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d is a sword master RAW novel - Chapter 11
우리 아빠는 소드마스터 011화
“그럼 시험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양지수와의 전화를 마쳤다.
시험장 로비.
수많은 헌터 지원자들이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는 이곳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평균 90점이라.’
원래 글로리 길드의 가입 기준은 평균 70점이었다.
양지수 또한 내게 70점을 요구했고.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양지수는 평균 90점으로 기준을 대폭 상향했다.
보나 마나 꼰대 같은 윗대가리의 미친 생각이겠지.
나는 과거 알바를 하던 시절의 또라이 사장들을 떠올리며 양지수가 얼마나 곤란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근데 또 오기가 생긴단 말이지.’
그런데 왜일까.
분명 부당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오기가 차올랐다.
70점에서 90점으로 올린다고?
숫자만 들어도 미친 듯이 어려운 점수를 제시한 건, 결국 나를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윗대가리가 왜 그렇게 꼬였는지는 몰라도 나한테 꺼지라고 하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더욱 오기가 차올랐다.
90점?
좋다.
내가 맞춰줄게.
너로선 상상할 수 없는 점수를 제시한 거겠지만, 그걸 실제로 이뤄내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줄게.
물론 90점을 실제로 달성한 이후엔 그에 합당한 요구를 해야겠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보자고.’
나는 평균 90점이라는 살인적인 조건을 상상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변태인지는 몰라도, 달성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니 더더욱 오기가 생겼다.
그래, 해보자.
그 어떤 무거운 시련이 닥쳐와도 불도저처럼 깨부수고 나아가주마.
이세계에서 발버둥치던 시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때였다.
– 헌터 협회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부터 제 72회 헌터 자격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헌터 지원자분들께서는 1차 시험을 위해 시험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지금부터 헌터 자격시험을, 그중에서도 1차 시험을 시작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자, 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본격적인 헌터 자격시험의 시작이었다.
* * *
“팀장님, 뭐래요? 네? 뭐라는데요?”
팀원 윤대영이 전화를 끊은 양지수에게 물었다.
양지수는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시겠대.”
“네?”
“평균 90점, 자기가 한번 달성해보시겠대.”
“예에?!”
윤대영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워낙 가벼운 성격의 그지만, 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평균 90점은 불가능에 가까운 점수니까.
90점을 받아오라는 말은, 길드에서 받아주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입에 파리가 드나들 것처럼 벌리고 있던 윤대영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아, 아니. 정말요? 정말 그걸 하시겠대요?”
“으응······.”
“와, 세상에. 그분도 자존심 장난 아니네요. 그 정도로 말했으면 길드 가입 취소된 거라고 알아들어야지 그걸 기어이 하겠다고 말했어요? 이야, 성격 예술이네. 객기도 그 정도면 진짜 예술의 경지네요.”
윤대영이 뭐라고 조잘댔지만 양지수는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이신혁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윤대영이 말했다.
“아닌가? 객기가 아니라 무지인가? 안 그래요, 팀장님?”
“무지라니.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요. 그분, 맨 처음에 만났을 때 헌터니 길드니 아무것도 몰랐잖아요. 그래서 헌터 자격시험의 평균 90점이 얼마나 빡센 건지 모르는 거 아닐까요? 모르니까 일단 할 수 있다고 말한 거고요.”
“흐음······.”
비아냥이 담긴 말이었지만 양지수는 윤대영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맨 처음, 이신혁은 헌터나 길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물론 일반인 연기를 하기 위해 모른 척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력을 드러내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만약 일반인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미노타우로스를 일격에 사냥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신혁이 일반인 연기를 하려는 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무지에 기반한 용기인가?
정말 헌터계에 무지해서 객기에 가까운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었던 건가?
양지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신감인가, 객기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지인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 그냥 신경 쓰지 말죠? 어차피 무조건 실패할 텐데 뭐 하러 그렇게 신경을 쓰세요.”
“그래도 그건 경우가 아니지. 아무리 대화만 했다고 해도 이미 정한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꾼 건데······.”
“뭐 어쩌겠어요. 저희가 그런 것도 아니고 브론즈 공격대장님이 정하신 건데.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말하자마자 화냈으면 모를까, 자기가 해보겠다고 했잖아요. 그럼 괜찮아요. 실패하면 부끄러워서라도 버로우 탈 테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윤대영에게 양지수가 말했다.
“실패할 거란 사실은 나도 알아. 90점은 불가능한 수치니까.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보상을 해드려야 해. 사비를 털어서라도.”
“에이, 무슨 사비까지 털어서 그래요? 그냥 넘어가세요. 그냥 넘어간다고 그 사람이 칼 들고 찾아올 것도.”
윤대영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그건 아니야. 이건 계약 위반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해. 최소한의 위약금을 드려야 한다고.”
“위약금이요? 뭐 얼마나 해주시려고 그러세요?”
“글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달 치 급여는 드려야 하지 않을까?”
“예에? 1억을 준다고요? 에이, 그건 아니죠! 아무리 저희 글로리 길드원이 돈을 잘 번다고 해도 1억이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윤대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하지만 양지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윤대영 너한테 나눠 내라고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예? 아, 그럼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좀······.”
돈을 안 내도 된다는 사실에 윤대영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바보처럼 웃었다.
양지수는 그런 윤대영을 한 번 쏘아본 뒤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글로리 길드 본사의 우월한 높이 덕분에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양지수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헌터 협회의 높다란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건물에선 이신혁이 시험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미안해요, 신혁 씨. 그래도 제가 최대한의 성의는 보일게요.’
