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2
한스가 들고 있던 수레를 내려두고 쪽지를 받아 들었다.
“음··· 마법사들이 주로 쓰는 필체네요. 저는 마법에 까막눈이라··· 넬다에게 한번 가보죠. 연구실에 있을 겁니다.”
연구시설은 외부인이나 이방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한산했다.
넬다는 책상에 앉아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넬다, 뭐해요?”
“마법 연구하고 있어요. 시우 양에게 쓸 만한 마법을 전해주려고요.”
넬다가 미소 지으며 책을 덮었다.
“시우요?”
“네. 체인 라이트닝보다 더 강한 광역마법을 원하더라고요. 한동안 연구에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의지가 샘솟아서요!”
한스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넬다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몬스터에게 그만···.”
“한스, 전 이제 괜찮아요. 크게 말해도 돼요. 모습은 달라도 시우양의 성격이 제 여동생을 똑 닮았더라고요. 마치 환생한 것처럼.”
넬다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아, 포탈에 들어갔다가 이걸 얻었는데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어서요.”
“줘 보세요.”
쪽지를 읽어 내려가던 넬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건··· 예언의 서?”
“예언의 서?”
“우리 대륙의 과거와 미래가 모두 적힌 책이 있다는 소리가 있었어요. 그냥 재미로 보고 이야기로 전해지는 내용인데··· 문장 구조가 딱 그 책 같네요.”
“뭐라고 쓰여 있어요?”
“예언의 서 제35장, 고대의 기계가 작동하면 빼앗긴 세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싸우게 할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자라···.’
“음, 이 단어는 뭐라고 번역해야 하지? 아마 영주님 세상의 용어로는··· 아, 페널티!”
“페널티?”
“예언의 서 제36장, 빼앗긴 세상이 불타오른다. 가장 지혜로운 자의··· 페널티로 약탈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주님, 별 내용이 아니네요. 저건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헛소리예요. 어느 영지에서는 아이들이 노래처럼 부르기도 하고요.”
한스가 김샌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제40장, 강력한 땅의 주인이 나타난다. 두 명의 주인이 우리를 멸망으로 몰아넣는다. 가장 지혜로운 자는 가장 교만한 자와 손을 잡는다.”
‘노스트라다무스야 뭐야.’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넬다, 혹시 라무르라는 이름을 알고 있어요?”
“라무르요? 당연하죠. 대 현자랍니다.”
“현자요?”
“네.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라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도, 저희 부모님이 태어나기 전에도 같은 모습으로 계속 살고 있었다던데···.”
“사람이 맞아요? 은둔하거나 뭐 그런 존재인가?”
“인간은 맞고, 여기저기 행사에 자주 등장했어요.”
“라무르가 가장 지혜로운 자인가요?”
“글쎄요··· 예언 때문이라면 한스가 말했듯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젠장.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냐!’
오크로드와 듀라한이 언급한 이름. 라무르.
고대의 기계가 뭔지는 모르지만 몬스터들을 조종해 싸우게 만든다는 뉘앙스의 글귀와 임무가 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만약 그렇다면··· 36장의 페널티가 바로···.’
파직.
갑자기 상태창이 흔들렸다.
[페널티 남은 시간 : 12:43:15]‘모두 죽게 된다고?’
“넬다 고마워요!”
나는 밖으로 나가 파티원들을 소집했다.
* * *
“아니, 겉은 다 썩어가는 컨테이너인데, 안쪽은 왜 이렇게 좋아?”
“수서 노른자 땅에 이 정도면 소박하지.”
강석호와 나현우가 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오며 감탄했다.
“언니, 모둠전이 너무 맛있었어요. 어디서 사서 넣어둔 거예요?”
“공덕 오거리 전 골목. 맛 괜찮지?”
“네! 너무 맛있어요!”
“휴··· 영주님, 불러내 줘서 고맙습니다. 헤벡 형님이 쉴 틈을 안 줘서··· 크흑.”
김철수가 팔을 주무르며 목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헤벡?”
“드워프 마스터 말입니다. 좀 괴팍하긴 해도 실력이 엄청나더라고요. 스킬 따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걸 몸소 알려주고 계시죠.”
“그런데 갑자기 왜 전부 소집한 거야?”
나는 모두에게 흑마법사의 잔재 임무와 로드와의 대화, 그리고 예언의 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럼··· 네 말은, 빼앗긴 세상이라는 게 결국 지구를 말한다는 거야?”
박성남이 오랜만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가정을 해보자는 거지. 라무르라는 현자가 로드나 이런 몬스터들을 꼬셔서 우리를 침공한다. 페널티는 우리에게 심각한 대미지를 준다.”
“강력한 땅의 주인은 뭐야?”
“그건 나도 모르지.”
“영주를 뜻하는 거 아닐까?”
“근데, 두 명이라잖아. 아직 같은 컨텐츠의 같은 캐릭터로 각성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
“하긴··· 페널티가 내일 아침 9시에 시작하나?”
“그렇겠지.”
“그럼, 저는 일단 정부에 알리겠습니다.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죠.”
김철수가 휴대폰을 붙들고 황급히 나갔다.
