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아 그냥 두어도 될 것 같다.
“그냥 씻으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상처가 덧날 거 같은데··· 해 뜨면 뭐라도 좀 구하러 나가봐요.”
“예. 그나저나. 저 울프는 어쩌죠?”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화이트 울프.
앉아있어도 수진 씨보다 크다.
‘완전 개 같네.’
큰 이빨을 가진 무서운 개.
“아마 레벨이 오르면 소환 해제, 재소환이 될 거예요. 제가 하던 게임에서도 그랬으니까···.”
수진 씨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 하는 게 뭐 부끄럽다고 그래요? 그럼 일단 연구시설에 넣어두세요. 아직 해 뜨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쉬다가 나중에 움직여요.”
“네. 고마워요. 정말.”
‘후우. 달밤에 체조했네.’
그래도 짭짤한 소득은 있었다.
든든해진 타워를 한번 흘깃 바라보고 컨테이너로 들어가 누웠다.
* * *
“진우 씨.”
컨테이너 밖에서 수진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으흠. 예, 예. 나갑니다.”
나는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수진 씨가 밝게 웃으며 연구시설을 가리켰다.
“식사 하세요. 창고에서 꺼내서 차려놨어요.”
“앗. 감사합니다.”
‘영지민을 들이길 잘했어.’
비록 포장 음식이지만 누군가 밥을 차려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연구시설에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설렁탕이 놓여 있었다.
“크으. 좋네.”
음식을 저장할 때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모양이다.
비록 뜨끈한 탕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화이트 울프는 소파 옆에 자리를 잡고 배 깔고 엎드려 있었다.
“쟤는 아주 태평하네요.”
“순해요. 생각보다. 귀엽고.”
“순하다라···.”
새벽녘에 눈앞에서 라이브로 바라본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
수진 씨가 가진 귀여움의 개념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
“저거 밥은 먹어요?”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종의 게임 소환수 취급이라.”
“편리하네요. 먹고 싸는 거 치우는 것도 일인데.”
그 때,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임무가 발생하였습니다.] [오크 마을을 파괴하세요.] [보상 : 1포인트]임무 메시지에 특정 포탈을 봉인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오크 마을? 이게 어디 있는지 알고?’
포탈 위에 간판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뭐가 오크 군락인지 어떻게 아는가?
“왜요?”
수진 씨가 굳은 얼굴을 한 내게 물었다.
“임무네요. 오크 마을이라는 곳을 파괴해서 포탈을 봉인하래요.”
“오크 마을 포탈이 뭐예요?”
“그게 바로 문제인거죠. 수진 씨는 임무 없어요?”
“임무요? 그게 어디 나와요?”
“상태창 옆을 잘 보세요.”
수진 씨가 허공을 주시하더니 손뼉을 마주쳤다.
“앗! 저도 있어요! 소환수와의 친밀도를 높이래요!”
“뭔가 되게 평화로운 임무네요.”
‘나만 왜 이 모양이야?’
타워와의 친밀도 향상.
위생시설 5회 사용.
이런 임무 얼마나 좋은가?
오크 마을이라니···.
막막했다.
단서하나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포탈을 봉인하라니.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손을 넣자, 무언가가 만져졌다.
하얀 명함.
국정원 김 사무관의 전화번호다.
‘어차피 이런 세상이라면···.’
당장 온 세상이 아수라장이 된 마당에 공권력, 그것도 각성자들을 모아서 몬스터에 대항하는 곳과 친분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일단 떡밥을 좀 흘리면서 오크가 출몰하는 곳을 알아보면 되겠지.’
지난번에 괜히 퉁명스럽게 대한 것 같아 조금 후회가 되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김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시죠? 서진우라고.”
– 아, 그때 그?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전화를 먼저 걸 줄은 몰랐던 걸까.
“몬스터 나오는 포탈을 하나 봉인 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 뭐라고?
밥 먹자는 듯 가볍게 던진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는 경악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색과 구조
“차 좀 한대 빌려주세요.”
휴대폰 너머에서 한숨 섞인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서진우 씨. 여기가 무슨 동네 심부름센터인 줄 알아?”
“포탈 내부. 궁금하지 않으세요?”
“뭐, 뭣?”
“포탈 없애러 갈 건데요. 차 한 대 좀 빌려주시라니까요?”
“자, 잠깐 기다려요.”
언뜻 반말이던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며 전화가 끊어졌다.
‘초기에 존재감을 보여야지.’
한창 TF다 뭐다 하면서 각성자를 모아 정부조직을 만들고 있다.
초반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면 추후 윤택한 생활이 가능하다.
‘이럴 때 개국공신이 되어보는 거지.’
언제 이 모든 게 끝날지 모른다.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려면 미리미리 인지도를 쌓아두어야 한다.
‘게다가 이것들도 문제란 말이지.’
나는 새로 생긴 시설들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이곳은 엄연히 농작지다.
