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6
“그냥 놀러 가듯 다녀올 수 있는 시험이 아닐세. 목숨을 걸어야 한다네. 그러고 보니 이번에 100명의 대장급 엘프가 자격을 증명하러 떠나 간신히 성공하고 돌아왔다는데 거기에 인간 기사가 끼어있었을 수도 있겠군.”
“세 명이면 될 것 같은데요.”
“장로님, 말이 안 통합니다. 차라리 그냥 들여보내시길. 그 곳과 딱 어울리겠습니다.”
대장의 말에 장로가 미간을 좁혔다.
“흐음··· 정 그렇다면··· 알겠네. 아이말, 네 선택에 후회는 없느냐?”
“물론입니다.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아이말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보게. 다시 이야기 나누지. 살아온다면.”
“저를 따라오시죠.”
우리는 아이말을 따라 더욱 깊은 숲 속으로 이동했다.
* * *
“이거 참···.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
“이,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보네만.”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 첫 느낌이었다.
‘황천의 뒤틀림도 아니고 이게 뭐야.’
보라색과 검붉은 색이 뒤섞인 이상한 공간.
눈앞에는 케이크가 잘리듯 땅이 끊어지고, 알 수 없는 공간이 나타났다.
“시험을 치를 곳이 저기라고 들었습니다. 낙원, 티르 나 노그(Tír na nÓg).”
아이말이 가리키는 곳.
멀리 90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포탈.
운동장만 한 크기의 땅 위에 푸른 포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낙원이라··· 딱 봐도 최종 보스 나오게 생겼는데.”
티르의 시험
“티르 나 노그가 뭐지? 낙원이라고?”
“알프하임에 찾아온 가장 지혜로운 자가 알려준 낙원이라 들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라···.”
“잘은 모르지만··· 고대에 알프하임이 멸망하며 우리 엘프들이 모두 소멸할 위기에 처하자 가장 지혜로운 자가 나타나 일부를 티르 나 노그로 데려갔다 합니다.”
“일부? 나머지는?”
“이곳에 정착했고요. 그게 우리죠.”
“그게 언제인데?”
“그건 잘 모릅니다. 저 같은 센티널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에···.”
“여기야말로 이상 현상 아닌가?”
“여긴 처음부터 이랬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상한 게 아니죠.”
기가 차는 답변이다.
저기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돌고 있는 돌멩이나, 뒤집혀 있는데도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있는 땅 조각 위에 있는 이름 모를 풀을 보면···.
아무리 봐도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아니라니.’
“그럼 저기 가면 그 낙원으로 떠났다는 고대의 알프를 만나는 건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라서요.”
“쿨렌은 100명이랑 들어갔다며?”
“그들은 신분이 높은 자들입니다. 저와는 태생부터 다른···.”
“넌 안가?”
아이말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저, 저는···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이상 들어가면 명령을 어기게 됩니다.”
“그럼 넌 그냥 계속 하급 센티널로 살겠다는 거야? 사람이! 아니, 엘프가 태어났으면 모험도 하고 그래야지. 얘는 무려 왕자인데도 모험하고 싶어서 다 때려치우고 나왔어. 그렇지?”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조각난 세계를 바라보던 아서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모험이 바로 이런 거지. 어느 왕국의 귀족이, 어떤 모험가가, 어느 소속의 기사가 이런 모험을 하겠나?”
아서스가 환하게 웃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제이나도 함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
“제이나는 구출하면 돼. 데려갔다고 하니, 로렌스가 알아봐 주겠지.”
“그래. 아직 수도에 내 사람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든든하군. 그런데···.”
아서스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자네, 지금 저 친구는 왜 꼬시고 있는 건가?”
“엘프도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가능한가 보고 싶어서.”
“개천? 용?”
“그런 게 있어.”
“가, 가겠습니다! 저도 가고 싶습니다!”
아이말이 결연한 눈빛으로 외쳤다.
