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1
“거의 다 왔다. 저기 작은 산, 저곳만 넘어가면 깊은 골짜기가 나올 테고, 그곳을 내려가면 있지.”
‘계곡이라···?’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 * *
“이곳이다.”
산 높이는 낮았다.
하지만 땅에는 누군가 일부러 할퀴고 지난 간 것처럼 깊은 골짜기가 파여 있었다.
골짜기 아래에는 흙과 돌만 가득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잠깐, 기다려 봐.”
아서스가 목걸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번쩍.
목걸이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가며 골짜기 벽을 강타했다.
쿠르르르르르.
쿵.
절벽이 깎아져 내리더니 입구가 나타났다.
“허··· 이럴 수가. 샘. 다음부터 임무 막히면 무조건 얘 부르자.”
“보상으로 줄 아이템은 있고?”
“아··· 그, 그래도! 이런 모험을 하게 해주는데! 응?”
“입 닥쳐 렉스.”
브렉스턴이 툴툴거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돔 형태의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마법으로 빛을 밝혀 두었는지 내부는 환했다.
“이래서 네가 ‘공간’이라는 단어를 썼구나.’
대피 공간이라는 기묘한 단어가 계속해서 거슬렸다.
‘완전 방공호 같네.’
쿵.
쿠르르르르르.
모든 인원이 대피 공간에 입장하자 바위가 무너져 내리며 입구를 막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우리는 멍하니 서 있었다.
“벽에 뭐 없나? 아까 서진우가 벽을 막 두들겨 보던데?”
브렉스턴이 랜스를 들어 벽을 치고 돌아다녔다.
“가만히 좀 있어 렉스!”
“설마 우리 갇힌 거야? 카트맨! 여차하면 튈 수 있지?”
“물론이지.”
“그나마 다행이네.”
“이딴 거 다 부숴버리겠어! 뭐라도 나오면 다 내 차지야!”
율리아나가 검을 들어 벽을 겨누었다.
“제발 진정해 율. 조금만 참아.”
“참긴 뭘 참아! 당장 몬스터 데려와! 피를 보고 싶다고!”
쾅! 쾅!
“···줄리아는 언제 돌아오는 거지?”
“율리아나가 쓰러지면요.”
율리아나가 브렉스턴과 함께 벽을 향해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사만다가 내 옆에서 한숨을 내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쓰러진다는 게···?”
“슬립 같은 마법을 쓰면 돼요.”
“그럼 왜 가만있는 거죠?”
“줄리아 스킬 봤죠?”
“어, 그거··· 혹시 그 옛날 애니메이션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스킬이 그거 달랑 하나. 그리고 한 방만 써도 기절하고요. 포악하더라도 전투상황에서는 차라리 율리아나가 더 쓸모 있지요.”
“아··· 그럼 전투 끝나면···?”
“그때는··· 다시 줄리아로 돌아오게 해야지요.”
“고생이 많네요.”
쾅! 쾅!
제스터가 벽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이건···?”
말없이 따라오던 제스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뭔지 아시겠어요?”
“오래된 유적을 탐험하는 자들이 떠드는 걸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스터는 대륙을 방랑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유적을 탐험하러 다니는 트레져 헌터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내려오는 수준의 유적들이 있다더군요. 출입구가 없는 특징이 있고, 작동시키면 아공간에 구축된 고대 유적이 나타난다 합니다.”
“고대 유적? 그럼 어떻게 작동시키죠?”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들었을 뿐···.”
단서는 찾았다.
이곳이 목적지다.
“리트라이 할까?”
브렉스턴이 포탈로 시선을 돌렸다.
“리트라이?”
“어차피 임무는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단서도 알았고. 그럼 다시 시작하는 거지. 처음부터.”
“어··· 그건 좀.”
“다시 하다 보면 클리어 시간도 짧아지고, 다른 관점에서 임무를 바라볼 수 있거든. 혹시 다음에 들어올 길드원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나만 해도 고블린 주술사의 숲에 가서 별생각 없이 테스트했고.
그러나 그건 몬스터이기 때문이다.
“흠··· 네 영지에는 이쪽 대륙 NPC들이 많아서 그런 거야? 이들이 사람으로 느껴지나?”
