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36)
536화
채윤이와 함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길거리 공연을 감상하고, 함께 즐기고.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계속 돌아다녀서 그런지, 채윤이는 이미 조성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맞은 편에 앉은 장현아와 한아름도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피곤할 만하긴 하지.’
조성현도 지친 상태다.
어린 채윤이의 체력으로 버티기는 힘들 것이었다.
장현아나 한아름도 마찬가지.
다들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조성현은 부드럽게 미소를 보이다가, 슬그머니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노트북과 연결하고.
그는 작업을 시작했다.
채윤이가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조성현도 뭔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게 정말 깨달음인지,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생각 중 하나인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생각들이 있으니, 조성현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확인해 봐야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빠른 속도로, 틀이 만들어진다.
그냥 컨셉을 잡고 스케치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이 틀이 실제 곡으로 만들어질 일은 없을 거다.
조성현은 가만히 그걸 들여다보다가, 이내 틀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이어갔다.
평소에 즐겨 사용하거나, 아니면 머릿속에 저장을 해두고 있던 ‘머니코드’를 망가뜨리고, 전혀 익숙하지 않도록 배치를 해본다.
곡의 형태가 이상해지며, 묘한 느낌을 주었다.
조성현은 곡을 재생시키고, 소리에 집중했다.
방금까지 그가 구성하고 망가뜨렸던 형태가, 소리가 되어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고.
그는 그것을 들으며 빙긋 웃었다.
형태가 무너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듣기 거북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철저하게 기존에 사용하던 형태를 무너뜨렸을 뿐, 절대적인 법칙을 무너뜨리진 않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도 나쁘진 않긴 한데…”
조금 비효율적이긴 하다.
한 번 만든 후 그걸 파괴하고 재조립하는 형식이니까.
지금이야 그냥 후루룩 만들어낸 틀을 가지고 시험을 해본 것뿐이니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진 않았지만.
정말로 곡을 하나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작업한다면 평소에 걸리는 것보다 최소 두, 세배의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럼 앨범 하나를 작업하는데 1년은 더 걸릴 거다.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분명 더 괜찮은 방법이 있겠지만, 일단 당장 조성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거다.
어느 정도 방향성이 잡혔기에 그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으음…”
옆에 있던 채윤이가 작게 신음하며 조성현의 팔에 얼굴을 비벼온다.
살짝 고개를 돌려, 채윤이를 바라보니 아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지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조성현이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채윤이는 곧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숨을 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작업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채윤이 덕분이었다.
지난밤, 아이가 던진 말.
‘사람들은 내 음악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내 연주를 듣는 거야?’라는 질문은 그에게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베토벤이 좋아서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것인가.
아니면 베토벤의 음악을 듣다 보니 베토벤을 좋아하게 된 것인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비슷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하찮아 보일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지금도 누군가는 그 논쟁을 이어나가고 있을 게 분명한 것처럼.
음악인인 조성현과 채윤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이었다.
과연 대중들은, 그들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가.
‘둘 다겠지만… 무엇이 먼저인지가 중요한 거지.’
그리고 조성현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채윤이가 길거리 공연을 하며 즐거워하는 것처럼.
아이가 경쟁하는 게 힘들다며 고민하던 콩쿨을 결국 해보고 싶다고 답했던 것처럼.
조성현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른 이들이 보는 조성현이 아니라.
오로지 조성현 본인만이 아는 음악을 한번 해보고 싶다.
억지로 규칙에서 벗어날 필요도, 그렇다고 규칙에 맞출 필요도 없다.
그냥, 나만의 음악을 한번 해보자.
그게 지금 조성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 * *
본에 다녀온 다음 날.
조성현과 채윤이는 당연하게 이른 아침부터 회사로 향했다.
Pan 엔터테인먼트, 베를린 지부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이 바로 채윤이의 베를린 국제 콩쿨 예선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 때문.
채윤이도 은근 긴장한 얼굴이었고, 장현아와 한아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둘은 그나마 긴장하긴 했지만 불안함을 보이진 않고 있는데…
‘문제는, 저 사람들이지.’
베를린 지부에도 관리를 위한 직원이 함께한다.
그들은 조성현이나 채윤이와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음악적 소양이 깊은 것도 아니었기에 채윤이의 연주 실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떨어지면 큰일 아니야?”
