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2
그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던 여동생.
“저걸 마신다고 낫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낚시일 수도 있다.
경매장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올려두는 행위.
“조, 존 도(John Doe)가 이걸로 치유할 수 있다고 했어.”
“존 도? 그게 누구지?”
“그, 그냥 가명이야.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몰라.”
존 도(John Doe).
이름 없는 희생자나 가명에 흔하게 쓰이는 이름이다.
“그 사람이 뭐길래?”
“그, 그리고 존이 널 만나게 될 거라 했지.”
‘날 만나게 될 거라 했다고?’
곧바로 느낌이 왔다.
예언능력자다.
“존이 대체 누구지? 뭐로 각성했지? 나에 대해 뭘 말했어?”
“나, 나도 몰라. 브렉스턴이 네게 아이템을 준 것도 존이 길드장에게 말해서 그런 거야.”
예언 능력자들이 하나같이 나를 콕 짚은 것 같다.
‘하긴, 내 능력이 좀 좋긴 하지만···.’
생존과 방어에는 그 누구보다 특화되어 있다.
다들 나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는 걸 보니 점점 무언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렇군. 네 사정도 딱하고, 정보를 알려준 것도 고맙지만 구매해 줄 수는 없겠어.”
“나도 알아.”
“뭐?”
제임스가 품속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허···.’
찢어진 스케치북.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그림에는 담을 배경으로 무릎을 꿇은 사람과 서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묘하게 지금이랑 같은 모습이네?’
“조, 존 도가 나는 결국 널 만나게 될 거라 했어. 그리고··· 미, 미래가 바뀔 거고, 내 역할도 조금은 있다고 했지.”
“무슨 역할?”
“나, 나도 몰라. 난 어차피 망가진 인생이야.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했지. 온갖 멸시를 견디며 14레벨까지 올렸어. 그리고 포인트를 하나도 안 찍었지.”
‘고작 그 해골 한 마리로 버텼다고?’
브렉스턴이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상황이 이해되었다.
모두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워도 모자랄 판에 포인트도 안 찍고 전투에 참가하다니.
“그, 그리고 업적까지 포함해서 30포인트를 모았어.”
“그냥 스킬 찍지 뭐하러 모았어?”
“조, 존이 절대로 찍으면 안 된다고 했어.”
각성한 마약중독자.
예언 각성자가 그를 내게 보냈다.
“예언자가 나를 만나면 회복 포션을 사줄 거라 했다고? 미안하지만 만나는 것까지는 알았어도, 그 뒤는 모르는 것 같군. 거절하겠다.”
여동생을 구하려는 그의 절박함은 이해한다.
그러나 무려 1천억이다.
돈을 사람의 생명과 바꿀 수는 없지만··· 일면식도 없고,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템을 덥석 사서 줄 수는 없다.
‘천억이면 1포인트라고···.’
“내, 내가 스킬을 찍지 않고 버텼던 이유는 단순해.”
제임스가 품에서 칼을 꺼내 목을 겨누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내, 내가 죽으면 내 모든 걸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고 했어. 포인트를···.”
‘포인트? 자살하면 30포인트를 남에게 줄 수 있다고?’
제임스의 눈이 간절하게 빛났다.
하이오크의 성과 하이에나들
30포인트.
단순 환산해도 대략 3조의 가치다.
특히 나에겐 아이템보다도 스킬 포인트의 가치가 더욱 높다.
전투 각성자가 힘들게 아이템을 구하는 동안 몇 포인트만 투자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해진다.
타워간 시너지도 마찬가지.
경매장 거래가 늘어나면 결국 구매할 수는 있겠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아이템을 안 사고 버틸 수는 없는 법.
이런 상황에서 30포인트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자살하면 남에게 줄 수 있다고? 그럼 내게 주겠다는 말인가? 어떻게?”
“나도 몰라.”
‘뭐야! 약쟁이 말을 믿은 내가 등신이지···.’
제임스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금···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구 반대편 사는 놈에게 이 비싼 걸 사서 그냥 달라는 말이지?”
“그, 그렇지···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또, 그렇게 대답할 것이라 들었지.”
“예언자가 아니라도, 상식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야, 약속만 해줘. 네가 만약 내 모든 걸 얻게 된다면··· 그 포, 포션을 사서 내 여동생에게 꼭 주기로.”
제임스가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UCLA Medical Center. 로스 엔젤레스.’
“내, 내 여동생은 ICU(중환자실)에 들어가 있어. 이름은 안젤라 우드. 차, 착한 아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한···.”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지 않나?”
“아, 아이템 주운 걸 경매장에 팔아서 그럭저럭 입원비를 마련했어.”
‘경매장이 이렇게 또 도움이 되니 다행이네.’
제안은 합리적이었다.
만약 내가 30포인트를 얻으면 포션을 사서 보낸다.
심지어 기한도 없다.
“흠. 내가 손해 볼 건 없으니 그러지.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지.”
