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4
눈치 빠른 굴락이 그녀들을 컨테이너 영지로 보내버렸다.
덕분에 그들은 살아남았다.
나는 브란의 솥을 이용해 헤라와 이둔을 분리했다.
솥에 들어가자 똑같은 두 명이 나왔다.
같은 외모와 같은 기억을 가진 정확하게 동일한 두 명.
하나는 신격을 가지고 있고, 하나는 그냥 인간이다.
신격은 가진 이는 미련 없이 소멸을 택했다.
나는 가사 상태로 누워있던 토르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토르와 이둔은 지금껏 소멸한 신이 그랬듯 자신들의 기억을 담은 파편을 분리해 스카자하의 데이드림 속으로 보냈다.
신격을 가진 본체는 소멸했다.
에린에 살고 있던 남은 신도 비슷한 방법으로 파편을 남긴 채 신격을 없앴다.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신은 전부 소멸했다.
나만 빼고.
제이나가 돌아오며 아서스가 기뻐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제임스는 안젤라와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안젤라는 이둔의 힘을 쓸 수 없더라도 각성자로서 버프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 3년이 된 오늘.
아서스는 내게 제이나가 결혼 소식을 알리러 찾아왔다.
* * *
“언제 결혼하는데?”
“6개월 뒤로 잡았네.”
“뭐? 난 또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한참 남았잖아.”
“발포그 제국의 황제가 결혼하는 걸세. 6개월이면 말도 안 되게 빠른 거야.”
아서스가 피식 웃었다.
“한국에서는 원래 날짜 다 잡히고 한 두 달 전에 와서 청첩장 주는 게 국룰인데. 쯧.”
“아무튼 잊어버리지 말라고 찾아왔네. 자네가 워낙 바쁘지 않은가?”
“바쁘긴 무슨. 영주님은 놀러만 다니는 거 아니었던가요? 지난번에 대관식도 잊어버리더니. 이번에도 그러면···.”
제이나가 나를 노려보았다.
분리된 그녀는 헤라의 오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섭다.’
“아서스, 혹시 제이나에게 협박당해 결혼하는 거라면 방문 밖에 당근을 걸어둬.”
“영주님.”
제이나의 눈이 천천히 도끼 모양으로 변했다.
‘무섭다.’
“영주님. 당신은 어떻게 할 거죠?”
“응? 어떻게 하냐니?”
“수진 씨랑 사만다. 어떻게 할 거냐고요.”
제이나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뭘 어떻게···?”
그때였다.
“으아아아 말도 안 돼! 아서스!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박성남이 숙소 밖으로 나오며 절규했다.
“후후. 성남. 자네는 요새 좀 어떤가?”
“더럽게 바쁘다. 듀크 박 께서는 더럽게 바빠!”
박성남은 아서스를 졸라 발포그 제국의 공작이 되었다.
아서스는 얼씨구나 그를 받아들이고 요긴하게 써먹었다.
“귀족은 원래 바쁜 법이네.”
아서스가 실실 웃었다.
“말도 안 돼! 원래 귀족
나으리는 저택에서 살면서 차만 마시면 되는 거 아니야? 왜 공작이 직접 몬스터를 잡고 다녀야 하는데!”
“로안 대공도 몬스터를 잡지 않나? 공작이면 열심히 뛰어야지.”
“네놈 제국은 뭔가 이상해···! 이게 무슨 왕정이야! 귀족을 이렇게 부려 먹는 황제가 어딨어! 반란을 모의해서 널 끌어내리고 말겠어!”
“호호호. 박성남 공작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제이나의 소름 끼치는 웃음.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도끼 모양이다.
박성남이 몸을 움찔했다.
“아니, 농담인데··· 왜 그런 표정을···.”
아서스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반란! 좋네! 하지만 클라이나스에서 반란을 모의하려면 리드리그님과 먼저 상담해야 하는 것 기억하지? 우리 수.호.룡. 말일세.”
“크크. 리드리그? 아마 골드 주면 얼씨구나 성문 열어줄걸?”
이번엔 아서스가 몸을 움찔했다.
“크흠. 다소 돈을 좋아하긴 하시지. 그나저나 서진우 자네 지난번 내 요청은 받았나?”
“응? 무슨 요청?”
“우리 제국이 영토를 확장해 남부 전역을 발포그령으로 선포하지 않았나! 지하철이 필요하다고!”
“아··· 그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다 보니 까먹고 있었네. 사만다나 수진 씨한테 말해보지.”
“그녀들 만나기가 드래곤 만나는 것보다 더 힘들다네. 그러니 자네한테 요청한 거 아닌가!”
