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71)
571화
채윤이의 대답에 환히 웃는 제임스 스튜어트를 보고 조성현은 오묘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제임스 스튜어트의 ‘엘리제’가 채윤이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쨌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인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인정받은 채윤이가 뿌듯하기도 했고.
동시에 채윤이 그 자체일지, 아니면 채윤이의 음악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에게 호감을 가진 상대가 한 명 더 나타났다는 것에서 약간의 경계심이 생겼다.
‘영준이, 한율이… 그리고 이번에는 제임스.’
뭐, 아직까지 서로 대단한 호감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빠로서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하나같이 성숙한 인물들 뿐이었다.
채윤이는 물론이고, 영준이도 나이에 비해 성숙한 편.
거기에 한율이는 또 어떤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많은 어른들과 소통하며 클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 스튜어트?
어른스러움의 상징이다.
아이가 아빠의 양복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딱 맞는 양복을 입은 느낌을 주는 인물.
다들 본인들의 인생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어느 정도 결론까지 내린 아이들이었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갑자기 채윤이를 자기들 인생의 전부라고 해버리면 곤란하지.’
조성현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제임스 스튜어트의 눈빛을 유심히 살폈다.
정말, 단 한시도 채윤이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제임스의 눈은 유독 빛나고 있었다.
“같이 연주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제임스 스튜어트가 기쁜 얼굴로 물어오고.
슬쩍, 장현아가 끼어들었다.
“음악 자체에 대한 말씀은 두 분이서 하시면 되겠지만, 조채윤 양의 업무적인 부분은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스튜어트 피아니스트는 혹시 따로 매니지먼트가 있으신가요?”
“매니지먼트가 있진 않은데, 매니저가 있네요.”
장현아의 말에, 제임스 스튜어트가 그렇게 답하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도련님을 모시고 있는 레이온드입니다.”
장현아가 레이온드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한다.
“업무적인 이야기는 그럼, 저희끼리 하면 되는 걸까요?”
“예, 그럼 될 것 같네요. 음악적인 이야기는 두 분이서 편히 나누시고, 저희는 그럼 일 이야기 하러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레이온드가 그렇게 말하며 제임스에게 살짝 고개를 목례했다.
장현아도 잠시 다녀오겠다는 듯 조성현에게 시선을 보이고.
조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장현아와 레이온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
제임스 스튜어트는 힐끗 장현아와 레이온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업무적인 부분이 뭘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 조건 조율이 안 된다면 저희가 같이 협연하는 게 어려워지는 건가요?”
“딱히 조건을 맞추려고 간 건 아닐 거예요. 사실상 스케줄 조절에 가까울 겁니다, 제임스 스튜어트 피아니스트.”
제임스의 목소리에 담긴 미약한 불안함을 읽은 조성현이 나서서 답했다.
그러자 제임스 스튜어트가 조금 안심했다는 듯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그럼 저희는 정말 음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면 되는 건가요?”
“그러면 될 겁니다. 아마, 문제가 있더라도 저희 매니저가 알아서 잘 해결해 줄 거예요.”
제임스의 물음에 조성현이 곧바로 답했다.
애초에 채윤이가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적이 있었기에.
장현아도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었을 터다.
물론, 제임스가 먼저 같이 연주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겠지만.
“어, 저부터 이야기해도 되나요?”
채윤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입을 연다.
아이는 계속해서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연주해 보고 싶다고 하던 차였기에, 얼른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경청하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무언의 긍정에, 채윤이가 신이 나서 입을 연다.
“저는, 두 대의 피아노를 가지고 플래시몹을 해보고 싶어요.”
“플래시몹이요?”
“네. 한 명씩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막 주변에서 악기든 사람들이 등장해서 공간 하나를 통째로 음악으로 채우는 거죠.”
이건, 조성현에게도 익숙한 아이디어였다.
지난번에 채윤이가 플래시몹을 살짝 언급한 적이 있었으니까.
제임스 스튜어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채윤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제임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아이가 묻자, 제임스 스튜어트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럴 리가 있나요. 저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라서 놀란 것뿐이에요. 플래시몹이라니. 너무 좋네요.”
제임스 스튜어트는 진심을 가득 담아 답했다.
채윤이가 즐겁다는 듯,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플래시몹의 장점부터, 제임스와 자신의 연주가 어우러졌을 때 어떤 음악이 나올지까지.
정신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해보고 싶다.”
채윤이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하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엄청 기분 좋아 보입니다. 조채윤 피아니스트.”
“어?”
아이가 짧게 탄성을 내뱉으며 반응했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박물관에서부터 봤던, 마에스트로 펠릭스.
오늘도 연주회를 감상하러 온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마에스트로 펠릭스.”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모여있으니, 보기가 참 좋군요. 심지어 둘이 이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잘 어울리네요.”
