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총알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막힌 것이었다.
총알은 푸른 마나의 장벽에 박힌 상태였다.
마법.
“이 세계의 무기는 너무 살상력이 강해. 간단한 마법으로는 막기가 영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에르제베트가 ‘간단한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총알을 막는 게 간단한 마법인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칭찬은 나중에 해도 괜찮다.
철컥.
모더를 뒤틀었다.
스피어 모드(Spear Mode).
창을 꼬나 쥐고 그대로 남자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마나로 강화한 덕에 단숨에 몇 칸씩 올라갔지만.
반 층이라는 간격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추가로 사격할 찰나의 시간이 주어졌다.
탕! 탕!
총소리가 귀를 찔렀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분명 밑에 있는 경비들도 총성을 들었을 터.
잠깐 머뭇거리면 잡힐 수도 있었다.
다행히, 에르제베트의 마법은 견고했다.
총알은 모두 방어막에 튕겨 나갔다.
푹!
창을 내질러, 남자의 명치를 찔렀다.
그대로 벽까지 밀려난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축 늘어졌다.
사람을 향해 총을 쐈다는 건, 자기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다.
어쩌면 설아와 은혜의 불행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콱.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창을 뽑아내려는 순간, 남자가 창대를 잡은 것이다.
명치를 정통으로 꿰뚫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어?”
창을 뽑으려고 했지만, 남자는 창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대신 손을 쑥 내게 뻗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닿지는……!’
창의 길이를 생각하면, 손이 닿을 거리는 아니다.
그런데, 뼈가 어긋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팔이 쭉 늘어났다.
어깨에 매달려 있던 에르제베트가 경고했다.
“조심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모더를 뒤틀어, 원래 모양으로 바꾼다.
창날과 앞부분이 이쪽으로 돌아오며 회수됐다.
창대를 꽉 쥐고 있던 남자가 이쪽을 쭉 끌려왔다.
순간 강화.
움켜쥔 주먹과 팔, 어깨에 마나가 순간적으로 집중된다.
범람할 정도로 많은 양이지만,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상대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 하물며 괴물이라면.
성수현을 때렸을 때처럼 조절할 필요는 없다.
전력을 다해 남자의 안면을 때렸다.
뻐어억!
도저히 주먹을 내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안면이 일순간 뭉개지며, 고개가 확 뒤로 꺾였다.
명백히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번에는 충격이 컸는지, 남자는 모더를 놓고 뒷걸음질 쳤다.
뒤로 꺾였던 고개를 바로 든다.
‘이거 공포 영화에서 많이 보던 연출인데.’
뭉개진 코 위가 피범벅이었다.
통증을 느끼지도 못하는 건지, 무감정한 눈으로 나를 본다.
스트레칭이라도 하듯이 입을 벌렸다가 다물더니, 내게 질문했다.
“넌 누구지?”
“알려 줄 거였으면 마스크를 썼겠어?”
“그것을 돌려준다면, 죽이지는 않겠다.”
“그쪽은 협상할 상대한테 총부터 갈기고 보나 봐?”
“말이 안 통하는군.”
“말로 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말로 했어야지!”
남자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기괴하게 늘어난 팔은 낭창낭창한 채찍처럼 움직였다.
몸을 아래로 숙여 공격을 피했다.
쾅!
팔이 벽을 때렸다.
무슨 둔기로 내려친 것처럼 벽이 부서진다.
슈트를 입었더라도, 저거에 맞으면 꽤 아플 것 같았다.
“저거 뭐야?”
“일단 사람은 아니야.”
“그건 나도 알거든!”
무슨 해적왕이 될 남자도 아니고, 팔이 쭉쭉 늘어난다.
명치를 관통당하고도 죽지 않는다.
이게 사람일 리가 없지 않은가.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
웅성웅성.
계단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들이 기어코 위로 몰려온 것 같았다.
빨리 끝내야 한다.
에르제베트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코어, 찾았다.”
“어디에 있는데!”
“직접 봐.”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확 바뀌었다.
허공에는 먼지처럼 푸른 알갱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나였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잠깐 넋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한가운데에 웬 괴물만 없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저건가?’
그리고, 놈의 명치에 무언가 보였다.
유독 푸른색으로 빛나는, 작은 덩어리.
코어였다.
모더를 다시 뒤틀었다.
이번에는 끝내야 했다.
푸확!
내지른 창이 놈의 단전을 관통했다.
명치를 꿰뚫었을 때와 달리, 반응이 온다.
꾸르륵.
코어가 부서짐과 동시에, 놈이 타르처럼 녹아내렸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원래 보이던 시야로 돌아왔다.
“위다!”
아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녹아내린 괴물을 지나쳐, 옥상 문을 열었다.
* * *
바로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일단 멀리 날아가, 파편부터 파괴할 생각이었다.
추적이 붙었다면 따돌릴 요량도 있었다.
처음 보는 건물 옥상에 내렸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답답한 마스크를 벗었다.
“하아. 아까 그건 뭐야?”
“그 괴물? 나도 몰라.”
“괴물이 인간 행세를 해? 경매도 하던데.”
“인간이 괴물을 부활시키려고 한다는 것보다는 설득력 있잖아.”
“아니. 그건 그렇지만.”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에르제베트도 이 파편을 회수하려는 단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확실한 건, 인간 행세를 하는 괴물이 그사이에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도플갱어?’
