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5
남성이 소리치자 수풀이 흔들리며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타났다.
’20명 수준인가.’
“어? 유튭에서 봤던 서진우랑 똑같이 생겼는데···?”
“서진우? 정말 닮긴 닮았네··· NPC는 처음 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들은 누구죠? 여기 왜 있는 겁니까?”
“저희는 황금색 임무를 수행 중인 각성자들 입니다.”
“황금색 임무···? 설마 제게 쪽지를 보냈던?”
“어? 진짜 서진우 각성자세요? 제, 제가 쪽지 보냈는데···!”
선두에 있던 남성이 검을 내리고 입을 쩍 벌렸다.
말보런스 대륙 한가운데서 골드 미션에 입장한 각성자를 만났다.
낙원, 티르 나 노그
“저희와 함께 입장한 게 아닌데, 어떻게 이곳에 계세요···?”
‘이런, 망할.’
아직 말보런스 대륙에 관해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30레벨 후반 임무 수행 중입니다. 이렇게 만나기도 하나 보네요.”
“아··· 역시 레벨이 높으시니까 혼자서도 가능하신가 보군요?”
“그럭저럭 가능합니다. 임무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서···.”
“임무 중에 만나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진행 중인 임무에도 난입할 수 있으니까요. 시스템이야 워낙 알 수 없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죠. 난입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필드가 겹치기도 하나 보네요. 하기야 게임만 해도, 같은 필드에서 다른 퀘스트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별 의심 없이 이해하고 넘어간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죠. 저는 서진우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아, 저는 현자 최선우라고 합니다.”
“현자? 설마?”
“네. 제가 영남 각성자 연합회장 최선우입니다.”
“이렇게 젊은 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요.”
검제 덕분에 연합회장들은 당연히 나이가 많을 거로 생각했었다.
“하하. 네. 다들 비슷한 이야기들 하십니다.”
유쾌한 청년이다.
“현자라고 하셔서 당연히 예언자인줄 알았는데··· 검을 들고 계시는군요?”
“크하하! 저놈 아이디가 현자타임이라서 현자예요!”
뒤에 있던 길드원이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를 질렀다.
현자 최선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는 탱커입니다. 저희는 부산 제네시스 겜방에서 같은 겜 하던 애들이거든요. 함께 각성해서···.”
“선우는 각성 전날 타릭 픽해서 탱커가 됐어요!”
“타릭? 아··· 그 게임이구나? 그런데 왜 변신은 안 하시고?”
전설의 리그를 플레이하던 친구들인 모양이다.
“변신은 꼭 필요할 때 만해요. 궁 빼면 일반 스킬은 이 모습에서도 나가서요.”
“하필 각성 전날 플레이하던 게 수영팬티 입은 스킨이라서요! 크크크.”
“닥쳐! 서진우님이랑 대화 중인데!”
그때, 상태창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임무가 발생했습니다.] [다크 엘프의 숲 이상현상 조사] [보상 : 5 포인트] [다크 엘프 대 장로 구출] [보상 : 5 포인트] [페르다 처치] [보상 : 5 포인트]‘어? 임무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
상태창 임무가 생기기 전에는 한 명이라도 임무가 있으면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도 같은 임무를 받았다.
‘여기서도 적용되는구나.’
나는 짐짓 모른척했다.
“현자 길드는 임무가 뭐죠?”
“아! 저희는···.”
“닥쳐! 내가 말한다고!”
뒤쪽에서 누군가 말을 꺼내자마자 최선우가 버럭 했다.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으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뇨. 알려드려야죠. 휴식 마을 주인이신데. 저희 임무는 숲에 있는 다크 엘프를 찾아 일정 수량만큼 처치하는 겁니다.”
아서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크 엘프와 싸운다고? 숲에서? 그게 무슨···?”
“서진우님은 무슨 임무신지요?”
‘이것 봐라?’
물론 이해는 한다.
고급 임무일 지도 모르는 특수한 금색 제목.
게임센스가 조금만 있어도 알 수 있는 필드의 다른 느낌.
‘독식하려는 거지.’
내 능력은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골드파티를 하기도,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 애매한 상황.
“저는 여기 NPC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정 구간까지 호위하는 단순한 임무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반가웠습니다. 나중에 휴식마을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죠.”
최선우가 떠났다.
‘나야 임무 받았으니 아무 상관 없지만···.’
솔직하게 까놓고 말했으면 도와주려 했다.
나와 함께하면 임무 진행 난이도가 수직으로 하락한다.
각종 가호와 밤을 보낼 수 있는 식사, 안전한 잠자리 제공 등등.
현자 길드는 굴러들어 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찼다.
‘나는 쿨 하니까.’
두 번 잡지는 않는다.
