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93)
593화
그냥 마음이 끌렸던 것인지.
아니면 영상으로 봤던 그 연주를 실제로 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윤서린은 저도 모르게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신청하고 말았다.
이미 학원에는 늦어버렸고, 어차피 5분 지각이나 20분 지각이나 지각은 지각이니까.
살면서 베를린 국제 콩쿨 준우승자의 연주를 들어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혼나더라도, 꼭 한 번은 듣고 싶었다.
어쩌면, 대리만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빠져서 억지로 공부에만 집중하려 마음을 애써 잡고 있던 와중.
방금, 연주해 볼 기회가 생기면서 둑이 터지듯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윤서린은, 과연 조성현과 채윤이가 자신의 신청곡을 받아줄지 긴장하며 둘을 바라보았고.
이내 조성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곡을 선택해주셨네요.”
“최근에 들었던 연주 중에 가장 좋았거든요.”
윤서린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사실, 최근 찾아본 영상이 그거 하나밖에 없긴 했지만.
다른 수십 개의 연주 영상을 찾아봤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해온 윤서린이었기에, 그게 비록 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은 아니었다고 해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채윤이와 조성현이 선보인 연주는 진짜, 수준급이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기에 너무 합당한, 훌륭한 연주였었다.
자신도 그런 연주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쏟아 오를 정도의 연주.
동시에, ‘나는 이런 연주를 왜 못 하지’하는 생각이 드는, 그저 동경할 수밖에 없는 연주이기도 했다.
따라란 따란.
지이잉 지잉.
채윤이와 조성현의 연주가 귓가에 스며들듯 부드럽게 울렸다.
“아…”
윤서린은 저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흘렸다.
타건하는 것만 봐도, 보잉 하는 것만 봐도 바로 느껴진다.
채윤이와 조성현은, 손가락 하나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굴에 웃음이 만연하다.
윤서린은 더듬거리듯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도, 연주할 때 저런 얼굴일까.’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연주하고, 연주할 때마다 ‘즐거움’의 비명 같은 소리가 나는 걸까.
나도 즐기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연주를 하고 싶다.
공부가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그래, 뭐 가끔 뿌듯할 때는 있긴 하고, 윤서린도 그걸 인정하고 있었다.
공부를 딱히 못하는 편도 아니었기에, 정직하게 노력하면 꽤 좋은 점수를 받고는 했고.
그럴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볼 때 그녀는 뿌듯함을 느끼고는 했다.
근데.
지금에 와서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 안 되나.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치기 어린 생각이라고 취급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정말 진지한 문제였다.
‘아니,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
어쩌면 모두에게 진지한 문제가 아닐까.
윤서린은 멍하니 조성현과 채윤이의 연주를 바라보았다.
따라란.
지이잉.
여전히, 즐겁게 연주하는 조성현과 채윤이의 모습.
마냥 행복해 보인다.
현실적인 문제가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채윤이는, 재능이 있으니까.
조성현도 프로듀서로서 성공한 사람이니까.
저게 저 사람들의 현실이니까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매일같이 갈등하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도 그렇고, 자신의 부모님도 그럴 것이다.
윤서린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며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
그리고 그 와중에 조성현과 채윤이의 연주가 끝났다.
멍하니 조성현과 채윤이를 바라보던 윤서린은, 머릿속의 혼란스러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입을 열어야 했다.
* *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그 곡을 신청하는 여학생의 말에, 조성현은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채윤이가 베를린 국제 콩쿨 본선 3차 무대를 할 때 조성현과 함께 연주했던 곡.
그걸 알고 있다는 건, 베를린 국제 콩쿨 결승 무대 영상을 봤다는 거겠지.
조성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며 채윤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도 자신의 무대 영상을 봤다는 걸 눈치챘는지 환한 얼굴이었다.
“연주, 그럼 바로 해 볼게요.”
조성현은 그렇게 말하고 바이올린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채윤이도 얼른 다시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연주할 준비를 한 후.
한 호흡 만에 순식간에 몰입하여, 연주를 시작한다.
따란 따라라란.
지잉 지이이잉.
조성현의 바이올린, 채윤이의 피아노가 절묘하게 얽힌다.
베를린 국제 콩쿨 무대, 그때의 그 느낌은 아니었다.
같은 곡이지만, 오히려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길거리에서, 다른 악기로 연주를 하니 다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연주 스타일이 그만큼 많이 바뀐 걸 수도 있고.’
원래 계산된 연주를 하는 스타일이, 자유로운 연주를 하는 스타일로 변화되긴 했다.
