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dragon! RAW novel - chapter (528)
내 딸은 드래곤! 내 딸은 드래곤-528화(528/529)
외전 45화
“…….”
아빠의 말을 들은 채린이는 말없이 입술을 들썩였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지, 표정이 편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해?”
가볍게 떨리는 채린이의 목소리.
지훈은 얘가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나 싶었는데, 이어진 말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없어져야 하는 거야?”
채린이의 말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우리 딸이 왜 없어져야 해? 당연히 아니지.”
“그렇지만…… 방금 내가 벽이 된다고 했잖아…….”
지훈은 그런 딸을 꼭 안아 주면서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아빠의 추측이니까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어.”
“만약 옳다면? 정말 내가 벽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약간 절박해 보이는 채린이의 질문에 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응?”
“채린아, 네가 벽이든 아니든 아빠한텐 아무 상관 없어.”
지훈은 부드럽게 채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의 손길이 기분 좋았던 까닭인지, 채린이의 근심이 다소 씻겨 나간 느낌이다.
“아빠는 우리 딸이 진짜 벽이라고 해도 상관 안 해. 그까짓 용언, 조금 못 쓴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까짓 용언이 뭐가 대수라고.
만일 용언을 얻기 위해서 채린이가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희생되어야 한다면 지훈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해?”
“당연히 안 중요하지. 아빠한텐 우리 딸이 가장 소중해, 그러니까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지훈은 채린이가 괜히 신경 쓸 것을 염려하여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신경 쓸 것 전혀 없어. 알았지?”
아빠의 말에도 채린이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어, 몰랐어?”
지훈은 기어코 대답을 듣겠다는 듯, 채린이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알았어.”
자그마한 채린이의 대답이 완전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훈은 만족하기로 했다.
‘책임감 있는 아이니까 당장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진 않을 테니까.’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예나와 조금 더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이후, 지훈은 침대에 누워 예나에게 물었다.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아까 자기가 말한 거?”
지훈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예나는 깊은숨을 뱉으며 말했다.
“맞는 것 같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고?”
“응.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해석 중에 가장 그럴싸하잖아.”
예나의 말대로 흰둥이를 놓고 별별 해석이 다 나왔다.
가장 황당한 것 중 하나는, 흰둥이가 일종의 종말 시계라는 것.
오목눈이의 평균 수명은 대략 5년.
5년 안에 용언을 되찾지 못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심판의 날이 이미 끝났으니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일축되었는데, 그런데도 이런 주장이 나왔을 만큼 절대자가 준 힌트는 미지의 영역이었다는 뜻이다.
“그럴싸한 거로 옳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 큰일이지 않아?”
“큰일? 큰일일 것이 있나?”
“그야…….”
지훈은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대려다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말대로 큰일은 아니네. 다만 채린이가 문제지.”
“채린이가 왜?”
“아까 너무 신경 쓰는 것처럼 보여서.”
이 일이 다소 신경 쓰였던 이유는 바로 채린이 때문이었다.
아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던 채린이. 심지어 없어져야 하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쓴다고?”
예나가 픽 실소를 머금으며 되물었다. 그 웃음에 지훈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좀 진지하게 얘기하면 안 돼?”
지훈의 타박에 예나는 슬쩍 웃으면서 지훈을 끌어안았다.
“……?”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지훈이 의아하면서도, 여전히 상황을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짜증을 속으로 삼킬 때, 예나가 말했다.
“따뜻하다.”
마음에 든다는 듯, 배시시 웃으면서 말하는 예나.
함께 한 10년 전 이후로 쭉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좀 얄밉다.
“좀 진지하게 얘기하자, 제발.”
지훈의 말에 예나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채린이가 신경 쓰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야.”
“응?”
“자기는 아직도 채린이를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채린이가 신경 쓰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야. 당신이라고.”
예나는 그렇게 말하며 지훈의 가슴팍을 콕콕 찔렀다.
“날 신경 쓴다고?”
“그래. 자기 눈치를 보는 거라고.”
“내 눈치를 왜 봐?”
이게 무슨 말이지?
지훈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표정에 가득한 의문 부호를 본 예나가 푸스스 웃었다.
“당연히 눈치 볼 수밖에 없지. 자기가 지난 10년 동안 뭣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했어?”
“그야…….”
지훈은 ‘채린이 때문’이라고 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예나가 말한 본질을 깨달았으니까.
“그것 때문에 내 눈치를 본다고?”
“당연하지. 나도 자기 추측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채린이도 비슷하게 생각할 거야. 가장 합리적이거든.”
“그런데?”
“그런데 결과가 나왔는데 자기 자신이 벽이 되어서 자기의 10년 쌓은 탑이 완성이 안 된대.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예나의 말에 지훈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었다.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그것도 참았다.
“그러니까 채린이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게 아니야. 채린이의 관심사는 태어난 이래로 쭉, 자기밖에 없었다고.”
예나의 말을 듣고 나니, 그것도 또 묘한 기분이다.
딸의 모든 신경과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니.
아빠로서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를 때, 예나가 말했다.
“아, 이젠 자기랑 유진이겠다.”
“응?”
“자기랑 유진이가 채린이의 모든 관심사일 거라고.”