“그럴지도··· 하여간 그건 안 돼.”
수많은 변수를 뚫고 이곳에 왔다.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막말로 대피하다 죽으면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
아서스는 조용히 자신의 목걸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서스, 뭐해?”
“나는 제 2 왕자다.”
“응?”
“정상적으로는 왕위를 이을 수 없다는 말이지.”
“그런데?”
“형님이 왕으로 즉위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실 때, 나는 왕실 서가에 있는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오래된 서적을 특히 좋아했지.”
투둑.
아서스가 목걸이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 이름 없는 어떤 책에서 이런 그림을 본 적 있지.”
아서스가 벽을 향해 목걸이를 던졌다.
파직.
목걸이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며 부유감이 느껴졌다.
‘임무 인스턴스에서 또 다른 인스턴스로 이동한다고?’
* * *
“허··· 이것 봐라?”
파란 하늘이 보였다.
“신전···?”
그리고 눈앞에는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봤던 파르테논 신전과 흡사한 모습의 유적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는 반파된 유적.
공간의 크기도 커졌다.
신전의 정중앙에는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는 파란색 수정 구슬과 검붉은 유리병 3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구슬을 향해 다가갔다.
쿠르르르르.
신전이 진동했다.
유리병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나왔다.
사만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서진우, 위험해요! 건드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영지화.’
쿵.
‘시설 소환.’
철컥. 철컥.
“이러면 되는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조금 더 연구하고.”
“저는 갈 건데, 같이 안 가십니까?”
“저는 브렉스턴 말에 동의해요. 임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계산적이시네요.”
“그게 우리가 미국 최고길드로 거듭난 이유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무모한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애초에 저와 함께하는 이번 임무도 계속 재시작하지 그러셨습니까? 무한 재시작이 최고의 비결인가요?”
“비아냥은 사양하죠. 이 정도로 중요한 분기까지 온 건 처음이에요.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션 클리어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합니다.”
“미국은 미국이네요. 한국인은 좀 다릅니다.”
확실히 생각 구조가 다르다.
임무 막바지까지 왔으면 개돌 한번 해야지.
일단 부딪혀서 끝까지 트라이를 하는 근성이 필수다.
길드원들은 입구에 남았다.
내 옆에는 아서스와 쿨렌, 제스터가 함께했다.
“아서스, 이런 유적 본 적 있어?”
“그럴 리가··· 난 지금 어디로 텔레포트 한 거지? 이게 지금 현실인 건가?”
NPC의 자기 의심.
뭐라 답변할 말이 없었다.
멈칫.
챙.
제스터가 검을 꺼냈다.
“영주님, 저 유리병. 리치의 라이프포스 베슬입니다.”
리치가 자신의 생명을 저장해두는 그릇.
그걸 파괴하지 않는 이상 리치는 계속 부활한다.
임무에서 등장했던 리치 3마리.
지금 눈앞에 보이는 유리병 3개.
쿠르르르르.
신전이 흔들리며 유리병 위로 검은 구름이 짙어졌다.
키히히히히.
그리고 지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시네마틱 트레일러
‘시설 소환.’
성벽과 타워를 재배치했다.
“무, 무슨?”
아서스의 당황한 목소리.
신전 내부라 그런지, 성벽은 자동으로 높이가 조절되어 겨우 가슴높이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불길한 검붉은 구름이 점점 진해졌다.
나는 저격 타워 4기를 수동으로 돌렸다.
거리가 가까우니 심호흡을 할 필요도 없었다.
먼저, 제일 왼쪽에 있던 유리병을 겨누었다.
‘발사.’
콰아아아앙—!
투두둑.
타워가 뒤로 밀려나며 진동으로 신전 기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퍼석!
캬아아아아악!
유리병이 깨지며 검붉은 구름 뭉치 하나가 사라졌다.
“변신할 때 때려야지, 어떤 멍청한 놈이 그냥 보고 있냐?”
“그··· 알겠네!”
제스터가 제일 빨랐다.
그의 검이 타오르는 듯 밝게 빛났다.
“오러 소드···? 대, 대체.”
“저 흔적은···? 저자는 설마···!”
아서스와 쿨렌이 눈을 부릅떴다.
