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1)
11화
황금 같은 휴일.
이재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오늘은 그의 아들, 이서준이 오는 날이었다.
도통 연락이 없던 아들이 갑자기 찾아온다고 한다.
전화로는 면박을 주긴 했지만, 아마 뭔가 용무가 있을 터.
째깍, 째깍.
벽에 걸린 시계로 자꾸 눈이 갔다.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흘리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빠른 걸음으로 인터폰 쪽으로 다가가 화면을 살폈다.
‘혼자군.’
참한 색싯감이라도 데려올 줄 알았더니.
이서준은 오늘도 혼자였다.
‘스무 살 때 데려왔던 그 아가씨가 야무지고 좋았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 아가씨, 유은혜와 이서준이 헤어진 건 꽤 오래된 일이었다.
혀를 찬 이재환은 공동 현관문을 열어 줬다.
조금 기다리자 초인종이 울렸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이재환은 현관문을 열었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래. 들어 와라…… 응?”
이재환은 당황했다.
이서준의 뒤에서 발견한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나이는 대여섯 살쯤 돼 보였는데, 서준의 다리 뒤로 살짝 숨은 상태였다.
살짝 고개를 내민 설아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재환을 올려다봤다.
이서준은 슬며시 설아를 앞세우고 말했다.
“설아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이재환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었다.
설명을 요구하듯 이서준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이서준이 설아의 뒤로 숨듯이 물러났다.
“저 애는 누구 애냐?”
“제 딸입니다.”
* * *
안방.
나는 아버지 앞에 꿇어앉았다.
설아를 아버지 댁으로 데려온 이유는 간단했다.
나와 은혜가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설아를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린이집 같은 보육 시설은 조금 곤란했다.
설아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조금 특별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반드시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우리 아버지였다.
“서준아.”
“네. 아버지.”
“누구 애냐.”
“제 딸이라니까요.”
“애엄마 말이다, 이놈아.”
“은혜예요. 기억하세요?”
“은혜? 기억하지. 그럼.”
아버지는 은혜와 만난 적이 있었다.
스무 살 때, 술에 떡이 된 나를 은혜가 집에 데려다줬을 때 인사했다고 한다.
다행히 은혜는 어른을 잘 대하는 편이었고, 아버지는 그런 은혜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가끔 색시로 데려오라고 말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애가 다섯 살일 줄은 몰랐다.”
“저도 몰랐어요.”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 아버지는 묵묵히 내 말을 듣고만 계셨다.
내 설명이 끝날 때쯤, 아버지께선 넌지시 물었다.
“결혼은?”
“청혼했습니다.”
“언제 할 건데?”
“성공했다고는 안 했는데요.”
“뭐?”
만나자마자 청혼했지만, 은혜는 그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 나와 은혜의 관계는 진전보다 회복이 먼저였다.
은혜도 그걸 알고 있기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제가 잘못한 일이 많아요.”
몇 주간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게 자격이 있는 걸까.
“부담 주기도 싫고요.”
“쯧. 네가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아버지는 다행히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그러고는 설아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말이다. 크흠. 하루아침에 할아버지가 될 줄이야.”
“이쁘지 않아요? 설아야.”
무릎을 탁탁 쳤다.
기다렸다는 듯 쫄래쫄래 다가온 설아가 양반다리를 한 내 품에 쏙 안겼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생물을 품에 안은 감각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직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물어보면 엄마가 좋다고 하긴 해도…….’
처음에는 주저 없이 엄마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래도 요즘은 고민하는 기색이 어느 정도 보였다.
아이스크림으로 잘 매수하면 가끔 아빠가 나오기도 했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설아, 얌전히 잘 기다렸어. 기특해.”
“히히! 그렇죠?”
“크흠.”
아버지께서 헛기침하며 내게 눈치를 줬다.
시선은 설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세상에 설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더니.’
언젠가 은혜가 스쳐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맞는 말이었다.
길거리만 걸어 다녀도 시선이 모이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애가 워낙 예쁜 데다가 하는 짓까지 기특하고 귀엽기 짝이 없으니.
이 조그마한 생명체에 매료되지 않으려면 일단 피가 파란색이어야 한다.
“설아야. 설아 할아버지야.”
“할아부지?”
악수라도 하려는 걸까.
아버지는 설아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그 손을 내려다보던 설아는, 허리를 숙여 제 턱을 손바닥에 올렸다.
“응?”
은혜가 자주 설아의 말랑한 볼을 매만지던 것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말랑말랑한 볼이 아버지의 손에 잡혔다.
“으에에.”
아버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찹쌀떡 같은 설아의 볼을 주물럭댔다.
내게 보이던 엄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헤벌쭉 올라간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상당히 진지하시고, 엄한 분이었는데.
그런 아버지를 불과 수 초 만에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웃으며 설아를 대하던 아버지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래서, 그 말 하려고 찾아온 거냐?”
“아니요. 설아 좀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뭐라고?”
“저희가 잠깐 갈 데가 있는데, 달리 맡아 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아버지 성격대로라면, ‘여기가 어린이집이냐!’라고 역정을 내시면서 내쫓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고 계셨다.
“지금 나보고 황금 같은 휴일에, 애나 보라는 말이냐? 여기가 어린이집이냐?”
“그, 힘드시면 따로 알아볼게요.”
“아니! 힘들다고는 안 했다!”
* * *
“아버님은 어떠셨어?”
“설아한테 푹 빠지신 것 같던데.”
“역시 내가 같이 갔어야 하지 않을까?”
