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2
쾅! 쾅!
쿠르르르르르!
골렘들이 무너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했다.
타워 수십 개가 내뿜는 소음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많이 오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서스 왕자가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것 같다며 신신당부했네. 생각보다 더 엄청나군. 대체 여긴 어딘가?”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 퓨리피케이션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엘프에게 활을 쏠 줄 아느냐는 질문만큼이나 어이없군. 당연히 가능하네.”
“저 골렘들은 퓨리피케이션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알겠네! 모두 저 골렘들을 공격한다! 가자!”
착!
엘프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성벽에 올라섰다.
“엘프들이 우리를 도와주려 여길 왔다고···?”
헤벡이 복잡한 표정으로 성벽 위에 오른 엘프를 바라보았다.
곧 엘프들의 손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손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발사!”
팅. 팅팅팅팅.
활시위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화살이 골렘을 향해 날아갔다.
‘물리 대미지 저항이 상당한데··· 가능할까?’
퍽! 퍽! 퍽!
쿠르르르르.
콰직. 콰직.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화살을 맞은 골렘들이 폭발하듯 터지며 무너져 내렸다.
“저기 붉은 띠를 두른 골렘은 우리 편인가?”
디르네스가 아이언 골렘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디르네스가 손을 휘두르자 아이언 골렘의 팔이 엘프들처럼 빛났다.
“그거 남에게도 걸 수 있는 마법입니까?”
“물론이지. 단, 마법은 안 되네. 정령 마법이 자연계 수식을 이용하는 마법의 근본 원···.”
“아니! 됐고요! 저기 해골에게도 좀 걸어주세요!”
‘마법사들은 근본적으로 뭘 설명하길 좋아하는구나.’
디르네스가 해골들에게 퓨리피케이션을 걸어주었다.
“내 평생 언데드에게 정화 마법을 걸어주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군. 언젠가 죽고 나면 티르님이 뭐라 하실지···.”
“칭찬하겠죠! 혹시 타워에도 걸 수 있습니까?”
“정화는 별로 어려운 마법이 아니고 제약이 심하지도 않네. 라이트 마법 대용으로 밤을 밝히는 데도 사용하는데. 이는 사실 정령 마법이 가진 속성은 마법···.”
“그만! 타워에 좀 걸어주세요!”
타워 꼭대기 수정도 밝은 빛에 둘러싸였다.
위이이잉.
쾅! 쾅!
스플래쉬 타워가 쏘아대는 포격이 골렘들을 완전히 파괴했다.
무너져 내려 바위가 된 골렘.
살아있는 골렘이 그 위를 올라오고 다시 죽기를 반복했다.
자연 방벽이 한 겹 더 생긴 셈.
꽈아아아아앙—!
저격 타워가 또 한 기의 대형 골렘을 날렸다.
이번엔 골렘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엘프들 수백 명이 본격적으로 공격에 합류하자 전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 * *
“됐다!”
어두운 행성.
길고 높게 솟아오른 성벽 위 수백의 엘프.
그 뒤에서 우리를 든든하게 백업하는 타워.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언 골렘과 해골들.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아이백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 엄청나···!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 같은···!”
“하하. 아이벡. 내가 왜 저 영주 곁에 붙어있는지 알겠냐?”
“이런 전투가 자주 있나요?”
“자주? 없는 날을 세는 게 빠르겠다.”
“저, 저도 싸우고 싶습니다!”
“위험하다. 우리는 대장장이야.”
“저, 저도 저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땅딸보치고는 용기가 있군.”
디르네스가 아이벡을 바라보며 칭찬했다.
헤벡이 발끈하며 디르네스에게 삿대질했다.
“흥! 허여멀건 해서 풀이나 뜯던 엘프 놈들이 뭐라는 거야? 네놈들 입고 있는 갑옷도 우리 제품이 꽤 있을걸?”
“나는 다크 엘프다! 그리고 네놈이 쓰는 그 망치의 손잡이는 우리 숲에서 자란 나무라는 걸 알고 있느냐?”