양지수는 실패가 뻔한 이신혁의 도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보냈다.
그리고 속으로 약속했다.
이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최소한의 금전적인 보상을 하겠다고.
“휴우······.”
우중충한 하늘엔 먹구름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올 모양이었다.
* * *
나는 다른 헌터 지원자들과 함께 1차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1차 시험장은 굉장히 넓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의 시험에 몰려든 헌터 지원자 5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해야 하니까.
‘수능 시험을 다시 보는 것 같네.’
온통 새하얀 시험장.
그곳에서 나는 마찬가지로 새하얀 책상에 앉았다.
나를 비롯한 모든 헌터 지원자가 책상에 얌전히 앉아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건 다름 아닌 1차 시험이 ‘필기 시험’이기 때문이었다.
‘헌터가 싸움만 잘하면 됐지 무슨 지식이 필요하냐. 헌터가 무슨 사무직도 아니고.’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무려 5과목으로 나뉜 헌터 자격시험 중에 필기 시험이 끼어있는 게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뭐 몬스터들이랑 만나서 논쟁을 할 것도 아니고 참.
그때였다.
– 지금부터 제 72회 헌터 자격시험의 1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헌터 지원자분들께서는 책상에 올려진 모든 물건을 집어 넣어주십시오.
스피커의 안내 방송과 함께 헌터 지원자들이 교재나 프린트 같은 것들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에 들고 고시생처럼 달달달 외우던 것들이었다.
“자, 그럼 시험지 배부 시작하겠습니다.”
시험관의 말과 함께 시험지 배부가 시작되었다.
맨 앞자리부터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시험지가 넘어왔다.
그것을 보는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필기 시험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시험 공부를 할 여유는 없어. 그러니 남은 과목들에 올인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난 1차 시험인 필기 시험을 과감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왜?
아는 게 없으니까.
물론 공부하면 되겠지만, 당장 헌터가 되어야 하는 내 입장에선 공부에 매달릴 시간이 없으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0점만 받자. 그리고 나머지 네 과목을 만점 받는 거야. 그럼 90점으로 조건을 맞출 수 있어.’
시험에 대해 대충 검색을 해본 결과, 필기 시험의 모든 문제가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50%는 아주 쉬운 문제.
25%는 적당한 문제.
나머지 25%는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딱 50점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고 나머지 네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 평균 90점을 맞출 계획이었다.
‘누가 보면 무모한 계획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괜찮아. 육체 능력이라면 자신 있어.’
누군가 내 계획을 들었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필기 시험에서 운 좋게 50점을 확보한다고 해도, 나머지 네 과목에서 만점을 받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필기 시험의 낮은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나머지 네 과목에서 만점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머지 네 과목은 전부 육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고, 육체 능력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가장 강한 헌터보다도 말이다.
사락.
그때였다.
앞에서 차례로 넘어오던 시험지가 내게 도착했다.
나는 내 몫의 시험지를 받은 뒤, 나머지를 뒤로 넘겼다.
‘자, 일단 풀 건 풀고 나머진 3번으로 밀자.’
목표는 50점.
그걸 달성하기 위해 나는 일단 쉬운 문제들에 최대한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최대한 점수를 확보한 뒤, 나머지 어려운 문제들에서 3번으로 밀어 운빨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아슬아슬하게 50점을 넘길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그토록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지를 보는데.
‘······어?’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시험이 어려워서?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시험 문제가 터무니없이 쉽기에 놀란 것이었다.
‘고블린의 약점을 순서대로 나열하라고?’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쉬워?
그야 당연히 머리, 심장, 목, 복부, 명치 순서지.
스윽.
나는 곧장 답을 체크했다.
너무나 쉬웠다.
1초 만에 답이 파바박 하고 떠오를 정도로 쉽게 풀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세계에서 수없이 썰어댔던 게 고블린이고, 그런 내가 고블린의 약점에 대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1번 문제니까 그런 거겠지?’
모든 시험의 1번에는 쉬운 문제가 배치되기 마련이다.
응시자들에게 몸풀기를 하라는 의미로 배치해두는 게 1번 문제의 의미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보다 쉬운 난이도에 괘념치 않고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엥?’
그런데 이상했다.
2번 문제도 너무 쉬웠다.
스윽.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또다시 1초 만에 답을 체크했다.
마치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산수처럼 너무나 쉬웠다.
그래, 2번이라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스윽, 슥, 스슥, 슥.
3번도, 4번도, 5번도.
10번도, 20번도, 30번도 쉬웠다.
총 60문제니 이제는 좀 어려운 문제가 나올 때도 됐는데.
그런데 펜을 든 내 손은 여전히 망설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슥, 스윽, 슥, 슥.
나는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새하얗던 시험지에는 빨간색 체크가 우수수 쌓여갔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쉬운데?’
나는 귀를 후비적거리거나 하품을 하며 문제를 풀었다.
정말 따분할 정도로 쉽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아지경으로 시험 문제를 풀었다.
누가 본다면 아무것도 몰라서 찍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스윽.
그리고 마지막 60번 문제까지 체크한 뒤, 펜을 내려놓았다.
모든 문제를 너무나 가볍게 풀어제낀 나는 주변을 힐끗 살폈다.
다른 지원자들은 땀까지 뻘뻘 흘려가면서 열심히 시험을 보고 있었다.
‘흐음,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정신없이 시험을 본 나는 소요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았다.
그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엥?’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시간인 한 시간 중, 고작 5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