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애옹.
그날, 이른 저녁.
나는 고양이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커튼을 친 덕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니, 눈이 서서히 암순응했다.
내 가슴팍을 밟고 서 있는 스승님이 보였다.
은혜와 설아는 고른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조금 이르게 재우긴 했는데, 금방 잠드네.’
설아는 아이라서 그런지 잠이 참 많다.
그리고 은혜는 아침잠을 아껴 가며 훈련한다.
게다가 원래 운동하면 피곤한 법.
조금 일찍 자자고 했더니, 금방 잠들어 버렸다.
-조용히 준비해.
사전에 합의한 내용이었다.
저녁에 눈을 좀 붙인 덕에 잠은 오지 않았다.
웨네버 슈트도 제대로 입고 있었다.
-로브도 챙기는 게 좋을 거야.
스승님(에르제베트)의 충고대로, 로브를 챙겼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로브는 내 손에 잡히자마자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쓸 때는 또 써야지.
모더까지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에르제베트는 내 뒤를 따라왔다.
“이제 말해도 되겠지?”
“조금 더 가서 하는 게 좋지만 말이야. 일단 로브 입어.”
“얘 나 싫어하던데.”
나는 설아의 사이즈에 맞춰 조그맣게 줄어든 로브를 봤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얘의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얘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허가된 사람은 해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하니까 괜찮아.”
“허가된 사람이 누군데?”
“튜토리얼 타워에 진입한 적이 있는 사람, 혹은 마녀.”
“요컨대 막 해코지할 일은 없다는 거네.”
튜토리얼 타워 마지막 층에서 마법을 쏘아 대던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어쨌든 간에 원래 주인이 해코지는 못한다고 했으니.
나는 로브에 팔을 끼워 넣었다.
로브의 사이즈가 훅 늘어나며, 내 몸에 알맞게 변했다.
고쳐 입었지만, 로브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근데 이건 왜 가지고 나오라고 한 거야?”
“일종의 방해 마법이 걸려 있거든. 어느 정도 신분을 감출 수 있을 거야.”
“하긴. 도둑질하러 가는 건데 복면 정도는 필요하지.”
“얼굴을 감출 수 있는 게 있다면 더 좋을 거야.”
“마스크 하나 챙겨 왔어.”
에르제베트는 훌쩍 뛰어 내 어깨에 올라탔다.
편한 자세를 잡듯 두 앞다리를 걸쳐 놓는다.
뒤를 보니, 로브가 뒷다리를 받쳐 주고 있었다.
“가자.”
“어깨에 고양이를 달고 다니면 수상해 보이지 않을까?”
“로브 덕에 널 인식하긴 힘들 거야. 괜찮아.”
“왜 수치스러움은 내 몫이지?”
* * *
서울헌터옥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균열 관련 물품 경매장이다.
출품되는 건 주로 희귀한 괴물의 소재나 아티팩트다.
유명한 사냥꾼이나 사냥꾼 업계의 큰손, 단순한 수집가까지.
이름 있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였다.
“아니. 이거 성수현 님 아니십니까.”
“……누구였지?”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성수현은 대충 명함을 받아 들고, 눈앞의 남자와 악수했다.
괴물의 소재를 대량으로 사들여 파는 중개업자였다.
명함에는 김무명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였기 때문에 큰 관심은 없었다.
김무명은 슬쩍 성수현을 살폈다.
“옥션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쓸 만한 아티팩트가 없나 보러 왔는데.”
“그러시군요. 저희 쪽에서 싼값에 후원해 드릴 요량이…….”
“사양하지.”
성수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중개업자 깜냥에 자신이 사용할 만한 아티팩트를 확보했을 턱이 없다.
그리고 후원이면 후원이지, 싼값이라는 건 또 돈을 받겠다는 얘기 아닌가.
성수현은 그대로 김무명을 지나쳐 옥션에 들어섰다.
