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dragon! RAW novel - chapter (120)
내 딸은 드래곤! 내 딸은 드래곤-120화(120/529)
억이 참 흔하다……? (2)
“아빠, 그런데 통장 만들고 한 번도 통장 정리 안 했는데?”
채린이는 그렇게 말하며 통장을 내밀었다.
“아, 그렇겠네.”
채린이 혼자 은행에 보낸 적이 없으니, 통장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게 당연했다.
지훈은 20만 원이 그대로 찍혀 있는 통장을 확인하고는 채린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일 통장 정리하면서 확인해 볼까?”
“응!”
‘학교 가는 길에 ATM이 있으니까 그때 정리해 보면 되겠다.’
증권 계좌는 통장이 아니라 어플리케이션 또는 인터넷으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그걸 모르는 지훈은 그냥 ATM기에서 확인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주식 통장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지훈은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이게 몇 자리……야? 일, 이, 삼, 사…… 헐.’
지훈은 무려 아홉 자리에 달하는 잔고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통장에 찍힌 잔고는 무려 3억 5천만 원에 달했다.
30대 직장인이 받는 평균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10년 정도 모아야 빠듯이 벌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
“…….”
믿기지 않는 현실에, 지훈은 통장에 찍힌 잔고와 채린이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그렇겠지?’
3억 5천만 원이라는 파괴력은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채린아, 이거 채린이가 직접 번 거 맞지?”
지훈은 채린이의 말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이번만큼은 그걸 깰 수밖에 없었다.
“응! 채린이가 직접 벌었어!”
채린이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다시 한 번 통장에 찍힌 거래 내역을 보았다. 20만 원으로 시작한 돈이 4개월 만에 열 배가 되었고, 이후로 꾸준히 상승 곡선만 그리며 금액을 불려 나갔다.
마지막 거래가 한 달 전의 일이었는데, 그때 3억이었던 원금에 5천만 원이 더해져 지금의 잔액이 된 것이다.
‘주식 시장은 백 명이 들어가면 한 명만 살아남는 곳 아닌가?’
지훈은 주식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을 들어 본 적 없다는 것이다.
‘기관 투자자나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거부들이 아닌 이상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이라고 들었는데.’
주식으로 수십억,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들을 나중에 검증해 보면 유사수신으로 금융사기를 친 것인 게 대부분이었다.
주식 시장은 개미들의 피눈물로 단단해진 공동묘지나 다름없다는 게 지훈의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으로 베팅할 수 있는 돈이 많아야 했다.
주식 시장 역시 돈 놓고 돈 먹는 돈놀이의 일종이라서 보유한 자금이 많을수록 유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상식을 전면에서 깬 사람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 사람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채린이 키우면서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훈은 반성했다. 그건 너무 오만한 생각이었다.
지금 든 생각인데, 앞으로도 놀랄 일은 더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딸은 바로 채린이니까.
“채린아, 이거 어떻게 번 거야? 시장 종목을 보면 그냥 어떤 게 오를지 눈에 보여?”
지훈의 질문에 채린이는 배시시 웃었다.
“우웅, 그냥 느낌인데? 오를 것 같아서 넣으면 꼭 올랐어.”
“그냥 느낌? 신기하네.”
채린이는 거짓도, 진실도 아닌 사실을 말했다.
용언을 훈련하면서 작전주만 골라서 올라탔기 때문에 지금처럼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작전주를 골라내는 게 채린이의 느낌인 동시에 용언의 능력이었기 때문에 진실도 거짓도 아닌 것이다.
지훈은 연구소에 도착해 다시 한 번 통장을 보았다. 채린이가 주식을 사고 팔 때마다 통장의 잔액은 조금씩 커졌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인 금액이다. 3억이 넘는 돈이라니.
‘그런데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하지?’