그때.
위이이이이잉.
영지를 뒤덮는 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몬스터다! 몬스터! 젠장! 포탈 브레이크야!”
“전투 준비!”
* * *
‘수서역 사거리에 대형 포탈이 3개.’
몬스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젠장. 쪼렙 몹이 거의 없네. 최하가 하이오크야.”
크와아아아아!
순식간에 넓은 도로가 몬스터들로 가득 찼다.
위이이잉.
꽝-! 꽝-!
촥. 촥.
“아니, 저건 셀로브 아냐? 그냥 전설인 줄 알았는데···.”
“트롤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가 정착한 영지는 엄청난 것들하고 싸우는구먼. 아주 마음에 들어 크하하!”
“저기, 저거! 트롤이 들고 있는 도끼! 상급 철로 만든 거 같은데? 저건 다 내꺼다!”
새로 들어온 영지민들도 저마다 무장을 하며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어우, 씨. 뭐야! 포탈 브레이크라고?”
“가서 도와야 하나?”
내 영지에 들어와 있던 수많은 각성자들이 성벽에 올라 쏟아져 내리는 몬스터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임무도 없는데 뭐하러 잡아. 그냥 가자.”
“하긴, 상태창 임무 아무거나 고르면 얻는 거라도 있지.”
“이런 건 서진우 혼자서 다 잡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거기 아저씨들! 어떻게 그런 소릴 해요? 저 몬스터들 그냥 두면 일반인들 그냥 다 죽는다고요!”
시우가 쏟아져 내리는 몬스터들에게 체인 라이트닝을 갈겨대며 투덜거렸다.
“이봐, 슬라임. 목숨은 누구나 하나뿐인 거야. 몬스터를 잡든 말든 각자의 선택을 비난하지 말라고!”
“그래 맞아. 브레이크 한 방에 속초가 어떻게 됐는지 봤지? 각 안 나오면 도망치는 게 상책이야.”
“와, 그래서 속초에 안 온 거라고? 더럽게 치사하네! 흐압!”
파지지지직.
끄어어억!
꽈-앙!
몬스터들은 성벽을 뚫지 못하고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타워를 전방 배치해야겠어.’
뒤쪽에 있던 공격 타워와 치유노래 타워를 앞으로 이동시켰다.
철컥. 철컥.
쿵. 쿵.
수서역 방면으로 14개의 타워가 세워졌다.
‘6개는 혹시 모르니 남겨두고···.’
다른 방향에서 빈집털이가 들어올 수도 있다.
‘진흙 골렘, 해골 소환.’
쿠르르르르르.
덜그럭. 덜그럭.
“키하아아아!”
성벽 밖에서 거대한 골렘이 몸을 일으켰다.
해골 세 마리가 바닥에서 일어나자마자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호의 영향으로 둥근 보호막을 두른 골렘과 해골이 중형 몬스터들을 빠르게 처치해 나갔다.
“아 맞다! 해골!”
시우가 자리에서 통통거리며 해골 두 마리를 소환했다.
“···언데드 소환? 저거 서진우가 소환한 거야?”
“저 슬라임은 또 뭐고···.”
“판타지 문명 IV로 각성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게임이 소환도 가능했어?”
각성자들의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벽을 타고 몬스터들이 최대한 많이 몰려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피해 증폭.’
몬스터들 머리 위로 붉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시체 폭발.’
꽈아아아아아앙—!
삐이이이이.
“끄아아아! 이게 뭐야!”
“내 귀! 내 귀!”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털썩.
‘허억. 허억.’
체력이 쭉 빠졌다.
하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몬스터들이 있던 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치이이이이이.
도로 아래 있던 수도관이 터졌는지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서진우··· 스킬이···.”
“제, 젠장. 1위는 이래서 1위인가? 무슨 폭탄을 막 터트리네.”
“아니 마을건설 게임 아니었냐고!”
“이거 잘하면 다 잡을 수 있겠는데?”
“···크흠. 새로 얻은 장비 테스트나 해볼까? 어차피 타워 있으니 그럭저럭 안전할 거 같은데.”
“하긴, 안전한 상황에서 스킬만 갈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 나도 간다!”
한 명, 두 명···.
몬스터들이 뒤로 밀리자, 각성자들이 조금씩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크하하! ASPD 193의 공속이다!”
“정령소환! 저 골렘을 몸빵으로 쓰자!”
“이럽숀!”
각성자들의 화려한 스킬이 하늘을 수놓았다.
포탈에서는 여전히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성벽을 기준으로 밀고, 밀리는 전선이 형성되었다.
헬리콥터 수십 대가 하늘을 날며 카메라로 내 영지를 찍고 있었다.
* * *
“저기요! 이거 좀 드시면서 하세요.”
“얼마에요?”
“영주님이 주는 선물입니다!”
“오우, 감사합니다. 민트초코라니 완전 혜자네.”
“하··· 밤새 싸우다니··· 몬스터가 왜 이리 많이 나와? 어디 수도꼭지라도 터졌나?”
우리는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지친 사람은 뒤로 빠져 휴식을 취하고 교대하기를 반복.