좀 더 ‘날 것’의 매력을 추구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 다르게 말하면 ‘채윤이화’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성현은 채윤이와 호흡을 맞추며 계속 연주를 해나가다, 이내 곡을 마무리했다.
“와, 진짜 미쳤다.”
“바로 구독한다. 장난 없다 진짜.”
학생들이 감탄을 흘리며 박수를 보내고.
조성현은 바이올린을 내리며 곡을 신청해 준 여학생과 눈을 맞췄다.
여학생이 홀린 듯한 눈으로 조성현과 채윤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라서, 조성현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만족스러우셨나요?”
그렇게 묻자.
여학생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 대뜸 여학생이 반걸음 다가오며 말을 이어나간다.
“혹시, 개인적인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조성현은 그녀의 그런 행동에 당황했지만, 한아름이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웃음을 흘리며 수락했다.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답해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이라면 뭔지 감이 잘 안 오긴 하지만… 베를린 국제 콩쿨 영상도 찾아본 여학생이니,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걸 물어보지 않을까.
조성현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제가, 피아노가 너무 좋은데. 주변에서는 학생이라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데. 뭘 선택하는 게 현명한 방법일까요?”
갑자기 훅 들어온, 무거운 질문에 조성현은 눈을 껌뻑였다.
하고 싶어 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데, 뭘 선택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겠냐고?
솔직히 말하면.
‘그걸 나한테 물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게 조성현의 솔직한 심정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답할 수는 없는 법.
조성현은 잠시 고민했다.
채윤이보다야 당연히 훨씬 나이가 많지만, 조성현보다는 많이 어린 학생이다.
학생이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고민이고, 조성현도 지난 생에서 정말 많이 했던 고민 중 하나.
그리고, 어린아이의 아버지로서도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채윤이가 피아노를 좋아하고, 충분히 능력이 되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지만.
나중에 피아노가 싫어지면?
그럼 채윤이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항상 결론이야 같았다.
뭐가 됐던 채윤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최선을 다해 지원해준다.
그게 그의 결정이었고.
죽었다 깨어난 후에야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었다.
조성현은 가만히, 여학생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어른으로서, 사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요.”
그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여학생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린다.
“…역시, 그렇겠죠.”
약간 시무룩해진 듯한 목소리.
조성현은 여학생을 보고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음, 근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긴 해요.”
이렇게 말하면, 어쩌면 저 아이의 부모님이 안 좋아하실 수도 있겠지만.
조성현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말도 당연히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요?”
여학생이 되묻고.
조성현은 힐끗 채윤이 쪽을 돌아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진짜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그리고 그게 왜 하고 싶은지. 제대로 알고 난 후에 그럼 그걸 위해서 얼마나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도 알아봐야죠.”
“얼마나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라는 건…”
“학생이 좋아하는 게 피아노라고 했죠?”
“네. 피아니스트가 꿈이에요.”
“피아니스트가 왜 꿈이에요?”
그렇게 물은 조성현은, 학생이 ‘그냥’ 혹은 ‘피아노가 좋아서요’ 같은 1차원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학생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어, 건반이 내는 소리가 너무 신기해요. 음악은 신의 언어라는 말을 너무 잘 표현해주는 악기가 피아노인 것 같거든요.”
음악이 신의 언어라는 말을 너무 잘 표현해주는 게 피아노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싶었는데.
“자음과 모음이 있는 것처럼, 흑건과 백건이 있고. 음계와 코드, 화성학… 언어가 가지고 있어야 할 법칙은 전부 가지고 있잖아요.”
“…맞는 말이죠. 음, 본인이 피아노가 왜 좋은지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까요?”
“솔직히 거기까지는 모르겠어요. 열심히 연습하는 거 말고 뭐가 있지 싶은데…”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가 고민하고, 결론을 내린 후에 꾸준히 그 노력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성현은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명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어떠한 것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깨닫고 그걸 꾸준히 해나가라.
그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다.
지난 생에, 조성현은 ‘명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다른 이들은 부디 후회스러운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리고 조성현은 생각에 잠긴 어린 학생을 보고, 미소를 지은 후 입을 열었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결론 내리기 전까지는, 공부를 하는 게 좋겠죠?”
“감사합니다. 정말로.”
“아니에요. 응원할게요.”
“네.”
“아, 그리고… 피아노가 그렇게 좋다면. 매일, 한 곡의 여유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마침 여기 피아노도 있으니.”
조성현이 슬쩍 피아노를 가리키며 말했고, 여학생이 웃음을 흘렸다.
“그렇죠. 하루 한 곡…”
여학생이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조성현은 그런 여학생을 보며 빙긋 웃었다.
금방, 본인의 길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