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4
안젤라가 빛무리에 휩싸였다.
발 디딜 틈 없는 영지와 제스터 노먼 경
‘안젤라도 각성했구나!’
각성했지만 병상에 누워있었기에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밝은 빛이 사라지고 안젤라가 나타났다.
‘···?’
경외감.
그녀를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이었다.
원래도 예쁘장한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변신 후 모습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수진 씨도 엘프로 변신해 말도 안 되게 예쁘지만, 안젤라는 격이 달랐다.
“제 머리가···? 저는 원래 갈색 머리인데···?”
안젤라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황금색 머리카락을 들고 놀라워했다.
“그게, 변신해서 그래. 혹시 병원에 입원하기 전 즐겨보던 컨텐츠가 뭐였는지 기억나니? 아니면 평소 바라던 일이라거나···.”
“컨텐츠? 소원···? 저는 그냥 모두가 영원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했어요.”
‘음··· 힐러? 버퍼?’
딱 보니 견적이 나왔다.
‘전투형 각성은 아니고··· 지원형인가?’
일반인이 살아가기 험악한 세상에서 뭐가 되었든 각성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이템을 착용해 필요한 걸 누릴 수도 있고, 괜찮은 컨텐츠면 앞으로 살아가기도 어렵지 않겠지.
안젤라의 손을 잡고 휴식마을 입장을 통해 데려가려 했는데 필요 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가르치는 게 좋겠지.
“안젤라, 거기 상태창에 메뉴를 보면···.”
번쩍.
안젤라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럼 나도.’
[휴식 마을]– 각성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휴식처입니다.
– 중립구역입니다.
– 이방인으로 지위가 변경됩니다.
– 적대 행위를 하면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입장하시겠습니까? Y/N
Y를 누르자 부유감이 느껴졌다.
* * *
“아, 거기 밀지 좀 마요!”
“나는 포장이라고! 구매만 하면 된다니까?”
“나도 포장이야! 이거 다 포장 줄이야!”
“후, 후. 역시 진라면은 매운맛이야.”
광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뭐야 이거?’
출퇴근 시간의 신도림역.
아니, 9호선 급행열차를 보는 것 같다.
바닥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최하급 체력 회복 포션 팝니다! 500골드!”
“이거 진짜 되는 거 맞아요?”
“아, 속고만 살았나! 대신, 많이 회복 안 됩니다.”
“하나 주세요!”
“거래 걸어주십쇼! 감사합니다!”
‘좌판?’
분수 위에 올라간 사람도 있었다.
“레벨 10 이상 임무 함께 하실 분! 저는 격수요! 바실리스크 업적 있습니다!”
“마법사 아무 곳이나 갑니다! 파티 넣어주세요!”
‘파티···?’
인종도 다양했다.
전 세계에서 내 영지를 찾아왔다.
곳곳에 피투성이가 된 각성자들도 보였다.
“살려줘··· 누가 힐 좀···.”
“저기 계속 똑같은 노래만 나오는 타워 옆에 서 계세요. 회복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끄으으··· 젠장. 죽기 직전에 잘 도망쳤다.”
“우리 지역 몬스터는 언제 다 잡냐. 죽겠네! 진짜.”
“일반인이세요? 저쪽으로 쭉 가세요. 목조 주택이 보이면 주변 사람 아무나 붙잡고 처음 왔다고 하면 안내해 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각성자들은 휴식마을의 존재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세상이 멸망에 가깝게 궤멸하였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있는 구역은 1위를 한 덕에 한산했지만 다른 지역은 몬스터와의 끝없는 사투를 이어가는 중이다.
전투 중 생존자를 발견하거나 다쳤을 때 이곳을 찾는다.
“와, 저 여자 좀 봐. 저렇게 예쁜 여자 처음 봐···.”
“예쁜 게 아니라··· 왠지 저 사람한테 기도를 올려야 할 것 같은데···.”
