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8
성벽 위에서 굴팍시를 소환해 탑승했다.
푸르르르르!
이힝힝힝!
굴팍시가 황금빛 갈기를 털며 포효했다.
“저, 저건··· 거인족의 전설의 말이 아닌가?”
“노토스가 저걸 넘겨줬다고?”
엘프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페르다는 어디 있지? 다크 엘프의 대 장로를 찾으러 왔다!”
“페르다님은 무슨 일로 찾는가?”
이번엔 다크 엘프 진영에서 질문이 나왔다.
“대 장로랑 인간 기사 하나를 붙잡고 있다 들었다!”
“그들은 다크 엘프의 배신자다!”
선두에 있던 다크 엘프가 뒤를 향해 소리쳤다.
“배신자를 찾는 걸 보니 죽어야겠군. 라이트 엘프와 함께 우리들의 고향에서 죽어라! 오늘로 이 지긋지긋한 분쟁을 끝내리라!”
‘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하얀 피부의 하이 엘프 하나가 나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인간! 군소 마을의 다크 엘프들이 장로회를 배신하고 대 장로와 10 장로를 페르다에게 바쳤네! 저들은 모두 미쳤어!”
“뭐? 배신이라고?”
“이곳에 조사차 들어왔던 100명의 다크 엘프들도 대부분 배신자네! 그쪽 벽 너머에 있는 엘프들은 모두 배신자들이야!”
빛과 함께 더욱 많은 다크 엘프들이 달려와 배신자 무리에 합류했다.
그리고 멀리 하늘에서 거대한 사슴이 내려왔다.
“페르다! 페르다가 온다!”
반대쪽 하이 엘프 진형 뒤에서도 다크 엘프들이 들이닥쳤다.
“라이트 엘프의 대 장로시여, 저희도 왔습니다! 다크 엘프의 배신자를 함께 처단합시다!”
“어서 오게!”
하이 엘프 진영에 다크 엘프들이 섞였다.
‘하이 엘프 대 다크 엘프가 아니라···.’
배신자 대 그걸 막는 엘프들로 나뉘어있는 전장.
나는 그 가운데에서 양측을 나누는 성벽을 세우고 있었다.
“네놈의 운도 여기까지다!”
배신자 진영의 선두에는 내가 만났던 장로와 대장이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페르다님을 맞이하라!”
배신자 무리가 타워 사거리 밖에서 정렬했다.
언뜻 봐도 천 명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대군.
중앙에는 거대한 사슴이 있었다.
사슴의 눈은 피처럼 검붉은 색으로 빛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 썩어있는 곳은 내장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군소 마을 장로들이 합심해서 배신을 했다 이거지?’
마을에서 만났던 장로가 사슴 옆에 서 있었다.
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 들이 성벽으로 올라왔다.
“라이트 엘프 장로 라이델이라 하네. 자네는 누구인데 우트가르드의 보물을 가지고 있지?”
“저는 서진우, 인간입니다. 실은···.”
쿨렌의 실종과 숲에서 있었던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하필 이런 시기에 이곳에 오다니. 이것도 운명인가?”
라이델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페르다라는 거죠?”
“그러하네. 숲의 수호자가 어쩌다 저렇게 되어 버린 건지···.”
“원래는 저렇지 않았나요?”
“알프하임이 멸망하고 페르다도 사라졌었네. 그런데 최근 다시 나타났지. 저런 모습으로···.”
페르다는 미쳐버렸다.
인간들을 공격해야 세계의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 엘프의 대 장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해묵은 분쟁을 끝내고 의기투합했다.
“동맹을 맺으려는 과정에서 페르다가 눈치챘지. 그리고 중소 마을 장로들을 꾀어내 반기를 들게 했고.”
“다크 엘프만 그렇게 된 건가요?”
“다크 엘프는 우리 하이 엘프와는 다르게 엄격한 계급 사회일세. 한번 장로회에서 밀려나면 마을 전체가 핍박받지.”
대충 돌아가는 사정은 이해했다.
“다크 엘프 대 장로님과 인간 기사 쿨렌은 어디 있죠?”
“멀리 알프하임 조각의 중앙에 붙잡혀있네. 페르다의 수호결계가 걸려있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네.”
‘단순하네.’
적을 죽이고 우리 편을 구출한다.
“라이델! 알프하임의 존재를 죽이고 싶지 않구나. 지금이라도 생각을 돌려라. 모든 것을 용서할 테니.”
페르다의 음성이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
귀로 들리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되는 페르다의 의지.
“페르다, 숲의 수호자여. 어쩌다 이렇게 타락했습니까? 실종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이 엘프 대 장로 라이델이 소리쳤다.
“진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내게 나타나 모든 것을 알려주었지.”
‘또 나오네. 대체 목적이 뭐지···?’
