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세계 어디를 가도 닭튀김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튀겨 놓으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튀긴다는 조리법은 일종의 치트 키다.
그런데 닭을 튀겨 놓았으니, 맛없을 수가 있겠는가.
“한국에 살면서 어떻게 치킨을 안 먹어 볼 수 있어.”
한국에서 치킨은 전통 음식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자리를 잡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음식이지만, 완벽하게 현지화를 마친 상태였다.
치킨이 야식에서 항상 거론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맛도 그렇지만, 가성비도 좋잖아.”
다른 고기들을 생각해 보라.
돼지나 소를 양껏 먹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가.
하지만 닭은 그 둘에 비해서 단가가 싼 편에 속한다.
즉,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치킨은 양껏 먹을 수 있다.
“일단 서준이 네가 치킨에 진심이라는 건 알겠어.”
은혜는 차분하게 변론했다.
은혜는 설아의 건강을 생각해서 요리는 직접 하는 편이다.
또한, 설아를 혼자 키울 때는 돈이 부족해서 배달을 시키는 건 사치였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설아는 못 먹어 본 게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거 찾으면 일단 먹여야지.
“게다가 치킨이 열량이랑 나트륨 함량이 얼마나 높은데.”
“주에 한 번 정도는 맛있는 거 먹어도 괜찮잖아.”
무심코 내뱉었다가, 나는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은혜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 그러면 매일 먹는 내 요리는 맛없었나 보다.”
나는 전력으로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잘못을 인식하는 것보다 행동이 빨랐다.
은혜의 왼쪽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아니야?”
전력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버트처럼 두개골이 빠지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 두개골이 아니었다.
은혜가 넌지시 물었다.
“그럼 맛있었어?”
“와. 역시 우리 은혜. 완전히 부엌을 뒤집어 놓으셨다. 진짜, 최고의 요리사.”
“영혼 어디 갔어?”
너무 당황한 나머지 리액션이 제대로 안 나왔다.
실제로 은혜는 수준급의 요리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팔아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의 가정식이 매일 나온다.
맛없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서, 설아야. 엄마 요리 맛있지?”
“네! 마시써요!”
비겁하다고 욕해도 좋다.
어쩔 수 없이 설아에게 리액션을 돌렸다.
설아는 해맑게 대답했고, 다행히 은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설아는 내 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천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빠는 엄마 요리 맛없어요?”
“딸.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배신감이 몰려왔다.
설아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이 질문 하나로 나는 낭떠러지로 몰렸다.
은혜는 말없이 웃으며 나를 봤다.
“난 평생 은혜 요리 먹어도 돼. 치킨 필요 없어.”
“누가 평생 요리해 준대? 됐거든.”
다행히 이번에는 영혼이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은혜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싸늘하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자칫했으면 큰일 났을 거다.
“그래서, 뭐 시킬 거야?”
“난 은혜 요리가 먹고 싶네.”
“재료도 없어. 이참에 설아에게 치킨도 먹여 보자.”
“그럼 반반으로.”
* * *
치킨 배달부 최달배는 오늘도 배달할 치킨을 받았다.
확인한 영수증에 의하면 꽤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다.
점심에는 저녁이나 밤보다 한가했기 때문에, 바로 가면 될 것 같았다.
영수증 하단에 적힌 배달부에게 전하는 요청 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빵빵 조심해서 오세요?’
애기가 음식을 시키기라도 한 듯, 뭔가 귀여운 요청 사항이었다.
멀쩡한 성인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조금 무서울 것 같기도 했다.
최달배는 치킨을 탑박스에 싣고, 헬멧을 뒤집어썼다.
부릉.
오토바이가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최달배는 다른 배달부들과 달리 신호 위반을 일삼지 않는다.
규정 속도도 되도록 지키고 있어서, 이따금 음식이 식었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오기도 한다.
속도가 느리다 보니 배달하는 양도 적었고, 다른 배달부에 비해 버는 돈도 적었다.
최달배는 헬멧 안쪽에서 더운 숨을 내쉬었다.
‘배고프다.’
하루 종일 음식을 배달하고 있지만.
정작 최달배는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이것만 배달하면 여유가 조금 나겠지만 말이다.
최달배의 오토바이가 멈춰 섰다.
‘어디 보자. 몇 호야?’
최달배는 치킨을 들고 영수증에 적힌 주소를 찾아갔다.
오토바이 헬멧을 푹 눌러쓰고,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문 너머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아이 목소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렸다.
굉장히 귀여운 어린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아이, 설아가 꾸벅 배꼽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설아예요!”
“어, 어. 안녕하세요.”
최달배는 조금 당황했다.
보통은 치킨만 받고 가거나, 나지막한 감사 인사를 받는 게 전분데.
아예 인사를 해 오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그게 치킨이에요?”
설아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최달배의 손에 들린 봉지를 봤다.
최달배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설아에게 치킨을 넘겼다.
“고맙습니다!”
설아는 두 손으로 봉지를 받아 들었다.
애가 예쁜데 예의까지 바르다.
영수증에 적혀 있던 귀여운 요청 사항이 떠올랐다.
최달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맛있게…….”
최달배가 가려는 순간.
치킨을 바닥에 내려놓은 설아가 답삭 최달배의 손을 잡았다.
문에 아이 손이 찧일까 놀란 최달배가 닫히는 문을 발로 밀어 고정했다.
“왜 그러세요?”
“아저씨. 이거 조아해요?”
