나야지!”
“자, 자. 그만하시고. 손잡으세요.”
리나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번쩍!
* * *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맛보세요! 저렴합니다!”
“고기! 털! 하여간 동물에서 나온 건 다 팝니다!”
귓가에 소음이 밀려왔다.
우리는 광장 구석에 도착했다.
‘말보런스와 아주 비슷하군.’
꽤 넓은 광장에 시장이 열려있었다.
모두 물건을 구경하고 사고파는 모습.
익숙한 광경이었다.
리나는 우리를 데리고 시장 한 쪽에 빈자리로 이동했다.
“여기에 내려놓아 주시면 되겠습니다!”
“고맙군. 쿠 훌린님은 어디 있지?”
“저기로 가보세요.”
리나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름다운 성이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주로 사용한 환상적인 모양의 성이었다.
“고맙군.”
“가시기 전에 한번 들러주세요! 다 안 팔린 거 다시 옮겨 주셔야죠!”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지.”
우리는 성을 향해 이동했다.
“여긴 전쟁이 거의 없겠군.”
“왜?”
“저 모양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네. 애초에 전쟁을 상정하고 만든 성이 아니야. 심지어 내성이 따로 있는 구조도 아니고··· 탈출에 쓸만한 비상구도 없군.”
아서스는 일국의 왕답게 성을 보며 여러 가지를 유추했다.
“여기 성주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저런 모양으로 성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긴, 자네나 리드리그님이 있다면 감히 누가 공격하겠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일리가 있군.”
“근데, 아서스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음?”
“저거 봐. 성문도 활짝 열려있고··· 병사조차 없어.”
사람들 몇 명이 성문을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제지하거나 확인하는 인원도 없는 듯했다.
“정말 이상한 세계군.”
우리는 의문을 느끼며 성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넓고 아름다웠다.
각종 장식과 조각품이 곳곳에 있었고,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성 내부 시설을 이용하고 휴식을 취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차 같은 걸 마시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혹시 쿠 훌린님이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쿠 훌린님은 정원에 계실 겁니다. 늘 그곳에서 꽃을 가꾸시니까요.”
정원에 도착하자 꽃이 만발한 모습이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이 꽃밭 위에서 눕거나 앉아 따스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정원 한복판에서 땀을 닦으며 꽃을 가꾸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오싹.
‘저 사람이다.’
위즈덤 아이가 작동한 것도 아닌데 몸이 떨렸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예기.
디셉션이 없음에도 그를 공격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정원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쿠 훌린님이신가요?”
“오늘은 정말 기념할만한 날이군. 다른 세계 인간이 찾아온 건 오천 년도 넘은 일인데···.”
우리를 보자마자 다른 세계 인간임을 알아차렸다.
“오천 년이요?”
“우리의 시간으로는 그렇지. 아무튼 반갑네. 나는 쿠 훌린일세.”
“반갑습니다. 저는 서진우라고 하고, 여기는 아서스 발포그라 합니다.”
쿠 훌린이 내 등 뒤에 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눈을 빛냈다.
“오딘의 무기를 들고 있군. 그의 계승자인가?”
단번에 궁니르도 알아보았다.
“제가 계승자는 맞는 것 같은데··· 오딘의 뜻을 이을 생각은 없습니다.”
쿠 훌린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크···크하하하하! 뜻을 이을 생각이 없다라!”
한참 웃던 쿠 훌린이 돌연 웃음을 멈췄다.
“여기에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나?”
“게 볼그를 얻으러 왔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네에게 게 볼그를 내줘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긴눙가가프에 사는 요르문간드를 죽여 저만의 사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호오··· 이제 보니 신격에 대해 꽤 지식이 있군. 두 번째는?”
“기록의 서에 제가 게 볼그를 얻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쿠 훌린이 얼굴을 굳혔다.
“···기록의 서? 궁니르를 들고 있는 자가 기록의 서를 얻었다고?”
쿠 훌린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뿌렸다.
무지갯빛이 흩날리며 내게 스며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느끼던 쿠 훌린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뼈로 만든 것 같은 하얀 창이 나타났다.
“흠, 그렇게 된 건가. 영웅의 능력을 얻었군. 허락없이 자네의 기억을 읽어서 미안하네.”
쿠 훌린이 들고 있던 창이 빛나기 시작했다.
스팟.
쿠 훌린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푹.
그의 창이 내 가슴을 뚫고 등으로 삐져나갔다.
오딘과 티르
‘어···?’
순간적으로 현실이 인지되지 않았다.
‘내가 죽는 건가?’
이렇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다짜고짜 죽인다고?
만나자마자?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어릴 적부터 살아왔던 인생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컨테이너에서 살던 때.
각성자가 되고 수진 씨를 만났다.
세계를 오가며 싸웠다.
웃기는 장사꾼 골드 드래곤.
리드리그가 밀키트 납품을 대가로 헤벌쭉 웃으며 내게 용언 마법을 걸었다.
‘이때 분명히 뭔가 패시브를 하나 받았는데···?’
그때, 눈앞이 아득해지며 머릿속에 글자가 떠올랐다.
‘드래곤의 축복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의 바람이 느껴졌다.
“이, 이보게. 서진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아서스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가슴에 박혀있던 창은 어느새 사라졌다.
“분명 조금 전 자네 몸에 창이 박혀있는 걸 보았는데··· 다시 멀쩡하게 서 있다니···!”
“이제 됐군. 자네는 깨끗하네.”
쿠 훌린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네들도 않게. 말보런스 인간들인가?”
“조금 전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