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유치원.
채윤이는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건반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아빠와 할머니가 통화하는 것을 엿들었다.
‘채윤이는 잘못 없어.’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다 보니까 들린 거다.
그러니까 자신은 잘못이 없다.
채윤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끔뻑거렸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잘못했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아빠 생일….”
생일.
그건 아주 중요한 날이다.
적어도 채윤이가 알기로는 그랬다.
유치원 식구들 중 누군가 생일이면 다들 선물을 준비하고 막 그러니까.
케이크도 먹고, 다들 박수를 쳐준다.
재미있는 날이었고, 생일인 사람이 무언가 잘못을 해도 용서를 해주는 날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날.
그런 날이 생일이다.
일요일이면, 벌써 코앞이었다.
두 밤만 자면 바로 일요일이었으니까.
유치원 친구가 생일일 때는 할머니나 아빠가 생일 선물을 준비해서 줬는데….
조성현이 생일이면,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채윤이는 괜히 뚱한 얼굴로 건반을 두드렸다.
퉁…
피아노가 가볍게 울렸다가 사라진다.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가, 이내 다시 내렸다.
콩쿨에서 피아노를 칠 때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잘 치고 싶고 그런데,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연습이 제대로 안 된다.
아빠 선물을 뭘 줘야 할지.
그게 지금 채윤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채윤이는 얼굴을 찡긋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결국 인정했다.
자신 혼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지지리야.’
할머니가 맨날 뭔가 실수를 하거나 하면 지지리라고 했다.
자신은 지지리가 분명하다.
아빠의 생일 선물로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지지리.
그러니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지지리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법이니까.
채윤이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아이는, 민은정 선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곳에 있는, 유일한 어른.
가장 성숙한 사람.
제일 똑똑한 사람이다.
‘미현이나 영준이보다는 똑똑할거야.’
선생님은 지지리가 아닐거다.
채윤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피아노 의자에서 폴작 뛰어내렸다.
아이는 민은정 선생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어? 채윤아.”
민은정 선생은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는 채윤이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힐끗 피아노 쪽을 보았다가 다시 채윤에게 시선을 움직였다.
“응. 무슨 일이야?”
“도움이… 필요해요.”
채윤이 말한다.
아이의 말에 민은정 선생은 얼른 말해보라는 듯, 채윤이 쪽으로 몸을 살짝 숙였다.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는건 다 도와줄게.”
채윤이가 이렇게 다가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니, 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 채윤이가 자신을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다니.
분명 큰일이 생긴 거다.
민은정 선생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른 말해보라는 듯 무릎을 굽히며 채윤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일요일이….”
“응. 일요일이.”
그녀는 채윤이의 말을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윤이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채윤이 아빠 생일이에요.”
“어?”
“아빠, 생일.”
“아버님 생신이 일요일이야?”
민은정 선생의 말에, 채윤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든다.
아이는 민은정 선생을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생신 아니고 생일.”
“응?”
“채윤이 아빠 생일이에요. 일요일에.”
단단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생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건 아니고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민은정 선생은 어? 하고 소리를 냈다가 이내 풀썩 웃었다.
그녀는 채윤이에게 잠시 생일이 생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제서야 채윤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요 그거. 생신.”
“아무튼, 일요일이 아버님 생신이신데. 그래서?”
“채윤이는 아빠 선물 뭐 줘야 할지 몰라요.”
아이는 민은정 선생에게 잘 털어놓았다.
자신이 모르겠으니까, 도와달라고.
민은정 선생은 채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채윤이 착하네. 아빠 생신도 챙길 줄 알고.”
“…채윤이는 안 착한데.”
그 말에, 민은정 선생은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채윤이에게 어떤 답을 해줄지 잠시 고민했다.
심각하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큰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큰일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물론, 채윤이에게는 큰일이겠지만.
“채윤아.”
“네에?”
“채윤이 아빠는 어떤 걸 좋아하시는데?”
그 질문에, 채윤이는 고민했다.
분명 자신도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채윤이.”
“아하하. 맞아. 채윤이 아빠는 채윤이 좋아하시지?”
“응.”
채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도, 아빠가 좋았으니까.
기분 좋은 대답이었지만, 생일 선물로 자신을 줄 수 없으니 그리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었다.
민은정 선생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어떤 거 좋아하신다는데?”
“채윤이 아빠는 음악 좋아해요.”
자신처럼, 음악이 좋다고.
아빠가 그랬었다.
채윤의 말에 민은정 선생은 흐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아, 채윤아. 아빠가 채윤이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니까… 이런 건 어때?”
민은정 선생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했고.
