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dragon! RAW novel - chapter (95)
내 딸은 드래곤! 내 딸은 드래곤-95화(95/529)
같은 재벌, 다른 느낌 (2)
김태인 사장이 떠나고, 라운지에 혼자 남게 된 지훈은 아직 시중에 공개되지 않은 해치 자동차의 주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거 현실 맞지? 요즘 너무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런가, 왠지 현실 같지가 않네.’
예전에 마이클이 이와 비슷한 일들을 예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익숙한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놀랍진 않네.’
처음 김태인 사장을 봤을 땐 범접할 수 없는 거인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장동호 때문에 프레젠테이션 하게 됐을 때 처음 만났었는데. 그게 벌써 거의 1년도 더 된 이야기구나. 시간 진짜 빠르네.’
지훈은 새삼스럽게 흘러간 시간에 놀랐다.
그리고 그사이에 상전벽해로 변한 자신의 처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는 라운지에서 나와 호텔 로비를 천천히 거닐었다. 독일에 나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조금 전의 놀라운 제안 때문인지, 조금 걷고 싶어졌다.
지훈은 밤하늘을 보면서 지금의 감상과 기분을 정리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해치는 날 원하는 거잖아. 정확하게는 업계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원하는 것이겠지.’
그것이 아니라면 해치 그룹에서 자신을 원할 리 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원하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미래의 기대 가치와 현재의 효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이런 것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해치 그룹은 냉정하게 자신을 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흥분하거나 좋아할 것 없어. 중요한 것은 내가 해치 그룹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 하는 거야.’
해치 그룹이 원하는 인재가 되려면 지금과 같은 실적을 꾸준히 유지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게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의 모습일까?
지훈은 스스로에게 물었고, 고개를 저었다.
‘난 채린이랑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좋아. 해치에서 원하는 인재가 된다면 돈은 벌겠지. 하지만 많이 벌어 봤자 내가 얼마나 쓸 수 있겠어?’
1억을 가졌든, 1조를 가졌든 하루에 먹을 수 있는 건 세 끼뿐이고, 입을 수 있는 옷은 상의와 하의이고,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다.
지훈은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주식을 받음으로써 들떴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곤 하지만, 지훈은 남자이기 이전에 아빠였다. 그리고 아빠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존재다.
생각을 정리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호텔에 들어갈 때였다.
호텔에서 어떤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일을 그따위로밖에 못 하겠어? 네가 받는 월급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
그 앞에 선 사람은 무언가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뭐야?’
지훈은 들어가다가 말고 그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건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호텔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자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여긴 지금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긴 대통령이 있는 곳이라서 일반 투숙객은 들어올 수 없을 텐데?’
G20을 맞이해 독일 정부에서 호텔들을 수배하고 각국 정상들에게 배정해 주었기 때문에, 호텔엔 일반 손님들이 들어올 수 없었다.
한국이든, 독일이든 정부 관계자라는 것인데, 하는 짓을 보면 공무원 같진 않았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
그는 앞에 선 사람을 툭툭 치면서 그렇게 압박했다. 멀리서 봐도 꽤나 모욕적인 언행.
게다가 자세히 보니 얼굴이 성을 내서 붉어진 게 아니었다. 술 냄새가 살짝 나는 걸 보니 술을 마시고 저러는 것이었다.
‘하여튼 간에 술이 또……. 근데 수행단에 저런 인물을 받아 준 건가?’
지훈이 볼 때에 저 취객도 수행단과 관련 있는 인물이라 생각됐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잠시 구경하고 있으려니 취객이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너희들 뭐야? 구경났어? 어! 저리 안 꺼져!”
지훈은 똥 피하는 심정으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면 좋지 않을 텐데.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뭐, 내 일은 아니니까.’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하려 했지만,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다음 날 또 만났기 때문이다.
“미스터 킴, 이쪽은 신성 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미스터 권입니다.”
폭스바겐 그룹의 대주주 중 하나인 작센 주 정부의 인사인 루카스는 독일 억양이 강한 영어로 어제의 술 취한 아저씨를 그렇게 소개했다.
신성 자동차의 오너이자 CEO라고.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분석 모듈과 ASCC의 개발자가 이렇게 젊은 분일 줄 몰랐습니다.”
신성 자동차를 이끄는 권종근은 웃는 낯으로 지훈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 안에 담긴 은근한 적개심을 모를 정도로 지훈이 둔한 건 아니었다.
‘몰랐다고? 아무리 봐도 모른다는 눈빛이 아닌데.’
권종근의 눈은 ‘너 이 새끼, 잘 만났다.’란 눈빛이지 ‘와, 이 젊은 청년이 그런 대단한 기술을 만들었다니?’라고 감탄하는 눈빛은 절대 아니었다.
‘이런 자리일 줄 알았다면 안 나오는 건데.’
지훈은 괜히 초대에 응했다고 생각했다.
지훈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은 독일에 오기 전 마이클과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었다.
-미스터 킴, 독일에 가신다면 한번 폭스바겐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어떤가요?
-폭스바겐요?