여기저기서 가장 지혜로운 자가 나타났다.
“그자는 누구고, 어떤 진실을 알게 된 겁니까?”
“누구인지 중요한 게 아니지.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웠다. 알프하임이 멸망하며 살아남은 숲의 아이들을 다시 다가오는 소멸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신을 좀 차리십시오!”
“함께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다!”
쿵.
페르다가 발을 굴렀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아서스! 타워 컨트롤 해. 저격 타워는 페르다에게만 쓰고.”
“알겠네.”
‘골렘, 해골 소환.’
“굴락. 최대한 페르다 어그로 좀 잡아.”
“오케이!”
쒜에에엑!
쾅! 쾅! 쾅!
“아아악!”
성벽을 향해 달려오던 다크 엘프 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언데드를 소환하다니··· 라이델! 네놈이야말로 타락했구나!”
공격은 거셌지만 큰 타격은 없었다.
나는 피해 증폭과 반사 저주를 적절히 활용하며 엘프들을 지원했다.
꽈아아앙—!
페르다의 몸이 뒤로 밀렸다.
크어어어어어!
골렘이 어그로를 잡으며 페르다와 맞섰다.
퍼석.
세 방을 견디지 못하고 골렘이 무너졌다.
다시 골렘을 소환해 굴락에게 보냈다.
“불의 정령이여! 나를 도와주게! 부탁이야!”
굴락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그 속에서 불 정령이 나타났다.
‘오··· 있어 보이는데?’
“아니? 최상급 불의 정령. 이프리트! 부름에 답해주다니! 고맙네!”
“건방지기로 유명했던 네놈에게도 예절이 생겼군. 수락하겠다.”
‘마력 때문에 소환을 못 했던 게 아니네.’
최상급 정령이라더니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골렘보다 두 배는 큰 크기.
불타오르는 역삼각형 덩치를 가진 이프리트.
그가 페르다에게 다가갔다.
“페르다! 오랜만이군!”
“이프리트! 어찌 저런 너절한 언데드의 명령을 받는 건가! 네놈의 권위도 끝인가 보군.”
“죽어 나자빠진 숲의 쓰레기가 뭐라고 떠는 거야?”
“정령계도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존재들이 많이 있다. 머지않아 네놈들도··· 곧 우리와 함께하게 되겠지.”
“닥쳐!”
쾅!
거대한 존재들끼리 싸움이 시작되었다.
적 진영의 다크 엘프들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라이델이 전방을 향해 쥐어짜듯 소리쳤다.
“이제 그만하게! 부질없는 이 싸움을 중지하고···.”
“크크크.”
눈빛이 심상치 않다.
‘왜 이렇게 여유로워?’
“위험합니다!”
아이말이 라이델을 감싸 안고 굴렀다.
라이델이 있던 자리에는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박혀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이제 시작이다! 크하하하!”
“크악! 아뮤트! 대체 왜 나를···?”
하이 엘프들이 갑자기 옆에 있던 동료를 공격했다.
“스파이였어?”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와 함께하는 엘프가 많다고.”
우리측 진영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난전이 시작되었다.
라이트, 다크 엘프를 가리지 않고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크아아악!”
“저자를 공격해!”
“우리 편인···가? 컥.”
“크하하하!”
위이이이잉.
촥. 촥.
펑! 펑!
그나마 다행인 건 타워는 적을 귀신같이 구별해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만··· 시스템은 적을 구분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 *
쒜에에엑!
“라이델! 다크 엘프 장로 이름은 뭐죠?”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며 라이델에게 물었다.
“그란두릴. 저 친구의 이름은 그란두릴일세.”
라이델이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를 죽이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크하하하하! 질서는 혼돈이 있어야 완성되는 법. 이제 엘프는 하나로 통합되어 내게 조아릴 것이다!”
다크 엘프 마을 대장은 비릿한 웃음과 함께 그란두릴을 철저하게 호위했다.
“그란두릴! 당신은 옆에 대장을 얼마나 믿습니까?”
그란두릴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비웃었다.
“감히 우리의 결속력을 의심하는 건가? 웃기지도 않는···.”
‘혼란 저주.’
나는 대장에게 혼란 저주를 걸었다.
아군과 적군의 구분 없이 서로를 공격하게 하는 저주.
게임에서는 큰 쓸모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푹.
“자, 자오노스··· 어째서··· 끄으윽.”
“이, 이게 왜 멋대로?”
혼란스러운 대장의 표정.
그가 화살촉을 뽑아 장로의 가슴을 찔렀다.
“내가 말했지? 얼마나 믿느냐고.”
나는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혼란 저주를 뿌렸다.
네크로맨서의 저주는 다른 종류를 중복해서 쓸 수 없다.
하지만 하나의 저주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혼란 저주의 경우 지속시간이 있어 광범위한 지역에 뿌려댈 수 있었다.