마에스트로 펠릭스가 말하고.
그의 말에 제임스 스튜어트는 본능인 것인지 조성현의 눈치를 살폈다.
조성현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조금 경계심이 들었다지만, 채윤이가 제임스 스튜어트와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이미 그의 경계심은 풀어진 지 오래였다.
조성현에게는 결국, 채윤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곧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길래 그렇게 즐거운 모습인가요?”
마에스트로 펠릭스가 묻고.
채윤이가 기분 좋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협연하기로 했어요. 지금 이야기 나온 건, 플래시몹이고요.”
“플래시몹이라…”
마에스트로 펠릭스는 플래시몹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오호’하고 작게 감탄을 흘렸다.
“생각해보니, 제임스 스튜어트 피아니스트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장 잘 맞는 협연 방법이 될 수도 있겠네요.”
“어울리지 않아요? 저는 엄청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채윤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리며 말한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말과 마에스트로 펠릭스의 말을 둘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의 제임스 스튜어트가 가진 연주 스타일이나, 애초에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생각해봤을 때 플래시몹은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그 분위기부터가 굉장히… ‘귀족적’이었으니까.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듯한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보여주는 연주는 약간씩 변화하려는 모습이기도 하고.
알을 깨고 나오려 발버둥 치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플래시몹이라는 연주 형태가 그런 그의 성장에 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조금, 신사적인 느낌의 연주를 하던 피아니스트였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모자와 우산은 던져버리는게 좋을 것 같네요.”
신사의 상징인 모자와 우산을 던져버리겠다는 제임스 스튜어트의 말에, 마에스트로 펠릭스는 흥미롭다는 듯한 눈을 해 보였다.
그리고.
“정말로 모자와 우산을 벗어던질 생각이라면. 그 광경을 꼭 구경하고 싶으니 플래시몹을 정말로 하게 된다면 말해주세요. 보러 갈게요.”
“네!”
채윤이가 밝은 목소리로 답을 한다.
그리고 때마침, 장현아와 레이온드가 돌아왔다.
둘의 표정은 밝았다.
“디테일한 스케줄 조절은 해야겠지만, 저희는 일단 2주 안으로 협연 일정을 잡는 게 좋겠다는 결론입니다. 아무래도 서로 귀국 일정이 있으니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고요.”
그 말에 제임스가 ‘후’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제임스 스튜어트와의 협연이 정말로 성사되었다.
* * *
채윤이는 숙소에 돌아와서도 정신 없이 떠들었다.
이렇게 신난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베를린 국제 콩쿨에서 준우승했을 때도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나 좋아?”
“응. 내가 먼저 하자고 해서 수락 한 것도 아니고. 먼저 와서 제안해줬잖아. 엄청 좋아.”
채윤이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신난 목소리로 답한다.
조성현은 베를린에 와서 아직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아, 이제는 너무 길어진 머리를 슬쩍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제임스가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무슨 기분이었어?”
“어… 그냥, 신기했어. 내가 먼저 같이 하자고 하면 그래도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봤어도, 제임스가 먼저 하자고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아빠도 전혀 예상 못했는데. 제임스도 채윤이 연주를 진짜 좋게 들었나 봐. 그치?”
“응. 다행이야.”
채윤이가 ‘힛’하고 웃고는 몸을 일으켜 조성현에게 다가왔다.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조성현을 바라본다.
“아빠.”
“응?”
“돈 있어?”
대뜸 돈이 있냐고 물어오는 채윤이의 물음에 조성현이 눈을 깜빡였다.
평소에 돈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아이였기에, 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조성현은 채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돈은 왜?”
“얼른 아빠 바이올린도 사야지. 그래야 플래시몹 할 때 좋은 바이올린으로 같이 연주할 수 있잖아.”
채윤이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조성현이 풀썩 웃었다.
돈이 있냐고 물어서 당황했는데, 결국 그게 자신의 악기를 구하고 싶어서 물은 질문이었다니.
“아빠 바이올린은 현아 언니가 잘 알아봐 주고 있으니까, 걱정 마. 금방 좋은 악기 후보를 구해다 줄 거야.”
조성현이 걱정 말라고 말하며 아이를 안아 들고, 다시 침대에 눕혔다.
채윤이는 열심히 버둥거리며 조성현을 끌어당겨 자신의 옆에 눕히고는 그의 위에 올라탔다.
아이가 조성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숨을 길게 내뱉는다.
“얼른 시간 지났으면 좋겠다.”
“빨리 플래시몹 하고 싶어서?”
“응.”
채윤이가 행복한 얼굴로 답했다.
조성현은 조용히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플래시몹을 하게 되면, 과연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채윤이를 주목하게 될까.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