웅성웅성.
경매장은 거대한 공연장처럼 되어 있었다.
무대라고 부를 수 있는 정면에는 경매품과 경매사의 자리가.
그 맞은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일찍 온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수현은 그들을 살피다가, 계단을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간단한 신원 검사를 받은 끝에, 성수현은 경매장 2층에 들어섰다.
띄엄띄엄 있는 발코니에는 안락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따로 초대받은 사람만 자리할 수 있는 VIP석.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 사람들만이 이곳에 자리한다.
성수현의 경우 사냥꾼으로서의 역량은 부족했지만, 연예인으로서의 인지도가 높았기에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나쁘지 않네.’
경매에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성수현은 이런 특별대우를 즐기는 편이었다.
안락의자 옆에는 재떨이와 간단한 와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성수현은 안락의자에 앉아 주변을 슥 둘러봤다.
바쁜 사람들이라 그런지, VIP석은 아래와 달리 대부분 공석이었다.
바로 옆자리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그곳에는 아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던 중개업자, 김무명이 앉아 있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중개업자 나부랭이인 줄 알았더니.
성수현과 눈이 마주친 김무명이 넉살 좋게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 * *
사냥꾼 관련 물품은 높은 가격을 호가한다.
제일 값싼 게 수십만 원, 비싼 건 수십 수백억을 호가하기도 한다.
그런 물건들이 대량으로 모여든 옥션의 경비가 허술할 리가 없었다.
사냥꾼 출신 경호원은 물론, 경비가 건물 전체에 진을 치고 있었다.
“삼엄한데?”
“그야 그렇겠지. 경매품 가격을 생각해 봐. 사실 저것도 안일한 거야.”
“그래도, 나 혼자 저걸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
“응.”
벌써 막막했다.
경비들이 허투루 동선을 짰을 리도 없고.
대부분이 사냥꾼 출신이라 감각도 좋을 거다.
입장하는 사람 하나하나 까다롭게 신원 확인을 하는 거 보면, 위장도 힘들다.
“차라리 기다리다가, 파편을 사 들고 오는 놈을 기습하는 건 어때?”
“마나가 담긴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특정하기 힘들 거야. 추후에 배송할 수도 있는 거고.”
“차라리 경매품으로 물건의 모습이 드러날 때 훔치는 게 확실하다. 이거네.”
“이목이 조금 쏠려 있긴 하지만. 로브 덕에 특정하긴 힘들 거야.”
“걸리면 나 감방 가는 거 아니야?”
“안 걸리면 범죄 아니야.”
“애가 왜 이렇게 컸어?”
불만스러운지, 어깨에 매달려 있던 에르제베트가 냥냥 펀치를 날렸다.
솜 주먹에 볼을 맞아 봐야 별로 아프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경매장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에르제베트. 네가 마법이나 저주로 어떻게 못 해?”
“가능했으면 내가 직접 왔겠지. 사정이 있어서 힘들어.”
“말하는 고양이를 경매에 내서 어그로 끄는 방법은 어떨까.”
“네 딸이 통곡하는 게 그렇게 보고 싶어?”
“맞네. 끙.”
충격받은 나머지 눈이 동그래진 설아가 떠올랐다.
아빠가 스승님을 팔았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은 뻔했다.
울음, 그리고 멸망이다.
집이 무너지는 선에서 안 끝날지도 모른다.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어. 연결을 통해서 하는 거니만큼 효과가 떨어지겠지만.”
“그거 다행이네. 아티팩트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해 봤겠는데, 맨몸으로는 막막해서.”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라고는 왕의 반지뿐인데.
이건 잠입에 쓸모가 없다.
속도 조금 빠르게 하자고 인간성을 바치는 것도 아까웠으니까.
갑자기 몸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브가 몸을 살짝 죄고 있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자기도 아티팩트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아. 맞다. 이것도 일단 아티팩트지. 근데, 기능이 있나?”