“저, 정말이지?”
제임스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털썩.
제임스가 무릎을 꿇었다.
“고, 고마워. 정말 고마워. 믿을게. 그 약속, 꼭 지켜줄 거라 믿을게.”
“아니, 그러니까··· 네 말대로 되면 나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미국과 먼 한국에 산다는 거 알지? 혹시나 포탈에서 너희 길드원을 만나면 그때 포션을 전달해···.”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제임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걸 주면 분명 다시 경매장에 팔 놈들이야. 그건 절대로 안 돼. 반드시 네가 직접 병원에 방문해서 전달해줘.”
“하지만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여동생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버, 버틸 거야. 반드시 그럴 거야. 예언이 그랬으니까··· 흐··· 흐흑.”
제임스가 광인처럼 흐느꼈다.
여동생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인지, 지난날에 대한 후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근데, 꼭 죽어야만 포인트를 줄 수 있어?”
“나, 나도 잘 몰라.”
“포인트 이전 같은 스킬이 있지 않을까?”
“어, 없어. 그리고 존이 내가 죽어야만 한다고 했어.”
‘존이라··· 대체 뭐하는 놈이지···.’
“뭐, 그래. 내가 너무 간섭하는 것도 매너가 아니겠지. 아무튼, 우리 거래는 이 정도인 걸로.”
“아, 알겠어.”
제임스가 성벽에 기대며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눈길.
나는 그런 제임스를 뒤로하고 컨테이너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 * *
“꺄아아악!”
“무슨 일이야?”
난데없는 비명에 컨테이너 밖으로 뛰쳐나갔다.
모두 반쯤 뜬 눈으로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영지로 튀어나왔다.
넬다가 성벽 옆에서 손가락을 들며 부들부들 떨었다.
“저, 저 사람··· 어제 만난 사람이죠? 그런데···.”
‘아, 젠장!’
성벽에 매달린 밧줄.
제임스가 자살했다.
“어차피 쓸모도 없던 마약쟁이였어. 고작 해골 한 마리 소환하는 게 전부였다고. 각성하려면 나처럼 제대로 해야지. 쯧.”
브렉스턴이 혀를 끌끌 차며 뒤돌아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상태창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포인트가 늘어나지도, 다른 메시지가 뜬 것도 없었다.
‘개죽음인가···.’
제임스의 여동생.
안젤라가 떠올랐지만 애써 머리에서 지웠다.
이런 세상에서 억울한 죽음은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
한스와 영지민들이 서둘러 시신을 수습해 성벽 밖에다 매장했다.
“진우 씨,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나는 제임스를 기억에서 지우고 출전을 준비했다.
* * *
“후아, 반지영화에서 보던 성 같네. 저길 뚫어야 한다고?”
“가까워 보였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머네.”
“저기 있겠지?”
박성남이 방패를 고쳐 잡았다.
“딱 봐도 보스 성 같은데. 저기 있겠지.”
성 앞은 멀리 경계 너머까지 훤히 볼 수 있는 완전한 평지였다.
몸을 숨길 곳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투명화 포션이라도 사서 늘 하던 대로 벙커링을 통한 공격 방법을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애초에 헤매는 놈들 빼면 다들 노리고 있겠지.’
이렇게나 넓은 곳에 몇 명이나 입장해 있는지 몰라도, 다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인간 심리는 뻔하지.’
실제로 전쟁터에서 홀로 용감하게 돌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부분은 어느 전쟁영화 속 비겁자처럼 숨어있을 게 뻔하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겠지.
탱킹할 사람을 기다리며.
나는 스코어보드를 띄웠다.
나와 브렉스턴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그 사이 김철왕과 임정호가 치고 올라왔다.
‘그래 봤자 역부족이야.’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몬스터 처치는 내가 1위다.
다만, 각성자 처치 순위가 신경 쓰였다.
‘이나쿠라면 일본인 같은데··· 벌써 21명을 죽였다고?’
PVP에 특화된 각성자겠지.
각성자 처치에서 1위를 하면 무려 12포인트를 한 번에 준다.
‘2위부터 5위까지 다 잡아도 부족하네.’
이나쿠라 후지오가 공략을 포기하고 각성자들만 잡으러 다니면 만나기도 어렵다.
‘쩝. 아쉽네. 그냥 버려야 하나.’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각성자를 죽이면서까지 1위를 뒤따라 잡을 생각은 없다.
“어? 뒤를 봐!”
오크 성까지는 직선거리로 대략 2km가 남았다.
선두에 서 있는 우리 뒤로 수많은 사람이 조금씩 숲을 나서고 있었다.
“와,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저 숲에 숨어있었어? 대박.”
“전혀 낌새도 못 느꼈는데···.”
“우리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타워가 다 죽이는데 뭐.”
뒤에서 따라오는 각성자들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PK와 몬스터에 대한 공포.
어둠 속의 비박.
