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ntain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9
마법진이 있던 대리석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크크크크. 모두 심연 속으로 떨어져 죽어라!”
대리석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컹!
크어어어어!
같은 편인 라바 골렘과 켈베로스도 추락했다.
“아··· 쟤 불쌍하다. 어쩌냐?”
“안타깝네. 나름 회심의 일격인 거 같은데.”
“아직 자판기 남아있나? 목마른데.”
파티원들이 떨어지는 몬스터와 대리석 바닥을 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크··· 크크크 미쳐버린 건가? 그럴 수 있지. 저 아래는 바닥이 없다. 너희는 영원히 추락하게 될 것이다.”
아케인 위저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팔을 들어 올려 가볍게 흔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검은 허공에 배가 나타났다.
배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우리가 있던 대리석에 정박하자 파티원들이 갑판으로 뛰어올랐다.
“아, 아니! 이, 이럴 수가··· 대체···!”
아케인 위저드가 하염없이 떨어지는 몬스터를 뒤로한 채 허공에 떠올라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시설 소환.’
철컥. 철컥.
텅. 텅.
포문이 열리고 저격 타워 8기가 배치되었다.
아서스가 타워를 수동 모드로 돌려 아케인 위저드를 조준했다.
꽈아아아앙—!
배가 뒤로 밀리며 포가 쏘아졌다.
“크···크아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아케인위저드가 소멸했다.
“설마 배가 있을 줄은 몰랐겠지.”
“그냥 플라이로 공중에서 싸워도 되는 거 아냐?”
“아무래도 이동에 제약이 있으니까. 플라이랑은 안정감이 다르잖아.”
아케인 위저드가 사용한 회심의 일격.
나쁘지는 않은 필살기다.
그저 내가 배를 가지고 있었을 뿐.
사각형 대리석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길만 남았다.
“바닥을 밝아야 길이 계속 생긴다니··· 내려가자.”
“오케이.”
우리는 다시 배에서 내려 하염없이 걸었다.
* * *
“피곤한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낮, 밤 구별이 안 되니···.”
“차라리 미궁이 나은 것 같아. 거긴 벽이라도 있었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걷기만 하는 건 끔찍한 고문에 가까웠다.
아케인 위저드를 벌써 4번이나 처리했다.
특별한 공략법이 있거나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시작하자마자 저격 타워로 날려버리고 계속 전진했다.
“그레모리. 디아블로가 여길 와도 이렇게 걸어 가야 해?”
“깔깔깔. 그럴 리가. 우리는 허가받지 않은 방문자라 이런 거지. 침입자를 위한 일종의 방어 능력이랄까? 보통 이쯤 되면 디아블로가 나타나거든.”
“자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번다 이건가.”
디아블로는 지금 명계에 없다.
생각할수록 그레모리의 수완이 정말 놀랍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능력을 파악하고··· 여기까지 오다니.’
마왕은 마왕이다.
“흐응··· 거의 도착했어. 내 무기가 나를 부르는 기운이 강해졌다.”
그레모리가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모두 영지로 귀환해. 좀 쉬어.”
지쳐있던 파티원들이 반겼다.
“드디어 끝나는 거야? 전투 시작하면 불러줘.”
“나는 잠깐만 소파에 눕고 싶어.”
“나는 그냥 하늘 좀 봤으면 좋겠다.”
“부담 없이 빨리 불러줘.”
파티원들과 굴락까지 모두 귀환하고 아서스만 남았다.
“나는 남겠네.”
“엥? 가서 좀 쉬지.”
“모험은 함께할 때 더 빛나는 법이지. 자네만 괜찮다면 남고 싶군.”
“나야 상관없지만···.”
아서스가 복사되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말동무라도 있으면 더 좋겠지.
계속해서 길을 걸어가자 허공에서 대리석이 조립되었다.
철컥. 철컥.
“와··· 엄청나게 오래 걸리네.”
검은 공간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성이 생겨났다.
길이 연결된 부위에는 커다란 성문이 자리했다.
“들어가보자.”
내부는 썰렁했다.
겉보기에는 성인데 내부는 여태껏 경험했던 아케인 위저드가 나오는 사각형 공간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벽이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였다.
“이게 보물 창고야? 보물은 어디에 있지?”
“기다려 봐.”
그레모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앞에서 사람 두 명이 걸어 나왔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 * *
‘그레모리는 복사되지 않는구나.’
마왕이니 당연한 결과일까.
우리 둘만 복사되었다.
– 해주의 반지 작동. 저항 완료!
도플갱어가 나타나자마자 해주의 반지가 작동했다.
털썩.
“끄으으으으.”
아서스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신계 공격인가?’
“아서스! 정신 차려! 차라리 돌려보내 줄···.”
“안돼! 지금 돌려보내면 저 인간은 미쳐버리게 된다.”
이미 정신이 잠식되었다.
상대를 죽여도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미쳐버리게 된다.