“헤이! 거기 예쁜이, 시간 있니?”
한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안젤라!”
“서진우!”
나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인 안젤라를 잡아끌었다.
안젤라를 데리고 대장간으로 이동하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깡! 깡!
김철수는 웃통을 벗고 묵묵히 망치를 내리치고 있었다.
“김철수 씨!”
“아, 영주님!”
“영주? 저 사람이?”
“그럼 저 남자가 서진우야?”
“옆에는 누구야? 엄청나게 예쁜데?”
바빠 보이는 김철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수진 씨랑 시우는 어디 있어요?”
“음식 나르다가 뻗었어요. 숙소에 가 보십시오.”
“음식?”
“나중에 식당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난리입니다.”
나는 다시 안젤라를 데리고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 * *
“아이고 슬라임 죽네···.”
반쯤 녹아 흘러내린 슬라임.
시우가 식탁 위에서 흐물거리고 있었다.
“시우야!”
“아저씨! 어···?”
안젤라를 발견한 시우의 몸통 색이 진한 파랑으로 변했다.
“이 변태 아저씨! 지금 숙소에 누굴 데려오는 거야?”
파즈즈즈즈.
“시우야 그만! 진우 씨 오셨어요?”
수진 씨가 안젤라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옆에는 누구세요?”
“여기는 안젤라 우드. 인사해. 저기는 박수진, 옆에 슬라임은 정시우.”
“안녕하세요···?”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식탁에 앉아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했다.
“그럼··· 우리 오빠는 죽은 거군요.”
안젤라의 흐느낌이 숙소에 울려 퍼졌다.
“흠흠. 아저씨 아까 변태라고 해서 미안요. 진작 말을 하지···.”
“아니, 말할 틈도 안 주고 머리꼭지에서 전기를 뿜으면···.”
“둘 다 그만. 안젤라? 너무 슬퍼 마세요, 이제 우리가 당신과 함께할게요. 그리고··· 변한 세상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죠?”
“아저씨, 이제부터는 여자들의 시간이니까 이제 나가요. 가서 식당 일이나 좀 도와요. 일손이 너무 부족해.”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그건 변태 아저씨한테 들어요. 지금 식당에서 접시 나르고 있을 걸요?”
“접시···?”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각성자들 말고도 일반인들까지 여기로 몰려들고 있어요. 목숨 걸고 찾아온다던데···.”
“각성자들이 데려오는 게 아니라 따로 찾아온다고? 다행이네··· 그런데 집이 모자라진 않아?”
“그래서 변태 아저씨랑 몇 명이 나가서 캠핑용품 엄청나게 털어왔어요. 나무로 지은 집은 한계라···.”
“음··· 그럼 방법을 좀 찾아야겠네.”
“그쪽 가보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완전 난민캠프가 따로 없어요···.”
“그럼 그 사람들 식사는?”
“밥이야 무한 생성되잖아요. 그래서 기존 영지민들이 난민캠프 쪽으로 빠지고, 식당 운영할 사람이 없으니 변태 아저씨가 간 거죠.”
“그동안 고생들 많았겠네. 아, 맞다! 시우 너 이거 먹어라.”
나는 부랴부랴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내 놓았다.
[실버마인 산의 부츠]– 등급 : A
– 착용 시 귀속
– 착용 효과 :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한 개 증가합니다.
– 삭제된 자료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꺄악! 이게 뭐야! 또 A급? 나 주는 거예요?”
“어, 근데 너··· 부츠 못 신잖아. 잡아먹어도 아이템 효과는 볼 수 있지?”
“물론이죠. 스킬 슬롯 +1 이라고? 꺄아아! 아저씨 최고! 최고!”
시우가 재빨리 몸을 부풀리더니 덥석 부츠를 집어삼켰다.
움찔.
안젤라가 그 모습을 보며 주춤했다.
“괜찮아요. 안젤라? 시우야, 다 됐으면 변신 좀 풀어줘.”
