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6
브렉스턴이 가리키는 곳에는 농장이라고 적힌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저곳에서 농사를 지어. 근데 농사와는 별개로 상상도 하지 못할 규모의 전투식량을 미리 저장해 두었지.”
“농사? 이 동굴 속에서?”
“음. 그런 각성자가 있어.”
땅속이지만 전혀 어둡지 않았다.
“전기는 어떻게 들어오는 거야?”
“지열발전도 있고, 몇만이라더라? 하여간 축전지도 엄청나게 거대한 게 있다더군. 라이트닝 능력자가 충전해주고 있지.”
“흐음··· 아주 안정적이네.”
“살아남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나는 네 영지가 부러운걸.”
“자랑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영지랑 비교는 어렵지.”
“이제 다 왔어. 저 아래야.”
계단을 따라 두 개 층을 내려갔다.
커다란 철문 앞에는 병원 표식이 있었다.
* * *
내부로 들어가자 땅속이라는 걸 잊게 할 정도로 깔끔한 공간이 등장했다.
창문이 없는 것만 빼면 그냥 병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엄청나게 잘해놨네.”
“인구가 있어야 국가가 유지되는 거니까.”
“근데, 이쪽 지역에 힐러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좀 복잡해.”
각성한 치유능력 각성자들의 힐은 일반인에게 안 먹힌다.
대상이 다른 각성자로 한정되어 있다.
물약도 마찬가지라 병원은 일반인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었다.
“미스터 러셀! 오랜만입니다.”
“마이크! 잘 지냈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브렉스턴을 반겼다.
“누구보다 건강하신 분이 여긴 어쩐 일로?”
“옆에 있는 내 친구가 이곳에 누굴 좀 찾는다고 해서.”
“반갑습니다. 누굴 찾으시는지?”
“UCLA Medical Center에서 ICU에 들어가 있던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은 안젤라 우드.”
“우드? 설마···?”
브렉스턴의 얼굴이 굳었다.
“맞아. 제임스의 여동생.”
“잠깐 만난 그 약쟁이 동생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이해할 수 없군.”
“그럴 일이 있어.”
의사가 낡은 컴퓨터를 뒤졌다.
“여기 있네요. B-33에 있는데··· 흠···.”
“무슨 일이죠?”
“연명치료 중단 절차에 들어가 있습니다.”
“네? 왜요?”
“비용 때문이죠.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깨어날 기미가 없는 환자에게 장비를 연결해서 계속 살려두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돈은 이미 다 지불한 거 아닌가요?”
“UCLA 측에 지불한 건 저는 잘 모르고요··· 전산에는 이곳에 온 뒤에 계속해서 미납 상태인 것으로 나오네요.”
‘지독하네.’
장소가 바뀌었으니 돈을 다시 내라 이건가.
“B-33은 어디죠?”
“따라오시죠.”
의사가 앞장섰다.
병원은 각종 약품 냄새로 가득했다.
침대가 모자라 바닥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여깁니다.”
B-33.
안쪽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 밑에 ‘안젤라 우드’라 적힌 차트가 있었다.
“링거도 없네요?”
“치료중단 상태니까요.”
나는 안젤라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서 완전 회복 포션을 꺼냈다.
“어? 그거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그래. 너는 알 수도 있겠군.”
같은 컨텐츠니 한 번에 알아보겠지.
“설마 그걸 이 아이한테 쓰겠다고? 미쳤어? 쟤는 비 각성자야.”
“맹세했거든.”
“맹세? 대체 무슨···.”
나는 눈을 감고 누워있는 안젤라에게 다가가 머리를 받쳐 들어 포션을 입에 흘려 넣었다.
‘근데, 이거 삼킬 수는 있으려나?’
번쩍.
순간, 안젤라가 눈을 번쩍 떴다.
‘성능 확실하네.’
그래야지. 이게 얼마짜린데.
“당신은··· 누구죠? 여기는···?”
“나는 네 오빠 친구야.”
“네? 제임스?”
“그래. 이거 다 마셔라 아까우니까.”
“무슨···?”
혼란스러워하는 안젤라에게 거의 반강제로 물약을 끝까지 마시게 했다.
“미스터 러셀! 대체 저게 뭡니까? 어, 어떻게 일반인을···?”
의사가 헛숨을 삼키며 경악했다.
“음. 알아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구할 수도 없거든.”
“당신이 안젤라 우드, 맞지?”
“네. 제임스가 보냈나요? 오빠는 지금 어디 있죠? 여기는 어디예요?”
“우선은 몸을 회복하는 게 중요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나는 몸을 일으켜 의사에게 다가갔다.
“이곳에 1인실도 있습니까?”