신경이 곤두설만하다.
‘우리는 사우나도 하고, 김치찌개까지 먹었는데.’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조던링이 있으니 타워도 업그레이드 되었겠지?’
나는 타워 정보를 터치했다.
– 방어 타워 : 6개
– 공격분배 : 폭발 3개, 아이스 1개, 화염 1개, 뿌리 묶기 1개
– 특수속성 : 모두 적용됨
– 내구도 : 400/400
– 최대 거리 : 80m
‘크으··· 조던링! 사랑한다.’
200이었던 내구도가 반지 덕에 400으로 두 배 늘었다.
아마 공격력도 두 배로 늘었을 테지.
특히 좋은 점은 최대 거리가 80m로 증가한 것이다.
‘기존 40m도 쓸 만은 했지만.’
“수진 씨, 유효 사거리가 몇 미터죠?”
“40m요.”
‘굿.’
어지간한 궁수도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
“근데, 저 뒤에 사람들은 왜 안 뛰어와?”
박성남이 계속 뒤를 힐끗거렸다.
“왜긴 왜야. 우리 몸빵 시키려고 그러지.”
“헐, 완전 노 양심이네. 야, 우리도 가지 말자.”
“걱정 마. 싸우기 싫어도 싸우게 만들어줄 테니까.”
“응?”
나는 뒤에서 따라오는 아저씨를 불렀다.
“나현우 씨. 듣자하니 투명 망토가 있으시다고요?”
“네? 네! 차를 팔아서 즉시 구매한 제 +4 투망···.”
“그것 좀 빌려주세요.”
“네?”
“쓸 데가 있어서요.”
린저씨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아, 아이템은··· 특히 +7 이상이나 투망 같은 건 함부로 빌려주는 게 아닌···”
나는 대답 없이 뚱한 표정으로 나현우를 바라보았다.
“···데, 서진우 씨는 특별히 예외입니다. 헤헤.”
사회생활을 잘하는 아저씨다.
나현우가 로브 위에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내게 넘겨주었다.
“어떻게 써요?”
“이렇게 후드를 쓰시면 투명해집니다.”
“게임을 하고 똑같나요? 공격하면 투명화가 풀리는?”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냥 벗으면 다시 쓸 수 있는데, 공격을 하면 후드가 자동으로 벗겨지고 3초 후에 다시 쓸 수 있습니다.”
꽤 오래전 설정을 그대로 따른 것 같다.
아니면 고인물 아저씨가 각성해서 그런 것일 수도.
나는 망토를 어깨에 둘러멨다.
“오, 너 망토 입으니까 진짜 영주 같은데?”
박성남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야말로 제발 좀 입어라. 망토!”
“2기 오버니삭스 보기 전까지는 망토 안 입음.”
“뭐? 변태 아저씨. 진짜 그런 거로 변신하면 죽여버릴 거야.”
“끄응···.”
박성남이 시우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진우 씨, 어떻게 하시려고요?”
“자, 모두 가면서 들어주세요.”
일반 오크보다 지능이 더 높은 하이오크.
인간 수준의 성까지 지어놓았다.
“원거리는 성벽 위를 맡아주시고, 근거리는 방패로 최대한 방어해 주세요. 성벽에 빠르게 붙습니다.”
언뜻 봐도 1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성벽.
타고 넘을 수는 있긴 하지만, 효율이 떨어진다.
“제가 저 성벽에 바짝 붙어 타워를 소환하고 나면 뒤에 각성자들이 싸움을 시작하겠죠.”
“그럼 남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냐?”
“걱정하지 마시고, 제 신호에 맞춰주세요.”
* * *
“빡! 달려!”
“으아아아!”
박성남이 시우의 눈치를 보며 대사를 아꼈다.
크와아아아아아아!
둥. 둥. 둥. 둥.
쾅. 쾅. 쾅. 쾅.
성벽에 빼곡히 들어찬 하이오크들.
일반 오크보다 더욱 진한 녹색의 피부와 커다란 덩치가 시선을 압도했다.
오크들이 일정한 박자로 발을 구르며 전투함성을 내질렀다.
‘위압감이 장난 아닌데.’
온 평원에 울려 퍼지는 오크들의 함성.
발을 쿵쿵 구르는 소리에 땅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박성남이 선두에 섰다.
“적들에게 투석기가 있다! 조심하세요!”
꽈-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대한 돌이 날아와 땅에 박혔다.
뒤이어 성벽에 늘어선 오크아처들이 일사불란하게 활시위를 장전했다.
“이게 몬스터라고?”
그냥 인간 군대랑 똑같잖아.
“영주님! 하이오크는 지능이 높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크의 전투함성 속에서, 한스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건 지능이 높은 게 아니라, 그냥 인간하고 똑같은데요?”
‘곧 사거리에 들어간다.’
성벽 가까이에 다가섰다.
팅. 팅팅. 팅.
머리 위로 화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