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0
“오, 오오. 이 금속은 뭐지? 염료 도포가 아주 환상적인데?”
“이 버튼 좀 봐. 금속도 아니고 유리도 아닌데··· 감촉이 이상해?”
“플라스틱 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저분이 배고프시다 하셔서 음식이라도 대접해 드리려고요. 맥주 한잔의 대가입니다.”
자판기에는 진라면 매운맛과 민트초코, 오레오가 있었다.
‘민트초코는 대체 어떤 놈이 넣어둔 거지?’
분명 빼라고 한 거 같은데.
라면을 터치하자 빛과 함께 펄펄 끓는 진라면 한 그릇이 나왔다.
“드세요.”
“이, 이 빨간 수프는 뭔가?”
“식사요. 우리 검은 머리 인간들이 즐겨 먹는 겁니다.”
“크흠. 인간들의 식사가 맛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네.”
“나도 하나 줘 보게!”
“다른 건 없나?”
“나도···.”
* * *
‘역시 MSG다. 과학의 맛이 어떠냐 드워프놈들.’
라면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뇌를 때리는 자극적인 맛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는 기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 엄청난 신의 선물 같은 음식 이름이 뭐라고?”
“민트초코라는데?”
“아아··· 시원하고 달콤하다. 입안이 신성해지는 느낌.”
드워프들은 예외 없이 민트초코를 좋아했다.
‘끔찍하구먼.’
수백 명의 드워프가 푸르딩딩한, 아니 색도 이상한 민트초코를 동시에 퍼먹는 모습은 사뭇 기괴했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오레오를 받아든 드워프들은 반으로 갈라 크림부터 핥았다.
“아아. 이럴 수가··· 너무 맛있어.”
“으··· 하, 한 개만 더.”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드세요.”
“인간. 이름이 뭐라고?”
“서진우입니다.”
“모두 서진우에게 환호를 보내라!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준 인간이다!”
“와아! 서진우! 서진우!”
“민트초코 한 개만 더! 맥주에 타 먹으면 꿀맛이다!”
드워프들이 더욱 늘어나며 음식 소모 속도도 빨라졌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밤이 깊었다.
* * *
“자네 간밤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아서스가 광장에 쓰러져 있는 드워프들을 바라보았다.
밤새워 먹고 마신 드워프들 주위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면발이 떨어져 굴러다녔다.
“라면에 환장하더라고.”
“흠··· 라면이 맛있긴 하지. 인정하네. 특히 진라면 순한 맛이 최고라고 생각하네.”
“···너 입맛에 심각한 문제가 있구나.”
“문제라니?”
“극한 상황에서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제일 마지막에 집는 게 진라면 순한 맛이야. 그만큼 기피 식품이라는 거지.”
“맛을 모르는 자네 세계 인간들이 불쌍하군.”
“···그래 뭐라도 만족하면 된 거지.”
벌컥.
문이 열리고 모림이 들어왔다.
“장로 회의가 끝났네. 잠시 함께 갈 수 있겠나?”
모림을 따라 한참 지하로 내려갔다.
“와, 땅속이라는 걸 전혀 못 느낄 정도로 엄청나네.”
눈앞에는 웅장한 건물이 자리했다.
거무튀튀한 금속 재질로 만든 기둥은 신전을 연상하게 했다.
얼핏 봐도 아파트만 한 크기의 건물 외벽은 깔끔하게 닦여져 여러 갈래로 빛을 반사했다.
“들어가지. 모두 기다리고 있네.”
거대한 회의실에 둥근 테이블에는 6명의 드워프가 앉아 있었다.
헤벡은 아들 옆에 서 있었다.
상석에는 강인한 인상의 드워프가 복잡한 눈으로 헤벡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 서진우가 도착했습니다.”
“반갑네. 나는 니다벨리르 아이언 포지의 마스터, 마그니 골드비어드라 하네.”
움찔.
본능적으로 몸이 떨렸다.
‘···마그니?’
모 게임에 나오는 드워프 국왕과 유사한 이름.