“어, 물론 VIP용 병실이 있긴 합니다. 근데··· 가격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미국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을 구하고 전투식량을 나눠주면서 한편으로 돈 때문에 이런 차별을 하다니.”
“더 내는 자가 더 좋은 시설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 돈으로 이 여성분도 여기 안전하게 누워있는 거고요.”
논쟁할 생각은 없다.
내 영지로도 머리 아픈데 여기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안젤라를 VIP 병실로 옮겨주세요.”
“VIP 병실은 하루에 1,000골드입니다. 만 달러인데···.”
“네, 뭐 저렴하네요. 지금 당장 옮겨주세요. 돈 지불은 어떻게 하죠?”
“재무부에 가서 지불 영수증을 받아 오셔야 합니다.”
“마이크. 이 친구는 내가 한국까지 가서 특별히 모셔왔어. 그런 것까지 처리할 시간이 없다고. 내가 지불보증을 할 테니 지금 바로 처리해줘.”
“아, 그래요. 미스터 러셀이라면 문제없겠죠. 데스크에서 서류에 사인 하나만 부탁합니다.”
“그럼 이제 끝났지? 가자.”
안젤라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이 큰가?’
“이거···.”
안젤라가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려 허공을 가리켰다.
“뭐?”
“아니에요.”
“안젤라, 좀 쉬고 있어. 나중에 다시 와서 자세한 이야기 해 줄게.”
“제임스의 친구라고 했죠? 이름이 뭐죠?”
“서진우.”
“서진우. 알겠어요. 저를 살려주신 거죠? 고맙습니다.”
안젤라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마워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네 오빠야. 아무튼, 다녀올게.”
* * *
브렉스턴과 나는 더욱 깊이 내려갔다.
“여긴 좀 더운데?”
“지열 때문이지. 거의 다 왔어.”
바닥끝까지 내려갔다.
차가운 느낌의 복도.
두꺼운 케이블이 얽기 설기 엉켜 천장을 어지럽게 지나고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여기야.”
브렉스턴이 복도 끝에 있는 커다란 문을 가리켰다.
문에는 썬더워커라 쓰여 있었다.
쿠쿠쿠쿠.
육중한 문이 열리고, 내부로 들어갔다.
‘넓네.’
아주 넓은 개방형 사무실이 떠올랐다.
중간중간 놓인 소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브렉스턴! 어디 갔다 온 거야?”
“임무를 클리어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 왔지.”
“그거 포기한 거 아니었어?”
“아니, 분명 뭔가 있어. 그 임무만 금색이라고!”
‘금색?’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흑마법사의 잔재 처치 임무도 금색이었다.
‘무언가 있다.’
나는 브렉스턴을 따라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똑똑.
“들어와.”
“여어! 마스터! 어쩐 일로 사무실에 다 있네?”
“알고 왔으면서. 아, 그쪽이 미스터 서? 반가워요. 나는 썬더워커의 길드장 사만다 클라우드.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습니다.”
차가운 눈빛을 가진 여성이었다.
“서진우입니다.”
내부 분위기는 고풍스러웠다.
고급 원목 가구들과 책장을 가득 메운 책.
다른 장소와 달리 기분 좋은 향기까지 났다.
“사무실이 아주 좋네요.”
“서진우 씨의 영지만 할까? 앉아요.”
소파에 앉자 사만다가 커피를 내왔다.
“오, 샘! 커피라니. 사치 아냐? 흐흐.”
“그래서 네 건 없어.”
“아 이거 너무하는군!”
“드세요. 커피는 아주 귀하거든요.”
‘우린 콜롬비아부터 케냐 원두까지 다 있는데.’
영지에는 온갖 것들이 가득하다.
모두 영지민들과 수진 씨가 발품을 팔아 저장해 둔 식료품들.
“고맙습니다.”
“이 근육한테 뭐 들은 건 있나요?”
“아뇨.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육이라니? 나는 인텔리라고!”
사만다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추천레벨 30 이상의 골드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서진우 씨를 초빙했습니다.”
“30? 30레벨이 벌써 나왔다고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레벨의 임무.
“맞아요. 그런데 특이한 건, 그 임무는 여기! 이 쉘터에서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흠··· 클리어하면 이쪽 길드에서 제게 보상을 준다고 들었는데요.”
“클리어를 자신하시는군요?”
사만다가 탁자 위로 망치를 올렸다.
“클리어 조건입니다. 이걸 드리죠.”
[손상된 묠니르]– 등급 : A
– 착용 시 귀속
– 자신의 물리 공격력이 감소합니다.
– 착용 효과 : 자신을 따르는 존재의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 착용 효과 : 스킬 [토르의 심판] 사용 가능.
– 토르의 심판 : 대상과 주변에 강력한 심판을 소환합니다.
– 적용 반경 : 50m
– 재사용 대기시간 : 48시간
‘묠니르?’