“음··· 정훈이한테 말 해둘게.”
“고맙네!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결혼식 전에 반.드.시. 완공 시켜주세요. 이번에도 잊어버리시면··· 아시죠?”
제이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신신당부했다.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 솔로 서러워서 살겠나.”
“아서스 황제님 축하드립니다!”
강주오와 강석호 나현우가 다가왔다.
“우리 솔로 4인방은 서러워서 살겠나?”
“전 여자친구 있는데요.”
강주오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뭐? 대체 언제? 누구? 그게 무슨 개 소리?”
박성남이 입을 쩍 벌리며 강주오의 멱살을 잡았다.
“저번에 말보런스로 사냥 갔다가 만난 여자가 있어요. 위기에 빠진 그녀를 제가 로켓 런처로 구해냈죠. 후후후.”
“젠장··· 누구는 사냥하다가 연애도 하고. 이건 불공평해! 신의 장난이라고!”
“난 장난친 적 없다.”
내 근엄한 목소리에 박성남이 힘없이 나현우와 강석호에게 다가갔다.
“저 배신자는 빼고 우리 셋이 잘해보자. 돋거 아저씨랑 봅사 아저씨···!”
“우리는 주오 여자친구가 자기 친구 소개해준다고 해서··· 소개팅 예정인데···.”
“뭐? 왜, 왜 나는 빼고···?”
“사진 보여줬는데 까였다고···.”
털썩.
박성남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아아아아!”
세상 그 누구보다 강력한 탱커, 박성남의 긴 비명이 컨테이너 영지를 울렸다.
“그러고 보니 너. 어떻게 할 거야?”
비명을 지르던 박성남이 나를 돌아보았다.
“응? 뭐가?”
“수진 씨랑 사만다. 어떻게 할 거냐고.”
“···뭘 어떻게 해?”
“흐음··· 아니다. 사실 불쌍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일지도.”
박성남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사라졌다.
* * *
“오셨어요?”
테낙스로 만들어진 어두운 공간.
김정훈이 주변에 떠 있는 수천 개의 상태창을 훑으며 내게 대충 인사했다.
“별일 없지?”
“네. 근데. 아서스 황제가 지하철을 건설해 달라고 하던데···.”
“어. 그렇더라고.”
“자원이 모자라요. 수진 누나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고요.”
“흐음··· 어디 끌어올 곳 없나?”
“아직도 지구는 반밖에 복구 못 했어요. 말보런스랑 밸런스 있게 개발해야죠. 예전에 죽은 지구인들 부활시키는데도 자원이 엄청나게 들어가요. 각성자들 레벨업도 신경 써야 하고요. 아이템 거래도··· 생산품 관리도 해야 하고···.”
김정훈이 퀭한 눈으로 상태창의 수치들을 바라보며 한숨 쉬었다.
“미안하다. 치트라도 써주면 좋은데 에너지 소모가 심해지면 안 돼.”
“물론 이해는 하죠. 계속해서 플러스 상태로 남아야 하니까.”
공간의 최상단에는 기다란 상태창이 있었다.
상태창에는 현재 +10 수준인 그래프가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긴눙가가프 에너지의 총량 관리.
상태창의 이능을 사용하면 총량이 조금씩 줄어든다.
생활 전반부터 부활까지.
영지에서 사용하던 모든 능력이 다 긴눙가가프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생명이 부활해 살아가고 행복도가 높아지면 총량이 늘어난다.
김정훈은 생명의 번영을 통한 순환구조를 관리하고 있었다.
“형. 그리고 각성자들한테 공지 하나 나갈 거예요.”
“공지?”
“부활 가격을 세 배쯤 올릴 거예요.”
“세 배나?”
“어차피 부활한다고 렙도 안된다는데 자꾸 몬스터한테 덤비고 죽고 반복하잖아요. 일반인하고는 다르게 각성자 부활할 때는 에너지 소모가 심하단 말이에요. 임무 설명에 파티하라고 해도 혼자 개돌하고. 어휴 말을 안 들어요.”
김정훈이 투덜거렸다.
전장에서 죽은 이들을 복구하고 난 뒤 나는 김정훈을 찾아갔다.
김정훈에게 빙의한 멀린.
나는 브란의 솥을 이용해 그들을 분리하고 멀린을 소멸시켰다.
김정훈은 원래도 게임을 잘하고 센스가 있었지만 멀린의 지식과 경험을 흡수하고 난 뒤 출중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영웅지원시스템을 맡겼다.
그는 늘 그랬듯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거부했다.
나는 티르가 남긴 테낙스 구조물을 가져와 이곳을 그의 거처로 쓸 수 있게 해줬다.