“가자 아서스.”
“자네 표정이 안 좋은데?”
“좋아서 그래. 좋아서.”
나중에 현자 길드 건물 임대료를 올려야지.
* * *
“아서스. 페르다가 뭐지?”
“음··· 페르다? 내가 아는 페르다는 숲의 신밖에 없는데?”
“숲의 신? 신이라고?”
“아. 신은 그냥 부르는 말이고··· 뭐라고 해야 하나··· 지배자? 뭐 그런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지배자? 다행이군.”
난이도가 급속도로 요동쳤다.
‘신이면 바로 퇴각이지.’
그래도 지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쉽게 쓰러지지는 않을 텐데.
“페르다는 왜?”
“음··· 페르다를 처치해야 해.”
멈칫.
“뭐?”
아서스가 그 자리에 정지했다.
“다크 엘프와 하이 엘프의 사이가 나쁜 이유가 바로 페르다 때문일 텐데.”
“아 그래? 왜?”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네. 그냥 그렇다고만 들었지. 하지만··· 인간들이 지배자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임무 목록만 봐도 대략적인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
‘페르다가 있는 곳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고, 대 장로가 잡혀갔다. 쿨렌이 조사 중에 다크 엘프에게 잡혔고··· 그런 스토리인가?’
크게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는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중간, 중간 화이트 울프와 그리즐리 베어가 나왔지만 아서스의 훌륭한 검술과 해골 몇 마리로 모두 해결 가능했다.
“왜 센티널이 없는 거지?”
아서스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숲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쒜에에엑.
퍽!
화살 하나가 내 귓가를 스치고 바로 옆 나무에 박혔다.
‘영지화.’
쿵.
‘시설 소환.’
저격 타워와 뿌리 묶기 타워를 소환했다.
철컥. 철컥.
위이이이잉.
타워 끝의 수정이 빛나며 숲이 환해졌다.
“리요네스 마법사?”
내 머리 바로 위, 나무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포그 왕국의 제 2 왕자, 아서스 발포그다. 대 장로 디르네스를 만나러 왔다!”
아서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발포그?”
나무 사이에서 갈색 피부를 가진 호리호리한 체형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활을 겨눈 채 천천히 다가오는 다크 엘프 무리.
“인간들이 여긴 무슨 일이지?”
“내 스승이자 친구인 발포그 왕국의 쿨렌 도킨 이라는 마스터급 기사를 찾으러 왔다!”
“쿨렌 도킨···.”
다크 엘프들이 서로를 향해 시선을 마주쳤다.
나는 다른 고민에 빠졌다.
‘다크 엘프를 죽여도 되는 건가? 몬스터로 치나?’
이곳이 진짜 세상인 만큼, 함부로 누군가를 죽이고 하는 것이 꺼려진다.
차라리 마음껏 덤비면 대응이라도 할 텐데.
“물러나라 센티널. 거기 인간. 대 장로님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또 다른 다크 엘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장님.”
다크 엘프들이 활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허··· 장난 아니네. 레골라스인가?’
조각 같은 외모였다.
다른 다크 엘프들과 다르게 검을 차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교역 문제로 아버님과 함께 방문한 기억이 있다. 그때 대 장로께서 내게 이름을 알려주셨지.”
다크 엘프가 타워를 향해 턱짓했다.
“거기, 마법사. 리요네스의 타워를 소환 해제해라. 장로님께 데려가겠다.”
‘어찌어찌 이벤트는 발생시킨 거 같네.’
나는 영지화를 해제하며 다그다의 곤봉을 4차원 주머니에 넣었다.
“인간 둘은 무기를 반납하도록.”
아서스가 순순히 무기를 반납했다.
나는 양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무기가 없어서.”
‘내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사람은 뭐든 경험해 봐야 안다.
입을 쩍 벌린 아서스.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 별말은 없었다.
우리는 레골라스를 따라 더욱 깊숙한 숲으로 들어갔다.
* * *
“오··· 분위기 죽여주네.”
상상 속 엘프 마을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몇천 년을 살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커다란 나무에 지어진 집들.
유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치장이 가득한 마을.
“와··· 인간이다!”
“인간 처음 봐.”
“오크보다 약하게 생겼는데?”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배웠어.”
“쉿. 여길 쳐다본다. 꺄하하.”
어린 다크 엘프들도 보였다.
겉보기엔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없는 마을.
“마을 장로님을 불러오겠다. 대기하도록.”
우리는 연못가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아서스, 엘프도 왕국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냥 수서에 있는 우리 영지 같은 느낌인데?”
“이런 게 수십 개는 더 있을 걸세. 여긴··· 굳이 비유하자면 변두리 마을이지.”