지훈은 3억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보며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내 통장에도 지금까지 억 단위 금액이 들어온 적이 없는데. 우리 딸은 여덟 살에 벌써 억 단위 돈을 벌다니. 엠디드가 아니었어도 우리 딸이 날 먹여 살렸겠구나.’
지훈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채린이가 있으니 늙어서 폐지 줍고 다닐 일은 없겠구나.
‘3억을 그냥 아이한테 맡기기엔 너무 큰돈인데.’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이제 그런 거금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채린이에게 쓰라고 무턱대고 맡기는 것도 옳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다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고민하던 지훈은 연구소 동료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박사님, 박사님은 자녀분한테 용돈 얼마 정도까지 허락하세요?”
“우리 딸? 매달 10만 원씩 주고 있는데, 모자라다고 난리지.”
이선웅의 딸은 이제 10대 여중생이니 용돈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왜? 채린이가 용돈 달라고 해?”
“그건 아니고요, 채린이도 언젠가 용돈을 받을 텐데 다른 집은 어떻게 주나, 미리미리 알아 두는 거죠.”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본론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박사님은 애한테 목돈을 맡겨서 쓰게 한다면 얼마까지 주실 것 같으세요?”
“목돈을 맡겨서 쓰게 한다고?”
지훈의 질문이 선뜻 이해되진 않았지만 이선웅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본심을 꺼냈다.
“경제관은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는 게 좋아. 채린이는 똑똑하니까 더 그렇지. 잃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돈이라면 난 그냥 맡겨서 어떻게 쓰나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선웅의 의견을 들은 지훈은, 차예지의 의견 역시 구했다.
“목돈? 애가 목돈을 쓸 일이 있나? 채린이가 뭐, 주식이나 부동산이라도 하고 싶대?”
“비슷해요.”
지훈은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3억 5천만 원이라고 하면 아마 믿지 못할 것이다.
속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차예지는 이선웅과 비슷한 말을 했다.
“채린이는 똑똑하니까 돈 버는 게 쉬워 보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한 번쯤 세상 무서운 줄 알게 소액 주식 정도는 하게 해 줘 봐. 돈 다 까먹고 울먹일걸.”
차예지의 말에 지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20만 원이 3억 5천만 원이 됐더라고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훈은 답답한 마음을 가실 길이 없었다.
‘우리 딸이 3억을 벌었어요! 동네 주민들! 우리 딸이 3억을 벌었다고요! 하아,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지만, 나는 딸이 번 돈을 딸이 벌었다 말하질 못하는구나.’
지훈은 말할 수 없는 현실에 한숨만 속으로 삼켰다.
‘도움되는 조언은 없네.’
이선웅이나 차예지가 생각하는 돈의 범위는 많아 봤자 여섯 자리, 10만 원 정도의 돈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섯 자리, 끽 해 봤자 수만 원 이내의 돈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난 아홉 자리라고, 아홉 자리……. 억 단위인데…….’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가 없다.
부모님과 상의할까 생각해 봤지만, 평생 소시민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지훈이 관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게 뻔했다.
지훈도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건 왠지 옳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돈은 분명히 채린이가 번 돈이었으니까.
게다가 한순간에 반짝 벌어들인 럭키 펀치 같은 게 아니라, 무려 1년 3개월 정도에 걸쳐 꾸준히 벌어들인 돈이다.
원금의 1,500배를 벌어들인, 월가의 전설이라고 해도 하기 힘든 결과를 이룩했다.
채린이가 이룬 결과인데,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뺏어서 자신이 관리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것 같지 않았다.
지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문제는 자신이 혼자 결정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린이 직접 번 돈이니까, 채린이 생각도 들어 봐야지. 채린이가 보통 애도 아니고 20만 원을 3억으로 만든 애인데.’
그렇게 결정한 지훈은, 그날 저녁 채린이와 함께 식사하며 이 문제를 꺼냈다.
“채린아, 채린이가 번 돈 있잖아.”
“응? 무슨 돈?”