“그걸 왜 이제 말해!”
“흐응··· 이겨낼 줄 알았지?”
“계약 위반이잖아!”
“나는 길을 안내했을 뿐. 모든 판단은 네가 했다. 계약 위반은 아니지. 깔깔깔! 나는 내 힘을 찾으러 가야겠다. 계약자가 죽으면 자동 해지되지만··· 이 경우에는 그냥 미쳐버리는 게 더 나을지도? 깔깔깔!”
그레모리는 몰려든 검은 기운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젠장.’
불공정 계약에도 별다른 불만 없이 서명했던 그레모리.
처음부터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힘을 잃은 자신이 이곳에 도착하는 걸 도와줄 존재가 필요했을 뿐.
힘을 되찾고, 내가 죽거나 미쳐버리면 손쉽게 팔찌를 회수할 수 있다.
‘내 뒤통수를 치다니··· 기다려라. 사람 잘못 봤어.’
그나마 다행인 건 둘만 복사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파티원이 귀환할 때 그레모리는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었다.
‘어차피 목적은 힘을 되찾는 것··· 나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계약자인 나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반대도, 찬성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
“크크크. 아서스 발포그. 역시 제이나는 뒷전이구나.”
“끄으으. 아, 아니다! 계속해서 찾고 있다!”
“솔직히 말해봐. 잠깐 데리고 놀려는 생각 아니었나? 첫눈에 반했지만 별다른 배경이 없는 영지민 출신이잖아?”
“그렇지··· 않아!”
“나는 네 속마음이다. 아니라고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 크크. 어릴 적부터 왕국을 통치하고 싶었지? 형만 생각하는 아버지가 미웠고.”
“끄아아아. 내 머릿속에서 나가!”
쿵. 쿵.
아서스가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찧었다.
“저 인간을 만나 잘하면 왕국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잖아? 뭐 어때? 너는 왕위를 이을 자격이 있는 후계자다. 이건 반역이 아닌 왕위 계승을 위한 정당한 투쟁이고!”
나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호오. 역시··· 꽤 잘 버티는군? 상당히 고통스러울 텐데.”
“그야 아이템빨이 있으니까.”
“아이템이라? 오크 전사의 목걸이? 출혈의 반지? 군주의 망토? 전부 우연히 얻은 장비지. 남들을 시켜가며 자신은 리요네스의 타워 뒤에 숨는 겁쟁이 아닌가!”
도플갱어가 자신의 몸에 복사된 아이템을 훑었다.
’S급 아이템이 다 빠져있어.’
A급 이하 아이템만 복사되었다.
그 증거로 도플갱어에겐 팔찌가 없었다.
애초에 S급 아이템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도플갱어.
‘역시··· 완벽하지 않아.’
해주의 반지가 저항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리요네스 타워라는 명칭도 이상하다.
‘저항 했던 그 정신공격이 먹혀야 모든 기억이 제대로 복사되나보군.’
지금은 그냥 껍데기와 얕은 정보만 복사한 상태다.
내가 정신 공격을 그냥 버티고 있다고 착각하는 도플갱어.
‘차라리 다행이야. 다들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물론 해주의 반지와 S급 아이템을 둘둘한 내게는 별것 아니다.
하지만 파티원들이 있었다면 즉시 아서스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재미로 만들었겠지. 어떤 미친놈이 디아블로의 내성 옆에 있는 보물 창고에 침입하겠어.’
그런 것 치고는 악랄한 방법이다.
힘겹게 마지막까지 온 침입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고통.
실로 마왕다운 생각.
‘나한테는 안 먹히지만··· 아서스도 보내둘 걸 그랬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나는 도플갱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맞아. 인정한다.”
“뭐라고···?”
“겁이 많아서 남들 뒤에 숨어. 그게 뭐 어때서? 숨으면 안 되나?”
“그··· 그게 무슨?”
도플갱어가 당황했다.
“원래 내 각성능력은 꿀 빨라고 있는 거야. 가만히 있어도 강해지는데 왜 생고생 하냐? 미친놈인가?”
“뭐, 뭣? 대체 그게 무슨···! 너는 분명히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 그거야 내가 좀 더 강했으면 편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미안한 거지. 너 아무래도 제대로 복사를 못 했구나?”
도플갱어가 당황하며 허리에 찬 검을 들었다.
“죽어라!”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나는 다그다의 곤봉 아이템 스킬 ‘조율’을 사용했다.
번쩍!
콰직.
“크윽.”
쿵. 쿵.
나를 향해 달려들던 도플갱어와 아서스를 조롱하던 놈이 무릎을 꿇었다.
하늘에서 천칭이 내려왔다.
“크으으··· 이, 이놈! 이게 무슨?”
“대체 무슨 짓이냐!”
“뭐긴. 안 그래도 그레모리 때문에 기분 나빴는데 그냥 스트레스 풀려고.”
천칭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잘 가라.”
퍽!