내 지식에 의하면, 도플갱어라는 괴물이다.
인간의 모습을 복제해, 다른 사람을 속여 죽이는 괴물.
좀처럼 관측되지 않는 괴물인 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보스급 괴물은 아닌 만큼, 한 마리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이서준. 파편.”
“여기.”
파편을 건넸다.
에르제베트는 바닥에 파편을 두더니, 두 앞다리를 파편 위에 올렸다.
집중하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마나가 움직이는 게 미세하게 느껴졌다.
“……방금 코어는 어떻게 본 거지?”
“마법으로 시야를 공유했을 뿐이야.”
“그럼, 너한테는 세상이 저렇게 보인다는 거야?”
“집중하면.”
아예 보는 세계가 다르다.
마법사라고 저렇게 마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설아한테도 저렇게 보일까?”
“아마도. 던전 같은 데서 마나를 보지 않았어?”
“반짝반짝이라고 하던데.”
“마나 밀도가 높은 곳은 그래.”
잠깐 말이 끊겼다.
에르제베트는 파편을 부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옷에 피 같은 게 묻지는 않았을까 확인했다.
다행히 옷은 멀쩡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대답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그럼 대답할 수 있는 것만 대답해 줘.”
“뭔데?”
“일단 튜토리얼 타워의 보스. 그거, 알버트였어?”
에르제베트는 침묵했다.
꼬리가 바닥을 탁탁 친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신호다.
“그래. 맞아.”
“왜 알버트가 튜토리얼 타워의 보스인 건데?”
“튜토리얼 타워는…… 내가 살던 미드하임의 한 성을 복사한 복사본이야.”
미드하임이라면 분명, 시나리오 퀘스트 때 에르제베트가 말했던 대륙의 이름이다.
즉.
“다른 세계가 진짜 있는 거구나.”
“괴물들이 어디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 거야?”
“명확히 규명된 적은 없으니까. 전부 가설일 뿐이었지.”
“나는 적어도 이 세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거든.”
에르제베트는 차분하게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균열이 차원 간 충돌로 생겼다는 가설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다른 세계에, 지성체가 존재했던 거구나.
“알버트는 미드하임에 남은 거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아쉽게도.”
“시나리오 퀘스트에서 봤을 때랑 다르게, 더럽게 세 보이던데.”
“그야 내 하수인인데. 당연하지.”
“네가 그렇게 강했던가?”
“그때는 어렸잖아. 여러모로 서툴렀어.”
가만히 앉아서 에르제베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시나리오 퀘스트 이후에 있었던 이야기라든지, 설아에 관한 얘기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뭐 때문에 이렇게 말을 아끼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에르제베트도 답답해하는 걸 보니, 캐물을 수도 없었다.
파직.
그때, 파편에 금이 갔다.
에르제베트가 솜방망이로 파편을 눌렀다.
약하게 힘을 준 것 같은데, 파편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코어가 부서지면 일순간 마나가 폭발하듯 퍼질 텐데.
그냥 자연스럽게 바람에 날려 흩어진 것 같았다.
“됐다.”
“끝이야?”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면, 그것도 부활하지 않는 거야?”
“고작 파편 하나 부수었을 뿐이야. 그 정도로 영향을 끼치진 못했을 거고.”
“그럼, 다른 파편도 찾아서 부수면 되잖아.”
“그러다간 나비효과를 직격으로 맞을걸.”
“설아가 불행을 겪는 것보다는 나아.”
“나비효과는 비단 너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야.”
에르제베트는 의미심장하게 말하고는 앞발을 털었다.
로브가 휙 날아가 발바닥을 닦아 줬다.
“주의해서 움직일 필요가 있어.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지금은?”
“많은 게 바뀌긴 했지만, 적당한 수준이야.”
에르제베트는 입을 쩍 벌려 하품했다.
고양이의 모습이라 좀 귀엽다.
“이 몸으로 마나를 사용하니 피곤하네. 이만 연결을 끊어야겠어.”
“아니. 잠깐만.”
“필요하다면 내가 찾아갈게. 너는 너 나름대로 움직여.”
“너 할 말만 하지 말고, 좀 기다려 보라니까.”
“왜?”
막상 물어보자, 목소리가 안 나왔다.
물어보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결국 나온 말은 하나였다.
“고맙다고.”
어쨌든 간에 에르제베트는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왕의 반지에도 엄청나게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모르고 넘길 뻔한 위기에 대해 경고해 주지 않았는가.
에르제베트는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네게는 빚이 있으니까.”
“빚? 무슨 빚?”
“몰라도 돼.”
위로 올라간 꼬리가 살짝 흔들린다.
반응은 퉁명스러워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제 가 봐야겠어. 나도 움직여야 하거든.”
“뜬금없이 고양이 모습으로 나타나서 관찰하지 말고.”
“너는 나를 철부지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일 없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애였으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네. 다음에 봐.”
“응. 다음에 봐.”
에르제베트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에르제베트?”
애옹.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나온다.
스승님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스승님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스승님은 순순히 들렸다.
“집에 가자.”
로브가 좋다는 듯 붕붕 움직였다.
나는 로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힘들다.’
집 문 앞에 서니, 지나간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현실감이 없었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컥.
행여나 설아가 깨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기척을 죽이고 신발을 벗은 다음,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은혜와 눈이 마주쳤다.
“어우씨. 깜짝이야.”
“좋은 아침이야. 서준아.”
솔직히,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