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d is a sword master RAW novel - Chapter 112
우리 아빠는 소드마스터 112화
포천 게이트의 깊은 골짜기.
그리고 그 골짜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 달팽이’.
나는 저 달팽이를 잘 알고 있었다.
‘에스카르고.’
저 거대 달팽이들의 이름은 ‘에스카르고’.
저놈들은 이세계에서도 잔뜩 있었던 몬스터로, 어느 지역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녀석이었다.
한 마리의 크기가 승용차만 한 저놈들의 먹이는 토양과 광석이었다.
쉽게 말해 흙도 먹고 돌도 먹는다는 뜻.
그렇게 잘 먹는 놈이라 그런지 번식력도 실로 대단했는데, 놈들은 일주일에 한 마리씩 출산할 정도로 대단한 번식력을 자랑했다.
그 먹성과 번식력의 증거가 바로 저 골짜기 아래에 있는 바글바글한 에스카르고들의 숫자였고.
팀원들이 말했다.
“하, 저딴 놈들을 처치해야 하다니. 글로리 길드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봉사하러 온 거잖아. 그러니까 좋은 마음으로 해치우자고.”
“그래야지. 휴,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힘 좀 써보자. 다행히 공격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놈들이니 다행이지.”
실제로 에스카르고들에게는 공격성이 없었다.
거대한 몸집으로 몸통박치기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싶긴 하지만, 놈들은 워낙 느릿느릿해서 그런지 그런 것도 여의치 않았다.
시간만 무제한으로 준다면 비각성자들도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약해빠진 게 에스카르고들이었다.
그렇기에 헌터 협희의 토벌대도 이 게이트를 방치해 둔 거겠지만.
“자, 다들 그만 떠들고 들어가자!”
이원구가 너클을 착용한 주먹을 들고 외쳤다.
그러자 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한 뒤,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스릉스릉 소리가 연달아 들려온 후, 시로코 팀원들은 전부 흉흉한 기세의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투입!”
이원구의 말과 함께 팀원들이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나 역시 용살검을 들고 골짜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절벽이나 마찬가지인 골짜기.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발을 브레이크 삼아 벽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렇게 한 5분쯤 내려갔을 때, 에스카르고들이 더듬이를 움직이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징그러운 놈들.
그놈들을 향해 이원구와 팀원들이 달려들었다.
콰아앙! 쾅! 콰아아앙!
시로코 팀원들이 수백 마리의 에스카르고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에스카르고들.
시로코 팀원들은 주먹을 내지르고, 칼을 휘두르고, 도끼로 내리찍으며 에스카르고들의 숫자를 줄여갔다.
그리고 나 역시도.
스각!
용살검을 휘둘러 에스카르고들을 베어냈다.
물컹물컹한 살점과 단단한 껍데기가 동시에 갈라졌다.
이후에는 반복 또 반복.
나를 포함한 시로코 팀원들은 골짜기를 파먹으며 미친 듯이 번식하는 에스카르고들을 정신없이 토벌했다.
“염병할 놈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네.”
“허, 이 와중에도 번식하는 거 봐라. 이 머저리 같은 놈들. 그 짓거리를 꼭 지금 해야겠냐? 어?”
“놔둬. 마지막 유희를 즐기는 건데 뭘 그래.”
“흐흐흐, 그런가? 그래도 영 심술이 나는데? 얼른 죽여 버려야겠어.”
“하긴, 우린 개고생하는데 저놈들끼리 재미 보면 좀 그렇지.”
“어허, 잡담 그만하고 빨리빨리 하고 가자고. 달팽이 진액 냄새 역겨워 죽겠다고.”
“오케이!”
팀원들이 이런저런 말을 떠들며 에스카르고 사냥을 이어갔다.
나 역시 묵묵하게 사냥을 이어갔다.
베고 베고 또 베고.
얼른 끝내고 이 빌어먹을 달팽이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는 열심히 사냥했다.
실제로 달팽이 진액 때문에 온몸이 끈적거렸고 또 악취도 대단했으니까.
그렇게 1시간 정도 사냥한 후.
우리는 에스카르고 수백 마리를 전부 사냥할 수 있었다.