‘스킬이 자동으로 적을 구분해 주니 다행이야.’
만약 저주가 우리 편에게도 걸리면 망하는 스킬이다.
다행히 저주는 타워와 같이 적에게만 작용했다.
“크아악! 왜!”
“나, 나야! 이봐! 나라고!”
“이익! 배신자! 우리와 함께하는 게 아니었나?”
전장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자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뿌린 대로 거두는 거죠. 배신에는 배신으로 응수하는 겁니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같은 편끼리 싸우는 모습에 우리 측 엘프 들은 하나둘씩 무기를 내렸다.
계속해서 혼란 저주를 사용하자 절반에서 또 반으로, 적이 빠르게 사라졌다.
* * *
“끄으으으. 이, 이놈들!”
다크 엘프 대장 자오노스가 무릎을 꿇었다.
자신에게 덤비는 같은 편을 끝없이 도륙한 그의 몸에는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대장님··· 한때 존경했었습니다.”
“아, 아이말. 어서 나를 부축해 일으켜라.”
“거절하겠습니다.”
“건방진··· 하급 센티널이 감히···.”
쒜에에엑.
푹.
아이말의 자오노스에게 활을 쏘았다.
자오노스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신분이 하급일질지언정 저 자신이 비천한 건 아닙니다.”
‘좋아 좋아. 훌륭해!’
아이말이 당당하게 성벽으로 돌아왔다.
“이제 하나만 빼고 다 정리되었네요.”
쾅! 쾅!
페르다와 이프리트는 혈투를 이어갔다.
한 번씩 터지는 굴락의 마법과 해골들의 공격.
그리고 타워를 수동모드로 돌려 정신없이 제어하는 아서스의 컨트롤에 페르다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갔다.
‘굴팍시.’
나는 말을 타고 멀리 페르다에게 다가갔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피해 반사.’
꽝!
“끄아아아!”
페르다의 옆구리가 터졌다.
“미노타우로스보다 멍청하네. 무작정 들이박으면 황천행 특급열차 타는 거야.”
“크으으으. 죽이겠다!”
페르다가 물리 공격을 멈추고 마법을 사용했다.
이어, 가만히 서 있던 나무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트···?”
“크크크크. 잘 아는군. 나를 묶어놓았다고 자만했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쿵. 쿵.
나무 정령 엔트가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딱 9마리네. 아깝군.’
아이템스킬 조율을 사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쿨타임이다.
“서진우! 어떻게 해야 하나?”
아서스가 엔트를 향해 타워를 재정렬했다.
“자연스럽게 모아. 페르다 옆으로.”
“알겠네!”
“굴락!”
“그걸 사용하는 건가? 진작 쓰지!”
“궁은 원래 막판에 써야 하는 거야.”
페르다의 주위로 엔트가 모였다.
‘토르의 심판.’
쿠르르르릉.
구름이 몰려들며 하늘마저 분노한 음성을 내뱉었다.
번쩍!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
구름 사이로 번개가 내려치며 페르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거대한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토···르? 어찌 아스가르드의 보물이···!”
꽈아아아아앙—!
페르다가 있던 자리에 빛이 터졌다.
쿠쿠쿠쿠쿠쿠.
꽈광!
충격의 여파로 우리가 서 있던 알프하임 조각이 쪼개졌다.
페르다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엔트와 함께 소멸했다.
두 개로 나뉜 알프하임 조각.
라이델이 멍한 표정으로 기이한 각도로 꺾여가는 또 다른 알프하임 조각을 바라보았다.
“아스가르드의 힘을 보게 되다니. 자네,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이죠. 이제는 투아하 데 다난이기도 하겠군요. 이럴 때가 아닙니다. 갇혀있던 엘프와 쿨렌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어서 따라오게. 자네들은 전장을 정리하고.”
우리는 서둘러 라이델을 따라 땅 조각 사이를 뛰어갔다.
“바로 저기네!”
작은 땅 조각 위로 엘프 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디르네스!”
다부진 체격을 가진 엘프가 간신히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라, 라이델.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우리는 분명 죽었어야 했는데.”
“페르다는 소멸했네.”
“뭐라고?”
“이야기가 길어. 우선 여길 나가세.”
“페르다가 없으면 알프하임 조각은 혼돈으로 가득 차게 될 걸세. 이제 우리의 고향이 사라진다고!”
디르네스가 쥐어짜듯 말했다.
“디르네스. 우리의 고향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보런스네. 알프하임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디르네스가 침통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는···?”
“인간 서진우입니다. 이번에 같이 온 쿨렌 도킨이라는 인간 기사는 어디 있습니까?”
“쿨렌···? 쿨렌이라면 여기··· 아니?”
디르네스가 가리키는 곳에는 검 한 자루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