도플갱어 두 마리가 비명조차 없이 소멸했다.
“끄으으으. 나, 나, 나는··· 나는···!”
나는 무릎을 꿇고 혼란스러워하는 아서스에게 다가갔다.
미리 챙겨둔 이둔의 사과를 꺼냈다.
모든 상태이상과 질병을 해제하고 회복시키는 열매.
각성자에게만 효과가 있다.
“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 이거라도 먹어봐.”
아서스가 힘겹게 사과를 먹었다.
“끄으으··· 하아. 이게 대체 무엇인가? 두통이 싹 가라앉았네.”
아서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각성자가 아닌데 통하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아서스는 반 각성자다.
내가 영주 대리로 지정하며 상태창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면 아이템이 먹히나···?’
나중에 테스트 해 봐야겠다.
“미, 미안하네. 나도 빠져있을 걸 그랬군.”
아서스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모습을 했던 도플갱어가 했던 말은··· 잊어주게.”
“괜찮아. 뭐 어때? 능력 있으면 형 제치고 왕좌를 차지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기업들도 동생이 물려받는 경우가 흔한데 뭐.
물론 말보런스 사고방식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 말에 아서스가 눈을 부릅떴다.
“차지한다고···? 당연하다고?”
“그래. 우리 세상에는 능력이 우선이야. 뭐 혈통이나 서열이 없지는 않지만··· 너 정도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 내가 팍팍 밀어줄게. 걱정마.”
“그··· 그럼!”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너 정도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을 거야. 이건 진심이다.”
“고··· 맙다. 서진우.”
아서스의 눈에 감동이 차올랐다.
반짝.
도플갱어가 있던 위치에 열쇠 두 개가 나타났다.
쿠쿠쿠쿠쿠.
진동과 함께 보물상자 수십 개가 나타나 바닥을 가득 채웠다.
‘이거 딱 봐도···.’
이 중에 두 개를 고르라 이건데.
* * *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행운이 있나. 푸하하하.”
“왜그러나?”
“여기서 두 개 고르라잖아. 무려 두 개! 물론 하나는 네 것인 거 같지만.”
도플갱어 두 마리가 하나씩 떨어트렸으니 공평하게 나눠야지.
“난 되었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자네가 다 가지게.”
“그럼 사양하지 않지. 왜냐면··· 나는 이런 상자에 강하거든.”
[스몰 참(Small Charm)]– 등급 : C
– 희귀 아이템 획득확률 소폭 증가
– 모든 마법 저항력 소폭 증가
– 소지하고 있는 경우에만 발동합니다.
‘여기에 희귀 아이템 확률 증가가 붙어있고.’
S급 갑옷 수수께끼에도 붙어있다.
상자는 크기도 색도 제각각이었다.
나는 제일 큰 상자에 다가갔다.
“이보게. 보통 제일 큰 상자를 고르지 않겠나? 그런걸 고려하면 안 좋은 게 들어있을 수 있는데···.”
아서스가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더 이걸 골라야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얘를 안 열 테니까.”
철컥.
끼이이익.
열쇠를 돌리자 내부에 있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상된 바이던트]– 등급 : S
– 착용 시 귀속
– 명계의 관리자 하데스의 창입니다. 전쟁을 거치며 손상되었습니다.
– 죽음을 관장하는 힘이 있습니다.
– 이 창으로 적을 죽이면 카르마가 쌓입니다.
– 착용 효과 : 모든 공격 치명타.
– 착용 효과 : 저주, 암흑계열 저항 대폭 증가.
– 착용 효과 : 스킬 [부활] 적용
– 부활(패시브) : 사용자가 죽음에 이르면 카르마를 소모해 부활할 수 있습니다.
[키비시스]– 등급 : S+
– 착용 시 귀속
– 여신 헤라의 주머니
– 무엇이든 얼마든지 넣고 언제든지 꺼낼 수 있습니다.
– 키비시스에 넣은 아이템은 착용 효과가 발동합니다.
“죽여주네.”
하데스의 창은 사용자를 부활시킨다.
‘창으로 적을 죽여야 하니···.’
아이언 골렘과 함께 적들에 둘러싸이는 탱커 박성남에게 딱이다.
‘드디어 10개 제한이 풀렸다.’
A급 아이템이던 4차원 주머니.
물건 보관에 10개 제한이 있었다.
그 인벤토리 업그레이드 버전.
상당히 좋은 수확이다.
나는 아이템을 챙기고 다시 상자를 물색했다.
상자 중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음··· 저 상자만 유독··· 낡았네.’
열쇠가 없이도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의 상자다.
“이, 이보게 저건 아무리 봐도 좋아 보이지 않네만.”
“내 직감이 이걸 열어보라고 말하고 있어.”
철컥.
끼이이익.
상자가 열리고 아이템이 튀어나왔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한 것 같은 아이템.
‘이건···!’
나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참교육 시간이다. 그레모리.’
탈영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