“뭐야? 고작 나무나 가꾸는 놈들이?”
“땅이나 파며 살아가는 것들이!”
“아버지! 그만 하세요! 엘프님. 제게도 그 마법을 걸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이벡이 디르네스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아, 아이벡!”
디르네스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이벡을 바라보았다.
“흠. 흠. 허리를 굽힐 필요는 없다. 드워프의 전사여.”
아이벡의 손에 빛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온몸에 총천연색 빛도 함께 스며들었다.
“숲의 신께 위임받은 최상급 가호네. 무운을 빌지.”
“네, 네놈···.”
“흥. 예의 바르고 용기 있는 어린 전사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을 뿐이다.”
드워프 헤벡과 엘프 디르네스가 서로 어색하게 선 채 아이벡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벡을 영지민으로 등록했다.
아이벡의 몸에 가호의 효과가 적용되었다.
“이··· 힘은?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이벡이 대장장이 망치를 꺼냈다.
“이것도 쓰거라!”
헤벡이 자신의 망치를 건넸다.
아이벡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골렘 사이로 파고들었다.
“브리파인 마을의 특급 센티널들은 모두 저 드워프를 엄호한다!”
촥.
엘프들이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 경례했다.
팅. 팅. 팅팅팅.
활시위가 놓이자, 아이벡에게 다가가던 골렘들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폭발하는 돌 조각 사이로 양손에 망치를 든 채 골렘들을 터트려가는 아이벡의 모습은 신화 속 영웅처럼 보였다.
“아, 아이벡···!”
헤벡이 눈가를 훔쳤다.
“드워프답지 않게 쓸 만하군.”
“껄껄! 누구 아들인데!”
“이곳은 어디인가?”
“우리들의 고향. 니다벨리르네.”
“니다벨리르···.”
“알프헤임 소식은 들었네··· 유감이야.”
“고맙네. 고향을 마주하는 기분은 특별하지. 숲은 없지만··· 꽤 분위기가 좋은 땅이로군.”
꽝! 꽝!
폭음이 이어지고, 파도처럼 몰려들던 골렘의 물결이 잦아들었다.
* * *
“허··· 이걸 다 잡았네.”
전투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아이벡이 마지막 골렘을 터트리며 전투가 종료되었다.
“아버지! 골렘이 남긴 이 광석들 쓸만한 거 같은데 다 재활용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아이벡이 치유노래 타워 옆에서 상처를 회복하며 땀을 닦았다.
헤벡이 고개를 저었다.
“바리늄은 주조하기 전에 정화시키면 복원력이 다 사라져. 그러니 그냥 고철 덩어리다. 단단하긴 할 테니 건설에 쓰면 좋겠군.”
“이 정도면 도시 하나를 짓고도 남겠는데요?”
골렘이 죽고 남긴 광물은 웬만한 산 하나를 능가했다.
“그야 그렇지. 그런데 이놈아! 바리늄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책 볼 시간에 쇠 한 번 더 만지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책이 훨씬 재밌어요! 대장일은 지겹다고요! 저도 모험을 하고 싶어요!”
“자, 이동합시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함께 하겠네.”
“감사합니다. 대 장로님.”
이상한 부자지간의 대화를 뒤로하고 드워프 왕국을 향해 이동했다.
* * *
“허···.”
“와아···.”
“이럴 수가···.”
“으하하하! 역시 우리 드워프들의 고향! 제대로 지었구나!”
드워프 왕국의 입구에서 다양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헤벡. 테낙스는 어디 있을까요?”
“흠··· 구조가 현재 우리 왕국과 거의 흡사해. 그럼··· 광물을 보관하는 장소야 뻔하지. 가세.”
엘리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왕국은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상태가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는 헤벡을 따라 왕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흐음··· 그래. 역시. 여기군.”
“아버지. 거기 아니에요. 저깁니다.”
“엥? 왜! 아니다! 비상시 중요 광물 보관 장소는 항상 궁정 아래층이었어!”