즉, 이 건물들은 모두 불법건축물이란 소리.
지금이야 세상이 이런 판이라 그냥 넘어간다 해도, 나중에 불법 건축행위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야말로 탄탄한 인맥과 쌓아올린 명성이 필요할 때다.
부우우우웅.
끼이이이익.
도로에 새카맣게 칠한 밴 한대가 급하게 정차했다.
김 사무관과 정장을 입은 남성 하나가 내렸다.
“허, 저건 뭐야?”
김 사무관이 멍한 표정으로 타워를 바라보았다.
“금방 오셨네요? 가까운데 계시니 이런 장점도 있네요.”
수서역에서 국정원은 차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
“서진우 씨, 전화상으로 하신 말씀 진짜입니까?”
“네. 다만, 일전에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각종 편의와 혜택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은데요.”
김 사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만 우리도 아직 당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확인한 건 아니니까. 이번 작전을 해결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죠.”
합리적인 수준의 제안이다.
나는 국장에게 받은 고프로를 꺼내 보였다.
“이걸로 내부를 촬영하면 됩니까?”
“조건이 더 있습니다. 여기 이 친구도 각성자입니다. 김 정보관. 인사하지.”
“김철수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남자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출퇴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얼굴이었다.
“김철수라니··· 가명 아니에요?”
김철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김 사무관이 바쁘게 휴대폰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김 정보관과 함께 들어가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만약을 위해 경호 인력이 둘 정도 더 붙을 겁니다.”
“좋습니다. 단, 제가 돌아올 때까지 몇 가지만 더 준비해 주실 게 있는데요.”
“뭐죠?”
“일단 채소부터 고기까지 종류별로 식재료를 좀 준비해 주시고요. 성인남성 및 여성 표준 사이즈 의류도 여러 벌 준비 부탁합니다.”
“음식? 옷?”
김 사무관이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허허벌판에서 거주하시면 필요할 법도 하겠네요. 작전만 성공적으로 완수하신다면 필요한 모든 것들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아! 포탈 말인데요. 오크가 나오는 곳으로 좀 알아봐 주시겠어요?”
“오크요?”
김 사무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오크요, 오크! 뭔지 모르세요?”
“뭔지는 아는데··· 왜 꼭 오크가 나오는 곳이어야 하죠?”
김 사무관이 바쁘게 휴대폰을 놀리며 계속 물었다.
직업 습관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흠. 사실대로 말할까?’
직원 중에도 각성자가 있다면 다 알게 될 정보를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제 각성자 임무가 떠서요. 오크 마을 포탈 봉인입니다.”
“봉인? 임무?”
김 사무관이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네. 각성자들은 각자 고유한 임무를 받아 그걸 해결하면 능력이 향상됩니다. 설마 정보기관에서 그걸 몰랐다고 하시지는 않겠죠.”
김 사무관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협조할 마음이 생기신 것 같군요. 솔직하시니 좋네요. 저희도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역시, 임무 같은 것도 다 알고 있었군.’
“나다, 수서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오크출몰 포탈 좀 찾아봐.”
잠시 전화를 듣고 있던 김 사무관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병신 새끼야. 긴급이라고! 경찰이던 소방이던 군이던 아무 상관 없으니 보고자료 검색해!”
김 사무관이 전화를 끊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금일 오전 03시 양재역 사거리에 포탈이 생겼답니다. 오크가 나오고 있고요.”
‘가깝네.’
마침 딱 좋은 거리다.
나는 교차검증을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서 양재역을 검색했다.
[일반]양재역에 녹색 근육 오크 실화냐?
– 모든 온라인 게임에서 마을 앞 호구 몬스터가 이렇게 강한 거 실화냐? 버거왕 박살남. 새벽에 포탈 생긴 듯?
┗ 지하차도에 아예 살림 차렸네.
┗ 군인들 뭐하냐? 빨리 가서 쳐 죽이지 않고.
┗ ㅅㅂ 출근해야 하는데 저길 막으면 어쩌라고.
┗ 이 와중에 출근 실화냐? ㅋㅋㅋㅋ
┗ 아 짱나게. 다음 달에 정규직 전환인데.
┗ 군도 정신없어. 아마 다른 데부터 간 듯.
┗ 각성한 놈 있으면 가서 좀 처리해. 출근 좀 하자.
┗ 출근 빌런이네 ㅅㅂ ㅋㅋㅋ
┗ ㄹㅇ ㅋㅋ
┗ 나 어제 풍성충 각성했는데 오크 꼬시기 가능?
┗ 네 다음 머머리.
어디로 가야 할지는 정해졌다.
“잠시만요. 곧 올게요.”
나는 연구시설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수진 씨에게 다가갔다.
“양재역에 좀 다녀올게요. 오크 마을이 거기 있다네요.”
“가, 같이 가요!”
“저걸 데리고 어떻게 가요.”
나는 화이트 울프를 가리켰다.