‘하긴 아서스도 있는 판에.’
“서진우입니다. 반갑습니다.”
“검은 머리 인간이라니 특이하군. 그나저나 간밤에 자네의 활약은 잘 전해 들었네. 아침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칭찬이 자자하더군.”
마그니가 한결 풀린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역시 뭐든 먹을 걸 나눠주고 시작하는 게 베스트다.
“감사합니다. 저희 고향에서 인기 있는 음식들입니다.”
“혹시 나중에 레시피를 좀 알려줄 수 있나? 자네가 떠나면 더는 그 음식을 못 먹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드워프들이 한둘이 아니네.”
‘라면이 중독성 있긴 하지.’
이제 밍밍한 음식은 못 먹을 게 분명하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긴, 자네 곁에 우리 왕국 최고의 대장장이가 함께하니 관계가 소홀해질 일은 없겠군. 껄껄!”
은근하게 헤벡을 강조하는 마그니.
헤벡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껄껄. 역시 마그니 자네는 거래의 기본을 아는군!”
“헤벡! 어찌 국왕님께 함부로!”
모림이 벌떡 일어나 헤벡을 향해 소리쳤다.
“그만두게. 다섯 가문이 번갈아 가며 통치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국왕이기 이전에 내 오랜 친우일세.”
“모림은 언제쯤 편하게 살려나?”
“그런 날은 모루의 신이 강림해도 오지 않는다네. 껄껄!”
농담과 함께 분위기가 풀어졌다.
마그니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었네. 궁금하다던 금속을 이리 줘 보게.”
모림이 아티팩트 심볼을 들고 국왕에게 가져다주었다.
“오, 오오··· 이건 솔리두시움?”
“대단한데···? 이런 식으로 주조가 가능하다고?”
“엄청 얇은데···? 근데 경도가 보통이 아니고···.”
다섯 가문의 드워프들이 한데 뭉쳐 심볼을 살펴봤다.
그 틈에 헤벡이 내게 다가왔다.
“우리 니다벨리르의 다섯 가문은 각자 특출난 능력이 있네.”
모림의 마그마액스 가문은 전통적으로 전투능력이 좋다.
외부 방어와 내부 단속을 주로 맡는다.
국왕 마그니의 골드비어드 가문은 석공에 최적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금속 정제와 채굴에 특화된 가문도 있었다.
“우리 스트롱해머는 대장기술이 뛰어나지. 그렇다고 다른 걸 못하는 건 아니네. 그저 조금 더 전문화되어 있을 뿐.”
“그래서 저 심볼을 여기 가져오려고 하셨군요.”
“그래. 각자 전문분야가 다르니 뭔가 결론이 나겠지.”
한참 시간이 지나고 국왕이 입을 열었다.
“이걸 파괴하고 싶은 거겠지? 이걸 제대로 뚫어내려면 우리 니다벨리르의 금속으로는 불가능하네.”
“네? 그럼…?”
“내가 말했듯. ‘우리’의 현재 니다벨리르는 불가능하고. ‘원래’ 니다벨리르에서 나는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광물이 있으면 가능하네.”
“···신의 금속이요?”
“그래. 테낙스라는 전설의 금속이지. 그게 있으면 이 솔리두스와 상성이 맞겠군.”
“마그니.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네. 우리의 진짜 고향을 찾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껄껄!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나?”
‘니다벨리르에 가야 한다 이거네.’
지구 곳곳에 발생한 포탈.
말보런스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상하게 변한 쿨렌이 지키고 있었다.
신의 금속으로만 파괴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다.
‘이걸 박살 내야 포탈이 사라지는 거라면···.’
이들의 요구에 따르는 게 좋겠지.
“그리고 우리의 고향을 찾아준다면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네.”
“제안이요?”
“듣자하니 엘프놈들이 자네와 동맹을 맺었다는군. 우리도 자네와 동맹을 맺고 싶네. 그러면 일반 상단에는 넘기지 않았던 최상급 장비를 자네 영지에만 독점 납품해주지.”