“옛날인걸 감안해야죠. 개정된 규정이 그렇고 원래는 이쪽입니다.”
아이벡이 성큼성큼 앞장섰다.
헤벡은 장성한 아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따라갔다.
커다란 문 앞.
한눈에 봐도 두꺼워 보이는 문이다.
“여기 맞죠?”
“흠흠. 그래 네가 맞다. 영주, 여기가 왕국의 존폐 위기에 중요 광물을 저장하는 보관소일세.”
“헤벡. 근데 비상시 드워프 먼저 대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존폐 위기에 왜 광물을 저장하고 있어요···?”
“광물이 더 중요하지. 드워프는 도망칠 수 있지만, 광물은 다리가 없지 않나?”
약간 사고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근데 어떻게 열어요? 문고리도 없고···.”
“으하하하! 문고리라니 정말 웃긴 농담이야!”
헤벡이 망치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쾅!
번쩍! 번쩍!
헤벡 주위로 에너지가 퍼져나가며 왕국에 있던 루미너스 스톤이 모조리 켜졌다.
“우리 드워프의 각 가문은 각자 전승하는 특수한 권능이 있지. 우리 스트롱해머 가문은 광물과 시설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고.”
‘오. 마치 인증처리 방식 같네.’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만 열 수 있는 문.
쿠쿠쿠쿠쿠쿠.
서서히 보관소가 열렸다.
“에이 뭐야··· 순 돌멩이랑 고철 조각뿐이네. 보물 창고인 줄 알았는데!”
굴락이 투덜거렸다.
넓은 내부에 빼곡히 자리한 선반에는 수많은 광물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헤벡이 광물 상태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선조들도 광물을 속성별로 배치했군. 아이벡. 내가 통치할 때 이렇게 바꿨던 거 기억 하느냐?”
아이벡은 대답 없이 선반으로 달려들어 정신없이 광물을 살펴보았다.
“에잉 쯧쯧. 영주, 나는 테낙스를 찾아볼 테니 잠시 있게.”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위험 요소가 없는지 살펴보겠네.”
엘프들은 보관소 밖으로 나가 흩어졌다.
“주인! 여기! 여기! 보물이다!”
굴락이 보관소 안쪽에서 소리쳤다.
“이게··· 뭐야?”
정말 보물 상자다.
엄청나게 커다란 것만 빼면.
굴락이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뭐 열쇠가 검 크기는 되어야겠는데?”
‘검 크기?’
나는 4차원 주머니에서 경쟁 임무 1위 보상으로 받았던 열쇠를 꺼냈다.
– ■■이(가) 봉인한 보물 창고를 열 수 있습니다.
‘이게 여기에 맞을까?’
나는 검 크기의 열쇠를 상자에 넣고 돌렸다.
철컥.
끼이이이이익.
상자가 서서히 열렸다.
빛이 쏟아져 나온 자리엔 주먹만 한 씨앗이 하나 들어있었다.
[이그드라실 씨앗]– 긴눙가가프의 힘을 담고 있는 세계수의 씨앗입니다.
– 싹을 틔우려면 미미르의 샘물이 필요합니다.
‘세계수···?’
드워프, 엘프 삼각동맹과 알프헤임 재건
“에이 뭐야. 보물 상자인 줄 알았는데··· 고작 이거 하나 들어있는 거야? 누가 다 털어간 건가?”
굴락이 커다란 상자 안에 달랑 하나만 들어있는 씨앗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게··· 뭐지?’
내 기억에 세계수는 북유럽 신화를 이루는 근간이다.
‘9개의 세계를 구성하는 나무라고 했었나.’
그 나무의 씨앗이라니?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어렵다.
‘안젤라는 알려나?’
어쩌면 이걸 심어 지구를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씨앗을 집어 4차원 주머니에 넣었다.
“딱 봐도 누가 쓰레기 넣어둔 거 같은데 그냥 버려. 뭐하러 챙겨?”
굴락이 투덜거렸다.