저놈을 데리고 다니면 하루아침에 인터넷 스타다.
수진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하긴, 그렇네요···.”
“수진 씨는 여기를 지켜줘요. 혹시 모르니까.”
“저 타워 옆에만 있으면 되죠?”
“네.”
“알겠어요!”
나는 후라이팬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가시죠.”
우리는 차를 타고 양재역을 향해 출발했다.
* * *
차량이 양재 시민의 숲에 들어섰다.
“왜 여기로 온 거죠? 아직 조금 더 가야 하는데.”
“경호 인력도 붙여야 하니까요.”
김 사무관이 익숙한 몸놀림으로 관리사무소 건물에 들어갔다.
지하에서 특수 기동대 복장을 한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총기함을 들고 올라왔다.
철컥, 철컥.
MP-5, K2 등 각종 무기를 장착하는 기동대원들.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근데, 이분들은 각성자가 아니시죠? 일반인도 포탈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들어갈 수 있습니다.”
김철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들어갈 수 있다고요? 어떻게?”
“이미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단, 들어가긴 했지만 돌아오지는 못했죠. 그곳에 기동대원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했다? 아. 임무!’
수서역 포탈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입장하자마자 돌아갈 길이 없어졌다.
임무를 완수하고 자동으로 포탈을 탈출했다.
‘각성자가 없으면 임무도 없고, 그러면 포탈도?’
이 부분은 추후 확인해 보아야겠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임무 없이 포탈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갇혀버릴 수 있으니까.
정비를 마치고 김 사무관이 운전대를 잡았다.
모두 차량에 올라탄 뒤, 나는 옆에 앉아있는 기동대원에게 물었다.
“동료들은 어느 포탈에 들어가셨죠?”
“어젯밤··· 서초에 생긴 오크포탈에 들어갔습니다.”
‘오크 포탈이라···.’
“아··· 안타깝네요.”
가뜩이나 어색한 분위기가 더욱 침울해졌다.
“저 통성명이라도··· 저는 서진우입니다.”
“이장호 팀장입니다.”
“김성우입니다.”
“곧 도착하겠네요. 모두 준비들 하세요.”
정신없이 파괴된 양재역 사거리가 보였다.
인터넷에 쓰여 있던 대로 오크들은 지하 차도에 들어갔는지 지상의 포탈은 홀로 고고히 빛나고 있었다.
“각성자님. 주의사항이 있습니까?”
옆에 있던 이장호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포탈을 바라보았다.
“들어가시면 환경이 급격하게 변해서 놀라실 수 있어요.”
“환경이요?”
“네. 저 같은 경우, 고블린 포탈에 들어갔었어요. 아주 덥고 습한 정글 같은 세상이었죠.”
이장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비를 장착했다.
나는 지급받은 방탄모에 고프로를 끼워 넣었다.
“들어가시죠. 무운을 빕니다.”
김 사무관의 조촐한 환송을 끝으로 우리는 천천히 포탈에 진입했다.
* * *
한적해 보이는 산골 중턱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덥고 습하지 않았다.
녹음이 우거진 숲에는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임무 : 오크 마을 포탈을 봉인하세요.]‘예상대로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장하자마자 공격을 받지도 않았고, 임무도 떴으니 해결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
김철수가 허공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저도 임무가 발생했습니다. 오크 마을 포탈 봉인.”
“원래는 없으셨어요?”
“그렇습니다.”
‘좋은 정보군.’
한 사람만 임무가 있어도 각성자 끼리는 임무가 공유되는 모양이었다.
‘임무가 없는 각성자가 입장하면 어찌 되는 거지?’
그냥 입장해도 임무가 발생한다면 만만한 곳을 봉인하며 포인트 벌이가 가능하다.
‘나중에 테스트해봐야겠어.’
재수 없어서 여기 갇히면 큰일이다.
“어디로 갑니까?”
기동대원들이 총을 장전했다.
“저도 몰라요. 어느 방향으로 가라고 친절하게 내비게이션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근데, 아마 이 근처일 겁니다. 이전에도 그랬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기동대원들이 앞장섰다.
“마을이라 했으니 산 위쪽으로는 없을 겁니다. 하산하면서 수색해 보죠.”
신중하게 숲을 헤치며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적막한 숲이었다.
산새들과 동물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것조차 없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전부였다.
“김철수 씨는 마지막으로 경험한 콘텐츠가 뭐에요?”
“무슨 말씀이신지?”
“각성이요. 인터넷 보니까, 어떤 대머리 아저씨는 로맨스 보다가 머리가 자라났다고 하더라고요.”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군요.”
“아니, 어차피 함께 싸워야 할 사이인데, 좀 알려주면 안 돼요?”
“서진우 씨는 무엇으로 각성하셨습니까?”
김철수가 묻자 기동대원들도 관심이 생겼는지 눈을 힐끔거렸다.
“저는 게임하다 각성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