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52)
552화
대기실에서 채윤이와 함께 차례를 기다리며 조성현은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른 참가자들이 먼저 연주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꽤…
‘딱딱하네.’
다들 긴장을 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연습한 대로만 연주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런 걸까.
‘라이브’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녹음된 연주를 듣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모니터를 통해서 무대를 보고 있으니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관객석에 앉아 연주를 듣고 있으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겠지.
다만, 조성현은 관객석에 앉아서 듣는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조성현은 다른 참가자들의 훌륭한 기교와 기술, 감정 표현에 있어서 정말 많이 감탄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연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그 안에서만 노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1, 2주 정도 전의 자신이 저랬을까.
‘아마 저것보다 더 못했겠지.’
사실상, 기교나 기술 등에 있어서 조성현이 저들보다 떨어질 테니까.
그 부분은 지금도 평생을 연습해온 이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조성현은 그래도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장점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도.
“준비됐어 아빠?”
채윤이가 조성현의 팔을 붙잡으면서 물어온다.
아이의 말에 조성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는 준비됐어. 채윤이는?”
“나도 준비됐어. 얼른 올라가고 싶다.”
채윤이가 빨리 연주하고 싶다며, 기분 좋은 얼굴을 해 보인다.
참, 신기했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설레어 하는 아이의 모습이라니.
조성현은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이미 다 세팅된 머리였기에, 여기서 건드리면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모른다.
그는 대신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입을 열었다.
“잘해보자.”
그가 그렇게 말을 함과 동시에, 스탭이 조심스럽게 대기실 문을 열었다.
“이제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스탭의 말과 함께 조성현과 채윤이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성현은 미리 조율해둔 바이올린을 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채윤이가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본선도 이제 세 번째. 어느 정도는 무대가 익숙해진 상태였다.
채윤이도, 조성현도.
백스테이지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조성현과 채윤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슬쩍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 있던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박수 소리가 울린다.
잠시 후, 참가자가 내려옴과 동시에 조성현과 채윤이가 무대 위로 올랐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채윤이를 환영했다.
조성현은 아이와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이 무대는, 채윤이가 리드해야 한다.
결국 베를린 국제 콩쿨은 바이올린이 아니라 피아노를 평가하는 콩쿨인 만큼.
채윤이가 이 무대의 중심이 되어 완벽한 연주를 선보여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채윤이에게 끌려다니며 수동적인 연주를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자유롭게 연주하며 채윤이가 구상하는 그림에 녹아들 생각이다.
그렇게, 둘의 연주는 시작되었다.
채윤이가 고른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이라는 이명은 베토벤이 지은 것이 아니지만, 곡을 듣는다면 왜 ‘봄’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곧바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조성현과 채윤이의 연주를 듣는다면 더욱 그렇다.
시작부터 봄의 싱그러움이 제대로 표현되고 있었으니.
지이잉.
다라란.
조성현의 바이올린, 그리고 그걸 감싸듯 연주를 시작하는 채윤이의 피아노.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의 1악장은 기본적으로 바이올린이 피아노를 타고 가듯 연주된다.
바이올린이 메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조성현과 채윤이의 연주에서 더 부각이 되는 건 역시 채윤이의 피아노.
일부러 부각하고자 하는 의도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그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냥 일반 청중이 들었다면 그저 조성현의 바이올린에만 집중하며 감탄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절대 ‘일반 청중’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도 그렇고, 관객석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이 클래식 관계자들이니.
당연히 채윤이의 피아노가 얼마나 수준 높고, 완벽하게 리리드해 나가고 있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잘한다. 우리 딸.’
조성현은 연주하면서도 기쁜 마음에 힐끗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연습할 때도 자주 서로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췄기에,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채윤이도 슬쩍 조성현 쪽으로 시선을 움직이고 있던 찰나여서, 둘은 짧게나마 시선을 교환하고 연주를 이어나갔다.
따라라란.
지이잉.
이어지는 두 번째 악장은, 피아노가 먼저 나오고 그 뒤로 바이올린이 따라 나오는 악장이었다.
기술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악장으로서, 곡을 꾸며주는 부분이 꽤 많은 악장.
연주 자체의 난도가 높아 조성현도 여러모로 열심히 연습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넘어가서 세 번째 악장은 이번 곡에서 가장 짧은 악장이었는데, 급격하게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음계에 맞춰서 조금 역동적으로 연주해야 했다.