“다 쓸 곳이 있어.”
“영주! 찾았네!”
헤벡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게 테낙스라는 금속이네. 선조들께서 많이 캐 두셨군.”
“이거 한 덩이가 많은 건가요?”
“상당한 양이네 이 정도면 한 30년은 모은 거야.”
“허··· 그렇군요.”
채굴 과정에서 극소량씩 나오는 가루를 모아 특수한 방법으로 주조하는 테낙스.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다소 파괴되긴 했지만, 대장일에 쓰는 도구는 멀쩡한 거 같으니···.”
테낙스로 만든 망치를 이용해 아티팩트 심볼을 깨기만 하면 된다.
모양보다는 재질이 중요한 것이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며 헤벡이 테낙스를 들고 사라졌다.
“늙은 드워프는 어디 갔나?”
디르네스가 종이 몇 장을 들고 보관소로 들어왔다.
엘프들의 전투지원을 받았던 아이벡이 정중한 어조로 답했다.
“아버님은 해머를 만들러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쪽지가 있더군. 자네들 언어가 아닌가 싶은데.”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벡이 꼼꼼히 쪽지를 살폈다.
“흠··· 역시 요즘 문자와는 조금 다른 게 있군요.”
“그럼 못 읽는 거야?”
“아뇨. 저는 책을 워낙 좋아해서요. 대략적인 뜻은 유추 가능합니다. 내용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급하게 흘려 쓴 티가 역력한 쪽지에는 드워프 왕국의 멸망에 관해 적혀있었다.
내용 대부분은 아이벡이 알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궁니르라는 무기에 대적할 장비를 만들어 달라던게 침공의 이유가 아니었어요.”
“아니라고?”
“네. 이걸 작성한 사람은··· 최소한 5대 가문의 수장 격은 되었겠어요. 제가 읽은 책은 일반 드워프가 작성했고··· 이 쪽지와는 정보의 질적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아스가르드는 지원 요청에 응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신들이 세계와 전사들의 영원한 휴식처 발할라도 공격받아 정신없는 와중이었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자 아스가르드는 은밀하게 보물 상자를 하나 보냈다.
아홉 세계 중 가장 견고한 니다벨리르의 제일 깊은 곳에 보물을 숨겨주길 바라며.
“요툰헤임에서 그걸 알아낸 모양이에요. 그래서···.”
“침공이 시작된 거구나.”
“네. 땅속 깊이 파묻었다고 생각했나 봐요. 요툰헤임의 거인 마법사가 침공과 동시에 골렘을 만들어서 계속 땅속을 파고 들어갔고요.”
허허실실.
오히려 보물 상자는 땅속 깊은 곳이 아닌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광물 보관소에 있었다.
‘그래서 여기 골렘이 잔뜩 있었구나.’
이제 어느 정도 앞뒤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게 정말 보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일단 기록을 통한 교차 검토로 정품인 건 확인했고.’
미미르의 샘물 이라는 것만 구하면 씨앗을 틔울 수 있다.
‘그러면··· 지구도 복구할 수 있겠지.’
“다 만들었네!”
“헤벡. 이게··· 뭔가요?”
“해머지.”
“해머라고요?”
“그나마 나무가 없어서 저기 시커먼 엘프 노인네가 자기 활대를 부러트려 줬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만들었던 무언가와 닮았다.
대충 만든 덩어리 끝이 조금 뾰족한 게 전부인 망치.
“테낙스는 처음 다뤄보는 데다 이게 얼마나 단단한지 내 망치도 다 망가졌어.”
아닌 게 아니라 헤벡의 대장장이 망치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고마워요. 헤벡.”
나는 모두와 함께 광장으로 이동했다.
* * *
엘프들도 수색을 마치고 광장에 모였다.
나는 아티팩트 심볼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갑니다!”
테낙스로 만든 망치를 내려쳤다.
쾅!
번쩍!
순간적으로 빛이 터져 나왔다.
“오, 된다! 주인! 더 내려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