“자자, 다들 고생했다. 이제 아이템이랑 마정석들 챙겨서 올라가자고!”
이원구가 박수를 짝짝 치며 말했다.
그 말에 시로코 팀원들이 에스카르고를 잡아 얻은 아이템들을 주웠다.
하지만 인벤토리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들은 결국 모든 아이템을 줍지 못했고, 남은 아이템들과 마정석 등은 준비해 온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하압!”
아이템들을 잔뜩 담아 빵빵해진 자루를 이원구가 들쳐멨다.
다른 팀원이나 내가 들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힘이 가장 센 자신이 들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원구가 저런 적이 있었던가?’
이원구는 지금껏 시로코 팀원들 사이에서 왕처럼 군림했다.
팀장 방민호 앞에서야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팀원들 앞에서 이원구는 폭군처럼 군림해왔다.
그런 그가 저 무거운 자루를 혼자 든다고?
그것도 자처해서?
이건 저번 게이트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올라가자!”
이원구의 외침과 함께 시로코 팀원들이 절벽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의아한 마음을 억누른 채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내려오는 것보단 올라가는 게 힘들었고, 팀원들은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올랐다.
‘맘 같아선 뛰어오르고 싶지만.’
마찬가지로 암벽등반을 하고 있는 나는 조금 답답했다.
솔직히 이 정도 깊이의 골짜기는 도약 한 번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눈 밖에 나겠지.’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간 괜히 눈에 튈 테고, 그러면 팀원들이 또다시 시비를 걸어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팀원들과 함께 골짜기 위까지 천천히 올랐다.
그때였다.
“어어어……!”
마침내 골짜기 위에 올라와 옷을 탁탁 털고 있는데, 누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루를 들고 뒤늦게 올라온 이원구가 뒤로 넘어지려 하고 있었다.
“어이쿠!”
비틀거리던 이원구는 다행히 골짜기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들쳐메고 있던 자루를 놓쳐버렸다.
퉁! 투웅! 퉁! 퉁!
아이템이 가득 든 자루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골짜기 아래로 데굴데굴 떨어졌다.
이원구와 팀원들은 허망한 얼굴로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이고, 저걸 어떡해?”
“열심히 들고 올라왔는데 떨어뜨려 버렸네.”
“이런. 저걸 두고 갈 수도 없는데. 어떡하지?”
“뭘 어떡해? 다시 내려가서 주워와야지.”
“흐음, 누가?”
이원구와 팀원들이 대화를 나눴다.
너무나도 어색하고도 어설픈 대화.
나는 뒤쪽에 서서 그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원구가 말했다.
“하, 이것 참. 저걸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이원구가 팔짱을 낀 채로 고민했다.
그는 팀원들을 쭉 바라보더니, 결국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신혁.”
“네.”
“미안하지만 네가 저것 좀 갖다줘야겠다.”
“제가 말입니까?”
“어. 내가 가고 싶은데 올라오느라 체력을 다 써서 말이야. 그렇다고 다른 팀원들을 시킬 수는 없잖냐. 다들 너보다 선밴데. 그러니까 막내인 네가 좀 갔다 와라.”
이원구가 말했다.
다른 팀원들 또한 비슷한 표정이었다.
내가 마땅히 다녀와야 한다는 듯한 표정 말이다.
“…….”
나는 침묵을 지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 말은 많았다.
그걸 왜 막내를 시켜야 하냐고 묻거나.
내려갈 사람을 공정하게 선정하자거나.
그것도 아니면 떨어뜨린 이원구에게 직접 가져오라고 해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저들은 나보고 주워오라며 몰아갈 것이기에.
그리고, 거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게 분명하기에.
“정말 제가 가져옵니까?”
나는 정말 내가 가져오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저 자루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정말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걸 실행할 생각이냐고 다시 한번 묻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마지막 기회 같은 것이었다.
“그래, 어서 가져와. 우리도 얼른 복귀해서 쉬어야지.”
그러나 내가 기회를 줬음에도 이원구는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곁에 서 있던 팀원이란 놈들도 마찬가지였고.
“알겠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골짜기 아래로 향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하며.
* * *
쓰레기 매립지의 슬라임 게이트.