아서스
‘좋은데?’
왜 주는지 알겠다.
아이템 이름부터가 손상되어 있고 착용 시 물리 공격력이 감소한다.
‘4차원 주머니가 있으니까.’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넣으면 착용 효과가 적용된다.
즉, 물리 공격력 감소는 착용 효과가 아니라 적용이 안 될 게 분명하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짐짓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스킬레벨 올라가는 아이템은 없나요? 좋은 보상을 제안한다 해서 왔더니 영··· 그렇네요.”
사만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진우 씨는 물리 공격을 하는 각성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급하면 후려쳐야 하는데··· 지금 이 검도 아주 쓸 만하거든요.”
브렉스턴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샘! 그거 봐! 내가 다른 거 구하자고 했잖아!”
“시끄러워 렉스. 당장 다른 아이템을 구하기는 어려운데···.”
사만다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이 정도면 내가 꼭 필요한 임무라 이거지.’
어떻게든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사만다, 그럼 조건 하나만 추가하죠.”
“조건?”
“임무 클리어 후, 포탈에서 아이템을 드랍하면 무조건 한 개는 제가 제일 먼저 선택해서 가지겠습니다.”
흑마법사의 잔재 임무 완료 후에는 쓸 만한 아이템을 폭풍 드랍했었다.
이번에도 황금색 임무라면 분명 괜찮은 것들이 떨어질 것이다.
내 제안에 사만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이 영상에서 본 것처럼 강력한 각성자이길 빌죠.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함께 가는 거 그 망치는 먼저 주시죠. 임무에 써먹게.”
“그러시죠. 단, 이걸 귀속시키면 클리어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셔야 합니다.”
나는 아이템을 손에 쥐었다.
– 아이템을 착용하시겠습니까? Y/N
– 토르의 심판을 획득했습니다.
– 물리 공격력이 감소합니다.
– 위엄있는 군주의 검 효과가 사라집니다.
– 자신을 따르는 존재의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4차원 주머니를 열어 묠니르를 집어넣고, 군주의 검을 착용했다.
– 물리 공격력이 회복됩니다.
– 소환수가 입히는 피해가 증가합니다.
‘역시.’
스킬이 그대로 남아있다.
“헤이. 대체 그 주머니는 뭐야?”
“인벤토리.”
“허, 설마 진짜 그 인벤토리?”
“아니, 그 게임과는 좀 달라.”
“아이템을 쓰지도 않을 거면 뭐하러 달라고 한 거야? 내가 그렇게 신뢰가 없나?”
“신뢰의 문제가 아니야. 필요하면 꺼내서 쓰려고.”
“아, 그 스킬? 궁금하긴 하네. 착용 시 귀속이라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곧 보게 될 거야. 사만다, 언제 출발하죠?”
사만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진우 씨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출발하죠. 우리는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그 전에 한 가지 더 물어보죠. 존 도가 대체 누구입니까? 만날 수 있나요?”
움찔.
사만다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그를 어떻게 알고 있죠?”
“어떻게 아는 게 중요한 건 아니죠. 이야기를 좀 나눠볼 수 있습니까?”
제임스를 내게 보낸 예언자.
적어도 한 번은 만나야 할 것 같다.
“제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알고 계시죠?”
사만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제임스 우드, 그와 대화하다 존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제임스? 그는 존을 만난 적이 없을 텐데···?”
사만다가 미간을 좁혔다.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말은 전달해 두겠습니다. 만남의 성사는 전적으로 존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이제 다 정리된 것 같군요. 가실까요?”
“임무에 대해 미리 알려주실 건 없습니까?”
“들어가면 임무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습니다. 현장에서 보시는 게 제일 이해가 빠르시겠죠.”
‘시간이 남는다고?’
정처 없이 헤매는 임무면 곤란한데.
* * *
사만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체육관이었다.
“방공호의 농구코트라니, 너무 사치 아니야?”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군 시설로 썼거든.”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사만다의 안내로 그들 앞에 자리했다.
“여긴 미스터 서, 다들 알지?”
“1위! 1위!”
“엘리미네이터!”
“아니야! 터미네이터다!”
“땅 위의 항공모함!”
썬더워커 길드원들이 환호했다.
“저쪽은 길드원들이고, 각자 소개 좀?”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에반 로우. 각성 능력은 워록!”
에반의 머리 위로 ‘룬’이라 적힌 구슬 3개가 떠다녔다.
“저는 케빈이라 불러주세요. 버서커입니다.”
“윌리엄. 각성 능력은··· 나중에 보면 압니다.”
“윌리엄은 히드라리스크에요.”
‘헉. 히드라리스크?’
멀쩡해 보이는 남자가 히드라로 변신하는 모습이 상상도 가지 않았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