조성현으로서는 오히려 이런 악장이 연습하기 가장 쉬웠다.
길이가 짧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성현이 자신이 있어 하는 채윤이와의 호흡이 중요한 악장이었기 때문.
조성현은 숨을 조절하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는 마지막 악장에 돌입하며 다시 한번 채윤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조성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언젠가, 아쿠아리움에 가서 인어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연주를 즐기고 있다는 뜻이리라.
콩쿨에서 입상을 하지 않더라도.
채윤이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콩쿨은 정말 많은 의미가 있었다.
‘행복하네.’
조성현이 활을 움직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 * *
제임스 스튜어트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솔직히, 지금껏 그는 자만하고 있었다.
그래도 되는 재능이었고, 그가 아무리 자만해도 남들은 그것을 자신감으로 바라봐주지, 자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대 위 저 부녀를 봐라.
지금껏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자신감은, 그가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전부 다 자만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저런 연주를 앞에 두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저런 연주를 보일 수 있는 이들을 눈앞에 둔다면, 그 어떤 연주자라고 해도 겸손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베토벤의 역작, 걸작이라고 불리는 곡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굉장히 격정적이며 베토벤 본인의 고민들이 많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지금 채윤이와 조성현이 연주하는 곡, ‘소나타 5번’은 전혀 달랐다.
베토벤의 다른 걸작들과는 달리 밝고 활기찬 곡.
그런 곡의 특성을 채윤이와 조성현은 완벽하게 살려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 곡 자체가 채윤이와 조성현을 위해서 만들어진 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
따란, 따라란.
서로가 서로의 모든 부분을 아는 것만 같았다.
호흡을 맞추는 부분에서는 특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었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능’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재능 수준에 끼지도 못하는 거였나.’
태양 앞의 반딧불이가 이러할까.
어이가 없고, 자신이 지금까지 착각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진정한 천재가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세상의 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니.
단 한 순간이라도 음악을 지루하다고 여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음악은 본디 즐거워야 했다.
베를린 국제 콩쿨이라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무대에서도 즐기는 채윤이와 조성현처럼 말이다.
“잘 치네요.”
옆에 있던 레이온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작은 소음도 제임스에게는 방해가 되어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하라는 듯 손짓했다.
레이온드가 ‘흡’하고 숨을 짧게 들이켜며 입을 다문다.
그는 슬쩍 제임스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몸을 기울여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저, 도련님. 이제 슬슬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시는 게…”
바로 다음 순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 슬슬 돌아가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조용히 권했지만, 제임스는 들을 생각도 안 했다.
그는 계속해서 조성현의 바이올린과, 채윤이의 피아노를 감상할 뿐이었다.
어지러이 얽히고설키는 채윤이와 조성현의 연주.
제임스에게는 그게 마치, 온 세상을 비추는 빛과 같았다.
얼마 있지 않아 둘의 연주가 마무리되었다.
제임스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누구보다도 빠르게 박수를 건넸다.
이건, 박수를 받아 마땅한 연주였으니까.
옆에서 레이온드가 따라 박수를 치면서도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쯧 하고 혀를 찬 후 몸을 돌렸다.
어차피 관심 있는 건 채윤이의 무대였을 뿐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바로 다음 참가자가 딱딱한 연주의 대명사, 장 츠웬이라면야 더더욱 그렇다.
채윤이의 연주는 살아있다.
음악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은 연주.
하지만 장 츠웬의 연주는 이 곡은 이렇게 연주를 하는 거야, 하고 청중을 가르치려 하는 듯한 연주를 하기에 제임스 스튜어트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채윤이는 관객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려 연주를 한다면 장 츠웬은 그냥 자신을 자랑하고자 연주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도련님은 긴장도 안 되십니까? 마지막 무대인데.”
“…글쎄. 긴장할 이유는 없지.”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긴장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더욱더 성장하고, 좋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방금 채윤이와 조성현의 무대를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실상 콩쿨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제임스 자신과, 조채윤은… 어쨌든 입상을 하게 될 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이제 준비하셔야 합니다.”
스탭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이제, 그의 차례였다.
이번 무대는 아마 채윤이도 지켜보고 있겠지.
한 번,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내 연주도 네 연주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제임스 스튜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