김정훈은 상당히 만족하며 게임을 하듯 세상을 관리했다.
그는 그가 바라던 대로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운영자가 되었다.
지구와 말보런스라는 영지를 운영하는.
물론 신격도 없고, 내 통제하에 있으니 위협은 없다.
덕분에 나는 가장 귀찮은 짐을 덜었다.
“수진 씨랑 사만다는 어딨어?”
“흐음··· 잠시만요.”
김정훈이 상태창을 뒤졌다.
“코렌틴에 있네요.”
“엥? 거긴 왜?”
“모르겠어요. 저 도와줄 거 아니면 가세요. 저 바빠요.”
이야기하면서도 김정훈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래. 수고.”
“아참. 형.”
“응?”
“전 잘 모르지만··· 코렌틴에 가실 거면 꽃이라도 들고 가는 게 어떨까요?”
“엥? 꽃은 왜?”
“으음··· 아니에요. 나 사는 것도 바쁜데 이런 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네. 잘 가세요.”
“허···.”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이동했다.
* * *
잿빛 하늘.
으리으리한 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공사 중인 성 한쪽에는 녹색 로브를 입은 리치 하나가 여기저기 손짓하며 데스나이트와 골렘의 공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돌 내려놓을 때 천천히 하라고···! 야! 스트렝스도 걸어줬는데 왜 그렇게 허약해! 그러고도 데스나이트냐?”
“···우리는 죽음의 기사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닌···.”
“야. 나는 여기 지하세계 주인인데도 돌 나르거든? 확 그냥.”
굴락이 게거품을 물며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굴락. 잘 지냈어?”
“오, 주인. 어쩐 일인가?”
“잘 지내나 해서.”
“살려주게.”
털썩.
굴락이 무릎을 꿇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엥? 뭐가?”
“수, 수잔 말이야. 대체 왜 여기에 지내게 하는 건가? 그녀는 칼튼님의 리치가 아닌가! 대체 왜···!”
“부부가 같이 지내는 게 뭐 어때서?”
“아직 결혼식은 하지 않았단 말일세···!”
“그래도 약혼 상태니까. 부부나 마찬가지지.”
“으으으··· 제발···!”
“이게 다 무슨 일이죠?”
허공에서 또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갑자기 데스나이트와 골렘의 행동이 빨라졌다.
언데드들은 각자 무언가를 들고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어디가···!”
“굴락 코나즈.”
“히익···!”
수잔이 붉은 눈을 빛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수잔. 잘 지냈어요?”
“오랜만입니다. 그나저나 언뜻 들으니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요.”
“아. 굴락이 일터에는 수잔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히익···!”
굴락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수잔은 입을 쩍 벌리고 굴락을 한번 힐끔 바라보았다.
“굴락.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이어서 하죠. 영주님. 부활은 순탄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별다른 문제는 없죠?”
“그레모리님이 좀 심심해 하시더라고요.”
“그레모리가요?”
“아무래도 헬헤임에 계시니···.”
굴락은 죽은자를 관리하는 사후 세계의 왕이 되었다.
그레모리는 헬이 관리하던 헬헤임을 맡았다.
그동안 영지의 구조가 다소 바뀌었다.
몬스터에게 죽었던 기존 일반인은 이제 이곳에서 차례대로 부활한다.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지구로 보내진다.
수진 씨와 사만다의 가족도 부활 대기 중이다.
그녀들은 특혜를 거부하고 순서대로 부활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걸 택했다.
하지만 노화와 병, 사고사 등 정상적인 삶을 살다 죽으면 부활하지 못한다.
다시 생명의 순환고리에 탑승하게 된다.
그레모리는 각성자의 부활을 맡았다.
발할라의 부활 기능을 떼어 헬헤임으로 집어넣었다.
각성자가 범죄를 일으키면 쫓고, 잡아 가둔다.
정상적인 사냥 중 사망한 각성자는 예치금과 여러 변수를 고려해 순서대로 부활시킨다.
‘마왕으로 살았으니까 심심하긴 하겠지.’
그래도 범죄자를 잡는 분야에는 기가 막힌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서스가 결혼식 참석해 달라는데··· 너도 갈 거지?”
“제국 황제 결혼식에 언데드가 가도 되나?”
“니가 영지에 하루 이틀 돌아다닌 것도 아니라서 사람들은 다 익숙할걸.”
“하긴. 그런가? 그럼 참석해야지!”
“굴락. 우리는···?”
굴락이 몸을 움찔했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나도 도망갈 타이밍이다.
“굴락. 잘 지내고 나중에 봐.”
“어, 어딜 가는 건가!”