“좋아. 그럼 이제 저기로 어떻게 갈지 생각해보자. 중간이 비었잖아. 빈 공간은 아무리 봐도 밟으면 지옥행 급행열차 타게 생겼는데?”
어두컴컴한 다크 엘프의 숲.
칼로 자른 듯한 경계 너머에는 밤낮의 구분이 없는 우주공간과 같은 모습이다.
“숨도 못 쉬는 건 아니겠지?”
‘쿨렌도 영주대리로 지정해둘걸.’
쪽지 기능으로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눈치를 보니 아이말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해골 소환! 굴락, 너도 나와.’
덜그럭. 덜그럭.
흙바닥을 뚫고 해골들이 기어 올라왔다.
“언데드! 위험합니다!”
아이말이 활시위를 당겼다.
“아이말! 이 해골은 내가 소환한 거야.”
눈앞에 검은 구름이 뭉치며 인형 크기의 굴락이 소환되었다.
“주인! 이거보다 더 작아지면 소멸할 수도 있다! 어서 언데드가 있는 곳에··· 응?”
“리. 리치?”
아이말이 굴락을 보며 하얗게 질렸다.
굴락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주인! 내 기억에 무슨 스킬 테스트를 하러 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음··· 좀 복잡한데 그렇게 됐어. 지금 임무 중이야. 골드 미션.”
“골드? 흠··· 그래서 지금 이곳, 경계까지 오게 된 건가?”
“어? 굴락, 너 여기가 어딘지 알아?”
“응? 이건 상식적인 생물이면 누구나 아는 거 아닌가?”
순식간에 비상식적 생물이 되어버린 아서스와 아이말이 딴청을 피웠다.
* * *
말보런스 대륙 곳곳에는 이곳과 같은 이상 지형이 존재한다.
일명 ‘경계’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오래전 말보런스 대륙 곳곳에 생겨났다.
인간들은 그저 마력이 모인 특이한 자연현상으로 생각하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몇몇 경계에는 몬스터가 나오는 일도 있고··· 애초에 넓은 대륙에 그렇게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라서 딱히 관심들이 없지.”
“그럼 이런 게 많다는 소리야?”
“어, 모험가들이 간혹 이런 데 오기는 하는데··· 그냥 자살행위지.”
“이게 뭔지 알아볼 생각은 안 하는 거야?”
“왜 알아봐?”
굴락의 말에 공감하는 듯 아이말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리치의 말이 맞습니다. 자연 현상을 조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 저 다크 엘프가 뭘 좀 아네. 여기는 엘프의 숲인가···?”
“맞습니다. 엘프 숲의 경계입니다.”
“드워프 왕국이나 리요네스에도 이런 거 있을 거다.”
‘정말 흔한 건가?’
기괴한 황천의 뒤틀림이 관광지만도 못한 취급이라니.
“그럼 어떻게 가? 저기 포탈 안에 들어가면 티르 나 노그로 갈 수 있다는데?”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허··· 왕자는 이제 도망자 신세가 된 건가?”
“형님이 뭔가 이상해. 내 반드시 이 모든 일을 파헤칠 것이다.”
아서스가 뿌득 이를 갈았다.
설명을 마친 나는 경계를 가리켰다.
“저기 이상한 공간 말인데. 숨은 쉴 수 있는 거지?”
“들어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지구에도 화산이 있지만, 그 속에 들어갈 생각은 안 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아무튼 모른다는 거지? 그렇다면···.”
‘해골, 출동!’
“키이하아!”
소환한 해골에 포탈까지 이동을 명령했다.
덜그럭. 덜그럭.
해골이 신중한 걸음걸이로 경계에 진입했다.
“얘네 지능이 좀 높아진 거 같은데?”
“당연하지 누구 부하인데. 흐흐.”
굴락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해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경계 끝에 도달한 해골이 전방에 있는 거대한 대륙 조각을 향해 점프했다.
퍽.
‘헐···.’
