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
앞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고, 이름과 휴대폰 번호만 적혀 있었다.
‘국정원?’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국정원의 명함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거나, 출판사로 위장을 한다 했다.
남성이 길가에 세워진 차를 가리키며 재차 말했다.
“긴급한 일입니다. 잠시만 동행해 주시면 됩니다.”
‘어쩌지···.’
흘깃.
정장 안주머니에 슬쩍 권총이 보였다.
새로운 만남
“알겠어요.”
권총이 무서워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얌전히 검은색 세단 뒤에 올라탔다.
컨테이너에 있는 내 나꾸나꾸 침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안락함.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일어나시죠. 도착했습니다.”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착이다.
“여긴 어디죠?”
“저희 원입니다. 잠시 내려서 따라오시죠.”
주민등록증 제출, 대조, 전산 확인 등등···.
몇 번이나 까다로운 검문이 이어졌다.
지하로 내려가자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문이 나타났다.
문 넘어 에는 철제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 벽에 커다란 거울이 자리하고 있었다.
‘취조실?’
“앉으시죠. 커피라도 하시겠습니까?”
남자가 나를 보며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꼬르르르륵.
뱃속에서 전쟁이라도 난 듯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먹을 것 좀 없을까요? 코렁탕, 아니 설렁탕 좀···.”
남자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여긴 농담이나 하는 그런 장소가 아닙니다.”
“근데, 배가 너무 고파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을 것 좀 줘요.”
띠링.
남자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후우. 잠시 기다리시죠.”
한숨을 내쉰 남자가 방을 나섰다.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뚝배기 설렁탕과 함께 밥이 나왔다.
빨간 깍두기와 뽀얀 국물.
적당히 삶아진 소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소금과 후추를 넣고 설렁탕을 흡입했다.
‘이 집 완전 맛집이네.’
진국이다.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쳤다.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신경이 굵으시군요. 보통 여기에 오면 이렇게 편안하게 행동하기 어려울 텐데···.”
“꺼윽. 아 뭐, 제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쫄 필요 있나요? 그래서 나한테 궁금한 게 뭐죠?”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천장 구석에 달린 CCTV가 붉은 빛을 내었다.
“성함과 직업, 각성한 능력, 그곳에 들어가게 된 경위, 들어가서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든 것을 빠짐없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왜요? 싫은데요?”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봐요, 서진우씨!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쾅.
남자가 책상을 내리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이름도 알고 있네. 조사할 만큼 충분히 하신 모양인데 뭐가 궁금하신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궁금하신 분 태도가 이래도 되요? 윽박이나 지르고··· 저 같은 소시민은 무서워서 어디 입을 열겠어요?”
길게 이어진 내 말에 남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벌컥.
문이 열리며 장년의 노신사가 들어왔다.
벌떡.
남자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가있지.”
“하, 하지만 국장님···.”
“김 사무관!”
국장이란 남자가 단호하게 외쳤다.
이에 남자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방을 나섰다.
“거주지가 수서역 옆 농막이시라고?”
국장이 의자에 앉으며 빙긋 웃었다.
“네.”
내 대답에 국장이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린벨트가 풀렸는데, 안타깝게 되었구려.”
“뭐 어쩌겠어요.”
“수서역 사거리에 있던 포탈. 사라졌던데··· 진우씨가 없앤 게 맞습니까?”
국장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네. 제가 없앴습니다.”
국장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우리는 지금, 이 전 세계적인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군요.”
“음. 네. 그럼 국장님이라 부르면 되죠?”
“네, 편히 부르세요.”
국장이 철제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깍지를 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모두 믿으실 수 있겠어요?”
다른 세상이다.
그걸 아무리 설명한들 어찌 믿겠는가?
국장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제안을 하나 하죠.”
턱.
국장이 안주머니에서 고푸로를 꺼냈다.
“또다시 포탈에 들어가게 되면, 이걸로 내부 촬영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흐음. 그렇다면···.’