“채린이가 주식으로 번 돈. 채린이는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싶어? 생각해 본 적 있어?”
지훈의 질문에 채린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린이는 그 돈으로 아빠랑 채린이랑 대학 다닐 때 학비로 쓰고 싶어!”
채린이의 말에 지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채린이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다 방법이 있어! 채린이가 그때 가서 알려 줄게!
그때 말한 방법이 이거였던 건가? 주식으로 번 돈? 상상도 못 한 방법이다.
지훈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채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채린아, 그러면 주식을 하려고 한 것도 아빠랑 같이 대학 다닐 때 학자금으로 쓰려고 시작한 거야?”
지훈의 질문에 채린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가 대학 다니는 건 채린이 부탁 들어줘서 그런 거니까 채린이가 내주고 싶었어!”
채린이는 그렇게 말하며 햇살처럼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 지훈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득 자신의 학부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돈 먹는 하마였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한테, 무언가 본이 되는 아빠가 되고 싶은데, 허들이 매일같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이젠 허들이 아니라 장대높이뛰기인 거 같은데. 하나하나 건너는 게 죄다 산이야.’
이쯤 되면 좋은 아빠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게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으음, 왠지 미래의 내 모습일 거 같은데.’
아기 새가 재잘거리는 것처럼, 채린이가 무어라 말한다. 그런데 자신이 모르는 주제다. 그걸 들으며 자신은 담담하게 웃으며 들어 준다.
듣긴 하지만 이해는 못한다. 어려운 주제니까.
그런데 그 광경을 상상하니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난 이미 아빠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었나?’
지훈은 좌절했다.
“아빠, 왜 그래?”
“응……? 아무것도 아니야.”
차마 부끄러워서 말할 순 없다. 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말을 돌렸다.
“그러면 학비는 이미 벌었잖아. 그 나머지 돈은 어떻게 할 거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한국대학교는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학비가 저렴했다. 의예과가 아니라면 비싸도 4백만 원 전후일 것이다.
1년에 8백만 원, 4년에 3천2백만 원이고, 두 명이니까 물가상승분을 고려할 때 총학비로 7천만 원 정도 소요될 것이다.
주식으로 번 돈을 학비로 쓰고도 2억 8천만 원 정도가 남는 것이다.
‘우와…… 학비로 다 쓰고도 2억……. 나랑 채린이랑 자취방을 따로 얻고 따로 살아도 1억은 남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3억이라는 돈이 어마어마한 거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평생에 3억을 벌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큰돈인 것이다.
“어떻게 쓰고 싶어? 채린이가 번 돈이니까, 아빠는 가급적이면 채린이가 쓰고 싶은 대로 썼으면 좋겠어.”
지훈의 질문에 채린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채린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아빠의 손길을 느낀 채린이는 동그란 눈으로 지훈을 보더니, 곧 사르르 웃었다.
“그럼 남은 돈은 아빠 생일 선물로 줄래!”
‘응? 뭐라고?’
지훈은 두 눈을 깜빡였다.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아빠랑 채린이랑 대학에 들어가면 3월이잖아? 그리고 3월에 아빠 생일이 있으니까, 학비로 쓰고 남은 돈은 다 아빠 선물로 줄게! 히히!”
‘생일 선물로 현금 2억 8천만 원을 주겠다고? 현금인데?’
2천8백만 원이라고 해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텐데, 무려 2억 8천만 원이다.
“…….”
생각지도 못한 채린이의 말에 뇌 정지 상태가 온 지훈.
한편 채린이는 그 와중에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
‘으음, 올해 아빠한테 차를 선물로 줬으니까 학비로 쓰고 남은 잔돈을 아빠한테 주면 딱 두 배 더 준 셈이네?’
채린이에게 2억은 잔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내년엔 4억짜리 선물을 줘야 하나?’
지훈이 안다면 기함할 내용을, 채린이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