“이런 등급은 상단에 넘기지 않는다네.”
헤벡이 롱소드 하나를 내밀었다.
[잘 벼려진 롱소드]– 등급 : A
– 착용 효과 : 오러 사용 시 대미지 증가.
– 착용 효과 : 공격 속도 소폭 증가.
– 내구도 강화.
“이걸··· 그냥 만든다고요? 이런 옵션을?”
“옵션? 그게 무슨 말인가?”
“이거··· 오러 사용 시 대미지가 높아지는데요? 공격 속도도 빨라지고···?”
“오러는 잘 모르지만, 광물 주조가 잘 되었으니 힘이 고르게 전달될 테고, 밸런스도 잘 잡혀있으니 공격속도도 빨라지는 거 아니겠나?”
기가 찼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마법 무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마법 무구인줄도 모르고 있다.
이런 아이템들을 우리 영지에 독점으로 들여올 수 있다면···.
‘이게 웬 떡이냐?’
“헤벡. 내려갑시다. 지하로. 당장.”
아무거나 건드리지 말자
“껄껄! 거래가 성사된 것 같군. 그럼 대형 원정대를 꾸리겠네.”
국왕, 마그니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뇨. 딱 한 분만 데려갈게요.”
“한 명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고향에는 엄청난 몬스터들이 많다 하네. 우리가 해머와 도끼질을 잘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몬스터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헤벡이 자신 있는 목소리와 함께 미소 지었다.
“그럼 누가···.”
“제가 가겠습니다.”
젊은 드워프, 아이벡이 나섰다.
“아이벡.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다.”
“아버지.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미 오늘 아침에 르벡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 아이는 아직 어리지 않느냐?”
“동생이 저보다는 더 잘할 겁니다. 저는 모험과 대장일이 더 좋고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헤벡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들놈과 함께 가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렇게 원정대가 꾸려졌다.
* * *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지하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도 있네요. 신기하네.”
“이런 건 흔하네. 광산에서 광물을 캐 올리려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써야 하지.”
정말 손재주가 좋다.
투박할 것 같았던 광산 엘리베이터는 너무나 부드럽게 지하로 향했다.
땅속 깊은 곳까지 한참을 내려가자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내려가네요. 그런데 습하지는 않고요.”
“그게 이 땅의 장점이지. 우리 드워프는 이런 땅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자들이고. 사실 자네 영지에 있는 광산도 충분히 훌륭하네.”
특히 지난번 광산 업그레이드 이후 더욱 깊이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헤벡조차 처음 보는 광물을 경험하기도 했다.
“신기한 일이야. 지구 금속도 흥미롭고. 제철소인가 어디서 일했다던 피난민이 알려준 대로 하니 금속이 더욱 단단해지지 뭔가?”
“아버지. 새로운 주조법이 있다고요?”
“그래. 너도 나중에 가르쳐주마.”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자 어느새 광산 바닥에 도착했다.
“바로 이곳일세. 제대로 무너져 내렸군.”
여러 갈래로 굴이 파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진입할 수 없었다.
“얼마나 무너진 거죠?”
“글쎄··· 길이로 보자면 이천 걸음 넘게?”
“그럼 못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치워야지. 저 돌을.”
나는 굴락을 소환했다.
“어후. 나는 동굴이 정말 싫어. 밝은 햇빛이 좋다고!”
“리치가 대체 뭐라는 거야? 저기 앞에 길 좀 뚫어야 해.”
“저걸 치우라고?”
“마법으로 안 돼?”
“안 되는 건 아닌데··· 다 하긴 어렵지.”
‘골렘, 해골 소환.’
키리리리릭.
덜그럭. 덜그럭.
해골과 아이언 골렘이 땅을 뚫고 일어났다.
“히, 히익··· 언데드!”
아이벡이 기겁하며 등에 찬 도끼를 꺼내 들었다.
“진정해라 아이벡. 우리 편이다.”
“예? 언데드가요?”