생각지 못한 제안에 조금 솔깃했던 게 사실이다. 폭스바겐 그룹이라면 자동차 메이커의 대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쪽에서도 미스터 킴을 만나 보고 싶어 합니다.
-절요? 왜요?
-당연히 아직 자신들도 못 이뤄 낸 기술을 만들었으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 부담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라 지훈은 가벼운 마음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신성 자동차의 CEO와 만나게 될 줄이야.
호불호를 따지자면 불호인 게 당연했다. 자신이 신성차에 대해 껄끄러운 만큼 신성차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참 아까운 기술입니다. 분명히 보조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시발점은 저희 그룹과의 협력일 텐데요.”
“그렇습니까?”
루카스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네. 맨 처음 시작점은 저희 회사와 주차 보조 모듈일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시시콜콜 다 알고 있으면서 조금 전에 몰랐다고 한 건 무슨 생각이지?’
재벌들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훈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제가 주차 모듈을 처음 보고받았을 때 상당히 기대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조금 섭섭한 기분입니다.”
‘자기들이 까 놓고서는 섭섭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럼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지훈은 티 나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대가 자꾸 자신을 도발하는데, 이걸 계속 참고 있어야 하나?
하지만 잠시 후 이 상황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종근은 흔히 말하는 재벌이다. 가진 돈이나 인지도 등은 자신과 비할 바가 안 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다.
‘내 처지가 많이 달라지긴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권종근이 무어라 하는 것도 거슬리기보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처지가 역전된 증거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주차 모듈을 만들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그의 재가를 바라면서 전전긍긍했는데, 이젠 그가 자신을 향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인식했기 때문일까, 지훈은 여유로운 태도로 답했다.
“저도 그건 아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걸 어쩌겠습니까?”
지훈의 대답에 권종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바란 대답은 저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쉽게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저희와 기술 제휴를 맺는 게 어떻습니까?”
권종근의 목적은 결국 이것이었다. 분석 모듈과 ASCC가 해치 자동차에게 독점 공급되고 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 지훈을 압박한 것이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사업적 결정을 내리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지훈의 완곡한 거절에 권종근의 표정이 구겨졌다.
“제가 알기론 해치 자동차에 그 기술들이 들어간 것엔 박사님의 의견이 상당히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디서 발뺌을 하냐. 권종근의 질문에 지훈은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전 전문연구요원에 진행 중이어서 엠디드에 대해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엠디드사는 한국대 신경정보 네트워크 연구센터와 C 시스템즈가 만든 유한회사이다.
분석 모듈까지는 제휴 형태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이후 ASCC까지 얽히면서 아예 따로 회사를 차리고 지분 구조를 명확히 했다.
C 시스템즈가 60%의 지분을 갖고 대주주에 올랐고, 나머지 40%의 지분을 한국대와 지훈이 반씩 나눠 갖게 되었다.
이것은 표면적 지분 관계였고, 실제론 지훈이 50%, C 시스템즈가 30%, 한국대 연구소가 20%의 지분을 보유했다.
그것은 C 시스템즈가 소유한 지분의 절반을 지훈에게 양도했기 때문인데, 명목상 주인은 C 시스템즈였지만, 실제 그로 인한 이익의 대부분은 지훈이 누렸다.
이는 이면 합의에 따른 것이었는데, 지훈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왜?’
지훈은 그때까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라키쉬 박사와 C 시스템즈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분에 대한 문제가 얽혔을 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저한테 잘해 주시는 겁니까? 제가 한 일에 대한 대가는 20퍼센트의 지분으로도 충분합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했을 때, 라키쉬 박사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C 시스템즈에 투자한 투자자의 뜻입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그걸 원한다고? 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은 지훈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분들은 미스터 킴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지금 당장 지분율을 높이면 당장의 이득은 되겠지만, 장기적인 관계에선 이득이 되지 않죠. 그 때문입니다.
라키쉬 박사는 부드러운 웃음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분들은 미스터 킴에게 최소 30년의 미래 가치를 본 것입니다.
이면 합의는 자신을 향한 ‘투자자들’의 호의였다. 본 적도 없는 투자자들의 호의에 지훈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해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꼭 좀 만나 뵙고 싶습니다.
지훈의 말에 라키쉬 박사는 순간 멈칫했다.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지훈의 말을 전해들은 투자자이자 ‘그분들’인 채린이는 바로 거절했다. 절대 아빠가 알아서 안 되는 내용이니까.
그러므로 엠디드사의 실질적 의결권을 가진 것은 지훈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성차에 기술을 공급할 수는 없다. 해치 자동차와 계약한 내용이 있으니까.
지훈의 설명을 들은 권종근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문연구요원이라서 안 된다고요? 그거 참 이상하군요. 전문연구요원으로서 영리 활동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권종근의 말을 들은 지훈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지간히 배알이 뒤틀렸나 본데.’
이렇게 치졸하게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친절하게 속을 긁어 줘야 대미지가 큰 법이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걱정되어서 알아봤는데, 전문연구요원으로서 겸직이 금지된 경우는 민법 및 상법이 규정하는 법인의 임원 이상의 겸직이나 전임 강사 이상의 겸직입니다.”
지훈의 반박에 권종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