“아하. 그래서 대 장로가 아니라 마을 장로가 오는구나. 그럼 10명 장로 중 하나인가?”
“우리 장로님은 장로회 소속이 아니세요.”
탁.
테이블 위로 따뜻한 차가 올라왔다.
“허브차입니다. 심신을 안정시켜주죠.”
“고맙네. 나는···.”
“아서스 왕자님. 맞으시죠? 대장님께 들었습니다. 그쪽 검은 머리를 가진 여행자께서는···?”
“저는 서진우라고 합니다.”
“전 센티널, 아이말 입니다.”
역시 잘 생긴 청년이다.
‘하아. 엘프 변신 스크롤은 없나. 단 하루만이라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네.’
아서스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아서스. 안 마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음? 왜 그러나?”
뭐가 들어있을지 알고 덥석 집어 드는 걸까···.
더럽게 눈치 없는 놈이다.
아이말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제가 이 차에 해로운 것을 첨가했을 거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네. 꼭 해롭지는 않더라도 원래 어디 여행 가면 물갈이가 제일 심한 공포거든요.”
아이말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한 무리의 엘프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장로님.”
아이말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말. 주제도 모르고 인간과 말을 섞는 건가?”
“잘못했습니다.”
장로가 옆에 있던 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인간들인가?”
“네. 대 장로님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재미있군. 그놈이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게 몇 명 안 될 텐데.”
‘엄청난 노인이네.’
잘은 몰라도 여기 엘프도 오래 살겠지.
그렇게 치면 여기 하얀 수염이 발끝까지 내려오는 할아버지 엘프는 정말 오래 살았을 것이다.
“아서스 발포그라 합니다.”
“서진우입니다.”
“발포그···! 기억에 있는 이름이군. 아이작은 잘 지내는가?”
“아버님은 건강하십니다.”
아서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왕 이름이 아이작이구나.’
스치는 NPC 이름까지 일일이 외울 필요는 없으니까.
“아쉽게도 대 장로는 만날 수 없네.”
“네?”
“이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조사단을 이끌었네. 그리고 실종되었지.”
‘오···! 임무다! 역시!’
골드 미션은 대화만 잘해도 중간은 간다.
“어디서 실종되셨죠? 혹시 조사단에 인간 기사도 있었나요?”
장로가 내게 시선을 옮겼다.
“검은 머리라니··· 대단히 특이하군.”
“인간 기사요. 쿨렌 도킨입니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네. 인간이 끼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고···.”
“어디입니까? 저희가 조사하겠습니다.”
‘숲의 지배자가 거기 있겠지.’
후딱 끝내고 쉴 생각에 부풀었다.
“아쉽지만 자네들은 그곳에 갈 수 없네.”
“네?”
“그곳은 라이트(Light) 엘프들과의 분쟁지역일세.”
“라이트 엘프요?”
“인간들은 하이 엘프라고도 부르지.”
“저희는 양측 엘프들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설령 분쟁지역이라도···.”
“아니, 분쟁이 문제가 아닐세. 그곳은 알프 헤임의 조각이 떨어져 나온 세계일세. 티르의 힘이 작용하는 곳이지.”
‘알프 헤임은 뭐고, 티르는 뭐야.’
눈치를 보니 아서스도 모르는 것 같다.
장로가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알프(Alf) 혹은 티르의 시험에 통과한 투아하 데 다난(Tuatha Dé Danann)만이 들어갈 수 있네.”
알프는 딱 보니 엘프 같은 느낌이다.
‘투아하 데 다난은···.’
“에린?”
장로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검은 머리 인간. 에린을 어떻게 알지? 전승된 지식을 소유했나?”
“어··· 아뇨 그냥 어쩌다 보니.”
‘게임에서 나오는 거라 그냥 주워들은 것뿐인데.’
김철수를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거.
‘흘러가는 걸 보아하니···.’
저 티르의 시험이라는 게 일종의 서브 퀘스트인 모양이다.
티르의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얻고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진입한다.
임무 동선이 그려졌다.
“저희는 반드시 그 이상 현상이 벌어진 곳에 들어가야 합니다. 티르의 시험을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장로님. 인간입니다. 고결한 자격을 증명하는 티르의 시험을···.”
대장이라 불렸던 엘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때, 우리에게 차를 가져다주었던 아이말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장로님. 제가 길잡이로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말. 감히 센티널이 어디라고 끼어드는가? 물러나라.”
대장의 차가운 목소리에 아이말이 몸을 살짝 떨었다.
‘계급사회라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종족마저 다른 생물에게 간섭할 필요는 없다.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잘못된 거 같은 느낌.
“저희도 보내주세요. 시험. 아이말과 셋이서 다녀오겠습니다.”
“크흐흐.”
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장로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