밀릴 것 같으면 시체 폭발을 적절히 사용하며 전선을 유지했다.
“진우 씨, 이거 좀 드세요.”
수진 씨가 음료수를 내밀었다.
“후우··· 시원하다. 고마워요.”
“아직도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어쩌죠?”
“문제는 몬스터가 아니에요.”
페널티 시간이 다 되었다.
“우리 길드원들도 여기 데려오자.”
“그러게. 골드는 좀 들지만, 여기가 진짜 안전하긴 하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쉬고 있던 각성자가 벌떡 일어났다.
“어? 저게 뭐야? 이봐요! 저기 하늘에···.”
쿠르르르르.
청명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곧이어 먹구름이 몰려들며 해를 가렸다.
번쩍!
쾅!
쏴아아아아.
검붉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우 씨··· 저기···.”
수진 씨가 가리키는 방향.
멀리 보이는 잠실 타워 인근에서 허리케인이 생성되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에요. 그리고 저쪽 성남 방향은···.”
판교 부근에서는 구름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불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페널티 남은 시간 : 00:00:00] [하위 10% 각성자가 마지막으로 있던 자리에 페널티가 부여됩니다.]“야, 빡! 혹시 모르니까 버프 해라.”
“오케이.”
4인방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약을 꺼내 마셨다.
[페널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위 10% 각성자가 있던 장소에 소규모 운석이 소환됩니다.] [하위 10% 각성자가 있던 장소에 용암이 솟아오릅니다.] [하위 10% 각성자가 있던 장소에 포탈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하위 10% 각성자가 있던···]충격적인 상태창 메시지에 모두가 전투를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하늘이 소용돌이쳤다.
땅에서는 진홍색 용암이 솟구쳐 헬리콥터를 집어삼켰다.
허공에서는 수십 개의 포탈이 생겨나며 피를 토하듯 몬스터들을 쏟아냈다.
구름 사이로 주먹만 한 운석이 쏟아져 내렸다.
서 있기조차 힘든 진동과 소음.
귀를 찢는 비명과 고함.
매캐한 유황 냄새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빌딩들.
모든 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단 한방의 페널티로.
내가 알던 세상이 멸망했다.
새로운 경쟁임무와 2차 페널티
문명이 무너졌다.
꼬박 하루 동안 이어진 페널티는 온 세상을 암흑으로 만들었다.
전기와 수도, 통신이 모조리 끊겼다.
피해를 산정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도시가 파괴되었다.
시스템은 잔인하게도 90%에 해당하는 각성자들이 있는 곳은 건드리지 않았다.
무너지는 세상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것을 기뻐할 수도 없는 일.
“나, 나도 하위 10%였는데···.”
“경쟁임무 끝나자마자, 마지막으로 어디 있었죠?”
“충북에 있었어요···. 여기 잠깐 놀러 온 건데···.”
경쟁임무 종료 직후 있었던 장소.
페널티는 그곳을 강타했다.
영지 개발로 휴식 마을이 개방되고 이곳에 들어온 수많은 하위 10% 각성자들이 목숨을 건졌다.
“김철수 씨, 정부 쪽 각성자와 연락이 닿나요?”
“아뇨.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안 그래도 국정원 쪽으로 운석이 떨어지는 걸 봤는데···.”
통신이 끊어졌으니 휴대폰은 무용지물이다.
다행히 상태창에 쪽지 기능이 있기에 영지에 있던 각성자들은 여기저기 서로 연락을 취하며 정보를 모아갔다.
밝은 빛무리와 함께 각성자들이 광장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하나같이 피를 철철 흘리며 있거나,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였다.
서로의 상황을 전하며 피해를 점검했다.
‘수도권은 궤멸, 4개 대형길드는 생존, 지방은 각자도생 중인가···.’
검제, 도제, 알케미스트, 현자.
이들이 이끄는 지역 길드는 살아남았다.
경쟁 임무에서 10%에 드는 인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
그러나 그들이 있던 도시 역시 파괴당했다.
4대 길드도 길드 하우스로 쓰고 있던 건물만 피해 가는 페널티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개 같은 새끼들.”
“누구?”
“상태창인지 몬스터인지 전부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박살 낼 거면 뭐하러 렙업이니 뭐니··· 왜 시킨 거야?”
“좋다고 렙업할 때는 언제고. 각성이라도 했으니 살아남은 거야. 일반인이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라고.”
‘대체 목적이 뭐지···.’
침공이나 궤멸이 목적이라면 상태창을 줄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포탈 브레이크를 발생시키면 끝이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간다.’
이 더러운 장난질을 실행한 놈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바로 그때.
[임무가 발생했습니다.] [임무(경쟁) : 몬스터 행진 방어] [보상 : 6 포인트] [경쟁 보상] [1위 지역 : 10,000,000골드 + 생존 + 포탈 브레이크 감소] [2위-9위 지역 : 5,000,000골드 + 생존] [10위를 기록한 지역에는 추가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참여한 모든 각성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밸런스 조절을 위해 업적 순위 1-5위 각성자가 있는 지역에는 참여 범위가 축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