스팟.
제스터의 검이 휘둘러졌다.
팡!
그러나 두 번째 유리병은 조금 흔들리기만 했을 뿐이다.
스팟. 스팟.
제스터가 연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나는 그사이, 다른 타워를 수동으로 조절해 세 번째 유리병을 공격했다.
위이이잉.
촥. 촥.
콰-앙!
‘대인 공격은 저격 타워가 최고네.’
신전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4개의 저격 타워가 한 방에 유리병을 날린 것에 비하면 지지부진하다.
두 번째 유리병 위로 뭉쳐있던 구름이 사라졌다.
거대한 검은 로브.
몸을 휘감는 불길한 기운.
살점 하나 없는 손.
리치가 나타났다.
“아서스! 치유노래 타워 뒤로 도망가!”
“그럴 수는 없네! 나, 나는···!”
“멍청한 놈아! 네가 죽으면 우리도 끝이야! 빨리!”
“내, 내가 죽으면 끝이라고?”
“왕자님! 어서 이쪽으로!”
쿨렌이 아서스를 잡아끌 듯이 데려갔다.
“누가 감히 이곳에 침입하는가.”
“대사 칠 때, 빨리!”
‘골렘, 해골 소환.’
쿠르르르.
“키이하아!”
‘시체가 없으니 스킬도 못 쓰고···.’
4차원 주머니에 몬스터 사체도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하나 정도는 들고 다녀야겠다.
나는 리치에게 약화 저주를 걸었다.
“제스터 유리병만 공격해요! 지금!”
스팟. 스팟.
제스터의 현란한 검술이 허공을 갈랐다.
“크아아아! 죽어라!”
리치의 손에서 검은 구체가 빛났다.
‘골렘! 어글!’
크아아아아!
골렘이 리치를 향해 포효했다.
리치의 검은 구체가 골렘을 향해 날았다.
번쩍.
검은 구체가 순식간에 부풀며 커졌다.
쿠쿠쿠쿠쿠쿠.
거대한 검은 구체의 표면은 너무도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이건 대체 뭔 마법이야···.’
순간, 갑자기 구체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골렘의 형체가 뒤틀리며 점점 작아지는 구체에 빨려들 듯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중력장?’
– 재사용 대기시간 : 00:02:25.
– 재사용 대기시간 : 00:02:23.
저격 스킬을 연타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제스터가 유리병을 향해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날파리 같은 것들이! 제물이 되어라!”
리치의 머리 위로 검은 구체가 생겼다.
다시 골렘을 소환해 어그로를 땡기고 멀리 보냈다.
번쩍!
골렘이 또 사라졌다.
“이놈들!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어그로 개념이 처음인가?’
자기 생각대로 마법이 우리에게 쏘아지지 않자 리치가 더욱 분노했다.
* * *
뒤를 돌아보자 길드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계산이 끝났나 보죠?”
“원망하지는 마세요. 우리는 분명히 최대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제안을 했고, 거부한 건 당신이니까.”
“공격부터 하시죠.”
리치를 향한 현란한 스킬들이 쏘아졌다.
“리치를 패면 뭐해! 저기 라이프포스 베슬을 깨라고!”
“라이프포스 베슬?”
“저걸 깨지 않으면 다시 살아난다고!”
그제야 길드원들이 유리병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크아아아악!”
리치의 몸이 눈에 띄게 투명해졌다.
“거의 다 됐어!”
리치의 손끝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진홍색 화염구가 생겼다.
‘헬파이어다!’
스크롤을 통해 사용해봤던 마법.
나는 곧바로 골렘으로 어그로를 먹고 최대한 멀리 뛰도록 지시했다.
쿵. 쿵. 쿵.
번쩍!
골렘이 있던 자리에 화염 기둥이 솟아올랐다.
쿠르르르르.
꽈앙-!
충격파가 퍼지며 신전의 기둥이 무너졌다.
“빨리! 빨리!”
퍽!
유리병이 깨졌다.
“이, 이놈들! 감히··· 나를···!”
리치가 사라졌다.
이제 남은 유리병은 하나.
제스터는 묵묵히 타겟을 바꿔 마지막 남은 유리병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