“어제 설명해줬는데 다 잊었느냐?”
“아··· 그 착한 언데드가 바로···?”
“헤벡! 자네를 존경하겠네! 나를 착한 언데드라 불러주다니!”
굴락이 어지럽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기뻐했다.
“저기 돌들 좀 치우자. 골렘은 크기 좀 줄여보고.”
“주···인··· 우리··· 강하게···.”
“저거부터 다 치워. 약속은 잊지 않는다.”
“알겠···다.”
‘해골들도 강화 좀 해 줘야 하는데.’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지.
굴락이 자신의 스켈레톤까지 소환하자 광산 바닥이 언데드로 가득했다.
콰직.
쾅. 쾅.
언데드는 지치지도 않고 기계처럼 빠른 속도로 굴에 있는 돌을 옮겼다.
* * *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입구 뚫기는 계속되었다.
“아, 아버지 대체 이게 뭔가요?”
“국밥이다. 맛있지?”
“정말··· 엄청나요!”
아이벡이 뚝배기에 담긴 뜨끈한 국물을 마시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더 맛있는 것도 많다.”
“이거보다 더 맛있는 게 있다고요?”
“그래. 나중에 다 먹게 해주마.”
헤벡이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의 식사를 바라보았다.
쾅.
“끝났다!”
무너진 돌무더기를 모두 치워낸 굴락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길이가 엄청난데? 나오는 것도 한참이야. 여길 뚫은 드워프들도 대단하다.”
“고급 광맥이 있었다네. 그런데 작업자들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버려진 곳이지.”
임무를 마친 언데드를 소환 해제하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남아있군. 우리는 여기 이 흥미로운 광맥에 정신을 빼앗겼다네.”
“아버지··· 이건 에더리움 아닌가요···? 살면서 거의 본적이 없는 광물인데··· 세상에.”
“맞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흥분했었지. 가자.”
“아, 아버지. 이거 조금만 캐 가면 안 될까요?”
“에더리움은 내 작업장에 가면 널려있다.”
“예?”
“여기 영주님의 개인 광산에는 상당히 흔한 광물이거든.”
“예?”
아이벡이 입을 쩍 벌리며 내게 시선을 옮겼다.
“저 사람이 이런 고급 재료가 널린 광산을 소유하고 있다고요?”
“그래. 너도 기회가 되면 구경시켜주마.”
“꼭이요! 꼭!”
한참을 안쪽으로 이동하자 헤벡이 걸음을 멈췄다.
“이제 갱도의 끝이군. 여기 벽에 흔적 보이나?”
벽에는 깊이 파인 흔적이 있었다.
“나랑 같이 온 친구가 벽에 흔적을 냈지. 그땐 여기부터 느낌이 이상했거든.”
“지금은 괜찮은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일세.”
막장이었다.
길이 막혀 더는 나아갈 곳이 없는 갱도의 끝.
아서스가 열심히 벽을 훑었다.
“헤벡. 나는 광산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여기 흙이 조금 파인 곳에 무슨 무늬가 있는 돌이 있소.”
“무늬?”
헤벡이 연장을 바꿔 조심스럽게 흙을 파냈다.
“아니···? 이건 뭐지? 아이벡!”
“예! 아버지!”
헤벡과 아이벡이 고고학 탐사를 하듯 조심스럽게 흙을 모두 걷어냈다.
“허···.”
흙을 걷어내자 문이 등장했다.
드워프 사이즈에 딱 맞는 자그마한 아치형 문.
표면에는 복잡한 각종 수식과 문자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헤벡. 뭐라고 적혀 있어요?”
“나도 모르네. 처음 보는 언어로군.”
“굴락은?”
“음··· 우리 쪽 문자도 아니야.”
“일단 한번 열어볼게요.”
쿠쿠쿠쿠쿠.
문을 열자 포탈이 나타났다.
‘음··· 티르 나 노그 입구랑 거의 비슷한데.’
“안쪽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 거죠?”
“그렇네. 여기서부터는 모든 게 흐릿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