“됐어. 무슨 소리 들을 줄 알고.”
나는 은혜와 함께 백화점에 왔다.
은혜에게는 던전에 가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 왔다고 했지만, 사실 여기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개장한 지 얼마 안 된 백화점 1층에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뭐야?”
“성수현.”
“성수현? 그 사냥꾼?”
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자들로 이루어진 군중은 성수현의 팬클럽이었다.
방송 매체에 얼굴을 자주 비치는 사냥꾼은 연예인이나 다름없다.
그중에서도 성수현은 유별나게 잘생긴 외모 덕분에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우리도 구경하고 갈까?”
“너, 기사단에 퇴짜 놨잖아.”
“아. 맞다. 그래도, 나 모르지 않겠어?”
“그럴 시간 없어.”
“에이. 얼굴만 보자.”
“시간 없다니까.”
은혜는 나를 따라오다가, 어깨를 잡고 빙글 돌렸다.
야무진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너 왜 그래?”
“뭐가?”
“아까, 좀 이상했어.”
“아니거든?”
“맞거든.”
은혜는 걱정스럽게 나를 살폈다.
하여간 눈치는 되게 빠르다.
어떻게 얼버무릴까 궁리하다, 중얼거렸다.
“휴. 긴장돼서 그래.”
“뭐야. 지망생이 들어가도 되는 초보자용 던전이라며.”
“……그래도.”
일단 말은 그렇게 해 놨어도, 초보자용 던전에는 가지 않을 거다.
마나 감응에 이어 부여까지 끝난 지금, 초보자용 던전은 의미가 없었다.
은혜는 씩 웃으며 주먹 쥔 손으로 내 가슴을 툭 쳤다.
“괜찮아. 이 누나가 지켜 줄게.”
“참 나. 누나는 무슨.”
“넌 오빠 하면서, 난 누나 하면 안 되냐? 내가 너보다 빨리 태어났거든?”
“얼마나 차이 난다고.”
실제로 은혜는 나보다 생일이 빨랐다.
다행히 잘 얼버무린 모양이었다.
은혜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중얼거렸다.
“네가 상대했던 괴물, 초보가 상대할 만한 건 아니었대.”
“크리튼 불?”
“응. 초보자용 던전에는 그런 괴물은 없을 거 아냐. 너무 긴장하지 마.”
나는 유심히 은혜를 바라봤다.
은혜는 자기가 말하고도 멋쩍었는지 몸을 돌렸다.
아마 내가 트라우마 비슷한 것 때문에 긴장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혹시 설아가 기특하게 구는 건 유전일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냥 성수현이 달갑지 않았던 건데.’
나는 고작 크리튼 불에게 트라우마를 가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 상대하던 놈들에 비하면, 크리튼 불은 귀여운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은혜가 걱정해 주는 건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 후딱 끝내고 설아 보러 가자.”
“아주 좋은 생각이야. 나 벌써 금단증상 오려고 해.”
“은혜 너 그거 설아 중독이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근데 무기는 강철이 어르신께 받았잖아.”
“무기 말고, 소모품 사려고. 던전 공략에는 여러 개 필요하거든.”
“소모품은 왜 시장에서 안 사고 백화점에서 사는 거야?”
“소모품 같은 경우에는 가격대가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으니까. 품질도 확실하고.”
이미 공략법이 알려진 던전 같은 경우에는, 필요한 물건만 세트로 판매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갈 던전은 아직 공략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런 걸 살 수는 없었다.
“이거하고, 이거랑…….”
나는 시곗줄과 몇 종류의 가공되지 않은 약재, 등산용 로프와 기름 지포라이터 등을 샀다.
시곗줄은 마나 라이트에 달아, 손목시계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서 찼다.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가 있었다면 필요 없는 물건이겠지만.
나도 은혜도 아직 마나를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느끼지는 못한다.
‘설아를 위험하게 던전에 데려올 수는 없으니.’
설아도 다가올 미래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나와 은혜가 최소한의 무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약했고, 설아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저번에 나타났던 미전조 균열이, ‘나비효과’가 신경 쓰였다.
그 이후로 특별하게 이상한 일은 없었지만, 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서준아.”
“응?”
“뭘 그렇게 생각해?”
화장실에 다녀온 은혜가 내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집중해야 했다.
“내려가자.”
“다 샀어?”
“응. 대충.”
우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백화점 1층으로 향했다.
1층에는 어느새 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꺄아아악!”
“오빠아아!”
함성과 함께, 누군가 백화점 내부로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쓴 성수현이 경호원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사냥꾼이 경호원이라니, 솔직히 조금 웃겼다.
“예약 시간은 언제야?”
다행히 은혜는 성수현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시계를 찾으며 시간을 확인한다.
스무 살 때, 나는 약속 시간을 어기기 일쑤였다.
은혜가 대신 신경 쓰며 챙겨 줬던 것이 떠올랐다.
픽 웃음이 나왔다.
“나 이제 시간 잘 보거든?”
“어이구. 그래서 오늘도 지각했어?”
“크흠. 아버지랑 얘기 좀 하다 보니까.”
“뭐라 하는 거 아니야. 쫄지 마. 바보야.”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침이 2시를 가리키기 직전이었다.
가장 먼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성수현이었다.
선글라스를 살짝 위로 올린 성수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거 왜 그래?”
마나 라이트가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은혜도 뭔가 느낀 듯, 인상을 찡그렸다.
마나로 이루어진 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듯한, 사냥꾼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
백화점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