설아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뭔가 하고 보니, 한 박스에 서른 개씩 들어 있는 초콜릿 빵이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최달배는 저도 모르게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설아는 잘됐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두 손으로 초콜릿 빵을 척 건넸다.
“그러면 설아가 이거 줄게요! 선물!”
“……고마워요.”
최달배는 초콜릿 빵을 받아 들었다.
평소에는 딱히 사 먹을 생각도 안 드는 초콜릿 빵인데.
어째선지 받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설아는 또다시 꾸벅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빵빵이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설아도, 치킨 맛있게 드세요.”
“네에!”
* * *
“받아 왔어요!”
“잘했어요. 우리 설아.”
설아는 배달이라는 개념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기특하게도 배달부에게 요청 사항을 직접 적고 싶다고 하더니, 저렇게 받아 온다.
어디서 날개 잃은 천사가 뚝 떨어진 거 아닐까 싶었다.
배달부는 심장에 제대로 타격을 입은 듯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분명히 들었다.
‘무슨 애가 이렇게 귀엽지? 하고 중얼거렸지.’
우리 애가 좀 귀엽긴 하다.
내 칭찬도 아닌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설아는 열심히 치킨을 옮겨 왔다.
식탁에 앉아, 박스를 열었다.
“우와.”
“오랜만이다. 치킨.”
정갈하게 반으로 갈라져 있는 치킨이 보였다.
한쪽은 정통의 프라이드, 다른 한쪽은 그 짝꿍 양념이다.
간장, 갈릭, 파닭, 구운 치킨, 치즈 등 온갖 치킨이 있긴 하지만.
일단 나는 치킨의 근본이 양념 반 프라이드 반에 있다고 생각한다.
“잠깐만.”
양념의 호일을 뜯어내, 다리의 아래쪽을 돌돌 감싼다.
뜨겁지 않게 두껍게 감싸고 확인한 후, 설아에게 건넨다.
일단 처음은 잡고 뜯는 거다.
“여기. 설아 먹어 봐.”
맵찔이가 둘이라 일단 양념도 달콤한 부류의 치킨이지만.
먼저 프라이드를 건네 봤다.
설아는 닭 다리를 받아 들었다.
“뜨거워. 조심해.”
“네에. 합.”
설아가 닭 다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튀김 부분이 야들야들한 허벅지 살을 따라 미끄러지듯 벗겨진다.
입이 작아서 그런지 많은 양을 먹지는 못했지만.
일단 되는대로 집어넣은 듯, 설아는 열심히 입을 오물거렸다.
배시시.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기분이 좋을 때 으레 그러듯, 두 눈을 꼭 감는다.
한참 입을 오물거린 끝에 치킨을 삼킨다.
“어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세상에 닭튀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마시써요!”
“얼마나?”
하지만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실제로 치킨보다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설아의 입에 맞을지는 의문이었다.
설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슈크림보다 더!”
“헉.”
설아의 최애 음식이 바뀌었다.
* * *
조금 부족하진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너무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와 은혜, 설아가 함께 먹으니 딱 만족스러운 정도였다.
“잘 먹었습니다!”
“설아 치카치카 할까요?”
“안 돼요……. 지금 움직이면 설아 배 터져요…….”
설아는 자기 배를 통통 두드렸다.
실제로 평소 먹는 것보다 좀 많이 먹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이니까 인정해야지.
뼈를 치우던 은혜가 넌지시 설아를 불렀다.
“설아야.”
“네.”
“치킨이 뭔지 알아요?”
“Chicken! 닭!”
“우리 설아 똑똑하네.”
“에헤헤.”
저번에도 그랬지만, 설아는 영어를 얼추 하고 있었다.
이 나이에 한국어는 물론 셈도 할 줄 아는 시점에서 대단한 건데.
은혜는 설아에게 막 공부하라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런 식으로 조금씩 가르쳐 주는데, 저 정도다.
그냥 애가 똘똘한 거 아닌가 싶었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설아야. 사람들이 닭을 왜 키우는지 알아?”
“어, 귀여우니까?”
“아니야. 지금 치킨 먹었잖아.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헉. 잡아먹어요?”
“응.”
설아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렸다.
은혜는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 소리 죽여 웃었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추가했다.
“그럼, 엄마랑 아빠가 설아를 왜 키웠을까?”
설아는 나와 은혜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이 점점 커졌다.
큰 충격을 받은 듯 나를 올려다보더니, 동공이 양옆으로 흔들린다.
떨리는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조심스레 중얼거린다.
“자, 잡아먹으려고……?”
나는 말없이 웃음으로 답했다.
설아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마침 입가에 있는 양념이 신경 쓰여, 혀로 닦아 냈다.
군침을 다시는 것처럼 됐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고의였다.
설아가 목을 움츠렸다.
“……설아 잡아먹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외계인이라는 것도 믿었던 앤데.’
설아는 무서웠는지 물기 가득한 눈을 은혜 쪽으로 돌렸다.
은혜는 마냥 귀엽다는 듯 미소를 띠고 설아를 보고 있었다.
그게 얄궂게도 지금의 내 사악한 표정과 미묘하게 겹쳐 보였다.
불안함이 증폭됐는지, 울먹거리던 결국 설아가 울음을 터트렸다.
“우와아앙!”
“야! 애 울리면 어떡해!”
“아니, 은혜 너도 그냥 보기만 했잖아!”
“으허어엉……!”
문제는 그 시점에서 시작됐다.
쩌억.
불안한 소리와 함께, 냉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