해골이 빠르게 전방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높은 데서 떨어진 거 같은 느낌이네. 앞으로 떨어진다는 게 좀 이상하지만···.”
굴락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를 가리켰다.
“저 돌 하나하나가 각각의 중력을 가진 거 같은데?”
“다른 방향으로도 보내보자.”
결과는 같았다.
돌과 땅 조각이 촘촘하게 있는 곳에서는 점프한 해골이 여기저기서 작용하는 중력으로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다크 엘프 대장이 왜 비웃었는지 알 것 같다.
‘이래서 길잡이 이야기가 나온 거군.’
다크 엘프는 길잡이 없이 저곳에 들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해골이 있으니 테스트할 수 있지.’
최대한 돌이 적은 방향으로 해골을 한 마리씩 보냈다.
중력이 바뀌며 해골이 경계 너머 암흑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길이 있긴 있네. 가자. 저 해골이 점프한 곳 그대로 따라 해.”
우리는 경계를 넘어 낙원행 포탈이 있는 땅 조각으로 향했다.
* * *
“주인! 너무하는군!”
굴락이 삐쳤다.
“미, 미안··· 날아다니는 존재는 괜찮을 줄 알았지.”
우리는 모두 바닥에서 다음 바닥으로 점프했다.
유일하게 날아다닐 수 있는 굴락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따라오다 중력에 휩쓸려 사라졌다.
나는 소환을 반복하며 굴락과 해골을 함께 보냈다.
덕분에 안전하게 중력 방향을 확인했다.
“대 마법사 출신을 이런 일에 쓰다니!”
“언데드 먹여줄게. 뺑뺑이, 오케이?”
“쉐이드로··· 부탁하지. 이제 영지 근처에는 몬스터가 별로 없다!”
투덜거리는 굴락을 진정시켜가며 포탈 앞에 도착했다.
“낙원이라··· 가보자.”
우리는 포탈을 향해 진입했다.
* * *
“음?”
“허···.”
하늘은 검붉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지나온 경계처럼 허공에는 거대한 대륙 조각이 떠다녔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은 꽤 넓은 편이었지만, 사방의 끝이 잘려나간 걸 알 수 있었다.
‘페널티가 생각나는 광경이군.’
빠르게 뭉쳤다 사라지는 구름 같은 연기 사이로 불길한 에너지가 방출되기도 했다.
“낙원 같지는 않은데? 경계의 풍경이 이어지는 느낌이야. 뭐랄까··· 멸망한 세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네. 쿨렌도 여길 왔었단 말인가.”
아서스가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아이말, 여기가 낙원이야?”
“저도··· 처음 와봅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아무것도 없는데···.”
“저기! 저쪽에 뭐가 있습니다.”
눈이 좋은 다크 엘프, 아이말이 전방을 가리켰다.
“가보자. 뭐라도 만나야 트리거가 발생하지.”
“트리거?”
아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있어. 출발!”
* * *
아이말이 발견한 건, 반쯤 무너진 성이었다.
성이 있던 땅은 조각나 기울어졌고, 마치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떠 있었다.
“반쯤 작살났는데, 누가 있으려나? 성 모양도 되게 특이하고···.”
“내가 보기에는 리요네스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군.”
“그래?”
“그렇다네. 저기 저렇게 건물들이 휘어진 거 보이나? 저런 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지. 다른 왕국은 하지 않는 사치야.”
“내 타워랑 비슷한 느낌인데?”
“잠깐! 저기 누가 온다.”
멀리 성이 있는 방향에서 누군가 날아왔다.
골렘보다 큰 덩치를 가진 존재였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옷도 입고 있었다.
“몬스터는 아닌 거 같은데··· 굴락, 저게 뭐야?”
“나도 모르겠는데? 난생처음 본다.”
쿵.
“숲의 아이가 찾아왔군.”
중후한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아서스와 굴락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대화만 시작되면 다 나를 시키네.’
“우리는 티르의 시험을 치르러 왔습니다.”