“제가 얻는 것은 뭐죠? 설마 애국심이니 뭐니 하는걸 말씀하시지는 않으시겠죠?”
국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국심도 물론 중요하죠. 사회체계는 유지해야 하니까요. 다만, 약속을 지켜주시면 진우씨에게 정부차원에서 할 수 있는 편의를 모두 봐드리겠습니다.”
“예를 들면요?”
국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냥 두루뭉술 넘어가면 곤란하지.’
“원한다면 정부 포탈대응 TF에 요직을 약속하죠. 돈은···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원한다면 주고···.”
스파이 영화나 액션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이 자주 나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떼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저보고 믿으라고요? 생전 처음 본 사람 말을?”
‘문명 게임이니 어쩔 수 없지. 뭐든 확실한 게 좋으니까.’
이 게임은 결국 영토를 늘려가며 플레이해야한다.
갈수록 땅이 필요하다.
좋던 싫던 정부의 협조는 필수.
국장이 조용히 문자를 보내자 곧바로 김 사무관이 들어섰다.
좀 전에 말한 내용들이 다 적혀 있었다.
하단에는 국가정보원 대응TF 단장의 직인까지 찍혀있었다.
“이제 믿겠습니까?”
“네, 뭐. 그럼 이제 말씀드리죠.”
나는 내부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내 능력이 무엇인지만 빼고.
“무슨 능력으로 각성하셨습니까?”
김 사무관의 물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하지가 않아서요. 어차피 TF와 함께 한다면 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죠.”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 사무관이 문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다시 모셔다 드리죠.”
나는 설렁탕을 가리켰다.
“저거, 진짜 맛있던데··· 죄송하지만 한 그릇만 더 얻어갈 수 있을까요?”
국장이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어디에 내려드릴까요?”
운전기사가 나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나는 따뜻하게 포장된 설렁탕을 품에 안고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수서역 사거리에 내려주세요.”
운전기사 계속해서 나를 힐끔거렸다.
“왜요?”
“저 그게··· 뉴스에 나오셨죠?”
“네? 뉴스요?”
인터넷을 켜자 뉴스기사에 내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1보]최초! 포탈을 사라지게 한 사람은?
[종합]수서역 사거리, 포탈이 사라졌다.
[특종]포탈에 들어가고 나오기까지, 동영상 공개!
‘동영상?’
기사를 클릭하자 사거리 포탈 앞의 내 모습이 등장했다.
“뒤, 뒤에! 괴물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내가 발을 헛디뎌 포탈로 쑥 들어가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어? 지금 사람이 포탈로 사라진 거야?”
영상에서는 황당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후, 다른 시점의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내가 포탈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저, 저기 포탈이 사라진다!”
빛이 하늘로 솟구치며 포탈이 사라졌다.
영상 속 나는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 저거 괴물 아냐?”
“인간 맞아?”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아! 저 수서동 산다구요!”
한적한 거리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영상에서 보셨던 것처럼 수서동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포탈을 사라지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번 일을 분석···.
┗ 악ㅋㅋㅋ 수서동 산다구욧!
┗ 굳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강조할 필요있나? K-각성 클라스 뭐 그런 건가?
┗ 뭘로 각성했을까?
┗ 스텝 꼬여서 떨어진 거 같은데? 딱 봐도 띨띨한 듯.
┗ 사실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닌가? 분석은 무슨ㅋㅋㅋ
뉴스기사에 달린 리플은 하나같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졌다.
‘젠장··· 다음엔 꼭 제대로 영상 찍는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수서역 사거리에 내렸다.
차가 떠나고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컨테이너를 향했다.
“아, 이쪽으로 가야한다고!”
“성남에도 포탈이 있잖아요. 그냥 수서동에 있어야죠.”
“아, 답답해. 군대 곁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뭘 알지도 못하면서.”
“뭘 몰라요? 언제부터 나 챙겨줬다고.”
“이게 진짜!”
‘이와 중에 길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다 있네.’