그곳에서 이신혁에게 역으로 당한 이원구는 내내 이를 갈아왔다.
복수.
이원구의 머릿속엔 복수라는 단어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복수를 할 수는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신혁은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물론, 시로코 팀 전원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이원구는 이신혁을 담글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포천 게이트까지 왔다.
복수의 방법은 게이트 공략 중에 이신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방식으로 공격했다간 역공당할 확률이 크기에 이원구는 일부러 이번 게이트를 골랐다.
이곳의 지형은 특수하고, 이 특수한 지형을 이용하면 이신혁을 손쉽게 담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이신혁이 대답했다.
실수를 가장해 떨어뜨린 자루를 주워오라는 말에 수락한 것이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골짜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절반쯤 내려갔을 때, 이원구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철컥! 철컥! 철컥!
팀원들이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특별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껏 꼭꼭 숨기고 있던 아이템.
그 이름은 ‘마나건’이었다.
‘이거라면 저놈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이원구 역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마나건을 꺼내 들었다.
푸른 마력이 스멀스멀 감도는 마나건.
이원구는 이신혁을 죽여 버리기 위해 팀원과 함께 마나건을 몰래 구매했다.
이 마나건은 에스카르고들을 토벌할 때도 절대 꺼내지 않고 준비한 것으로, 오직 이신혁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물건이었다.
‘다들 준비.’
마나건을 든 이원구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20여 명에 가까운 팀원들이 마나건을 든 채 일렬로 섰다.
사격 준비.
그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골짜기 아래의 이신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신혁이 자루 앞까지 다가간 순간.
“발사!”
이원구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마나건이 불을 뿜었다.
피융! 피융! 피융! 피융!
푸른 빛줄기를 늘어뜨린 마나건의 탄환이 골짜기 아래를 집어삼켰다.
쉼 없이 터지는 폭발과 연기, 흙먼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파편들.
그것들이 튀든 말든 이원구와 팀원들은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정지!”
그렇게 1분쯤 쏘았을까.
이쯤 됐다고 생각한 이원구가 사격 중지를 외쳤다.
비로소 사격을 멈춘 팀원들이 방아쇠에서 손을 뗐다.
여전히 자욱한 흙먼지.
그곳을 바라보며 팀원들이 비릿하게 웃었다.
“후, 이 정도면 됐겠지?”
“빌어먹을 자식, 드디어 해치웠네.”
“저 위에 카메라는 어쩌지? CCTV가 달려 있던데.”
“어쩌긴 뭘 어째. 이따 우리가 가면서 제거하면 되지.”
“그렇긴 하네. 하, 근데 너무 쉽게 죽인 거 아닌가? 이래선 시체도 못 건질 텐데.”
“그러게. 우리가 당한 걸 생각하면 똥오줌 다 쏟을 정도로 고문을 해도 모자라는데 말이야.”
“됐어. 이렇게라도 죽여 버리면 됐지. 그래도 마지막 순간엔 존나 괴로웠을걸? 같은 팀한테 뒤통수를 맞았으니 말이야.”
“그렇긴 하네. 초신성이네 유망주네 하면서 온갖 언론에서 띄워줬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이신혁 그놈한텐 이런 최후는 그 어떤 마지막보다 괴로웠을 거야.”
“인정. 하, 속 시원하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아. 이신혁 저놈 있는 사무실 불편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근데 저 새끼, 딸내미 있다고 하지 않았냐? 걘 좀 불쌍한데?”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그 아비에 그 딸인 거지. 그냥 자기 팔자라고. 병신 같은 아버지 둔 팔자 말이야.”
“뭐, 틀린 말은 아니네. 큭큭큭.”
팀원들이 낄낄거렸다.
자신들의 승리에 후련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어떠냐, 이신혁. 진짜 함정은 이런 거야.’
이원구는 흙먼지로 가득한 골짜기를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슬라임 게이트 때의 복수를 제대로 해준 그는 속이 너무나 시원했다.
통쾌하기도 했고.
그때였다.
슈우우우…….
자욱했던 흙먼지가 천천히 흩어진 순간, 이원구의 눈이 부쩍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말끔해진 골짜기 아래.
그곳에 이신혁이 멀쩡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