“투아하 데 다난이 되고자 하는 존재여. 인간과 죽은 자, 숲의 아이가 함께 오다니 흥미롭구나.”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이곳에 머물며 멸망을 응시하는 자.”
“멸망을··· 응시한다고요?”
“티르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요툰헤임의 마지막 생존자. 노토스다.”
“요툰헤임이면··· 거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듀바그와 같은?”
“듀바그! 무스펠헤임의 배신자!”
꽝!
쿠르르르.
노토스의 분노한 음성이 공간에 전체에 울리자, 허공에 떠 있던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흩날리며 부서졌다.
“네놈들! 듀바그와 함께하는 자들인가! 숲의 아이가 변절하다니! 그 죄는 죽음으로 씻어라!”
쿠쿠쿠쿠쿠쿠.
진동이 거세졌다.
“노토스! 잠깐! 듀바그는 우리가 죽였습니다!”
뚝.
진동이 멈췄다.
“듀바그가 죽었다고?”
노토스가 내게 손을 뻗었다.
– 저항 성공!
‘···?’
노토스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놀랍군. 기억 탐색을 저항하다니.”
“어어어? 이게 무슨 짓···.”
굴락이 순식간에 노토스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지화.’
쿵.
곧바로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두려워할 것 없다. 사실을 확인하는 것뿐이니.”
잠시 후, 굴락이 노토스의 손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으아! 기분 더럽네! 머릿속에서 뭔가 뽑혀나가는 느낌이···!”
“크하하하하하! 으하하하! 무스펠헤임의 배신자여! 수르트의 치욕이여! 모두를 배신한 대가는 결국 소멸이니!”
쾅! 쾅! 쾅!
허공에 떠 있던 바위들이 터져나갔다.
“인간, 마음에 드는군. 투아하 데 다난이 되기 위한 시험을 시작하겠다!”
“뭔지 몰라도 마음에 안 드는 놈 죽여줬으면 시험 정도는 그냥 통과해줘도 되는 거 아닙니까?”
“크하하하! 티르의 축복은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쿵. 쿵.
멀리서 시작된 진동이 내가 서 있던 땅까지 차례차례 울렸다.
푸른 화염에 휩싸인 존재.
수서에서 보았던 요툰과 똑같이 생긴 거인이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어디 이겨 보아라! 우트가르드의 보잘것없는 존재를!”
“서, 서진우. 어떻게 하나?”
아이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활을 들고 시위를 겨누었다.
‘흠. 두려움을 이겨내는군. 마음에 드는데?’
나는 임시영지 위로 저격 타워 4개를 소환했다.
위이이잉.
철컥. 철컥.
꽤 먼 거리다.
저격 타워는 사거리가 길수록 대미지가 강력하다.
나는 타워를 수동모드로 바꿔 거인을 조준했다.
‘거인들이 상대하기 좋네. 느리고, 커.’
꽈아아아앙—!
크아아아아!
단 한방.
푸른 화염이 크게 피어오르며 거인이 소멸했다.
“반투명이긴 한데 물리 대미지도 먹는구먼. 거기 노토스? 이제 우리는 시험에 통과했나요?”
노토스가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응시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인가.”
“누구긴요. 지방 영주입니다만.”
“시험은 통과다.”
쾅!
“서, 서진우.”
조금 전 거인이 소멸한 위치.
땅에서 거인이 다시 일어났다.
아주 많이.
“노토스? 시험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 요툰헤임의 마지막 생존자인 노토스가 주신께 받은 권한을 사용해 또 다른 시험을 시작하겠다.”
“아···니 저희는 그런 특별대우 필요 없는데요!”
‘시설 소환.’
성벽을 소환하고, 타워 20개를 배치했다.
“요툰헤임을 배신한 우트가르드의 거인들이다. 저들을 모두 이겨낸다면 그대에게 선물을 주지.”
‘선물? 아이템?’
그건 군침이 좀 당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