도로 한복판.
남녀가 말다툼을 하고 있다.
남자가 판교 방향으로 여자를 끌고 가려하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버텼다.
‘험한 세상이니까.’
그러려니 하던 찰나.
끼익! 끼익! 끼끼끼!
“꺄악! 살려주세요!”
“으아아악!”
고함소리가 들렸다.
‘고블린? 어디서?’
포탈에서 보았던 고블린.
두 마리가 버려진 차들 사이로 뛰어나왔다.
온 몸에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후라이팬을 들었다.
‘포탈도 없는데? 잔당인가?’
아니면 다른 포탈에서 나온 놈들일 수도 있었다.
“오, 오지마. 저리 가! 아님, 나 말고 이 여자를 죽여!”
“꺄아아악!”
“이익.”
고블린 앞에 있던 남자가 여자를 넘어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다.
‘저런 개새끼가.’
고블린들이 여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다가갔다.
휙.
고블린 하나가 남자의 등을 향해 검을 던졌다.
“크억.”
도망가던 남자의 가슴 앞으로 검 끝이 삐죽 튀어나왔다.
털썩.
남자가 쓰러지자 홀로 남은 여자는 고블린을 보며 온 몸을 덜덜 떨었다.
“저, 저리가. 사, 사, 살려줘.”
‘남자 놈이야 그렇다 쳐도.’
눈앞에서 여자까지 죽는걸 볼 수는 없다.
“이봐요! 저기 컨테이너 보이죠! 그쪽으로 들어가요!”
나는 여자에게 소리치며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다, 다, 다리가.”
“그냥 그대로 있으면 죽어! 빨리 움직여야지!”
그 와중에 놈들의 상황을 재빨리 스캔했다.
남자에게 검을 던졌던 놈은 빈손이다.
나는 검을 들고 있는 고블린을 향해 후라이팬을 휘둘렀다.
깡!
고블린이 잽싸게 방패를 들어 막았다.
‘힘 증가.’
“흐읍.”
팡!
나는 총알이 쏘아지는 것처럼 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배도 든든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고블린이 몸을 비틀어 옆으로 피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더 빨라!’
나는 달려들던 힘 그대로 후라이팬을 휘둘러 고블린의 안면을 갈겼다.
깡!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고블린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끼익! 끼이익!”
남은 한 놈이 나를 향해 맨 주먹으로 달려들었다.
‘어딜!’
나는 후라이팬으로 주먹을 쳐내고 곧바로 있는 힘껏 고블린을 걷어찼다.
퍽.
털썩.
그대로 입에 거품을 뿜으며 쓰러진 고블린.
나는 수직으로 세운 후라이팬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순식간에 고블린 두 마리를 잡았다.
‘업적 안 나오나?’
상태창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고블린은 뭐 새로울 게 없지.’
뽑아먹을 건 다 뽑아먹은 느낌.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 사람들이 창문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며 나를 촬영하고 있는 게 보였다.
‘좀 도와주지.’
이해는 간다.
살아야 하니까.
터덜터덜 컨테이너로 돌아와 문을 열자 여자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며 숨어있는 게 보였다.
여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크흠. 괜찮으세요?”
“개, 개새끼!”
“예?”
난데없이 욕을 먹었다.
여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그쪽 말고, 조금 전에 최 대리 그 개새끼가···.”
“아, 그분 혹시 남자친구예요?”
“예? 절대요! 직장 동료인데, 그 개새끼가 나를··· 흐흑.”
‘세상이 이런데도 출근을 하는구나···.’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댁은 어디세요? 이제 안전하니 가셔도 돼요.”
“집이 폭발했어요. 흐흑.”
‘아···.’
괴물들이 공격하고 기반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하면서 수해를 입거나, 집이 터져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어 일단 회사로 온 건데··· 그 개새끼가··· 흑흑.”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예, 그렇군요. 그럼. 몸조심 하시고···.”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컨테이너 문을 활짝 열었다.
나가라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