“에이, 설마 떨어지겠어. 그렇게 돈을 써서 진출하려고 하는 상황인데, 불확실하면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하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떨어지면 우리 다시 한국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외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직원들은, 채윤이의 탈락 여부에 따라 자신들의 거취가 결정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장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작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가 슬쩍 고개를 돌려, 조성현을 바라본다.
“죄송해요. 선배님.”
“괜찮습니다. 뭐, 불안해하는 건 자유니까요.”
조성현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현아는 그래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금 당장은 조성현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별일이 없지만… 조성현이 채윤이가 있는 연습실로 가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눈에 훤했다.
장현아는 평소에 굉장히 순한 편으로, 조성현이나 채윤이에게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1년 만에 해외 지부의 총책임자가 되었으니, 굉장한 특진이고… 그럴 수 있는 이유도 명확했다.
장현아는 아티스트를 케어하는 데에 뛰어났으나 전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부분에서도 훌륭했다.
거기에,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인지 타고난 리더십까지.
적절하게 긴장감을 만들어주고, 풀어줄 때는 또 적당히 풀어주는 그녀다.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좀 하겠네.’
조성현이 그녀의 표정을 보며 빙긋 웃었다.
자신이야 저런 태도를 이해하니 상관없었지만.
채윤이는 아니다.
아이가 불안해하는 어른을 보며 얼마나 영향을 받겠는가.
그러나 조성현은 딱히 나서서 직원들에게 쓴소리할 생각이 없었다.
쓴소리는 결국, 듣는 사람도 싫지만 하는 사람도 어려운 법이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은 장현아의 역할이니까.
조성현은 명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만히 미소를 보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장현아와 함께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럼, 연락 오면 바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할게요.”
“예 선배님. 이따 뵙겠습니다.”
장현아가 한동안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후 몸을 돌렸다.
자신의 앞에서는 그래도 눈웃음을 보였는데, 몸을 돌리자마자 순식간에 차가운 표정이 되는 장현아를 보고 볼을 긁적인 조성현은 연습실 문을 열었다.
채윤이가 정신없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다가, 조성현이 들어오자마자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아빠!”
아이가 밝은 얼굴로 조성현을 맞이하고.
혹시 결과가 나왔나 하는 약간의 기대가 서린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조성현은 아이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결과는 안 나왔는데, 현아 언니가 나오면 바로 알려주겠다네.”
“아, 응.”
채윤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도, 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했고,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묘한 긴장이 생기는 거다.
“결과 기다리면서 아빠랑 같이 연습이나 할까?”
“좋아.”
연습하자는 말에, 채윤이가 금방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다시 자세를 잡는다.
조성현은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풀어진 얼굴을 했다가, 자신도 들고 있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내려놓고, 악기를 꺼냈다.
빠르게 세팅하고, 조율을 끝낸다.
“준비됐어?”
기다리고 있던 채윤이가 조성현을 보채듯 물어오고.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보자.”
그가 그렇게 말하며 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채윤이의 손가락도 움직인다.
지이잉.
따라란.
이번에 조성현과 채윤이가 호흡을 맞추는 곡은, 오랜만에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이었다.
채윤이가 평소 비발디를 좋아해, 자주 연주하던 곡.
조성현도 비발디의 곡을 즐겨 듣고, 몇 번이고 연주도 했었기에 익숙했다.
그는 채윤이의 피아노 앞에 얹어져 있는 악보를 보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지잉. 지이잉.
따라라란 딴 따란.
연주를 한창 이어나가고 있는데, 채윤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조성현은 의아함을 느꼈으나 일단 곡을 마무리했다.
몇 분을 더 연주한 후에야 곡은 끝났고.
채윤이는 연주를 마무리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조성현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조성현과, 그가 들고 있는 바이올린을 번갈아 보면서 ‘흠’하는 소리를 냈다.
“왜? 뭔가 이상해?”
“아니… 음. 아빠 연주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
“그래? 어떤데?”
조성현이 바이올린을 슬쩍 내리며 물었다.
자신의 바이올린이 어디가 달라졌는지, 직접 연주하는 그로서도 바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달라진 건지, 아이는 뭘 느꼈는지 궁금했다.
채윤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조금, 편한 느낌이야.”
아이가 답한다.
조성현은 여전히 아이의 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바이올린이 달라진 이유는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마음가짐의 차이인 것 같은데.’
기차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온전한 자신의 음악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기에, 자신의 연주도 달라진 것 아닐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컥!
평소라면 노크를 했을 장현아가 다급하게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결과, 나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장현아의 표정은, 밝았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