“생각보다 다재다능해.”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어떻게 경매장에 들어갈까 고민했다.
경비가 쭉 깔린 아래로 진입하는 건 힘들다.
‘위로 들어가는 게 좋긴 할 것 같은데.’
사람은 하늘을 좀처럼 안 본다.
아무래도 출입구가 있는 1층보다는 옥상의 경계가 덜할 터.
문제는 위로 올라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매장 주변에는 고층 건물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마법으로 날아갈 수 있나?”
“그건 마법도 필요 없는데.”
“왜?”
에르제베트는 훌쩍 내 어깨에서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로브가 내 몸에서 스르륵 벗겨졌다.
공중에 뜬 로브는 마법의 양탄자처럼 쫙 펼쳐졌다.
“오.”
그러고 보면, 설아도 이걸 타고 날아다녔다.
로브는 거드름을 피우듯 소매 부분으로 허리 쪽을 짚었다.
“어떠냐는데?”
“좀 날 줄 아는 녀석인가.”
“칭찬이 부족하면 안 태워 줄 거래.”
“지금 상황에서 딱 필요한 아티팩트였네. 내가 무지했네. 그걸 모르고.”
“그걸 이제 알았냐고 하네.”
“성격은 좀 그렇지만.”
* * *
서울헌터옥션 건물 옥상.
일정한 간격으로 난간 쪽을 돌아다니던 경비원은 잡음을 들었다.
귀에 꽂힌 인이어에 손가락을 올렸다.
사무적이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원 정기 보고.
-정문 이상 없음.
-후문 이상 없음.
-2층 이상 없음.
별일 없는 모양이었다.
당연하게도 옥상에도 별일이 없었다.
이상 없다고 보고하려는 순간.
바스락.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느껴지는 건 명확한 기척.
경비원은 빠르게 삼단봉을 꺼내 펼쳤다.
“옥상, 보고 바란다.”
옥션에 배치된 경비원은 모두 사냥꾼 출신이었다.
은퇴했거나, 아예 전향한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옥상을 담당하고 있는 경비원은 은퇴 쪽이었다.
하지만, 아직 마나를 사용하던 감각은 지니고 있었다.
“옥상?”
인이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조심스레 접근한다.
소리가 들려온 건 시야의 바깥쪽, 벽 뒤였다.
옥상에는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소리가 들려온 건 계단으로 통하는 문 쪽이었다.
코너 벽에 등을 붙인 경비원은 숨을 죽였다.
‘뭐였지?’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유사시를 대비해, 삼단봉에 마나를 불어 넣고 확 코너를 돌았다.
“어?”
아무도 없었다.
문도 제대로 닫혀 있었다.
혹시 몰라서 문을 열고 안쪽을 확인했지만.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비원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숨었다면.’
숨을 만한 장소는 하나뿐이었다.
문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커다란 실외기.
경비원은 실외기 뒤에 공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충분히 숨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언제든지 보고할 수 있도록 인이어에 손을 올리고, 삼단봉을 앞세웠다.
조심스레 실외기 쪽으로 다가갔다.
우우우웅.
실외기가 돌아가는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원이 실외기 가까이 접근한 순간.
무언가 불쑥 실외기 뒤에서 튀어나왔다.
“……깜짝이야.”
놀라 주춤 뒤로 물러난 경비원이 아래를 봤다.
실외기 뒤에서 나온 건 검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경비원은 놀란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양이였습니다.”
경비원은 별로 고양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고양이는 경비원을 빤히 바라보며 경계하듯 꼬리를 살살 흔드는 중이었다.
경계의 표시였는데, 괜히 다가갔다가 할퀴어질 수도 있었다.
기척의 주인이 고양이라고 판단한 경비원은 등을 돌렸다.
그렇기에, 실외기 뒤쪽에 몸을 바싹대고 있던 이서준을 보지 못했다.
“옥상, 이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