채윤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이는 민은정 선생의 설명을 귀담아들었고.
“좋아!”
다 듣고 나서, 채윤이는 밝은 얼굴로 답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맺혀 있었다.
‘역시, 물어보길 잘했어.’
채윤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지리인 자신은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해내지 않았나.
나중에도 모르겠는 게 있으면 민은정 선생에게 또 한번 물어보면 되리라.
아이는, 당당한 걸음으로 피아노 쪽으로 향했다.
그런 채윤이를 민은정 선생이 부드럽게 웃으며 지켜보았다.
* * *
조성현은 걸음을 서둘렀다.
퇴근이 평소보다 살짝 늦었다.
평소였으면 칼퇴근을 했을 텐데, 최우진이 조성현에게 조금만 더 알려주고 가라면서 붙잡아서 퇴근이 조금 느렸던 것.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달라붙으면서 형님형님 거리는지 모르겠다.
‘나쁘지는 않은데….’
최우진은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이후 활동을 하면서도 일단 조성현이 아는 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음악에 있어도 한없이 진지해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성현이야 최우진이 자신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품는 건 전혀 상관이 없었다.
형님형님 거리면서 조금만 더 알려달라고 붙어서 그렇지.
그래도 일단 잘 해결하고 나왔다.
채윤이가 기다릴까 봐, 그는 저 멀리 유치원이 보이기 시작하자 걸음을 더 서둘렀다.
숨이 살짝 거칠어질 때쯤.
그는 채윤이의 유치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채윤이는 역시, 조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피아노를 등지고 앉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조성현이 오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로 달려왔다.
조성현은 웃으며 아이를 안았다.
민은정 선생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며 다가온다.
조성현도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제 채윤이랑 같이 드레스 샀어요.”
“아! 드레스 사셨구나.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까먹고 있었는데, 다시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콩쿨에도 입고, 이번에 졸업식 때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아뇨. 제가 감사하죠. 따로 의상 준비 못 할 것 같아서 채윤이한테 조금 미안했는데.”
민은정 선생이 웃으며 답을 한다.
조성현은 손을 흔들었다.
민은정 선생이 미안해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제가 챙겨야 하는 건데요 뭘. 선생님께 항상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민은정 선생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조성현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이제 집에 돌아가려 하는데.
“아저씨.”
“아, 영준이 안녕.”
영준이가 다가와 조성현과 채윤이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응. 오늘도 고마워. 채윤이랑 잘 놀아줘서.”
아니라는 듯, 영준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그는 채윤이를 한 번 봤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오늘 줄 거 있다고, 아저씨 일찍 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어요.”
“그래?”
조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미원이 뭔가 주겠다고 한 기억은 없었다.
뭘 주려고 영준이보고 자신이 일찍가지 못하게 하라고 한 걸까.
조성현은 채윤이와 영준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며 잠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미원의 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주차를 한 그녀는 운전석에서 내렸다.
옷 여기저기에 페인트가 묻어 있는, 작업복이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켄버스가 들려 있었다.
정미원은 조성현을 발견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성현씨.”
“네, 안녕하세요.”
“영준이보고 잡아두라고 했는데, 잘 잡아 놨네요.”
“하하.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일단 이거 받으세요. 이거 주려고 잡아두라고 했어요.”
정미원이 들고 있던 켄버스를 조성현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내미는 캔버스를 받아 확인하니, 지난번에 채윤이와 미니쥬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린 것이었다.
채윤이가 토끼를 안고 있는 사진.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났다.
사진 속에서는 토끼가 약간 불안한 듯한 기색으로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고 있었는데.
그림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번에, 성현씨한테 줄 사진 고르다가 너무 예뻐서 스케치 한 번 했는데. 그냥 두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그려봤어요.”
“진짜 예뻐요. 감사합니다. 지난번에도 그림 선물해주시더니….”
“예뻐서 그리는 거예요. 부담가지진 마세요.”
정미원이 그렇게 말했다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 부담되시면 나중에 기회 될 때 유미나 서예나 싸인 좀 받아주던가요.”
그녀의 말에, 조성현이 웃었다.
유미나 서예나의 싸인을 받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네, 나중에 꼭 받아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받아준다는 말 기억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웃던 정미원은, 아 하고 소리를 내더니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제가 지난번에 말하려다가 까먹은 건데. 미니쥬 사장님이 그때 채윤이 그렇게 간 거 너무 안타깝다고, 나중에 찾아오면 무료로 입장시켜드린다고 하더라고요. 꼭 다시 한번 와달래요.”
“아….”
조성현은 시선을 움직여 채윤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눈을 빛내며 조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다시 한번 가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내 딸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