“수진 씨랑 사만다 찾으러. 코렌틴에 가봐야겠어.”
굴락에게 다가가던 수잔이 그대로 허공에서 정지했다.
“영주님. 그냥 가시게요?”
“예? 그냥 가다뇨?”
“어휴. 주인이나 소환수나 아주 쌍으로 잘 어울리네.”
수잔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굴락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아무튼. 나중에 영지에서 봐.”
나는 지하세계를 떠나 또다시 이동했다.
* * *
거대한 신전.
“아니··· 리드리그님! 아무리 그래도 절대 안 됩니다.”
“죽고 싶은 건가.”
리드리그의 차가운 말.
드래곤 피어가 섞인 음성이 뻗어나가자 신전에 있던 신관들이 공포에 질린 채 몸을 떨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시, 신이시여!”
리드리그 앞에 있던 대신관 호커스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달려왔다.
리드리그가 입맛을 다시며 드래곤 피어를 해제했다.
“고, 골드 드래곤께서 포션 독점 유통 권한을 달라고 계속···.”
“엥? 그거 저번에 준 거 아니었어?”
“개선판 포션이 나왔습니다. 이제 기존보다 두 배 정도 높은 효율을 보이고요.”
“오···! 아, 그래서 그것도 달라고?”
“하지만 리드리그님 상단을 통해 유통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집니다. 신님의 업적을 널리 알리려면 최대한 다양한 사람이 은혜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아 글쎄. 저놈은 그 업적 충분히 가졌다니까···? 이제 저놈과 비빌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 그리고 내가 저번에 여기 도와준 거 기억 안 나?”
“그래서 이미 기존 포션을 독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크흠. 새 버전이 나오면 계약도 새로 해야지.”
리드리그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리드리그에게 다가갔다.
“그렇다고 협박을 하면 어떻게 해? 뭔가 떡밥을 줘야지.”
“떡밥?”
“뭐 가령 포션 판매대금의 일정 금액은 코렌틴에 기부를 한다던가··· 아니면 각 지역 코렌틴 신전에 본체로 나타나는 이벤트를 연다던가?”
신의 이름을 찾고, 내 업적이 알려지며 코렌틴은 말보런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종교가 되었다.
각 국가와 지역에는 우후죽순 신전이 세워졌다.
나는 코렌틴에 부여하는 축복을 조정했다.
기존에는 단순히 포션만 만들어 팔던 종교 국가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코렌틴 사제들은 자신들이 지닌 신력에 따라 각종 축복 버프와 치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마법사와 더불어 신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구에서 온 의료 장비와 의료진.
거기에 신의 치유 마법까지.
어지간하면 병으로 죽는다거나 다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흐음··· 좋은 생각이군. 이벤트라···. 호커스. 어떤가?”
“그런 조건이라면 저희도 찬성입니다. 세부 내용은 천천히 조절하시죠.”
“상단주 대리인을 보내겠다.”
“아, 니보님이 오시나요? 좋습니다!”
우리를 안내해줬던 꼬맹이 니보는 리드리그가 거두어 이제 어엿한 상단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호커스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슬로그님이 코렌틴 신관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엥? 지원?”
“북부 섬을 정복하러 들어가실 예정이랍니다.”
“아아, 고향으로 가는 건가. 안 싸울 수는 없겠지요.”
하이 오크의 인식은 굉장히 좋아졌다.
북부의 서릿발.
슬로그의 별명이 대륙을 울렸다.
인간을 구하고, 누구보다 용맹스럽게 말보런스에 뿌려진 몬스터를 잡았다.
‘오크와 신관이라···.’
우습긴 하다.
“박성남 공작께서는 코렌틴 명의로 의뢰를 만드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좋겠네요. 가고 싶은 사람은 가서 돈도 좀 벌 수 있으니까.”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호커스가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나저나 수진 씨랑 사만다는 어디 있어요?”
“아, 광장에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시여··· 설마 오늘이 그날입니까?”
“예? 무슨 날이요?”
“아, 아닙니다.”
호커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아무튼 나는 갑니다.”
“네놈. 진짜 그냥 가는 건가?”
“응? 대체 오늘 다들 왜 이래?”
“골드 일족의 역사에 길이 남을 지혜롭고 위대하신 드래곤이 말하노니. 가지 말게. 미친 짓이야. 도망쳐!”
리드리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뭘 도망치라는 건지.”
나는 피식 웃으며 광장으로 향했다.
아공간 속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흐음···.’
멀리 광장 벤치에 수진 씨와 사만다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꽃다발을 꺼내 그녀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들의 눈빛이 나와 꽃다발로 향했다.
“나는···.”
조용히 내뱉은 내 말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 사이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