“나랑 유진이?”
‘왜 자기는 빼고 나랑 아들만…….’
그 생각이 든 순간, 이유 역시 같이 알아챘다.
“설마 그 이유가 나랑 유진이는 용언을 못 써서 그런 거야?”
지훈은 아니라고 대답해 주길 바랐지만, 예나는 상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채린이는 자기랑 유진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세상에나.
딸한테 보호받는 아버지라니.
물론 일흔, 여든 넘은 노약자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자신의 나이는 이제 겨우 마흔밖에 안 된, 한창 일할 장년인데.
그런 자신을 두고 딸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잠깐만. 그러면 태어난 이래라고 한다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거잖아?”
“당연하지. 기억 안 나? 어릴 때엔 자기 말고는 아예 관심 자체를 안 보였을 텐데?”
“…….”
당연히 기억난다.
채린이의 사회성이 너무 낮아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니.
지훈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입을 다물었고, 예나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채린이가 신경 쓰는 것은 자기뿐이고, 아까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도 자기 때문인 거지. 이제 이해했지?”
지훈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린이가 이런 생각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해 봤지만, 또렷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떠오른 것은 절대자에 대한 원망.
‘왜 이런 걸 해 놔서 나한테 이런 고민을 주는 거야.’
그까짓 용언, 그냥 쓰게 해 주면 안 되나.
지훈은 절대자를 향해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예나의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걸 왜 몰라?”
예나는 지훈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지훈은 정말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시간이 답 같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인 상황.
“알고 있네. 시간이 답이야.”
“시간이 답이라고?”
“자기가 신경 쓰는 모습을 안 보이고 가만히 있으면 채린이도 더는 신경 안 쓸 거야.”
“만약 아니면?”
“그러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예나의 대답은 무책임해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었다.
지훈은 한숨을 삼키며 알았다고 답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진짜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태연히 행동하는 거야. 이해했지?”
“당연하지. 용언보다 채린이가 천 배, 만 배는 더 중요해.”
지훈의 말에 예나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그러면 그렇게 행동해. 그러면 답이 보일 거야.”
*
*
*
그날 이후, 지훈은 채린이를 대할 때 더욱 예민하고 조심스러웠다.
그 조심스러운 노력 덕분인지, 채린이 얼굴에 드리웠던 우울한 분위기는 점차 사라졌다.
‘그래, 이게 최선이지.’
지훈은 빙긋,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비록 현실에서 용언을 못 쓰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제 딸이 훨씬 더, 진짜 훨씬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모두가 그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채린이 때문에 시달렸던 몇몇 용족들, 예를 들어 조슈아 키튼 주니어 같은 이들은 반발했다.
“왜 용언을 못 써!”
“쓸 수 있어.”
“어떻게?”
“날 쓰러뜨리면 용언을 쓸 수 있을 거야.”
채린이의 말에 조슈아 키튼 주니어, 그러니까 자인 일족의 조르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널 쓰러트린다는 말은, 그러니까…….”
“내가 죽어야겠지?”
채린이는 담담히 말했고, 그 말에 조르아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 살벌한 말을 하냐.”
“미안하지만, 그게 현실이라서.”
채린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 때문에 용언을 얻겠다고 어마어마하게 고생했는데, 그 고생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셈이니까.
“어휴, 어쩔 수 없지.”
조르아는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노력은 노력대로 들어갔지만, 채린이를 죽일 용기는 없었다.
지난 시간 동안 쌓은 우정과 신의가 처음으로 발목을 잡았고, 다음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용족을 어떻게 죽여?’
핵미사일에 맞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핵미사일도 못 죽이지 싶다.
그만큼 용언의 이능은 강대하다.
그런 용언의 사용자를 죽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러면 이제 젠 카이넨은 안 해도 되는 거야?”
“글쎄, 그래도 계속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중에 무언가 다른 길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으음, 그건 생각해 볼게.”
조르아는 그렇게 말하며 제 일을 위해 떠나갔다.
대부분이 그처럼 반응했지만, 일부는 끝까지 채린이에게 책임지라고 성화였고 채린이는 그런 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래도 네가 보장했잖아? 용언을 되찾게 해 준다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채린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불가능하다니까? 절대자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을 내가 어떻게 바꿔.”
“그러면 애초에 보장하지 말든가. 대체 이게 뭐야? 하여튼 간에 인간의 피가 섞여서 그런가, 멍청…… 컥!”
그때까지 참고 있던 채린이가 나섰다.
“한 번 더 말해 봐.”
“끄르르…….”
혈관과 기도가 막혀 점차 시뻘겋게 변했다.
바늘을 가져다 대면 터질 것 같다.
조금만 놔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순간, 채린이가 압력을 풀었다.
“크허, 크헉……!”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간신히 살아났다는 것을 느끼는 그 순간.
채린이의 무거운 경고가 들렸다.
“가볍게 혀를 놀리지 마. 그 대가가 가볍지 않을 테니까.”
채린이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용족들, 아니 옛 용족들을 보았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하라는 듯한 표정.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불만이 있으면 절대자님한테 가서 따져. 내 잘못이 아니니까.”
채린이는 그 말을 끝으로 회장을 떠났고.
그렇게 10년이 또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