“넵. 아 이거 너무 좋은데? 정말 딱 필요한 아이템이야. 흐흐흐.”
“그래, 좋다니 나도 좋네.”
“그럼 아저씨 이제 그만 나가요.”
“그래. 아, 수진 씨 것은 안 나왔어요. 미안해요.”
“예? 아뇨! 미안하실 필요가 있나요? 괜찮아요. 진우 씨가 무사하니 다행이죠.”
“있다가 저녁에 이번 임무 이야기해 줄게요.”
“뭐 특별한 게 있었나요?”
“네. 그리고 아셔야 할 것도 있고.”
‘멀티 지역으로 가는 영지 포탈은 숙소에 만들어야겠어.’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컨테이너.
이 숙소가 영지민들의 고향인 포탈 속 세상으로 넘어가는 워프 게이트를 설치하기에 제격이다.
“안젤라,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제가 쓰러지기 전, 18살이었으니까···.”
“그럼 지금은 20살?”
“네.”
“우와. 안젤라 언니네?”
“안젤라. 그럼 편하게 말해도 괜찮죠?”
“물론이죠.”
“이제부터 저쪽 방을 안젤라가 쓰면 되겠다.”
“안젤라 언니! 혹시 저 방 말고 가운데 방 쓰고 싶으면 말해요. 거기 사는 변태는 쫓아내면 되니까!”
여성들의 수다를 뒤로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여기요! 저희 거 언제 나와요?”
“곧 나옵니다!”
“저희가 주문한 부대찌개 2인분은 큰 솥에 나오나요?”
“저흰 무조건 1인분씩 각자 나옵니다.”
“여기요! 이쪽은 언제 나오나요! 벌써 주문한 지 30분도 더 됐어요!”
식당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줄.
‘이 줄이 광장까지 이어진 거야?’
삐-익!
중년의 한 남성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거기! 새치기하지 마세요! 번호표 나눠드리니까 줄 안 서도 됩니다! 포장하실 분은 따로 말씀하세요!”
“저 사람 경찰 아니야? 경찰이 왜 여기 있어?”
“일반인인가? 살아남은 것도 용하네.”
“팀장님···?”
“영주님!”
기동대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다 말고 내게 달려왔다.
“무사하셨군요!”
“네. 운이 좋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아, 전부 무사합니다. 가족들도요. 박성남 씨가 배려해 줘서 모두 여관에서 편하게 쉬고 있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모두 무사히 구출해낸 모양이다.
안도감과 함께 뿌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영주님,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예? 아니 제게 감사하실 필요는···.”
근처 군부대에 몸을 의탁하던 가족들.
페널티가 터지자마자 팀장은 가족들을 방공호로 보냈다.
우왕좌왕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임무 경험이 많던 팀장은 침착하게 팀원들과 함께 대피했다.
“딱 봐도 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죠. 방공호에서 버티다 보니 주오가 오지 뭡니까? 하하.”
“미리 잘 대처하셨네요.”
“박성남 씨 제안으로 아예 가족들과 함께 여기에 이주했습니다. 영주님 허락이 없었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계속 계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만있을 순 없어서···.”
“여보!”
단아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여기! 제 아내입니다. 이분이 영주님이셔. 인사해.”
“안녕하세요. TV에서 많이 뵀어요. 이렇게 큰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편하게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식당을 오래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식당에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네? 아니, 가족분들은 그냥 쉬셔도···.”
“지금 이런 상황에 어떻게 쉽니까? 하하.”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저야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만···.”
“그럼 지금 당장 식당으로 갈게요. 진수 엄마! 거기 부녀회 데리고 빨리 와! 진수 엄마가 카운터 보조해. 그쪽은 캠프로 음식 나르고, 이쪽 엄마들은 여기서 얼른 서빙하고.”
“알았어! 기다려! 호호호호.”
아주머니들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앞치마를 입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른 팀원들은 어디 있어요?”
“아, 광물이 부족해서 아이템 수리가 안 된다더군요. 아마 광산에서 돌 캐고 있을 겁니다.”
“네?”
“쓰레기 청소하는 친구도 있고요. 식료품이 계속 생성되는 건 좋은데,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서···.”
“쓰레기요?”
“네. 다행히 난민 캠프 쪽은 자체적으로 사람들이 나서서 잘 치우긴 하는데··· 아무래도 돈 내고 사 먹는 각성자들은···.”
“아··· 골치 아픈 일투성이네요. 그럼 있다가 저녁에 시간이 좀 나면···.”
팀장이 손을 휘저었다.
“듣자하니 지구 반대편에서도 온다더군요. 어제부터 종일 이러고 있습니다. 새벽도 똑같아요.”
일손이 부족하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박성남이 식당에서 쫓기듯 나왔다.
“팀장님! 사모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크윽.”
“빡 왔냐? 이게 다 뭔 일이야?”
“숙소로 가자. 설명해 줄게.”
“거긴 안 돼. 일단 여관으로 가자.”
“오케이.”
도착한 여관 앞도 똑같았다.
계단에는 텔레포트 이펙트가 끊이지 않았다.
‘후우. 대체 뭔 일이야···.’
* * *
“흠. 그래서 홍보글 하나 올렸더니 이 모양이 된 거라고?”
“어. 저번 경쟁임무 말이야. 사람만 많았어도 더 쉽게 깰 수 있었을 거 아냐. 그래서 일단 사람들 좀 편하게 오가게 하면 어떨까 했지.”
“효과가 굉장하네.”
“홍보 글도 홍보 글인데, 아무래도 이제 세계 어딜 가던 간편하게 5골드 내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
“그건 그렇겠지.”
캘리포니아 메가쉘터.
땅속에서 살고 있다.
미약하게나마 문명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정상적인 삶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경쟁임무에서 빡세게 1위 하고 나니 근처에 몬스터도 거의 없어. 진정한 휴식 마을이 돼버렸지. 거기에 5골드, 10골드면 뭐···.”
“흠··· 근데 사람이 너무 많아. 그것도 문젠데···.”
“일반인들은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받을 거야?”
“당연하지.”
“하아, 각성자들만이라도 좀 덜 오면 좋겠는데··· 초반엔 많이 오니까 좋다 싶었는데, 지금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점점 나아지겠지. 그렇다고 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어. 아, 맞다. 이거 받아라.”
나는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윙그레이브 마법봉]– 등급 : A
– 착용 시 귀속
– 착용 효과 : 모든 공격이 광역으로 변경됩니다.
– 광역으로 변경된 공격은 대미지가 분산됩니다.
– 남녀 공용입니다.
“헐···? 이거 뭐야?”
“이번에 얻었어.”
“A급? A급이 드랍했다고?”
“그래.”
“저번엔 시우랑 가서 먹어오더니··· 너 뭐 아이템 복터졌냐? 완전 축캐네.”
“마법봉 보니까 네가 떠오르더라. 옵션도 탱으로 쓸 만하고.”
“데미지는 줄어도 광역으로 패는 거면 어그로 먹기 최고지. 이거 진짜 그냥 주는 거야?”
“어, 더 빡시 게 탱 하라고.”
“고맙다.”
박성남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마법봉을 소중하게 집어 들었다.
“저녁에 사람 좀 빠지면 우리 파티원들 다 모아서 할 이야기가 있어. 새로운 사람도 왔고.”
“새로운 사람?”
“그래. 있다가 보면 알아. 그리고 일반인들은 얼마나 구조했어?”
“엄청나게 많이. 아직도 계속 와··· 셀 수도 없어.”
“거기도 좀 어떻게 해야겠네. 아무튼, 알았어.”
“오케이!”
나는 박성남과 헤어지고 병영으로 이동했다.
* * *
“여긴 안 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